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4:18)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
누구의 마지막이 이렇게 허무할 수 있단 말인가? 두 자식은 전쟁에서 죽었고 그 충격에 자신도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다. 그 소식을 들은 그의 며느리는 임신 중이었고 아이를 낳다가 죽었는데 아들을 낳고도 주변 사람 위로의 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대제사장 엘리의 죽음이다.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 되던 해였다.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어 이스라엘의 대제사장과 사사로 일하던 그 첫해는 얼마나 설레고 뿌듯했겠는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그리고 헌신적으로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겠는가? 하지만 하나님의 사사로 일한 지, 사십 년 만에 그의 가정은 파산했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며느리가 죽어가면서 낳은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불렀다.
(삼상 4:21)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었기 때문이며 (삼상 4:22)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
그렇다면 언제 어디서부터 이런 일이 시작되었을까?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일은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그 일은 처음에 아주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빗나감에서 시작되지만, 점점 그 시간이 갈수록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져서 나중에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반역으로 멀어져 버린다.
“원수는 일을 돌발적으로 하지 아니한다. 원수는 처음부터 몹시 놀랄 만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비밀리에 원칙의 요새를 침식하는 것이다. 이 일은 겉보기에는 매우 적은 일처럼 보이는 것들 즉 하나님께 충실하고 당신을 전적으로 의지하기를 게을리하는 일이나, 세상의 풍속과 행습을 따르는 경향에서 시작한다.”(부조, 717)
어쩌면 그의 아들들에 대한 사랑이 그의 눈을 멀게 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성소에서 뛰어다니는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웃으면서 “그러면 안 돼요”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계속 영적으로 무디어졌고 아이들의 대범한 범죄에도 눈을 감았을 것이다. 자신의 나태함을 인자한 성격이라고 해석했을 것이고 아들들의 폭력과 행패를 아직 덜 자라서 그렇다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태도는 점점 하나님의 성령을 거역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마침내 밀리던 전쟁에 하나님의 법궤를 가져가도록 방임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품성은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 번의 감정의 폭발이나 그릇된 방향으로 한 걸음 잘못 디디는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품성은 행위의 반복으로서 그 행위가 습관화되어 선악간에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자녀, 164)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가실 때도 그렇다. 마치 기차가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것처럼, 처음에는 천천히 움직이지만 나중에는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기적 소리도 들리지 않고, 기차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가봇, 하나님의 성령이 떠나버린 것이다. 지금 그대에겐 하나님의 성령님이 계시는가?
(고후 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주님의 이끄심에 순수하게 순종하는 백성이 되게 하소서. 아주 사소한 일부터 자기의 뜻을 내려놓고 성령의 지도를 받게 하시고 굴복하여 종 된 자의 삶을 살게 하소서. 오늘도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