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鮮明先生말씀選集 2권
4) 하늘의 사랑을 세우시려는 예수 1957년 2월 24일(日), 전 본부교회
3. 끝날에 처한 성도들의 책임
그러면 우리들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느냐? 예수께서 4천년 섭리역사를 담당해 나온 유대교 앞에 홀로 하늘의 사랑을 실현시키는 승리적인 사명을 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여러분은 6천년의 섭리역사를 담당하고 있는 기독교 앞에 나서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해야 되겠습니다.
또 여러분은 영원히 즐거워하고 화동할 수 있는 세계를 건설하러 오시는 그리스도의 진정한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런 사명을 하지 않으면 주께서 이 땅에 오실래야 오실 수가 없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메시아를 보낼래야 보낼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6천년을 거쳐 나오면서 천륜의 뜻을 배반한 선조들의 피를 이어받은 우리들이 다시 선조들의 죄악의 노정을 되풀이한다면 주님이 어떻게 그런 곳에 다시 오시겠습니까?
우리들은 초림 예수께서도 우주적인 사랑의 중심, 우주의 주인으로서 하늘땅을 대신하여 하늘의 사랑을 호흡시킬 수 있는 중심존재로 오셨지만 당시의 인간들이 그의 동역자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이상을 바라보며 나가는 길에서 소망과 믿음이 다 없어지더라도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사랑을 위해 가는 길은 안 나갈래야 안 나갈 수 없는 역사적인 운명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이 길로 인류를 이끌어 주기 위해 오셨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지만 그 사명을 성신이 인계맡아 땅에서 역사해 오신 것입니다.
그러한 성신의 이끌림을 받아 우리는 어디까지 왔는가? 우리는 예수님이 부활하기 직전의 입장을 거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소망을 가질 수 있었던 마리아와 같은 입장에까지 왔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이제 우주를 품어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찾으려 한다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우리는 예수와 성신의 뜻을 다 이루어 드리는 실체적인 사랑의 신부, 예수님 당시에 찾으려 했던 실체적인 사랑의 신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신부의 이름을 찾기 위해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신부로서의 걸음을 걸어야 하고, 주님의 신부로서의 도리를 지켜야 하며, 주님의 신부로서의 표준을 세워야 할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저 말로만 믿어서는 신부의 표준을 세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역사적인 분이십니다.
또 현재와 미래에 있어서도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러한 예수님과 통할 수 있는 사랑을 지니지 않는 이상, 어느 한 순간 예수님을 대할 수 있는 신부의 자리에 나갈지는 모르나 예수님과 생명의 인연을 맺고, 하나님의 사랑의 맥박을 이어받아 화동할 수 있는 영원한 실체로는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찾으려 하는 것은 시공의 지배를 받는 현실세계에서 사랑을 추구하려는 것이 아니고 역사성을 초월하고, 시간성을 초월한 천주적인 사랑의 세계에서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가치를 노래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가치를 세워 드리고 생명적인 사랑의 가치를 즐기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예수님이 골고다의 십자가의 길을 거쳐 나가시던 서러운 발걸음과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시던 그 음성이 멎게 될 것입니다. 만약 2천년 전에 그런 참다운 성도들이 있었다면,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소망의 존재로 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역사를 거쳐 나온 우리 선조들 가운데는 이러한 예수님의 소망을 이루어 드린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다 가신 지 2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하나님이 섭리해 오신 전체의 목적은, 하나님의 서러운 심정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참다운 사람, 갈보리산상에서 서러움을 느끼던 예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참다운 사람, 또 성신을 위로할 수 있는 참다운 사람, 그리고 하늘땅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참다운 사람을 찾아 세우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과 예수와 성신 앞에 나아가 “찾으시고자 하는 것이 이것이 아니옵니까.” 하며 그 일을 이루기 위하여 재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참다운 성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하나님 속에 사무쳐 있는 한과 예수님과 성신의 원한이 풀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