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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명인방투어 원문보기 글쓴이: 능파
전쟁 학살의 피에 절망한 아버지, 지리산으로 사라져 버려
딸 만화, 한·원망에 사무쳐 떠나지만…그리움에 산 자락으로 다시 돌아와작가도 여전히 고향에 남아 후배 양성
전라도 정서·불굴의 생명력…후대에 남겨주는 것이 목표
문순태의_피아골.2
“눈이 와서 다행이다. 저 푹신한 눈 속에 묻히면 을매나 따숩겄냐.”
할머니는 눈 덮인 지리산을 쳐다보며 슬픈 얼굴로 말했었다. 다음날 새벽에 할머니는 여느 때와 같이 거적문 사이로 칼날같이 매서운 연곡사 골짜기의 황소바람이 술술 들어오는 부엌에서 찬물로 목욕을 하고, 낡은 앞다지 속에서 새물내 나는 속옷을 갈아입고, 멀리 골짜기 밖으로 굿을 하러 갈 때처럼 신복을 차려입었으며 머리도 곱게 빗었다.
할머니는 곱게 빗은 머리를 풀고, 신복을 입은 채, 꽃베개를 베고 반듯하게 누웠다. 그리고 만화의 손을 꼭 쥐고는 “핼미가 죽으면 몸주대감은 네가 잘 모셔야 한다.”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 - <피아골> 중에서
소설 <피아골> 은 평생을 만나보지 못한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다. 아버지 배달수는 무녀의 사생아로 지리산 남도자락에서 태어나 그 산을 아비로 여기며 살아온 남자다. 그는 육이오 전쟁 때 고향땅과 고향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었다. 아비로 믿었던 지리산과 지리산 자락에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운명으로 가족이 된 이웃을 지켜내고자 총을 들었건만 자기 손에 묻은 학살의 피에 절망하여 처자식을 버리고 지리산 품속으로 사라져버린다. 그렇게 지리산에 아버지를 빼앗긴 딸 배만화는 그 한과 원망에 사무쳐 지리산을 떠나지만 한은 그리움이 되고, 원망은 애달픔으로 바뀌어 끝내 자신이 태어난 지리산 자락을 찾게 된다. 그곳에서 아버지의 아픔을 깨닫게 된 딸은 부끄러움과 죄책감으로 자식의 얼굴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는 아버지를 용서하고 기다려주기로 결심한다. 지리산 피아골이 그녀의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아버지를 묵묵히 기다려주었듯이 말이다.
“아버지는 어디 계실까요?”
만화는 갑자기 쓸쓸한 표정이 되어 물었다.
“거처가 일정치가 않단다.”
“지리산 안에 계시겠지요?”
“그러겠지.”
“저는 이곳을 떠나지 않겠어요. 지리산을 다 뒤져서라도 아버지를 꼭 찾아내겠어요.”
“그것은….”
“옛날 할머니가 살던 집터에 자그마한 집을 짓겠어요. 그리고 아버지를 기다리겠어요. 옛날에 할머니가 아버지를 기다렸듯이 말예요.” - <피아골> 중에서
소설가 문순태(1941~ )에게 고향 전라도는 아픔과 한이다. 그 땅이 안고 있는 숱한 핍박의 역사 한가운데서 그의 조상들은 농사꾼으로, 그리고 농사꾼의 아들로서 10대에 걸쳐 전라도의 기름진 땅과 인심을 지켜냈다. 그 운명이 때론 답답한 족쇄처럼 여겨질 때도 있었지만 그에게 고향 전라도는 삶과 매한가지였다. 비루하고 원망스럽다 하여 떠나버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그의 마을이 빨치산을 도왔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국군과 경찰에 의해 가옥과 전답이 불타 없어졌을 때도 문순태의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은 전라도를 떠나지 않았다. 지리산 중턱에 토굴을 파고 숨어 지내면서도 아비와 같은 그 높고 웅장한 봉우리들 곁에 머무르는 길을 택했다. 그들에게 고향은 선택이 아닌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소설가로서 큰 명예를 얻은 후에도 보란 듯이 문단 일선에서 활약하지 않고 여전히 고향에 남아 후배를 양성하고 있다. 그가 남도의 질펀하지만 우습고 씁쓸한 정서가 고스란히 담긴 방언으로 글쓰기를 고집하는 이유는 애초에 소설가가 되기로 작정했을 때부터 전라도가 안고 있는 정서와 역사, 불굴의 생명력을 후대에 유산으로 남겨주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이다. 소설은 단지 수단이었을 뿐이다. 전라도와 그 땅에서 살아가는 민초들의 굴곡지고 한 많은 인생살이야말로 문순태에겐 소설가로서의 의무이자 책임이었던 것이다.
새삼 나이 들어 고향의 본질을 생각해볼 때 어머니 같은 따스함이 전부는 아니다. 고향은 그곳에서 태어난 이들에게 영원히 갚지 못할 빚을 안겨준다. 그 땅이 우리에게 베풀었던 무한한 사랑·기쁨·추억과 그곳에서 꿈꿨던 밝은 미래는 현재와 같은 보잘것없는 오늘이 구차하게 지속되는 한, 갚지 못해 부끄럽고 원망스러운 빚으로 남는다.
문순태의 <피아골> 은 그 빚을 거부하지 않고 자기 몫으로 긍정하는 자들이 부르는 안식의 노래다. 그 안식이야말로 우리가 그리워하는 고향의 진짜 모습이 아니었을까. 가슴 한구석이 아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