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미얀마가 지금도 쿠데타가 가능한 이유인 헌법과 구조적 문제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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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는 1988년 8월 8일 오전 8시, 미얀마 양곤에서 학생과 승려를 중심으로 군사독재에 반대하며 일어난 민주항쟁으로 사망자만 수천명으로 추정되는 사태를 겪는다.
(일명 '8888 항쟁' 이라 부름)
'8888 항쟁' 으로 1962년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네윈 장군 미얀마식 사회주의는 큰 변화를 겪는다.
8888 항쟁으로 정국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1988년 소 마웅 장군이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를 조직해
군부 내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기존 사회주의 네윈정권이 무너진다. 이후 소마웅 장군을 수반으로 하는 과도 군사정부가 성립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9년에는 버마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에서 미얀마 연방으로 국호가 미얀마로 개정되었다. 랑군이 양곤이 된 것도 이때였다.
이후 2007년 부터 미얀마에서는 또 한 번 민주화항쟁이 일어난다. 이에 군부는 또 다시 친위쿠테타를 일으켜 변화를 꾀한다.
군부는 민중들을 달래기 위한 미봉책으로 헌법을 개헌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미얀마 정치체제가 이토록 기형적인 건 2008년에 개정된 현행 헌법 자체가 군부에 의해 자기들 권력을 영원히 지탱될 수 있도록 마련했기 때문이다.
2008년 군부 주도로 제정된 신헌법은 표면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실제로는 군부권력상실을 막기 위한 안전판에 불과했다.
2008년 개헌된 헌법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ㅡ 미얀마 군 통수권자는 미얀마군이 스스로 임명한 총사령관이고 대통령과 총리는 군부에 명령할 권한이 없다.
ㅡ 미얀마에 자유선거를 재도입하는 과정에서 만에 하나 있을 개헌을 막기 위해 개헌을 저지할 의석 25%를 군부가 임명한다.
ㅡ 미얀마 비상사태시 군 총사령관에게 권력을 인계할 수 있다고 명시해 아예 쿠데타를 정당화하는 조항까지 만들어 놓았다.
ㅡ 상하 양원과 군부는 각 1명의 부통령을 임명하고, 상원은 이 셋 중 1명을 대통령으로 지명하는데, 이 때문에 군부는 무조건 1명의 부통령을 차지하고, 나아가 군 최고사령관이 국방장관·내무장관·국경장관을 임명할 수 있다.
ㅡ 미얀마 군부는 군대 내 행정과 사법을 외부 간섭 없이 독자적으로 행사한다.
위와 같이 미얀마는 매우 독특한 헌법적 권력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런 권력구조 아래서는 국민이 직접 선출한 문민정부라 할지라도 군부 꼭두각시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실제로도 미얀마 군부는 정치권에서 자신들 기득권에 도전할 때마다 반발하고 쿠데타 위협을 가하여 정부를 하수인으로 삼는 등 사실상 군부독재 체제를 끊임없이 유지해왔다.
사실상 국가 안에 또 다른 군부국가가 존재해온 셈이다.
이 헌법 아래에서는 민선정부나 국민들은 어떤 방법을 쓴다해도 75퍼센트 이상 찬성 표를 필요로 하는 개헌이 불가능하다. 이번 쿠데타에 대해서도 군부는 자신들이 헌법에 따라 합법적으로 조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 미얀마 헌법상으로는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 수치고문은 군부 힘을 빼기 위해 여러 차례 헌법개정을 시도했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개헌을 위해 군부와 협상하겠다던 수치고문은 2018년 이후 의회장악을 통한 직접개헌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실제로 수치 고문이 이끄는 NLD가 지난해 11월 총선에서 또 다시 압승을 거두면서 군부가 권력 상실에 대한 불안감이 더욱 커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수치고문의 거듭된 개헌 요구와 시도가 도리어 군부를 자극해 이번 쿠데타 원인을 제공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또 다른 미얀마 구조적 문제는 '경제적 모순' 이다.
1990년대 이래 미얀마군부는 자원추출이나 중공업·농업 등에서 자신들 이익을 확고히 다져왔다. 민영화를 통해 군부 엘리트들에게 이권을 분배했고, 정실 자본가들과 강력한 유착관계를 맺었다.
더구나 군부는 외양상 민선정부가 존재해야 서구 자본의 투자를 유치하기 좋다는 걸 알았다. 서구 오랜 경제제재는 더 많은 이윤을 방해할 뿐이었고, 문을 굳게 걸어 잠근 국가자본주의 형태가 군부 이념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얀마를 위한 정의(Justice for Myanmar)'는 주요 산업에서 발생하는 이윤이 어떻게 해서 군부로 흘러 들어가는지에 대한 구조적 모순을 분석하고 폭로해왔다.
이에 따르면 미얀마 군부는 이동통신, 부동산 개발, 천연가스 추출, 무기 수입과 군수품 조달, 마약 거래상으로부터의 수수료 등에서 막대한 이윤을 거두어 장성들끼리 나눠 갖고 있다.
이처럼 미얀마 군부는 매우 독특한 이익집단이다.
이들은 강력한 부와 권력을 쥐고 있으면서도 언젠가 그것을 모조리 빼앗기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이번 쿠데타 직전인 지난해 총선 결과는 군부 내 엘리트들 이런 불안을 극대화하기에 충분했다.
수치 NLD가 이번에도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군부측인 USDP가 상원 6석, 하원 23석을 차지한 데 비해, 수지측인 NLD는 상·하원 합계 396석을 차지했다.
경제난에 대한 책임으로 NLD가 승리하기 어려울 거라고 봤던 군부는 이제 어쩌면 자신들의 권력이 위협받을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부정선거라는 시빗거리를 만들어 갈팡질팡하던 끝에 쿠데타를 감행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미얀마는 영국의 오랜 식민지였다. 독립 과정에서 미얀마에 주어진 가장 큰 숙제는 지역별로 나누어진 수많은 각 소수민족들이 합의하는 통치체제를 수립하는 데 있었다.
독립과정이었던 1947년 12월 체결한 '팡롱협정' 은 각 소수민족의 자치를 바탕으로 하는 연방제를 표방한 바 있고, 건국 영웅인 아웅산 장군은 이 협정 정당성에 근거해 1948년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
한데 건국 14년 만에 국방장관 네윈을 주축으로 일어난 군부 쿠데타가 이 모든 합의를 뒤집어 버렸다.
군부정권은 중앙정부에 이견을 드러내온 미얀마 공산당을 강하게 진압했고, 소수민족 반군과도 잔혹한 전쟁의 시간을 가졌다.
독립 후 초기 정부 정치적 무능력이 빚은 '국가 만들기'의 실패가 반대 급부로 군부에 막강한 권력을 안겨준 것이다.
네윈군부는 '버마식 사회주의'를 표방했다. 그러나 모든 권력은 '인민'이 아니라 '군부'에만 주어졌다. 군부의 국유화 조치는 경제구조의 변혁이 아니라, 영국과 중국인들이 소유했던 경영권을 그저 군부 관료들에게 넘긴 것에 지나지 않았다.
아래로부터의 정치적 참여 시도들은 수천명씩 학살을 마다하지 않은 군부 잔악한 진압으로 미완의 실패로만 끝나고 말았다.
지난 2021년 2월 1일 쿠데타 이후 미얀마는 현재도 전쟁과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1988년 항쟁이래 대중봉기가 폭발할 때마다 불리던 '세상은 끝나지 않을 거야' 가 미얀마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우리 민주항쟁가 '임을위한 행진곡' 도 불리어 지고 있다.
미얀마에 봄은 다시 올 것인가?
미얀마 군부세력 잔혹한 탄압이 이뤄지고 있지만 미얀마인들은 저항을 멈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다양한 시민들이 각자 얼굴로 거리 시위를 이어 가고 있다.
미얀마 민중들이 미완의 성공으로 놔둔 1988년과 2007년을 이번에는 확실하게 완성 시켜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로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2008년 개정된 헌법부터 새롭게 다시 개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도 웃기지도 않았던 유신헌법, 5공헌법을 피를 뿌린 민중 힘으로 바꿔 냈다.
우리 그런 가열찬 기가 미얀마 민중들에게 잘 전달 되었음 한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고 한다.
미얀마 민중은 이미 피를 흘릴만큼 흘렀다.
더 이상 미얀마 민중들 피가 흘리지 않았음 한다.
더 이상 미얀마 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미얀마 민중 활짝 웃는 모습에 승리의 세 손가락을 펴는 모습이 보고 싶다.
민주항쟁 의 성공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