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장산(七長山, 491.2m)-칠현산(七賢山 515.7m)
산행일 : ‘12. 11. 19(수)
소재지 :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삼죽면?죽산면과 충북 광혜원면의 경계
산행코스 : 옥정재(320m)→고라니봉→무이산(462m)→덕성산(519m)→칠현산(516m)→부부탑→칠장산(492m)→칠장사(산행시간 : 5시간)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그냥 어디서나 흔히 만날 수 있는 그저 그렇고 그런 흙산이다. 흙산의 특색대로 산 자체만으로는 특별한 볼거리가 없고, 또한 능선이 온통 울창한 수림(樹林)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조망(眺望)도 트이지 않는다. 대간(大幹)이나 정맥(正脈) 답사(踏査)를 이어가는 산꾼들이나 그저 ‘산이 있어 산을 찾는다.’고 말하는 수준의 산꾼들 외에는 별로 권하고 싶지 않은 산이다. 다만 칠장산은 칠장사라라는 천년 고찰(古刹)을 끼고 있고, 또한 정상까지의 거리가 짧으면서도 가파르지 않기 때문에 가족끼리 산책삼아 찾아볼만한 산이다.
▼ 산행들머리는 충청도와 경기도의 경계를 가르고 있는 고갯마루인 옥정재
평택-제천고속도로 북진천 I.C에서 내려오자마자 만나게 되는 17번 국도를 무시하고, 그냥 진행하면 얼마 안 있어 미호천(川) 앞에서 마장삼거리(이월면 신월리)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우회전하여 17번 지방도로 잠깐 달리다가, 대막삼거리(이월면 송림리)에서 이번에는 좌회전하여 302번 지방도로로 들어서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산행이 시작되는 옥정재에 이르게 된다. 해발 320m의 옥정재는 경기도(안성시 금광면)와 충청북도(진천군 이월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고갯마루이다.
▼ 옥정재의 오른편은 절개지(cutting area , 切開地) 벼랑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곧바로 능선으로 붙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등산로의 들머리는 안성방향으로 50m정도 내려간 지점에서 능선의 왼쪽 비탈로 우회(迂廻)하도록 되어 있다.
▼ 산길은 비탈의 아랫자락으로 난 길을 따라 잠시 내려가다가 이내 오른편 사면(斜面)을 치고 오르도록 되어 있다. 사면을 치고 오르는 산길은 거칠기 짝이 없다. 길이 좁을 뿐만 아니라 가파르기까지 하기 때문에 길가에 매어놓은 안전(安全)로프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혹시 미끄러지기라도 할 경우에는 큰 부상을 입을 수밖에 없는, 오늘 산행 중에서 가장 위험한 구간이다. 까다로운 비탈길을 10분 정도 치고 오르면 이내 **금북정맥의 주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능선에 올라서면 오른편에 긴 나뭇가지를 여러 개 쓰러뜨려 놓은 것이 보인다. 아무래도 등산객들의 통행을 막으려는 묵시적(?示的)인 표현인가 보다.
(**)금북정맥(錦北正脈), 백두대간의 속리산에서 시작된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이 안성의 칠장산(七長山)에서 금북·한남으로 갈라진다. 칠장산(七長山)에서 시작된 금북정맥의 산세는 태안반도 지령산(知靈山)에서 산세를 끝내는데 그 길이가 약 240㎞에 이른다. 주요 산으로는 성거산(聖居山), 광덕산(廣德山), 오서산, 수덕산, 가야산, 팔봉산 등이 있다. 참고로 산줄기가 금강의 서북쪽을 지나므로 금북정맥이라 한 것인데 북서쪽 안성천·삽교천을 아우르고, 남쪽으로 길게 이어진 사면을 따라 흐르는 물이 바로 금강이므로 금강 북쪽에 있다하여 붙여진 옛 산맥 이름이다.
▼ 산길에는 눈이 군데군데 보인다. 요 며칠 따뜻한 기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잔설(殘雪)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아무리 따뜻하다고 해도 겨울은 겨울인가 보다. 길가에 보이는 나무들은 대부분 참나무, 떨어진 낙엽(落葉)들이 길 위에 수북하게 쌓여있다. 그 낙엽 위에 잔설이 남아있기 때문에 여간 미끄러운 게 아니다. 나뭇잎이 다 지고 빈 나뭇가지만 남아있는 산길을 20분 정도 걸으면 고라니봉에 이르게 된다. 고라니봉은 봉우리라기보다는 차라리 능선위의 한 지점으로 보인다. 능선 상의 약간 뽈록하게 치솟은 지점에 엉성한 필체(筆體)로 ‘고라니봉’이라고 쓰인 나무로 만든 표지판이 하나 꽂혀 있을 따름이다.
▼ 고라니봉을 지나서도 주변 환경은 조금도 변함이 없이 이어진다. 참나무들 천지인 능선은 계속해서 자그마한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다가 30분 정도 지나면 돌탑이 있는 안부에 이른다. 이어서 10분쯤 더 걸으면 금북정맥의 마룻금에서 약간 비켜나 있는, 무이산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이 있는 봉우리 위로 올라서게 된다. 봉우리 위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100m쯤 진행하면 무이산 정상이다. 제법 널따란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무이산 정상에는 검은 돌(烏石)으로 만든 자그마한 정상표지석만이 외롭게 지키고 있다. 정상에서는 천룡CC와 광혜원 쪽이 조망(眺望)되나 잡목(雜木)들 때문에 선명하지는 않다.
▼ 무이산을 지나서 덕성산까지 이어지는 능선도 전과 다름없는 풍경(風景)이 계속된다. 능선은 여전히 참나무들로 둘러싸여 조망(眺望)을 허락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타나는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는 여정(旅程)은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무이산을 출발해서 20분 조금 못되게 걸으면, ‘사장골 정상’이라고 쓰인 노란 아크릴(acrylic)판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것이 보인다. 이곳 지명이 사장골인 것은 알겠지만, 아무리 봐도 정상(봉우리)은 아닌 것 같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고 있다. 이어서 10분 정도가 지나면 무티고개, 그리고 30분 정도를 더 걸으면 덕성산 갈림길(이정표 : 병무관 3.5Km/ 무수마을 2.2Km, 옥정재 6.29Km/ 칠장사 5.2Km)을 만나게 된다. 참고로 이 구간에서는 의미 없는 이정표(#1 : 옥정재 6.27Km, 사장골 정상 3.27Km/ 칠현산 정상 2.36Km, #2 : 옥정재 6.91Km, 사장골 정상 3.8Km/ 칠현산 정상 1.72Km)를 두 개 만나게 된다.
▼ 덕성산 갈림길에서 오른편(병무관 방향)으로 급하게 방향을 틀면 금방 덕성산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3시간 정도가 지났다. 열 평 남짓한 덕성산 정상에는 제법 커다란 돌탑(cairn) 세 개가 자리를 지키고 있고, 자그마한 정상표지석은 돌탑의 앞에서 제단(祭壇)마냥 자리 잡고 있다. 꽤 운치가 있는 풍경(風景)이다. 그리고 돌탑의 옆에는 등산안내도와 이정표(칠장사 5.3Km/ 무술 2.4Km/ 병무관 3.5Km)가 보인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정표 하단(下壇)에 ‘**생거진천(生居鎭川)’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무슨 이유일까?
(**) 언젠가 TV에서 ‘전설의 고향’이란 극(劇)을 본 일이 있었다. 그 극(劇)의 제목이 아마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이었을 것이다. 내용인즉 저승사자의 실수로 잘못 데려간 ‘추천석’이라는 ‘진천’ 사람을 이승으로 다시 되돌려 보내는 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episode)를 극화(劇化)한 내용으로 기억된다. 용인에 사는 사람의 몸으로 다시 살아난 진천사람을 놓고, 양가(兩家) 자손들이 서로 모시겠다고 하자 고을의 원님이 내린 판결이 바로 ‘생거용인, 사거진천’이었을 것이다. ‘남은 여생(餘生)을 진천에서 살다가, 죽으면 제사(祭祀)는 용인에서 모시라’라는 내용일지니, 저 이정표는 틀림없이 진천군에서 세웠을 것이고, 진천이 죽었던 사람이 다시 깨어나도 돌아와 살기를 원할 만큼 좋다는 것을 홍보하고 있는 것이 분명할 것이다. 농담 한마디 ‘나 같으면 양쪽 집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살았겠다.’ 마누라가 한명보다는 두 명이 더 좋지 않을까?
▼ 덕성산에서 칠현산은 의외로 가깝다. 또한 능선이 산과 산으로 연결됨에도 불구하고 그 골이 깊지 않아서 별 어려움 없이 진행할 수 있다. 덕성산을 출발해서 25분 남짓 걸으면, 자연석(自然石)에 하얀 페인트로 지명을 표시해 놓은 ‘공림정상(이정표 : 칠현산 정상 0.48Km/ 칠장사 3.34Km/ 덕성산 1.3Km)’을 지나게 되고, 이어서 15분 정도를 더 걸으면 널따란 헬기장이 보이고, 칠현산 정상은 헬기장에서 지척이다. 참고로 그동안 충청도와 경기도의 경계를 이루어오던 능선은 덕성산을 지나면서 양쪽 다 경기도 땅으로 변한다.
▼ 칠현산 정상도 역시 돌탑 두 개가 운치(韻致) 있게 앉아있는데, 아까 지나온 덕성산과는 달리 이곳의 정상표지석은 돌탑의 앞이 아닌 돌탑의 한 가운데에 박혀 있다. 그리고 이정표(칠장사 2.86Km/ 명적암 1.1Km/ 덕성산 1.58Km)와 119구호지점 표시목((1-2 : 칠장산 3.5Km/ 덕성산 1.8Km)이 주변에 세워져 있다. 아까 덕성산에서 정상표지석이 놓여있던 자리에는 삼각점이 박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칠현산을 지나면서 등산로 주변의 풍경이 많이 변한다. 우선 참나무 일색이던 나무들 틈에 밤나무들이 꽤 많이 섞여 있는 것이, 가을철에 산을 찾을 경우에는 알밤 줍는 재미도 제법 쏠쏠할 것 같다. 그리고 산길의 폭이 많이 넓어졌고, 또 길이 반질반질할 정도로 잘 다져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이곳 칠현산과 칠장산을 잇는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명적암에서 칠현산을 거쳐 칠장산으로 갔다가 칠장사로 하산하던지, 아니면 그 반대방향으로 진행하는 코스를 많이 이용한다는 얘기이다.
▼ 능선을 걷다보면 왼편의 나뭇가지 사이로 안성베네스트 GC가 내다 보인다.
▼ 칠현산에서 잠깐 완만(緩慢)하게 이어지던 산길은 갑자기 고도(高度)를 급하게 떨어뜨린다. 덕분에 게으른 산꾼도 더 이상은 못 버티고 아이젠(Eisen)을 착용하고 만다. 얼어붙은 빙판(氷板)길이 너무나 미끄럽기 때문이다. 칠현산에서 가파른 내리막길을 20분 정도 내려오면 안부에 커다란 돌탑(石塔)이 하나 보인다. ‘칠순비 부부탑’이란다. ‘차라리 노후용(老後用) 전원주택이 있는 홍천에다 칠순탑을 새로 쌓는 게 어떻겠는지요.’ 우리 부부의 나이가 칠순이 되는 해에 이곳 칠순탑을 다시 한 번 찾아보자는 내 얘기를 듣자마자 집사람이 하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그녀의 말마따나 칠순탑에 의미가 있다면 우리가 머물 집 주위에 새로 하나 쌓으면 될 일인 것이다.
▼ 가파르고도 길게 고도(高度)를 낮추던 산길은 부부탑을 지나면서 다시 가파르게 위를 향하고 있다. 부부탑이 있던 안부에서 10분 정도 올라서면 널따란 헬기장에 이르게 되고, 헬기장을 통과하지 않고 왼쪽으로 우회(迂廻)한 후, 군데군데 바위가 많은 능선 길을 걷다보면 15분 정도가 흐른 후에는 칠장사 하산로가 있는 안부 사거리(이정표 : 칠장산 정상 0.45Km, 둘레길/ 칠장사 주차장 0.92Km/ 칠현산)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오른편은 칠장사, 맞은편은 칠장산, 그리고 이정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왼편으로 내려가면 금광면 삼흥리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이정표를 자세히 보면 둘레길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이는 칠장산 주변에 조성한 산책로를 말하는 것이다. 둘레길 중에서도 칠장사에서 ‘3정맥 분기점’ 바로 아래의 고갯마루를 지나 죽산면으로 넘어가는 길을 ‘**어사 박문수길’이라고 부른다.
(**)이 길은 옛날 충청도에서 한양으로 오고 갈 때 지나다니던 작은 오솔길인데,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가 과거(科擧)를 보러갈 때 이 길을 지나갔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나 보다. 박문수는 과거시험을 보러가던 도중에 칠장사에 묵으며 나한전에 기도를 드렸는데, 부처님이 꿈속에서 나타나 그에게 준 7줄의 시구(詩句)인 ‘몽중등과시(夢中登科詩)’를 활용해서 장원급제(壯元及第)를 하였다고 한다. 그 후로 이 길이 유명해졌다. 그의 부모가 자손을 얻지 못하자 이곳 칠장사에서 문수보살에게 100일 동안 치성(致誠)을 드린 후에 아들을 점지 받았고, 그래서 이름도 문수로 지었다고 하니 박문수와 칠장사는 끊으려고 해도 끊을 수 없는 인연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이 꿈속에까지 나타나 시제(試題)를 주었을 것이고... 참고로 박문수가 치성을 드릴 때 바쳤던 공양물(供養物)이 조청유과이었는데, 그 후부터 조청유과는 칠장사 나한전의 대표 공양물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御使 朴文秀 夢中登科詩》
落照吐紅掛碧山 (낙조토홍괘벽산)
토하는 듯 넘어가는 붉은 빛은 푸른 산에 걸려있고
問津行客鞭應急 (문진행객편응급)
나루를 찾는 나그네의 독촉은 응당 급해지고
尋寺歸僧杖不閒 (심사귀승장불한)
절로 돌아가는 스님의 지팡이는 한가롭지 않으며
放牧園中牛帶影 (방목원중우대영)
초원에서 풀을 뜯는 소의 그림자는 허리가운데로 들어가고
望夫臺上妾低? (망부대상첩저환)
댓돌위에서 서방을 기다리는 아낙의 쪽이 뒤로 젖혀지며
蒼煙古木溪南里 (창연고목계남리)
고목으로 저녁 짓는 푸른 연기가 남쪽마을 계곡으로 올라가고
위의 부처님이 알려준 시구(詩句)에다 박문수가 아래의 한 줄을 더 덧붙였다.
短髮樵童弄?還 (단발초동농적환)
나무를 하는 떠꺼머리총각이 즐거운 듯이 풀피리를 불며 돌아간다.
▼ 삼거리에서 칠장산 방향으로 200m쯤 올라가면 이정표(3정맥분기점 30m/ 칠장산 정상 0.26Km/ 칠장사 주차장 0.92Km) 하나가 보인다.‘ 삼정맥(三正脈) 분기점(分岐點)’이 가리키고 있는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수많은 산악회 리본들이다. 그만큼 이곳을 찾은 산악회들이 많았다는 얘기이고, 그 이유는 이곳 분기점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삼정맥(三正脈) 분기점(分岐點)이라고는 호남정맥과 금남정맥 그리고 호남?금남정맥이 분기되는 주화산(전북 완주군 소양면 소재)과 이곳 칠장산 뿐이니 그만큼 ‘의미 있는 땅’이라고 보아도 틀린 얘기가 아닐 것이다.
▼ 하나 막상 만나본 분기점 자체는 그 봉우리가 갖고 있는 중요한 의미와는 달리 지극히 평범하고 조그만 둔덕의 모습이다. 그저 수더분하게 생긴 둔덕 위에 삼정맥분기점 이정표(칠장산 정상, 한남정맥/ 신대마을 2.4Km, 한남?금북정맥/ 칠장사 주차장 1.14Km, 금북정맥)와 장의자 2개, 그리고 삼정맥에 대한 해설판이 세워져 있을 따름이다. 이곳 분기점에서 이정표 뒤로 가면 한남?금북정맥 마룻금이고, 왼편으로 진행할 경우에는 한남정맥, 그리고 금북정맥은 조금 전에 지나왔던 능선이다.
▼ 삼정맥분기점에서 한남정맥 마룻금을 밟고 5분쯤 올라가면 금방 칠장산 정상이다. 칠장산 정상은 헬기장으로 이루어진 널따란 분지(盆地)로서, 북쪽 끄트머리에 정상표지석이 앉아있는데, 그 크기는 널따란 분지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왜소(矮小)하다. 정상에는 소방서에서 세운 구호지점 표시목(1-1 : 칠현산 정상 3.5Km/ 관해봉 1.0Km)이 이정표를 대신하고 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4시간30분, 칠현산을 출발한지는 1시간 정도가 지났다.
▼ 정상에 서면 사방으로 막힘없이 시야(視野)가 트인다. 정상에 서면 북동으로 관모봉과 늑배고개가 조망(眺望)되고 남으로는 칠현산과 멀리 덕성산이 하늘아래에 일렬로 늘어서 있는 것이 보인다.
▼ 삼거리에서 칠장사로 내려가는 하산 길(어사 박문수길)은 산죽(山竹)이 지천이다. 바닥은 산죽, 그리고 머리 위에는 하늘을 가리고 있는 울창한 수림(樹林)이 하산길 내내 같이한다. 길은 넓고, 거기다 조금만 가팔라도 어김없이 계단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어린이나 노약자들도 쉽게 산을 오르내릴 수 있을 정도이다.
▼ 산행날머리는 칠장사주차장
삼거리를 출발해서 15분 정도 내려오면 왼편에 칠장사가 보이고, 주차장으로 가는 길은 다시 오른편 산비탈로 오르도록 되어 있다(이정표 : 칠장사 주차장 0.56Km/ 칠장산 정상 0.81Km/ 칠장사). 그러나 구태여 곧바로 주차장으로 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천년고찰(千年古刹)이라는 칠장사를 둘러보지 않고 그냥 간다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전각(殿閣)들을 둘러보고 사찰(寺刹)을 빠져나오면 금방 주차장이다. 주차장 옆의 매점에 들러 따뜻한 어묵 국물로 몸을 녹이면 하루의 산행이 끝을 맺게 된다.
* 칠장사(七長寺), 선덕여왕 5년(BC 636)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였다. 고려 초기에 혜소국사(慧炤國師)가 현재의 비각(碑閣) 자리인 백련암(白蓮庵)에서 수도할 때 찾아왔던 7명의 악인을 교화하여, 7인 모두가 도를 깨달아 칠현(七賢)이 되었으므로 산의 이름을 칠현산이라고 했다고 전한다. 한때(1674년) 세도가에게 산을 빼앗기고, 승려들이 모두 흩어져서 잠시 빈 절이 되었던 것을 숙종 30년(1704년)에 대법당과 대청루를 고쳐 짓고 영조 원년(1725년)에 선지 대사가 원통전을 세운 것으로 기록돼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비각 내에 보존되어 있는 보물 제488호의 혜소국사비(慧炤國師碑), 오불회괘불탱(보물 296호), 인목왕후어필(보물 1627호), 봉업사 석불여래입상(石彫如來立像, 보물 제983호), 그리고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대웅전(제114호), 천왕문 내의 소조사천왕상(제115호) 등 귀중한 문화재들이 많다. 참고로 조선시대 명종 때 임꺽정이 스승 병해 스님과 함께 10여년간 머물던 사찰(寺刹)이며, 벽초 홍명희의 역사소설 ‘임꺽정’의 발생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