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벌고 사회에 공헌 CSV가 기업가치 결정한다
동물실험 반대·친환경 고집…비욘드 1천억 대박비결 ‘CSV’
■ 2014 한국경영학회 CSV 대상
‘동물실험 반대, 유기농 원료, 공정거래.’
2005년 LG생활건강이 이 같은 철학을 바탕으로 ‘비욘드’ 화장품 브랜드를 내놓을 때 ‘너무 앞서갔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실제로 친환경을 테마로 내세운 여러 화장품 브랜드들은 얼마 가지 않아 시장에서 사라졌다. 내가 예뻐지는 게, 값싸게 소비하는 게 최고의 덕목인 소비자들에게 친환경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LG생활건강은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유기농 화장품’에 대한 철학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2008년부터 비욘드 화장품에 대한 동물실험을 전면 배제했다. 2012년부터는 비욘드를 넘어서 LG생활건강 화장품 전체에 대해 동물실험을 금지했다. 이에 더해 LG생활건강은 ‘SAVE US FUND’를 설립하고 판매 수익금 일부를 동물보호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한국경영학회는 20일 LG생활건강(동반성장 부문)을 비롯해 CJ대한통운(산업발전 부문), KT(경영혁신 부문), KCL(창조경제 부문)을 ‘2014년 CSV 대상’ 수상 기업으로 선정했다.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유기농 화장품 ‘비욘드’ 광고.
강아지를 안고 있는 모습의 배우 김수현 씨를 내세워 ‘비욘드는 동물실험을 하지 않습니다’는 광고를 내보낸 것도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2008년 440억원이던 비욘드 매출은 매년 늘어나 2012년 1100억원으로 1000억원을 돌파했다. 작년에는 1300억원까지 매출이 늘었고 올해도 최고 신기록 경신이 확실시된다. ‘좋은 기업’의 이미지가 소비를 부추겨 기업의 이익으로 환원되는 선순환 구조다.
이중규 LG생활건강 파트장은 “100% 유기농 원료로 적정한 가격대의 좋은 화장품을 공급하고 협력회사와 동반 성장하는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철학이 고객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털어놨다.
회사 이윤에만 급급해 소비자나 협력업체에 불만을 사면 하루아침에 회사 이미지가 실추되고 이윤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기업에 대한 정보와 평가가 실시간으로 퍼져나가는 요즈음, ‘좋은 기업’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가지고 간다는 것은 산출하기 힘들 정도의 가치를 지닌다.
기업의 공유가치창출(CSV)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는 이유다. CSV는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여기서 기업이 이익을 얻으면서, 다수 경제주체들이 창조적인 방식으로 사업을 키워나갈 수 있는 선순환을 추구한다.
CJ대한통운의 실버택배 사업도 기업과 사회를 동시에 살찌우는 모범사례로 꼽힌다.
CJ대한통운의 실버택배 사업도 기업과 사회를 동시에 살찌우는 모범 사례로 꼽힌다. 퇴직 후 일자리를 찾는 노년층 구직 수요가 높아지고, 택배기사가 부족한 기업의 구인난이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CJ대한통운은 ‘시니어택배기사’ 카드를 빼든 것이다. 2007년부터 실시한 실버택배 사업은 현재 전국적으로 360여 명의 만 60세 이상 시니어 인력들이 참여하고 있다.
시니어 인력들은 수익이 그다지 높지 않지만, 근무시간이 길지 않아 신체적 부담이 적다는 면에서 매력을 느끼고 있다. 건강과 돈을 동시에 챙길 수 있는 소일거리인 셈이다. 기업은 자전거와 카트 등을 활용해 기존 차량으로 진입이 어려웠던 아파트 단지 배송을 시니어 택배기사에게 맡기면서 고민을 덜었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기존 택배기사 1명이 하던 업무를 시니어 인력 4명 정도가 하고 있는데 시니어 인력은 지역 사정을 잘 알고 성실하면서 책임감도 강해 택배업무에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CJ제일제당이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을 위해 시작한 ‘즐거운 동행’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역의 유망한 중소 식품기업들을 발굴해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하면 CJ제일제당은 기술 지원, 품질 관리, 유통 대행, 마케팅, 판로 개척 등을 책임진다.
이를 통해 중소기업은 유통망을 확보하고 자생력을 강화할 수 있고, CJ제일제당은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갖춰 매출을 늘릴 수 있다.
실제 CJ제일제당은 새로운 콩나물용 콩을 개발해 제주도 5개 지역 9개 농가에서 10만평 규모로 재배하고 있다. ‘CJ행복한 1호 콩’은 기존 20년 된 노후 종자를 개종해 만들었는데 콩알 수와 크기가 균일하고 꼬투리 수가 많아 기계수확이 가능한 다수확 종자다. 농촌의 고령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콩나물 콩 대량생산에 활로를 열어줬다는 평가다.
전남 신안군 임자도 주민들이 마을회관에서 UHD 영상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인터넷 서비스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작은 섬에 건설한 제1호 ‘기가 아일랜드’는 KT의 대표적인 CSV 사업이다.
KT는 낙도(落島)인 전남 신안군 임자도에 제1호 ‘기가아일랜드(GiGA Island)’를 건설했다. 인터넷 서비스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작은 섬에 기존보다 10배 빠른 기가 네트워크를 구축하면서 육지와의 ‘보이지 않는 다리’를 연결한 것이다.
이 섬 초등학생 20명과 서울의 외국인 유학생 20명을 네트워크로 이어서 언어와 문화교류를 하는 식이다. 마을회관에선 기존보다 4배 선명한 UHD 영상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일부 농가에선 재배시설에 원격 환경제어솔루션을 구축해 외부 환경에 따라 물을 주고 온도를 맞추는 농사일을 원격으로 제어할 수 있게 됐다.
KT 관계자는 “ICT기술을 통해 임자도에 도시 수준의 교육, 문화, 의료, 농업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약 20억원 상당의 사회적 효과를 창출했다”며 “KT 입장에서도 기가인터넷 서비스를 실제 구축해보는 테스트 기회를 가져볼 수 있었고, 다른 지자체에서도 관련 문의가 잇따르고 있어 수익 창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경험과 노하우를 엮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낸 기업도 있다. 국내 최대 시험인증기관 중 하나인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이하 KCL)은 평소 보유하고 있던 목재연구와 접착제연구 안전규격연구 등의 기능을 통합해 카누 등 목재보트 제작사업을 벌이고 있다.
KCL이 지자체나 개인에게 목재보트 제작기술을 전수해주면, 해당 지자체에 카누체험장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사업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과 영국 캐나다 등지에서는 목재보트를 손수 만들고 체험하는 레저산업이 크게 성장해 있다. 국내에서도 경남 합천군에서 2013년 30대, 올해는 132대의 목재보트를 제작해 체험학교를 운영 중이다.
KCL 관계자는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기술과 노하우를 가지고 새로운 아이템으로 도전한 결과, 과거 외국에서 1000만원을 들여 수입했던 목재보트 원자재 가격이 현재 300만원 수준으로 낮아졌다”며 “국내에 새로운 레저문화를 선보였고 지자체 재정에도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차후 목재보트 제작과 안전에 대한 인증사업을 벌이면 본사의 이익에도 보탬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은 무엇인가.’
세상이 변해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꼭 들어가야 할 단어가 있다면 ‘이윤(profit)’이다. 돈을 벌지 못하는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산업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기업이 부를 독점하고 개인은 가난을 나눠 가지는 구조가 공고해지면서 기업의 사회적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업이 최대한 이윤을 빨아들이고 여기서 일부를 떼주는 식의 CSR는 지속가능한 모델이 아니다. 기업에 사회적책임은 자신의 존재 가치인 이윤을 깎아 먹는 일종의 비용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도출되는 개념이 바로 기업의 공유가치창출(CSV·Creating Shared Value)이다.
CSV는 마이클 포터(Michael E. Porter) 하버드대 교수가 2011년 1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자본주의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How to Fix Capitalism)’란 논문을 발표하면서 주창한 개념이다. 통상 CSV는 다음 두 가지 요소를 충족해야 한다.
첫째, 세상이 원하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것. 새로운 가치란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사회적·복지적·예술적 가치를 총망라하는 개념이다. 둘째, 기업도 직간접적 이익을 얻어야 한다. 그래야 지속가능한 사업을 수행할 수 있다. 여기에 여러 주체들이 창의적 방식으로 협업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네슬레(Nestle)그룹은 CSV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네슬레는 2006년 CSV 패러다임을 최초로 도입해 2009년 ‘네슬레 소사이어티 피라미드(Nestle Society Pyramid)’로 알려진 전사 CSV 경영체계를 구축했다. 특히 ‘네스프레소 에코레버레이션(Nespresso Ecolaboration)’은 제품의 원두 소싱, 캡슐 재활용, 탄소배출 저감 관련 활동을 종합한 대표 CSV 프로그램으로 회자되고 있다. 어린이 노동력 착취, 밀림 파괴, 실험용 분유 아프리카 공급 등 숱한 비난을 받아온 네슬레는 CSV 경영을 전격 수용한 뒤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네슬레는 2013년 포천지 선정 세계 50대 존경받는 기업 ‘컨슈머 푸드 프로덕트(Consumer Food Products)’ 부문 1위에 선정돼 ‘착한 기업’으로 이미지를 굳혔다.
국내에선 카카오톡 같은 기업이 대표적이다.
모바일 메신저라는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자 이용자들은 공짜로 새로운 가치를 맛보게 됐다. 사람들이 몰리자 기업들은 여기서 게임을 팔거나 광고를 냈고, 돈의 물결은 카카오톡으로 흘러들었다. 이장우 한국경영학회 회장은 “CSV는 기업들이 여기서 직간접적 이익을 얻거나 창의적 방법으로 돈이 거의 들지 않기 때문에 써도 써도 돈이 줄지 않는 화수분 같은 매력이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