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에 찾아온 손님🕴
다음의 글은 가톨릭다이제스트 2012년 10월호에 실린 대전교구 김영교 신부님의 체험에 관한 글입니다.
추운 겨울 어느날 김영교 신부님은 한 40대 남자의 방문을 받습니다. 그는 조치원에 가는 길인데 어머니가 간경화로 누어 있어 오늘이 어머니를 세상에서 뵙는 마지막이 될 것같다며 어머니에게 세상 떠나기 전에 해드리기 위하여 좋은 말씀 해주시면 자신이 기억했다가 어머니에게 들려드리는 것으로 어머니께 이 세상에서 해드리는 마지막 선물로 하고 싶습니다고 하였습니다.
신부님은 신비스러운 느낌이 들어 그 남자에게 전에 성당을 한번이라도 와 보신 적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남자는 한번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신부는 의아한 마음으로 “그런데 왜 신부인 저를 찾아와 어머님께 드릴 마지막 선물을 의논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어머니에게 이제 자신이 해드릴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 너무나 비참한 생각이 들어 저는 고개를 숙이고 힘없이 걷는데 바로 이성당의 종탑과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순간적으로 ‘아 저 곳에 계시는 신부님을 찾아뵈면 무언가 우리 어머니께 마지막 선물을 줄 수 있을지 몰라’하는 생각이 들어 찾아왔습니다.”
신부는 잔잔한 감동이 들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누구나 사람은 어머니 뱃속에서 10개월을 지나다가 태어납니다. 그러다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 어머니 뱃속과의 하나의 이별이 서러워 울면서 태어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보면 그의 탄생은 참으로 많은 사람이 애타게 기다려온 기쁜 탄생의 시작이 됩니다. 그처럼 이 세상에서의 삶은 또 하나의 어머니 품속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그 이별이 서러워 울겠지만, 그러나 영원한 저세상에서 보면 그것은 참으로 기쁜 또 하나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 안에서의 삶이며 구원입니다.”
그는 진지하게 듣더니 차츰 얼굴에 밝은 빛이 들더니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신부님 저는 수십년간 학생들을 가르쳐 왔지만 한번도 삶에 대하여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오늘 참으로 귀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소중한 가르침을 받은 징표로 성당에서 무언가를 사가고 싶습니다.”
마침 김신부님은 주머니에 묵주가 있어 사양하는 그에게 묵주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며칠 후 편지하나가 김신부에게 왔는데 이는 그 남자에게서 온 부고였습니다. 부고 용지 상단에 볼펜으로 쓴 글씨가 있었는데 어머님께서 마지막 선물을 받으시고 평온하게 눈을 감으셨으며 참으로 고맙다는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어느날 미사를 마친 김신부에게 그 남자가 찾아와 인사하였습니다. 가슴에 상장을 달고 있었는데 표정이 참으로 밝고 여유가 있어 의아할 지경이었습니다. “신부님, 저는 지금 슬프거나 괴롭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평온한 임종의 모습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분명 행복한 천국으로 돌아가신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간경화증으로 이 세상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아는 순간 죽음의 공포로 아들의 손을 잡고 부들부들 떨며 어떻게 하더라도 자기를 살려내라고 몸부림치곤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는 어머니를 위하여 안가본 병원이 없고 찾지 않은 약국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신이 아닌 이상 어떻게 어머니를 살려낼 도리가 없어 자신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렇지만 신부님을 찾아뵙고 어머니께 모든 말씀을 드렸을 때 어머니는 참으로 기쁘게 받아들이며 기쁜 마음으로 대세를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임종 몇일 전 저의 손을 꼭 잡으시며 ‘얘야, 네가 진정 내가 낳은 아들이란 말이냐? 네가 나를 천당에 보내주는구나. 이렇게 고마울 데가 있느냐?’하며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그 묵주를 손에 잡으시고 기도하며 주무시듯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살려내라’고 몸부림치며 원망하던 어머니와는 전혀 다른 분이었습니다.”
그를 세상에 낳아주신 분은 어머니였으나 어머니를 천국에 인도한 것은 아들이었으니 이 얼마나 신비롭고 은혜스러운 일입니까? 그 남자는 그 후 교리강의를 듣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때 그 남자의 대부로 신부님이 자신이 잘 아는 신앙이 깊은 교수분을 추천하였습니다. 얼마후 그 대부를 만나 그 남자분이 신앙생활을 잘 하십니까 하고 김영교 신부님은 물었다고 합니다. 그 대부의 대답이 참으로 걸작이었습니다. “신부님, 제가 기분나빠 대부노릇 못하겠습니다.” 신부님은 깜짝 놀라 “아니, 그분이 냉담이라도 하셨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 대부가 “아니 대자가 좀 대자답게 덜 열심히 해야 제가 지도도 좀하고 가끔 미사도 빠져야 꾸중도 하고 하면서 대부노릇도 하는 것인데 이분은 교리도 저보다 더 많이 알고 영적으로 저보다 훨씬 앞서는 것 같아 제가 오히려 신앙적으로 시기심이 날 정도입니다. 그러니 무슨 맛으로 대부 노릇을 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웃으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화에서 이 세상에서 천국의 존재, 구원의 뜻을 알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하여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마지믹으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칠까 합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인생은 삶에서 죽음으로 나아가는 여정(旅程)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눈으로 본다면 우리의 인생은 죽음에서 삶으로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2024. 8. 27. 김원율 안드레아
첫댓글 우리의 인생은 죽음에서 삶으로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