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인생이야!
信天함석헌
깊은 겨울 적막한 꿈을 간신히 깨고
첫 양기의 인정스런 따뜻한 낯을 보자
이른 봄 언덕 옆 바람 잔 곳에
파릇파릇 얼굴 드는 연한 잎새를
산나물 맛 향기롭다 칼로 우겨다
끓는 가마 속에 툭 털어넣을 때
바스스 손발 오그리며 울면서 하는 말
나도 인생이야, 우리도 인승기 타고난 거야!
아침밥 맛난 냄새 바람결에 동해
저도 같이 먹자 청함만치만 여겨
상 옆에 내리앉아 옷깃 고치고
공손한 걸음으로 살살 기어드는 파리를
삼대(三代) 원수나 만난 듯이 미운 생각에
채 들어 단번에 후려갈기면
앞뒷발 싹싹 비비고 죽으며 하는 말
나도 인생이야, 나도 살자고 생겨난 거야!
물신물신 떠오르는 봄꽃의 향기
그대로는 차마 지나갈 수 없이
웃음 띤 그 얼굴에 미친 듯 취한 듯
너울너울 넘나들어 춤추는 나비를
무슨 심술인지 저도 모르는 미친 맘에
그물 둘러 잡아놓고 긴 수염 끄들면
황겁한 맘에 아롱진 나래 파르르 떨며
나도 인생이야, 나도 잠깐 인생 춤추어 살잔 거야!
동산 수풀 맘대로 우거졌고나
하나님이 나더러는 노래하라 내셨지
가벼운 깃 다듬고 가지 끝에 높이 앉아
목청 울려 아침 찬송에 취하는 산새를
총 들고 뒤로 발망발망 밟아 들어가
한 방으로 재미있게 쏘아 떨어뜨릴 때
빨간 피 똑똑 흐르는 입에 마지막 슬픈 울음
나도 인생이야, 나도 기쁨 슬픔에 우는 인생이야!
모이 주며 부르는 낯익은 목소리
그만인 듯 믿고 큰 눈 뜨고 달려가
한 알 두알 앞뒤 안 보고 주워먹다가
즐거워 노래하려 긴 목 빼는 영계 수탉을
독수리처럼 볼 새 없이 단숨에 움켜쥐고
한 손에 목 비틀고 한 손에 칼 들어 겨눌 때
있는 힘 다해 몸부림하며 비명의 소리
나도 인생이야, 나도 같이 믿고 살잔 인생이야!
짐은 무겁고 얼음진 언덕 미끄럽고
몸은 늙고 먹은 건 없고
죽을 힘 다하건만 올라갈 근력 없어
수리채 밑에 거꾸러지는 늙은 말은
턱이 떨어지게 자갈 물려 추켜들고
두드러진 엉덩뼈에 벼락을 내리울 때
분노(憤怒), 애원(哀怨), 절망(絶望) 한데 머금은 눈에 눈물 흘리며
나도 인생이야, 나도 터벅이는 말 아닌 인생이야!
남을 헤치잔 맘 터럭만치도 없고
순종밖에 모르는 천성에 코를 꿰어 다니며
밭이란 밭 다 갈아주고 짐이란 짐 다 실어주고
낳는 새끼 모조리 바쳐가며 봉사(奉仕)아 인종(忍從)에 늙은 암소를
부리울 힘 다시 없거든 고기마저 바치라고
일생에 단 한 번인 반항을 몽치로 몰아 푸줏간에 넣고
의젓한 이마를 국적(國賊)이나 되는 듯 도끼로 칠 때
나도 인생이라오, 쓰고 닮 말도 못하고 몰려오는 나도 인생이라오!
큰 건 이끌고 작은 건 업고 쪽박 손에 들고
남의 집 문간에 머뭇거리는 그 입,
얼어 터진 어린 손발에 제 몸보다 더 큰 물통 지고
나비처럼 날아 학교로 가는 제 동무를 물끄럼 바라는 그 눈,
살창 속에 귀신 같은 형용을 하고 섰어
문틈으로 흘러가는 구름을 지키듯이 바라는 그 얼굴,
총 맞고 삼팔선에 걸어 엎대 죽으며
가슴에 사무친 말이나 해보자는 듯 푸들푸들 떠는 입,
그들은 무슨 말을 하던가?
그대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는가?
문명이란 이 무거운 괴물의 무거운 사슬에 끌려가는
가다가 거꾸러지는 이 인류의 소리를 그대는 들었는가?
그대들이, 연락장(宴樂場)에서 취할 때
사무상(事務床) 위에 체통을 뽐낼 때
상아탑(象牙塔)에 꿈을 꾸고 단 위에 이론을 펼 때
티끌 속에서, 하수도 밑에서 들리는 그 소리, 나도 인생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