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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장 15-18절.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 된 상속자
1. 지난 시간에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양자된 성도들은 성령님의 감동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들은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2.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양자가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다는 말씀입니다.
3. 오늘 성경은 세 구절입니다.
15절은, 우리는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16절은, 성령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신다는 말씀입니다.
17절은,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현재의 고난을 잘 이겨내라는 말씀입니다.
4. 그래서, 오늘 설교의 제목은 <아버지 하나님의 양자된 상속자>입니다.
15절.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you have not received a spirit of slavery leading to fear again, but you have received a spirit of adoption as sons by which we cry out, "Abba! Father!"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οὐ γὰρ ἐλάβετε πνεῦμα δουλείας πάλιν εἰς φόβον,
not for you received spirit of slavery again to fear
‘받지’(ἐλάβετε)는 부정과거(received)로서 과거에 확실히 받지 않은 틀림없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ἀλλὰ ἐλάβετε πνεῦμα υἱοθεσίας,
but you received of divine adoption as sons
‘받았으므로’(ἐλάβετε)도 부정과거(received)로서 과거에 확실히 받은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양자(υἱοθεσίας)는 ‘아들’(υἱός)이란 단어와 ‘두다’(τίθημι)는 동사의 합성어로서, 아들의 위치에 두는 것을 가리킵니다.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ἐν ᾧ κράζομεν, Ἀββᾶ ὁ Πατήρ.
by which we cry, Abba the Father
직역하면 ‘이로써 아빠 아버지라고 우리가 부르짖는다’는 뜻입니다.
‘부르짖느니라’(κράζομεν)는 현재형으로서(we cry) 항상 부르짖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예수님은 본래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양자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양자는 아버지의 사회적 신분을 이어받고, 모든 재산을 상속받습니다.
그러므로 양자된 성도들이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는 것은 감격에 차서 기쁨으로 부르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2. 지난 시간에는,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가장 영광스러운 말씀을 보았습니다.
오늘 15절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 된 복>에 대한 설명입니다.
15절에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과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는 양자의 영>이 서로 대조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종의 영>이란, 사람에게 죽음과 지옥의 공포심을 가져다주는 ‘마귀의 영’입니다.
그리고,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는 영>은 ‘성령님’을 가리킵니다.
3. 불신자 시절에는, 모든 사람이 공중의 권세 잡은 마귀에게 종노릇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절 이하.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4. 그런데, 이 <종의 영>이란, 성령님의 은혜를 받기 이전에, <내 힘으로> 율법을 지켜서 살려고 하다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울부짖던 <죄와 사망의 종노릇하던 불신자의 영혼>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5. 갈라디아서에서는 몽학선생(초등교사) 아래 있던 때를 가리킵니다.
갈라디아서 4:1 이하.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이을 하나님의 아들이 만물의 주인이지만,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종과 같이 어렸을 때에는 이 세상 초등 학문(즉 율법) 아래 있어서 종노릇하였더니---이제는 (성년이 되어) 아들의 명분을 얻은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6. 과거에, 바울 자신도 율법주의자로 흠이 없다고, 자부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만나고, 눈이 어두워 타인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으로 끌려갔다가, 성령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 유대인들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저희가 마음에 찔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고, 탄식하는 것을 봅니다.
사도행전 16장에는, 빌립보 간수가 바울 앞에 엎드려,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라고 부르짖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믿기 전에(로마서 7:24)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고, 구원의 주님을 찾아 울부짖는 갈급한 영혼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7.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던 경비병들이나,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가 예수의 이름으로 고침받은 것을 본 제사장들은, <우리가 어찌 해야 구원을 얻을꼬?> 하고, 회개하는 심령을 갖지 못했습니다.
8. 지금 성경에서 분명히 설명드리고자 하는 것은, 모세의 율법으로써 나 자신이 철저히 죄인임을 절감케 하신 후에, 예수님의 복음으로써, 구원의 감격을 얻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1) 마태복음 9장 12-13절. 병든 자가 아니면 의원이 쓸 데 없는 것 같이, 죄인임을 깨달은 자가 구원의 주님을 찾습니다.
(2) 종의 영 때문에, 정죄감과 두려움을 갖고 괴로워하다가, 하나님의 아들의 영을 받고서, 죄 용서와 하나님의 자녀 됨을 얻었습니다.
(3) 율법주의 생활의 고통을 거쳐, 복음의 능력을 얻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하는 절규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은혜를 얻었습니다.
(4)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에는 이 순서가 무시된 채, <복음>으로 직행하는 감이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주인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종처럼 부리고, 자기의 필요를 위해 이용하는 것 같습니다.
9. <이 시간 성도님들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성도님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불러본 최초의 경험이 언제입니까?
성도님은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 지금,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고 있습니까?
오늘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 들을 때, 이 감격을 지니고 계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날, 구원의 감격 속에서 얼마나 <아빠 아버지>를 부르짖었습니까?
이처럼, 애절하게 부르짖었던 <아빠 아버지>의 이름을,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감격하며 부르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6절.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New King James Version: The Spirit Himself bears witness with our spirit that we are children of God,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증언하시나니
αὐτὸ τὸ Πνεῦμα συνμαρτυρεῖ τῷ πνεύματι ἡμῶν,
Himself the Spirit bears witness with the spirit of us,
‘더불어 증언하시나니’(συνμαρτυρεῖ)는 현재형으로서(bears witness with) 언제나 (성령님이 우리 영과) 더불어 증언하고 계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ὅτι ἐσμὲν τέκνα Θεοῦ.
that we are children of God
‘우리가 --인 것을’(ἐσμὲν)도 현재형으로서(we are)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자녀인 상태를 가리킵니다.
1. ‘더불어 증언하시나니’(συνμαρτυρεῖ)는 성령님이 우리 영과 더불어 증언하고 계시는 것(bears witness with)을 가리킵니다.
즉 성령님은 객관적으로 증언하시고, 우리 영은 주관적으로 증언해서, 두 증언이 우리가 하나님이 자녀인 확실한 사실을 확정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14절에서 ‘아들들’(υἱοί)은 법률적인 신분을 가리키고, 16절의 ‘자녀’(τέκνα)는 생래적인 자녀와 친밀성을 가리킵니다.
2. 당시 로마 교회 성도들은 <양자>(adoption)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임을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습니다.
(1) 노예 신분인 사람이 귀족의 양자가 되는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컨대, 유명한 네로 황제는 사도행전 11장 끝에 나오는 <글라우디오>(Claudius) 황제의 양자로 들어가서, 로마 황제까지 되었습니다.
1대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는 율리우스 씨이저의 양자로 황제가 되었고, 2대 티베리우스는 옥타비우스의 양자로 황제가 되었고, 3대 갈리굴라는 티베리우스의 양손자로 황제가 되었고, 4대 클라디우스(사도행전 11장의 글라우디오)는 아우구스토스의 양손자로 황제가 되었고, 5대 네로는 클라디우스의 양자로 황제가 되었고, 13대 트라야누스는 네르바의 양자로 황제가 되었고, 14대 하드리아누스는 트라야누스의 양자로 황제가 되었고, 15대 안토니우스 피우스는 하드리아누스의 양자로 황제가 되었고, 16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사는 하드리아누스의 양자로 황제가 되었고, 16대 루키우스 베루스도 하드리아누스의 양자로 공동 황제가 되었습니다.
(2) 하물며, <죄인 된 우리>, 원수 된 우리가 <하나님의 양자>로 입양된다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3. 양자가 되는 일에는 <증인>이 필요했습니다.
(1) 당시 로마법에서는 노예가 자유인의 양자가 되는데, 일곱 사람의 증인이 필요했습니다.
(2)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가 된 것을 누가 증인이 되어주십니까?
우리 죄인(원수)이 하나님의 자녀로 입적되는 데는, <성령님의 보증>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사탄과 죄와 사망의 노예 신분에서 우리를 영생 천국으로 구원해주셨고,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고,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성도의 보증인이 되어 주십니다.
4. 결혼식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결혼 주례자는 신혼부부의 결혼을 주례하고, 그 증인이 되어 줍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결혼식 하는 것은, 물론 형식상 목사가 주례지만, 실제로는 <성부, 성자, 성령님의 이름으로> 부부가 된 것을 서약하고, 공포합니다.
5.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됨>을 보증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고, 보증서는 <성경>입니다.
디모데후서 3:16.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6. 성경 여러 곳에 성령님이 천국 기업의 보증이 되신다고 했습니다.
(1) 에베소서 1:13-14.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고린도후서 5:5. 이것을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고린도후서 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7. 성경이라는 <보증서>는 천지가 없어져도 영원한 보증서입니다.
베드로전서 1:24-25.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천지는 변하고 없어질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변치 아니하고, 일점일획도 변치 않고, 한 말씀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8. 성도들의 변화된 삶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 합니다.
베드로전서 4:3-4.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9.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 우리 인간의 이성(reason)으로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지 못합니다.
(2) 오직 성령님이 우리 마음 가운데, 임재하셔서, 감히 하나님을 향해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게 하십니다.
<오! 보증이 되시는 성령님이시여!>
우리의 심령에 임하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날마다 순간마다 증언해주옵소서!
<찬송가 191장>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함이요 내가 주의 큰 복을 받는 참된 비결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함이라.
전에 죄에 빠져서 평안함이 없을 때 예수 십자가의 공로 힘 입어 그 발 아래 엎드려 참된 평화 얻음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함이라.
<찬송가 359장>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 앞길에 장애를 두려워말라. 성령이 너를 인도하시리니 왜 지체를 하고 있느냐. 앞으로 앞으로 천성을 향해 나가세. 천성문만 바라고 나가세. 모든 천사 너희를 영접하러 문앞에 기다려 서 있네.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
17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if children, heirs also, heirs of God and fellow heirs with Christ, if indeed we suffer with Him so that we may also be glorified with Him.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εἰ δὲ τέκνα, καὶ κληρονόμοι· κληρονόμοι μὲν Θεοῦ,
if now children, also heirs, heirs indeed of God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συνκληρονόμοι δὲ Χριστοῦ,
co-inheritors now of Christ
‘함께 한 상속자’(συνκληρονόμοι)란 단어는 ‘공동상속자들’(co-inheritors, joint-heirs)이란 뜻입니다.
우리가--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εἴπερ συνπάσχομεν,
if indeed we suffer with [Him],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συνπάσχομεν)는 현재형으로서(we suffer) 항상 고난을 받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ἵνα καὶ συνδοξασθῶμεν.
so that also we may be glorified together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συνδοξασθῶμεν)는 부정과거 가정법 수동태로서(we may be glorified together) 확실히 함께 영광을 받는 것을 가정한 말입니다.
이 구절은 번역하기가 좀 난해한데, ‘만일 참으로 우리가 그와 함께 고난을 당하면, 우리가 역시 그와 함께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Good News Translation: if we share Christ's suffering, we will also share his glory.
Aramaic Bible in Plain English: if we suffer with him, we shall also be glorified with him.
1. 앞의 16절에서는, 성령님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셔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게 하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17절에서는,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 사회에서는 친아들과 양자가 다같이 부모의 지위와 재산을 상속받지만, 친아들은 두 배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후사’란 우리가 단순히 천국 기업을 상속받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신하는 신적인 자리에까지 이어받는다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천국에 가면 천사들보다 더 높은 신적인 신분을 주신다니 얼마나 황공한 은혜의 말씀입니까?
사탄 마귀는 이런 영광스러운 신적인 지위를 가졌다가 교만하여 타락했지만, 우리는 마귀의 종 된 천한 신분에서 예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 된 신적인 지위를 얻었기 때문에 지극히 겸손하면서 지극히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된 신적인 신분을 가지고 하나님을 늘 찬송하며 섬길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런 신적인 놀라운 복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과 함께 고난도 참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주 부자는 거지 옷을 입고 다녀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적인 영광을 가지고 있으므로, 세상의 고난을 감당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2.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도 감격스러운 말씀인데, 이제 <하나님의 재산을 상속받는 상속자>라는 복된 말씀을 해주고 계십니다.
<상속자>라는 말은 <유업을 이을 자>라는 단어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1.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라.
마태복음 25:34.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한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다는 것은 너무도 감격적인 말씀입니다.
4. 본 절은, 은행에서 거액의 돈을 내어줄 때, 본인인가 아닌가 확인하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인 것을 확증하는 말씀입니다.
16절에서는 <이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명함>을 말씀하고, 17절에서는 <오!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이시군요. 복 받은 분이시여, 당신은 하나님의 상속자이십니다>란 말씀입니다.
5.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1) <자녀이면 하나님의 상속자요>라고 곧바로 말씀하지 않고,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라고 뜸을 들인 후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상속자>라는 말이 세 번이나 반복되어 강조되고 있습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라고 말씀합니다.
(2) 자녀가 된다는 것은 그것으로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가 되면, 모두 <상속자>가 되어, 부모의 모든 재산을 상속받는 것입니다.
6. 상속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1) 부모의 빚을 이어받는 가난한 상속자
(2) 대기업을 이어받는 대기업체의 상속자
(3) 임금님의 자리를 이어받는, 왕세자
(4)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는 하나님의 자녀 된 상속자 (성도님들)
우리 성도들은 다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들이십니다. 할렐루야!
로마서 4: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에베소서 3:6.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히브리서 1:14.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상속자를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우리 성도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 영광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7.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1)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입니다.
우리 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더구나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절대 아니고,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2)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συνκληρονόμοι)가 되었다는 것은 ‘공동상속자’(co-inheritors, joint-heirs))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에베소서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우리가 단독으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다면, 믿을 수 없지만, 예수님 모시고, 예수님과 함께 공동상속자로서 천국을 상속받는다는 것은 정말 확신할 수 있습니다.
8.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 고난받을 때는 예수님을 버려버리고, 영광 받을 때만 예수님과 함께 영광 받을 수는 없습니다.
고난 중에도 예수님 모셔야, 영광중에도 주님과 함께 영광 받을 수 있습니다.
(2) 어떤 성도들은 내세의 영광을 모른 채, 현실의 행복에만 집착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상속자>라는 특권과 감격을 잃지 말고, 현 세상에서의 고난과 시련을 <인내와 소망>으로써 이겨 나가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24-25.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로마서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고린도후서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현재 세상에서 고난과 시련을 당하고, 근심하고, 가난하고,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죽음 이후에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자녀 됨과 하나님 나라의 모든 복을 상속받을 것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예수님 모시고 하늘의 영광 속에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18-39절은 장차 나타날 영광에 대한 말씀입니다.
먼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의롭다고 인정받은 이신칭의는 이미 과거에 얻은 사실입니다. (3-7장)
그리고, 현재는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된 생활입니다. (8:1-17)
그런데 장차는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적인 영광을 얻는 일입니다.
18-39절을 다시 나누면, 18-22절은 모든 피조물이 탄식하며 영광의 자유를 고대한다는 것이고, 23-25절은 성령을 받은 성도들도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는 것이고, 26-30절은 성령님이 영화를 보장하신다는 것이고, 31-39절은 예수님으로 인한 승리의 찬가입니다.
18절.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I consider that the sufferings of this present time are not worthy to be compared with the glory that is to be revealed to us.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비교할 수 없도다
Λογίζομαι γὰρ ὅτι οὐκ ἄξια τὰ παθήματα τοῦ νῦν καιροῦ
I consider for that not comparable the sufferings of the present time
직역하면 ‘왜냐하면 현재 시간의 고난들은--과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생각하건대’(Λογίζομαι)란 현재형으로서(I consider) 언제나 생각하고 있는 것을 뜻하고, 원형(λογίζομαι)은 ‘계산하다, 생각하다, 간주하다’ (reckon, consider, think, account)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πρὸς τὴν μέλλουσαν δόξαν ἀποκαλυφθῆναι εἰς ἡμᾶς.
to the coming glory to be revealed to us
직역하면, ‘우리에게 나타날 다가오는 영광과’라는 뜻입니다.
‘나타날’이라는 단어(ἀποκαλυφθῆν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 수동태로서(to be revealed) 확실하게 나타나게 되는 틀림없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다가오는’이라는 동사(μέλλουσαν)는 현재분사로서(coming) 현재 계속해서 다가오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첫째 ‘현재의 고난과 장래의 영광을 비교해보라’고 했습니다.
18절에서, <비교할 수 없도다>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즉, <현재와 장래>, <고난과 영광>을 비교해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17.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과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비교해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님은 지금 어떠한 고난을 당하고 계십니까?
성도님은 그 고난 앞에서 어떠한 자세를 취하고 계십니까?
낙심하고 불평하고 계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의 고난을 바라보고, <어찌하여, 어찌하여...>라고 하든가, <--했더라면, --했더라면>이라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죄 없이 나를 위해서 고난 당하신 주님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고난 앞에서, 사탄이 성도님을 낙심 좌절시키려고 할 때, 첫째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십시오!
에베소서 6:17. 마귀를 대적하기 위하여,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그러므로, 장래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현재의 고난을 잘 이겨내시기를 축원합니다!
2. 고난에 대처하는 두 번째 방법은 <기도>입니다.
야고보서 5: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11절.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자시니라.
13절.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 것이니라.
빌립보서 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베드로전서 4: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갑옷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쫓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쫓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7-8절.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히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3. 고난에 대처하기 위한 셋째 방법은 <찬송>입니다.
베드로전서 4:12-13.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한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시편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찬송가 364장>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을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4. 넷째로 <마귀를 대적하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7-10.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 잠깐 고난 받는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며, 굳게 하며, 강하게 하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고, 현재의 고난을 믿음으로 이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더욱 굳센 믿음을 얻으시고, 더욱 큰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