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설을 눈앞에 두고 잠을 설쳤다. 발코니에 나오니 유리창에는 성에가 희뿌옇게 덮여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산골짝마다. 뿌연 먼지 띠가 안개처럼 흐르고 있었는데 사라진 걸 보니 참 다행이다. 새벽인데도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다. 아주 작은 눈섭달이 산 주변을 얼쩡거리고 있어 벌써 내일 모레면 설이구나, 라고 말을 걸어 본다. 성에 낀 유리창에 낙서가 제법 선명하게 그려졌는데 금방 눈물처럼 녹아내린다. 유리 벽 사이로 연약한 그믐달이 또다시 한해를 새롭게 가져다 주는 삭(朔)이 되어 가고 있다.
그믐은 삭일의 전날을 말한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자 애꿎은 나잇살만 보태는 걸 생각하면 깊이 잠들지 못하게 된다. 어둠의 현실은 그렇게 지났다. 설을 지낼 가족들조차 없이 막연한 신세가 초조해진다. 시부모님 생전에는 형제들이 너무 많아 북적거리는 것이 못마땅했다. 지독한 가슴앓이를 홀로 치러야 했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차례를 지내자마자 도망치듯 친정엘 들렸다, 오곤 했는데 이제는 그것조차도 먼 이야기가 되었다. 살아가면서 겪는 마음의 간사함은 끝이 없다.
요즘에는 가까운 친척들께 수신으로 세배 안부를 묻는다. 전화로 생색을 내고 끝낼 수 있어 참 몸이 편해졌다. 세배하러 오가는 것이 그리 달갑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음식조차 많이 장만할 필요도 없다. 그 시절에는 시집이 이북이라 빈대 부침개와 만두는 필수였지만 나는 낯선 음식이 반갑지 않았다. 먼 친척이나 고향 사람들은 고향을 가듯 시집을 찾아오곤 했다. 장손 며느리라는 타이틀이 견디기 힘들었다. 세월 지나고 살아온 방법은 차츰 변해갔다. 함께하다 보면 인생이란 흐르는 강물 같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스쳐 지나간다.
새벽녘에 동쪽 하늘에서 보였다가 사그라지는 가느다란 눈썹달이 긴 여운을 남긴다. 가련하면서도 아무도 봐주지 않는 외로운 인생을 닮아가는 것처럼 느르적느르적 넘어가는 모습이 참 고단해 보인다. 그 틈 사이로 한창 붉게 여울진 게발꽃 망울이 활짝 웃는다. 함께한 것들을 잃을 뻔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씩씩한 힘이 솟아올랐다. 누군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상의 기분 전환을 사람만이 주는 것처럼 자연은 어쩌면 사람과 가장 오래된 협력자가 아닐까. 덩그러니 하늘만 쳐다보는 나에게 내색않던 겨울꽃이 ‘나 여기 있어요.’ 한다. 맵디매운 고추바람이 유리창 흔드는 소리에 멍 때리던 생각을 밀치고 꽃 화분을 방안으로 옮겨 두었다.
기운 달이 가련해서였는데 나도향의 <그믐달>에서는 아무도 봐주지 않는 외로운 여인으로 등장시켰다. 그믐달은 감히 누구도 손댈 수도 없고 말을 붙일 수도 없는 깜찍한 예쁜 계집아이같이 가슴 저리며 쓰리도록 애련한 달에 비유했을까. 서산 위에 잠깐 나타났다 숨어버리는 초승달은 세상을 후려 삼키려는 독부가 아니면 철모르는 청순한 처녀로 표현했지만, 그믐달은 세상의 갖은 풍상을 다 겪고 그 무슨 원한을 품고서 애처롭게 쓰러지는 원부처럼 애절한 맛을 느꼈다고 한 사유들이 오랫동안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새벽녘 달이 기울 때까지 자지 않고 새해를 맞던 풍습이 있었다. 지나가는 한 해를 지킨다는 어른들의 옛 말씀이 떠올랐다. 그래서 일찍 자면 눈썹이 하얗게 변한다고 하여 잠들지 못하게 했다. 자는 동생들에게 눈썹에 밀가루를 칠하며 장난을 쳤던 기억이 새롭다. 그믐날 저녁이면 조상들께 제사를 올렸다. 세밑의 마지막 날에 장만해 놓은 모든 음식을 차례상에 올려놓고 제를 드린다. 지방에 따라 다르듯 고향 집에서는 빈방과 곡간마다 촛불이나 호롱불을 켜놓고 조상들이 쉽게 찾아와 음복하고 가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불을 밝혔을까.
그믐날은 겨울의 한복판이라서 춥기는 얼마나 추웠는지 모른다. 젖은 손으로 문고리를 잡으면 손이 쩍쩍 올라붙을 정도로 황소바람은 지독히 매웠다. 특히 우리 고장에는 쑥떡을 많이 한다. 양지바른 젱겟둑이나 갈개둑에는 유난히 쑥이 많이 자랐다. 마당 한쪽의 멍석에는 말라가는 쑥 냄새가 참 향긋했다. 설날이 다가오면 쑥을 푹 삶아 쑥정이를 버리고 쓴 물까지 우려낸다. 쌀보다 쑥이 몇 배로 많았지만, 보름까지 떡은 굳지 않았다. 쑥떡이 주었던 푸짐한 먹거리는 오래도록 설 기분에 젖어 들었다. 설빔으로 준비한 색동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널뛰기에 빠졌다.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는 새가 되고 싶었던 환상이 어린 마음에도 잠재하고 있었다.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 좋았고 시집간 언니네 사랑 덩어리들이 와줘서 좋았다. 설날을 손꼽아 기다린 우리와 반대로 부보님에게는 명절이야말로 첩첩산중이 아니었을까 하는 근심을 그때는 몰랐다.
코로나 19가 지나가면서 흘려놓은 것들이 아직껏 몸에 베어있다. 언젠가부터 개인의 삶이든 집안의 제사든 간에 제법 자유로워졌다. 외로운 여자는 집에만 있음이듯 떼려야 뗄 수 없는 은둔생활이 또다시 집착한다. 올 한 해는 활짝 웃는 겨울꽃 같이 속내를 풀고 사는 뜻깊은 해가 되기를 바란다. 나를 흔들어 깨우는 새벽달이 어울려 행복하게 잘 사는 걸 말해준는 것 같다.
더 나은 삶의 자존감을 얻으려면 세상 밖으로 박차고 나올 수 있게 한 것처럼, 그러니 금요일 글쓰기 공부 시간이 지쳐있는 나에게 다시금 상기시켜 준다. 감동적인 설교자 역할을 해주는 문우들의 발표된 글 사랑을 보면서 위로를 받는다. 배움의 길목에서 순간순간 맞닥뜨리는 경험과 철학, 상상과 생각을 넣어주니 고맙기 그지없다. 지는 꽃도 눈이 부시다는 걸 뒤늦게 알게 한다.
캐나다에 있는 손자에게 그믐에 대한 수제의 풍습과 속설을 말해주고 음력설의 유래를 들려주었다. 천리만리 떨어져 살아도 조국의 명절을 잊지 않고 기억해 주기를 바랄 뿐, 그믐은 한 해를, 극복하는 날로서 또다시 새로운 한 해의 낯섦이 시작하는 날이라는 것을 귀담아 들어주는 폼이 어른스럽다. 어느새 변성기 목소리가 묵직하게 집안을 데운다. 갑자기 영하의 날씨로 떨어지고 밖에는 눈발이 쌓이기 시작한다. 고속도로가 살얼음판에 세배 오겠다는 딸 식구들에게도 극구 손사래를 쳤다.
가가 갈꽃 같은 허연 머리 위로 살랑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