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란 중에 나를 넓히시는 하나님 (시2-4)
2026년 1월 22일 (목요일)
찬양 : 우리 오늘 눈물로
본문 : 시4:1-8절
☞ https://youtu.be/El2y0cdthls?si=WO8VPLx15egc9moE
보호식 8일차이다. 어제 처음으로 진밥이었지만, 밥을 먹으니 살 것 같다. 밥의 소중함이 이보다 더할 수 없다. 사람이란 존재는 없어져야 귀해진다는 너무도 평범한 사실을 깨닫는다.
금식 후 첫 출근 한다. 예전 같으면 금식을 마치면서 사무실을 들리고, 또 보호식 중에도 자주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내려가야 하기에 완전한 맡김을 위해 내 마음을 접고 온전한 쉼의 시간으로 삼았다.
이제 2026년 사역의 자리로 돌아가면서 감회가 새롭다. 이젠 내게 주어진 역할에만 집중하며 새로운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주님 인도하소서.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시편 4편은 3편과 연결된 내용이라 한다. 3편이 압살롬을 피하던 낮의 이야기로 전쟁터속의 믿음 즉 여호와는 나의 방패시라는 고백이라면, 4편은 밤을 지내는 믿음, 즉 하나님은 나의 평안, 안전이라고 외치는 고백이다. 8절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주님이 내게 두신 기쁨은 곡식의 풍성함보다 더하다고 고백한다. 아멘
그런데 오늘 내게 큰 울림을 주는 구절은 이 부분이다. 1절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그는 믿음으로 위대한 고백을 올리고 있다. 하나님은 곤란을 통해 나를 묶고 더 좁아지게 하신 것이 아니라 더 넓게 만드셨다는 말이다.
여기 곤란이란 단어가 좁다, 압박하다, 막다라는 뜻이라면, 너그럽게 하셨다는 것은 넓히다, 공간을 주다, 풀어주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것을 문자적으로 변역하면 주께서 내게 좁은 데서 넓은 곳으로 인도하셨다는 말이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게 큰 울림과 감동이 된 것은 다윗은 지금 곤란 중에 하나님이 풀어주셨다는 기억을 떠올린 것을 넘어서, 곤란 자체가 자신을 넓게하는 통로가 되었다는 고백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자신을 넓게 만드셔서 그 환경을 감당하게 하셨다는 말이다. 그는 지금 자녀에게 왕권을 빼앗겼지만, 그래서 좁아진 것처럼 보여지고 모두가 희망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는 그 어떤 기쁨보다 더한 기쁨을 자신의 마음에 두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여호와가 나의 안전이란 믿음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그렇다. 곤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넓히시는 하나님의 물레였던 것이다. 이것을 기억하며 기도로 나아가는 다윗의 삶은 이미 전쟁터의 지형을 바꾼 것이며, 승리하신 하나님의 등에 탄 기사가 된 것이다.
보호식 8일차를 지내는 오늘 이런 다윗의 믿음을 소유하며 나의 완전한 중보자이시며, 승리자이신 주님을 신뢰한다. 지난날, 나를 넓게 하시는 분을 신뢰하지 못하고 좁아진 모습으로 살았던 나를 자백한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곤란이라는 물레로 내 믿음의 그릇을 넓게 빚으셨다.
이제는 십자가로 나의 곤란을 너그럽게 하신 그분의 승리를 믿고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며 곤란의 시간을 멋지게 살아가는 자 되기를 다짐한다.
주님, 이 하루의 삶이 전쟁터의 낮이던지, 밤이던지 승리하신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며 좁은 나를 넓히시는 주님을 기대하며 하루를 살아가게 하소서.
한줄 묵상 :
<곤란으로 나를 좁히는 것은 세상이나, 하나님은 곤란을 통해 나를 넓히신다.>
빌립보서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적용 질문
1. 오늘 내가 만나고 있는 곤란의 상황은 어떤 것인가?
2. 내가 만난 곤란으로 나는 좁아지고 있는가, 넓어지고 있는가?
3. 주어진 곤란의 순간에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가?
보호식의 기간에도 기도해 주시는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