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연재] 2020년 5월 2일
〈제3대 회장 취임 60주년 기념 특집〉
‘인간혁명’ 증명의 드라마 제2회 ‘예술의 수호인’
예술(藝術)이야말로 평화(平和)의 힘력(力) - 이 신념으로 문화를 지키고, 문화교류를 통해 세계를 맺어온 이케다(池田) 선생님. ‘5·3’ 기념 특집 ②에서는, 선생님이 창립한 민주음악협회(民主音樂協會, 신주쿠구), 도쿄후지미술관(東京富士美術館, 하치오지시)의 행보와 지금까지 전해진 식자의 소리 등을 소개한다.
I ‘사제(師弟)의 원점(原点)’
▲ 지휘봉을 들고 음악대와 함께 행진하는 젊은 날의 이케다 선생님.(1958년 3월, 시즈오카에서)
전후(戰後)의 혼란기. 19세의 이케다 선생님은 통감하고 있었다. “문화국가를 만드는 수밖에 없다. 전쟁의 비극에서 정신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문화밖에 없다.”라고. 그 마음은 인간의 행복은 ‘미(美)·이(利)·선(善)’의 추구에 있다고 하여 전시(戰時) 하에서도 ‘미(美)’인 문화를 소중히 한 초대 회장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郞) 선생님, 그리고 “안온한, 평화로운 문화 국가를 만들자.” “세계 인류를 위해서 공헌하는 나라를 구축하자.”라고 호소한 제2대 회장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선생님의 정신과 함께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러한 사제(師弟)의 혼(魂)의 결정체(結晶體)로서 창가(創價)의 문화운동(文化運動)의 원점(原点)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음악대(音樂隊)가 탄생한 것은 1954년. 이케다 선생님이 결성을 진언(進言)했을 때, 주위에서는 “음악(音樂)이 광선유포(廣宣流布)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라고 난색을 표했지만, 도다(戶田) 선생만은 “다이사쿠(大作)가 하겠다면, 해보게나.”라고 지지했다.
이케다 선생님은 직접 비용을 마련해 악기를 선물하는 등 음악대 벗을 계속해 격려했고 1956년에는 고적대(鼓笛隊)를 결성했다. 음악대와 고적대는, 국내의 콩쿠르에서 금상을 수상하는 등, 지금은 일본을 대표하는 음악 단체로 발전. 해외에서도 음악대·고적대가 결성되어 세계 곳곳에서 용기와 희망을 주는 선율을 보내고 있다.
Ⅱ ‘건설(建設)과 비상(飛翔)’
민주음악협회(民主音樂協會) - 마음을 적시는 음악 여행
▲ 이케다 선생님 부부가 신주쿠구(新宿區)의 민음문화센터를 방문.(1997년 9월)
고전 피아노가 전시되어 있어 직접 음색을 들을 수 있다.
이케다 선생님이 제3대 회장에 취임한 이듬해인 1961년 2월 9일. 첫 아시아 순방 중이던 선생님은 버마(현 미얀마)에서 태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버마는 선생님의 큰형이 태평양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땅. 종전 후 15여년, 아시아에서는 아직도 전화(戰火)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인류가 비참한 전쟁과 결별하고 평화를 쌓아 올리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 사색을 거듭하고 있던 선생님은 그날 밤, 방콕에서 동행한 간부에게 말했다. “진정한 세계 평화를 위해서는 민중과 민중이 서로 알아가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특히 예술의 교류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네. 이제부터 국경을 초월해 나아가고 싶다.”
이 구상이 있은 지 2년 뒤인 1963년 10월 18일, 민음(民音)은 첫울음을 올렸다.
110개국‧지역과 교류사업(交流事業)
감상자 총 1억2000만 명
▲ 세계 최고봉인 오페라 ‘밀라노·스칼라좌’의 일본방문 공연. ‘스칼라좌의 벽만 빼고 모든 것을 가져왔다’는 공연은
민음(民音)의 역사뿐만 아니라 일본 음악사에 찬연히 빛나고 있다. (1981년 9월 도쿄, NHK홀에서)
창립에 즈음해 선생님이 제안한 것은 “서민이 ‘나막신’을 신고 갈 수 있는 콘서트”. 그 말에는 “일류의 문화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윤택하게 하고 싶다”는 신념이 맥박치고 있었다.
이후 민음은 110개국·지역의 사람들과 교류를 맺고 밀라노 스칼라좌와 아르헨티나 탱고의 거장 공연 등 음악사에 찬란한 발자취를 새겨왔다. 지금까지 민음 공연은 8만 회로 모두 1억2000만 명이 관람했다.
또한 세계적인 지휘자의 등용문으로 정평이 나 있는 ‘도쿄국제음악콩쿠르(지휘)’의 개최나 ‘학교 콘서트’ 등의 공익사업에도 힘을 쏟아 젊은 재능을 육성해 왔다.
▲ 청년음악가들의 교류를 목적으로 민음이 직접 만든 ‘Min-On Global Music Network’ 싱가포르 공연. (2016년 9월)
▲ 민음이 반세기 이상 걸쳐 개최해 온 ‘도쿄국제음악콩쿠르(지휘)’. 젊은 재능을 성장시켜 왔다.
▲ 민음이 주최한 ‘학교 콘서트’에 러시아의 아동합창단이 출연. (2008년 10월, 도내에서)
이 콘서트에는 지금까지 4600여 학교의 학생들이 참가했다.
도쿄후지미술관(東京富士美術館) - 세계를 말하는 미술관
▲ 이케다 선생님 부부가 도쿄후지미술관에서 열린 〈대삼국지전〉을 관람.(2008년 6월)
역사와 문화를 담은 이 전시에는 중국의 ‘국가일급문물’ 53점을 포함해 200여 점이 전시되었다.
한편 “문화를 민중의 손에”라는 생각으로 이케다 선생님이 창립한 도쿄후지미술관은 1983년 11월 3일 개관한 이래, “세계의 훌륭한 문화를 접할 기회를 만들자”라며 독자적인 시점에서 해외문화교류특별전을 개최해 왔다. 그 횟수는 현재 48회에 이른다.
선생님이 이 미술관에 준 지침(指針)은 “세계를 말하는 미술관”. 그 기념할 만한 개관을 장식한 〈근세 프랑스 회화전〉에는 루브르 미술관을 비롯한 유명한 미술관의 걸작이 출품되었다.
그 후에도 〈대나폴레옹전〉 〈제9의 노도전〉 〈대삼국지전〉 등을 개최하여 일류의 미술을 소개. 그 중에는 일본최초로 공개되는 것도 적지 않았다.
3만점의 컬렉션, 20개국·지역에서 소장품전(所藏品展)
▲ 콜롬비아에서의 열린 〈일본 미술의 명보전(名寶展)〉.
사회정세가 불온한 가운데서도 선생님은 “나는 신의를 관철하고 싶다”고 개최할 것을 결정했다.(1993년 2월)
더욱이 “세계와의 문화교류를 위해 일본제일, 세계제일의 컬렉션을”이라는 선생님의 기대를 받은 도쿄후지미술관은 미술품 수집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 수는 회화와 판화, 사진, 조각 등 총 3만여 점. 특히 서양회화는 르네상스부터 20세기까지 500년의 역사를 조망할 수 있는 국내 굴지의 라인업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관외대출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일본미술의 명보전〉 등 정부·문화기관의 요청에 따른 해외에서의 소장품전도 20개국·지역에서 열렸다.
문화예술은 인간 정신을 풍부하게 하며 국경이나 시대를 초월해 사람들을 맺는 힘이 된다. - 그 창립자의 마음을 나의 마음으로 하는 도쿄후지미술관의 도전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 서양회화의 소장품전. 일본에서는 드문 인상파 이전의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2019년 9월, 야마구치현립미술관에서)
▲ 도쿄후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보도사진가 로버트 카파의 작품을 도쿄도(東京都) 사진미술관에서 전시. (2014년 3월)
▲ 신선한 감성을 키우기 위해 연구를 거듭한 어린이를 위한 이벤트. (2013년 8월, 도쿄후지미술관에서)
육대주의 문화인(文化人)과 우정의 하모니
▲ 오스트리아의 전 문부 차관이자 성악가인 유타 웅카르트 사이펠트 씨와. (2001년 9월, 도쿄마키구치기념회관에서)
이케다 선생님은 이와 같은 민음과 도쿄후지미술관의 문화활동을 뒷받침하면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유디 메뉴인, 모스크바아동음악극장의 나탈리야 사츠 총재 등 세계 6대주의 문화인과 예술가와 대화하며 우정의 화음을 넓혀왔다. 그 속에서 “평화의 확대는 문화의 확대와 떼려야 뗄 수 없다.”(프랑스 미술사가 르네 유이그)는 등 문화의 힘을 함께 확인해왔다.
▲ 메뉴인 씨와의 회견. ‘음악과 생명’ 등을 둘러싸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1992년 4월, 구·세이쿄신문 본사에서)
그러한 ‘예술의 수호인’으로서의 공헌에 “나는 이케다 회장과 힘을 합해, 평화로 나아가고 싶다. 비극을 결코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아르헨티나 탱고의 거장 오스발도 푸글리에세 씨), “음악이라는 나의 분야에서 이케다 선생님을 대신해 선생님의 사상과 마음을 표현하고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브라질 음악가 아마라우 비에이라 씨) 등 세계는 상찬을 아끼지 않는다.
▲ 재즈의 거장 웨인 쇼터 씨에게 진심의 격려를. (2004년 5월, 도쿄마키구치기념회관에서)
III ‘세계가 상찬’
함부르크 발레단 노이마이어 예술감독
“민음(民音)은 평화를 지향하는 형제”
▲ ©EPA=시사
함부르크발레와 민음은 같은 목적을 지향하는 형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민음이 상업주의와 구별되는 “세계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숭고한 비전 아래 세계 각국과의 문화·예술 교류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 지상주의로 막다른 길에 놓인 현대 문명. 지금이야말로 민음 같은 깊은 철학과 강한 의지, 견실한 실행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민음과 협력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발레라는 최고의 인간 예술의 빛으로 세계인들에게 용기를 보내고 싶습니다.
세계인을 격려하고 인류의 행복을 위해 행동하는 민음 창립자인 이케다 SGI 회장과 함께 저도 세계평화의 길을 힘차게 나아가고 싶습니다.
국립탱고아카데미 가브리엘 소리아 회장
“이케다 회장이 탱고를 소생(蘇生)”
(아르헨티나 탱고의 민음공연이 시작된) 1970년 당시, 탱고는 큰 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유명한 거장의 죽음과 비틀스로 대표되는 영어권으로부터의 새로운 음악의 대두로 탱고의 인기에 그늘이 드리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연주의 기회가 줄어들어 활동에 한계를 느낀 작곡가나 악단, 댄서, 가수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창작활동이나 연주공연을 멈추는 사람들도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이케다 회장은 ‘민음 탱고·시리즈’를 개시하여 연주자나 댄서를 일본에 차례차례로 초대해 주셨습니다. ‘소생의 무대’를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실제로 일본에서 공연한 멤버들은 지구의 반대편에서 자신들의 예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감격했습니다. 일본에서 성공을 거둔 탱고는 아르헨티나 국내에서의 평가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상파울루미술관 마가리얀에스 전 관장
“민중이 주체(主體)인 문화를 창조”
현대 세계에서 문화는 반드시 국가의 선도가 아닌 사회 속에서 태어나고 있습니다. 현대는 민중이 주체가 되어 문화를 창조해 나가는 시대입니다. 그 중요한 모범이 이케다 박사입니다.
박사는 미술관을 창립한 것만이 아닙니다. 미술관의 활동을 통해 과거의 유산을 소중히 함과 동시에 미래도 창조하고 계십니다. 이 사실은 도쿄후지미술관의 역동적인 활동을 보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도쿄후지미술관을 많은 민중이 지지하고 있습니다. 마나 많은 관람객들이 방문하고 있는가를 보면 명백합니다.
도쿄후지미술관은 단순히 귀중품을 ‘진열하는 장(場)’이 아닌 방문하는 사람의 ‘우호의 장’입니다.
이케다 박사는 예술과 문화를 통해 서로 다른 문화권 사람들을 맺으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코틀랜드 찰스 부르스 백작
“전람회는 사회를 움직이는 힘”
1991년, 도쿄후지미술관 등이 공동 개최하여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에서 〈일본 미술의 명보전(名寶展)〉이 개최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스코틀랜드에서는 일본과의 예술 교류를 위한 심포지엄이 열리기도 하고 일본 건축가가 설계한 미술관이 세워지기도 하는 등 더욱 일본문화에 대한 이해가 진행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전람회를 통해 문화교류의 영속적인 흐름을 만들 수 있는 하나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람회에는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을 낳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창립자인 이케다 선생님을 비롯해 도쿄후지미술관 여러분의 서양 철학과 문화에 대한 깊은 조예의 표현이었다고 확신합니다.
앞으로도 각국·지역과 결실 있는 문화 교류를 진행시켜 가기를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