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듯 보이는 틸슨 코치가 불만을 제기하는 동안에도 몇 몇 코치들은 핀콜리니가 마지막으로 남긴 이기는 팀과 지지 않는 팀에 관한 차이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냥 말장난이라니까요. 심각하게 생각할 거 없습니다. 이기는 거나 지지 않는다는 거나 같은 거잖아요.」
틸슨은 핀콜리니의 말이 대수로운 것이 아닌 양 취급했지만 다른 코치들은 그게 아닌 듯 했다.
「이보게 틸슨. 자네는 미국에서 와서 잘 모르겠지만 핀콜리니 저 사람, 보기와는 다르게 상당히 능력 있는 사람일세. 물론 괴짜고 친해지기 어려운 사람이어서 여러 팀이 기피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반대로는 현역 코치로서 최고 코치중의 하나로 평가받는 명성을 쌓은 코치이기도 해. 실제로 핀콜리니가 지도자들에게 새로운 유행이나 바람을 불러일으킨 적도 많았고 많은 유소년들을 우수한 선수로 길러내기도 한 사람이야. 적어도 능력 하나는 확실하게 검증된 인물일세.」
회의 중에도 별 말이 없던, 평소에도 신중하기로 소문난 피오린 코치가 한 마디 했다.
「하지만 능력이이 있으면 뭐 합니까, 인간이 되어야지. 저런 사람이랑 무슨 일을 함께 할 수 있겠어요...」
베치 코치도 얼굴을 찌푸리며 한 마디 하는 것이 조금 전의 핀콜리니의 행동이 아주 맘에 들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발레스트라, 치아치니 그리고 타소티 등 코치진들중 연장자이고 실질적으로 리더의 역할에 있는 3인의 표정은 자못 심각했다.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 역력한 표정은 조금 전 핀콜리니의 발언을 그냥 넘겨듣지는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기는 팀과 지지 않는 팀이라... 그런 것을 생각해본 지가 오래되긴 했군 그래...」
치아치니 유소년 코치가 먼저 입을 떼자 타소티 수석코치가 말을 이어받았다.
「그렇군... 축구는 무승부가 자주 나오는 경기이니 분명 이기는 것과 지지 않는 다는 것은 다른 것이지... 참 오랜만에 듣는 걸...」
발레스트라 코치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표정으로 말을 이어받았다.
「핀콜리니 그 친구 말대로 나도 늙었나 보군. 이기는 것과지지 않는 것의 차이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어... 」
「무슨 말입니까?」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틸슨이 물었다.
「그 대답은 제가 하죠. 코치님들이 하시는 것보단 제가 하는 쪽이 나을 겁니다.」
이 감독이 틸슨 코치의 물음에 한 발 먼저 나서서 말하기 시작했다.
「단적으로 간단하게 잘라서 이야기하면 챔피언과 도전자의 자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도전자에게 필요한 것은 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것이 필요하죠. 그래야만 한 단계 위로 도약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도전자에게는 계속 이기는 길이 요구되죠. 하지만 챔피언은 이와는 다릅니다. 모든 이의 표적이 되고 왠만한 장,단점 같은 것은 모조리 연구되어 공개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이럴 때 챔피언에게 요구되는 것은 지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이의 도전 속에서 지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울 지도 모릅니다.」
「이긴다는 것은 말이지... 이 쪽에서 경기의 양상을 흔들어야 가능한 것이야. 무슨 뜻인고 하니, 이기려면 이 쪽에서도 위험부담을 안고 가야 한다는 것이지. 경기의 양상을 흔든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경기의 기울기를 어느 쪽이 가져가게 되는가 하는 승부, 당연히 먼저 손을 쓴 자가 불리하게 되어있네. 그래서 현대 축구가 수비를 중심으로 전술을 짜는 이유가 여기 있네. 대부분의 명문 클럽들은 지키는 축구를 하려 하지. 아~ 레알은 제외하도록 하지. 그 쪽은 돈으로 공격하는 팀이니까... 하지만지지 않는 경기를 하려면 굳이 내가 먼저 그런 위험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어. 그저 상대가 움직이길 기다렸다가 그에 맞는 경기를 하면 되지. 하지만 지지 않는 다는 것은 굉장한 인내와 신중함을 요구하는 것이야. 이기는 것과 지지 않는다는 것 양쪽 다 어려운 일인 것은 당연한 거지, 뭐 그 정도는 자네도 알겠지만...」
이 감독의 말에 이어 타소티 수석코치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치아치니 유소년 코치의 지적이 다시 한 번 통렬하게 이어졌다.
「핀콜리니 그 친구가 사냥이 끝난 뱃가죽 늘어진 사자라고 했던가... 음... 인정하긴 싫지만 확실히 그 동안 우리는 디팬딩 챔피언의 모습으로 지매온 것 같군 그래... 도전하는 자, 승리에 굶주린 자의 모습을 가지고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지. 하지만 밀란 정도의 클럽이라면 모험을 하기에는 짊어지고 있는 것이 너무 많아. 그리고...」
「그런 것 때문에 팀이 진보하지 못했죠.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 지키는 것에 급급했고...」
치아치니 유소년 코치가 다 하지 못했던 뒷부분은 아바테 코치가 보충했다.
「그래... 도전자라... 핀콜리니가 하고 싶은 말은 그거였군. 밀란이 타성에 젖어있다. 도전자의 자세가 결여되어 있다... 음... 확실히 그럴 지도 몰라.」
타소티 수석코치의 말에 이어 발레스트라 코치가 다시 한 번 이야기했다.
「확실히 지금 밀란은 감독도 없고 팀의 구심점도 약해지고 있는 상황이지.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상황인 듯 하군. 앞으로 나가지 못하면...」
「뒤로 밀릴 뿐이지요.」
이 감독이 발레스트라 코치의 말을 이어 받으며 이야기했다.
「핀콜리니 코치 찾아보겠습니다.」
틸슨이 핀콜리니를 찾으러 밖으로 나갔고 회의실은 다시 새로운 분위기에 휩싸여갔다. 관성과 타성을 벗어나 새로 태어나려는 밀란의 움직임은 이렇게 한 괴짜의 독설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첫댓글 멋진 말입니다. 정말 멋진 글입니다
오 무한연참은 계속되어야한다.~~
오늘 5골(편?)을 몰아넣으시는군요.. 참재미있습니다.. 소설책을 읽는듯하네요.. 그리고 꼭 탈고하신 것같은 정교함 굿~
더더더 계속 올려 주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