[列國誌]
3부 일통 천하 (223)
제13권 천하는 하나 되고
제24장 자객 형가(荊軻) (8)
형가를 태운 수레가 함양성 안으로 들어섰다.
형가(荊軻)는 당시 진왕 정(政)의 총애를 받고 있는 중서자(中庶子) 몽가(蒙嘉)를 통해 진왕 정에게 알현을 요청했다.
- 대왕께서 그토록 바라시던 번어기(樊於期)의 목을 가져왔습니다.
아울러 연(燕)나라에서 가장 비옥한 독항 땅을 바치고자 하오니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진왕 정(政)은 무엇보다도 번어기의 목을 가져왔다는 말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야 번어기(樊於期)에 대한 분을 풀 수 있겠구나."
그는 형가(荊軻) 일행을 성대히 맞아들였다.
조복으로 갈아입고 구빈(九賓)의 예를 갖추었다.
- 연(燕)나라 사신을 들게 해라.
형가(荊軻)와 진무양(秦舞陽)은 함양궁으로 들어갔다.
함양궁은 진왕 정(政)이 머무는 왕궁 이름이다.
궁문 앞에서 몸 수색이 있었다.
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형가(荊軻)는 번어기의 목이 담긴 목함을 들고 앞장서서 걸었고, 진무양(秦舞陽)은 독항의 지도를 들고 그 뒤를 따랐다.
함양궁(咸陽宮)은 거대하고 호화스러웠다.
전상(殿上) 높은 자리에 진왕 정(政)이 독수리 같은 눈을 부릅뜨고 앉아 있었고, 그 아래 좌우로 신하들이 즐비하게 시립해 서 있었다.
형가(荊軻)와 진무양(秦舞陽)이 그 사이를 지나 계단 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애초 형가가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지도 안에 비수(匕首)가 들어 있음을 의식해서인지 진무양(秦舞陽)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하는 것이었다.
눈에 드러날 정도로 온몸을 떨고 있었다.
이를 본 진(秦)나라 신하들은 의심하는 마음이 일었다.
한 대신이 앞으로 나서며 진무양을 향해 외쳤다.
"부사(副使)는 어찌하여 그토록 안색이 돌변하는가?"
진무양(秦舞陽)은 더욱 겁에 질렸다.
답변을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 형가(荊軻)가 대신 나서서 큰 소리로 대답했다.
"송구합니다. 부사 진무양은 보잘 것 없는 작은 나라의 시골뜨기로서 이제껏 천자를 배알한 적이 없습니다.
천자(天子)를 처음 알현하는데, 어찌 몸과 마음이 떨리지 않겠습니까.
바라건대 무례를 용서하고 계속 사신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고는 전상의 왕좌에 앉아 있는 진왕 정(政)을 향해 절을 올렸다.
진왕 정(政)은 조금이라도 빨리 번어기의 목을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연(燕)나라 사신은 이리로 올라와 목함과 지도를 바쳐라!"
형가(荊軻)와 진무양(秦舞陽)이 계단을 오르려 하는데 좌우에 있던 시신(侍臣)이 다시 외쳤다.
"정사(正使) 한 사람만 올라가시오!“
진무양은 제지를 받았다.
형가(荊軻)는 어쩔 수 없이 진무양이 들고 있던 지도까지 받아 챙겨 전상 위로 올라갔다.
진왕 정(政) 앞에 이르러 무릎을 꿇고 먼저 목함을 바쳤다.
'이것이 번어기(樊於期)의 목입니다.“
진왕 정은 목함의 뚜껑을 열었다.
목이 잘린 얼굴 하나가 드러났다.
틀림없는 번어기(樊於期)의 목이었다.
기뻐하는 모습이 여실히 나타났다.
어느 순간, 진왕 정(政)이 고개를 들어 형가를 쏘아보았다.
"연(燕)나라는 어찌하여 번어기의 목을 지금에야 가져온 것이냐?"
"번어기(樊於期)는 오랫동안 산속에 숨어 있다가 얼마 전에야 연나라로 들어왔습니다.
이에 우리 왕께서는 즉시 번어기(樊於期)를 잡았습니다.
원래는 산 채로 데려오려 했으나 압송 중에 도망칠 염려가 있어 부득이 그 머리만 끊어온 것입니다."
형가(荊軻)는 조금도 당황해 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그의 음성은 조용하고 온화했다.
진왕 정(政)은 형가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다가 의심이 사라진 듯 다시 말했다.
"독항(督亢)의 지도를 가져왔다고?“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지도를 바쳤다.
이 순간만큼은 아무리 담대한 형가(荊軻)라도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없었다.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진왕 정(政)이 지도를 받아 시신(侍臣)에게 넘겨주면 만사가 끝장나기 때문이었다.
하늘이 도왔다.
진왕 정(政)은 지도를 받아들고는 발 아래 바닥에 놓고 자신이 직접 펼쳤다.
'이제 되었다.‘
두루마리가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지도가 다 펼쳐지는 순간 형가(荊軻)는 하얀 빛을 보았다.
독이 묻은 서부인의 비수(匕首)였다.
순간, 형가(荊軻)의 몸이 날렵하게 움직였다.
"앗!"
누군가의 입에서 외침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비수는 이미 형가(荊軻)의 손에 쥐어진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성공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 행동에서 일이 틀어지고 말았다.
형가(荊軻)는 오른손으로 비수를 집어듦과 동시에 왼손으로 진왕의 소맷자락을 움켜잡았다.
그러고는 진왕 정(政)의 가슴을 노리고 힘껏 찔렀다.
아아! 진왕 정의 몸놀림은 놀라웠다.
그는 위기를 직감하고 본능적으로 소매를 뿌리치며 상체를 뒤로 젖혔다.
- 찌익!
형가의 손에 쥐어진 비수의 날카로운 칼날은 진왕 정(政)의 옷소매만을 잘랐다.
진왕 정도 놀랐지만 형가(荊軻)도 놀랐다.
자신의 공격이 빗나갈 줄이야.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