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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례
이날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파스카 신비를 완성하시고자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일을 기념한다. 성지(聖枝) 축복과 행렬을 거행하며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영광스럽게 기념하는 한편, '주님의 수난기'를 통하여 그분의 수난과 죽음을 장엄하게 선포한다. 성지를 들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하는 것은 4세기 무렵부터 거행되어 10세기 이후 널리 전파되었다.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구세주께서 스스로 자신을 낮추시어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셨으니
저희도 주님의 수난에 참여하여 부활의 영광을 함께 누리게 하소서.
제1독서
<나는 모욕을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50,4-7
4 주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5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6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7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2,6-11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6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7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8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10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11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복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
○ 해설자 + 예수님 ● 다른 한 사람 ▣ 다른 몇몇 사람 ◎ 군중
1 파스카와 무교절 이틀 전이었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속임수를 써서 예수님을 붙잡아 죽일까 궁리하고 있었다.
2 그러면서 “백성이 소동을 일으킬지 모르니
축제 기간에는 안 된다.” 하고 말하였다.
3 예수님께서 베타니아에 있는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의 일이다.
마침 식탁에 앉아 계시는데,
어떤 여자가 값비싼 순 나르드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그분 머리에 향유를 부었다.
4 몇 사람이 불쾌해하며 저희끼리 말하면서 그 여자를 나무랐다.
▣ “왜 저렇게 향유를 허투루 쓰는가?
5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도 있을 터인데.”
6 ○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 “이 여자를 가만두어라. 왜 괴롭히느냐? 이 여자는 나에게 좋은 일을 하였다.
7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으니,
너희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그들에게 잘해 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8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내 장례를 위하여 미리 내 몸에 향유를 바른 것이다.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10 ○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수석 사제들에게 팔아넘기려고 그들을 찾아갔다.
11 그들은 그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그에게 돈을 주기로 약속하였다.
그래서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12 무교절 첫날 곧 파스카 양을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가서 차리면 좋겠습니까?”
13 ○ 예수님께서 제자 두 사람을 보내며 이르셨다.
+ “도성 안으로 가거라.
그러면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를 만날 터이니 그를 따라가거라.
14 그리고 그가 들어가는 집의 주인에게,
‘스승님께서 ′내가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음식을 먹을
내 방이 어디 있느냐?′하고 물으십니다.’ 하여라.
15 그러면 그 사람이 이미 자리를 깔아 준비된 큰 이층 방을 보여 줄 것이다.
거기에다 차려라.”
16 ○ 제자들이 떠나 도성 안으로 가서 보니, 예수님께서 일러 주신 그대로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17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곳으로 가셨다.
18 그들이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
나와 함께 음식을 먹고 있는 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19 ○ 그러자 제자들은 근심하며 차례로 묻기 시작하였다.
● “저는 아니겠지요?”
20 ○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 “그는 열둘 가운데 하나로서 나와 함께 같은 대접에 빵을 적시는 사람이다.
21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22 ○ 제자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23 ○ 또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니 모두 그것을 마셨다.
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2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
26 ○ 그들은 찬미가를 부르고 나서 올리브 산으로 갔다.
27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 “너희는 모두 떨어져 나갈 것이다.
성경에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28 그러나 나는 되살아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갈 것이다.”
29 ○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 “모두 떨어져 나갈지라도 저는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30 ○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31 ○ 베드로가 더욱 힘주어 장담하였다.
● “스승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결코 스승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 다른 제자들도 모두 그렇게 말하였다.
32 그들은 겟세마니라는 곳으로 갔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 “내가 기도하는 동안 너희는 여기에 앉아 있어라.”
○ 그런 다음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셨다.
그분께서는 공포와 번민에 휩싸이기 시작하셨다.
34 그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깨어 있어라.”
35 ○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조금 나아가 땅에 엎드리시어,
하실 수만 있으면 그 시간이 당신을 비켜 가게 해 주십사고 기도하시며,
36 이렇게 말씀하셨다.
+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
37 ○ 예수님께서 돌아와 보시니 제자들은 자고 있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 “시몬아, 자고 있느냐 ?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
38 너희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
39 ○ 예수님께서 다시 가셔서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셨다.
40 그리고 다시 와 보시니 그들은 여전히 눈이 무겁게 내리감겨 자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몰랐다.
41 예수님께서는 세 번째 오셔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 “아직도 자고 있느냐 ? 아직도 쉬고 있느냐 ? 이제 되었다.
시간이 되어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어간다.
42 일어나 가자. 보라, 나를 팔아넘길 자가 가까이 왔다.”
43 ○ 그러자 곧,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가 다가왔다.
그와 함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이 보낸 무리도
칼과 몽둥이를 들고 왔다.
44 그분을 팔아넘길 자는,
“내가 입 맞추는 이가 바로 그 사람이니 그를 붙잡아 잘 끌고 가시오.” 하고
그들에게 미리 신호를 일러두었다.
45 그가 와서는 곧바로 예수님께 다가가 말하였다.
● “스승님!”
○ 그러고 나서 입을 맞추었다.
46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께 손을 대어 그분을 붙잡았다.
47 그때 곁에 서 있던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사제의 종을 내리쳐 그의 귀를 잘라 버렸다.
48 예수님께서 나서시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 “너희는 강도라도 잡을 듯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나를 잡으러 나왔단 말이냐?
49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지만
너희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리된 것이다.”
50 ○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다.
51 어떤 젊은이가 알몸에 아마포만 두른 채 그분을 따라갔다.
사람들이 그를 붙잡자, 52 그는 아마포를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났다.
53 그들은 예수님을 대사제에게 끌고 갔다.
그러자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이 모두 모여 왔다.
54 베드로는 멀찍이 떨어져서 예수님을 뒤따라
대사제의 저택 안뜰까지 들어가, 시종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고 있었다.
55 수석 사제들과 온 최고 의회는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려고
그분에 대한 증언을 찾았으나 찾아내지 못하였다.
56 사실 많은 사람이 그분께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하였지만,
그 증언들이 서로 들어맞지 않았던 것이다.
57 더러는 나서서 이렇게 거짓 증언을 하기도 하였다.
58 ▣ “우리는 저자가, ‘나는 사람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허물고,
손으로 짓지 않는 다른 성전을 사흘 안에 세우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59 ○ 그들의 증언도 서로 들어맞지 않았다.
60 그러자 대사제가 한가운데로 나서서 예수님께 물었다.
● “당신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소?
이자들이 당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데 어찌 된 일이오?”
61 ○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입을 다무신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대사제는 다시 물었다.
● “당신이 찬양받으실 분의 아들 메시아요?”
62 ○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 “그렇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이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63 ○ 대사제가 자기 옷을 찢고 이렇게 말하였다.
● “이제 우리에게 무슨 증인이 더 필요합니까?
64 여러분도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듣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 그들은 모두 예수님께서 사형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단죄하였다.
65 어떤 자들은 예수님께 침을 뱉고 그분의 얼굴을 가린 다음,
주먹으로 치면서 놀려 대기 시작하였다.
▣ “알아맞혀 보아라.”
○ 시종들도 예수님의 뺨을 때렸다.
66 베드로가 안뜰 아래쪽에 있는데 대사제의 하녀 하나가 와서,
67 불을 쬐고 있는 베드로를 보고 그를 찬찬히 살피면서 말하였다.
● “당신도 저 나자렛 사람 예수와 함께 있던 사람이지요?”
68 ○ 베드로는 부인하였다.
●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겠소.”
○ 베드로가 바깥뜰로 나가자 닭이 울었다.
69 그 하녀가 베드로를 보면서 곁에 서 있는 이들에게 다시 말하기 시작하였다.
● “이 사람은 그들과 한패예요.”
70 ○ 베드로는 또 부인하였다.
그런데 조금 뒤에 곁에 서 있던 이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였다.
▣ “당신은 갈릴래아 사람이니 그들과 한패임에 틀림없소.”
71 ○ 베드로는 거짓이면 천벌을 받겠다고 맹세하기 시작하며 말하였다.
●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72 ○ 그러자 곧 닭이 두 번째 울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울기 시작하였다.
15,1 아침이 되자 수석 사제들은 곧바로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
곧 온 최고 의회와 의논한 끝에,
예수님을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겼다. 2 빌라도가 예수님께 물었다.
●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 “네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3 ○ 그러자 수석 사제들이 여러 가지로 예수님을 고소하였다.
4 빌라도가 다시 예수님께 물었다.
● “당신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소?
보시오, 저들이 당신을 갖가지로 고소하고 있지 않소?”
5 ○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빌라도는 이상하게 여겼다.
6 빌라도는 축제 때마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죄수 하나를 풀어 주곤 하였다.
7 마침 바라빠라고 하는 사람이
반란 때에 살인을 저지른 반란군들과 함께 감옥에 있었다.
8 그래서 군중은 올라가 자기들에게 해 오던 대로 해 달라고 요청하기 시작하였다.
9 빌라도가 그들에게 물었다.
● “유다인들의 임금을 풀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오?”
10 ○ 빌라도는 수석 사제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자기에게 넘겼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11 그러나 수석 사제들은 군중을 부추겨 그분이 아니라
바라빠를 풀어 달라고 청하게 하였다. 12 빌라도가 다시 군중에게 물었다.
● “그러면 여러분이 유다인들의 임금이라고 부르는 이 사람은
어떻게 하기를 바라는 것이오?”
13 ○ 그러자 군중은 거듭 소리 질렀다.
◎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14 ○ 빌라도가 그들에게 물었다.
● “도대체 그가 무슨 나쁜 짓을 하였다는 말이오?”
○ 군중은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15 ○ 그리하여 빌라도는 군중을 만족시키려고,
바라빠를 풀어 주고 예수님을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겨주었다.
16 군사들은 예수님을 뜰 안으로 끌고 갔다. 그곳은 총독 관저였다.
그들은 온 부대를 집합시킨 다음, 17 그분께 자주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머리에 씌우고서는, 이렇게 말하며 인사하기 시작하였다.
18 ▣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
19 ○ 또 갈대로 그분의 머리를 때리고 침을 뱉고서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예수님께 절하였다.
20 그렇게 예수님을 조롱하고 나서 자주색 옷을 벗기고 그분의 겉옷을 입혔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러 끌고 나갔다.
21 그들은 지나가는 어떤 사람에게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하였다.
그는 키레네 사람 시몬으로서 알렉산드로스와 루포스의 아버지였는데,
시골에서 올라오는 길이었다.
22 그들은 예수님을 골고타라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이는 번역하면 ‘해골 터’라는 뜻이다.
23 그들이 몰약을 탄 포도주를 예수님께 건넸지만 그분께서는 받지 않으셨다.
24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러고 나서 그분의 겉옷을 나누어 가졌는데
누가 무엇을 차지할지 제비를 뽑아 결정하였다.
25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때는 아침 아홉 시였다.
26 그분의 죄명 패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라고 쓰여 있었다.
27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강도 둘을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
하나는 오른쪽에 다른 하나는 왼쪽에 못 박았다.
(28)·29 지나가는 자들이 머리를 흔들며 그분을 이렇게 모독하였다.
▣ “저런! 성전을 허물고 사흘 안에 다시 짓겠다더니.
30 십자가에서 내려와 너 자신이나 구해 보아라.”
31 ○ 수석 사제들도 이런 식으로 율법 학자들과 함께 조롱하며 서로 말하였다.
▣ “다른 이들은 구원하였으면서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는군.
32 우리가 보고 믿게, 이스라엘의 임금 메시아는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그분께 비아냥거렸다.
33 낮 열두 시가 되자 어둠이 온 땅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34 오후 세 시에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부르짖으셨다.
+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 이는 번역하면,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뜻이다.
35 곁에 서 있던 자들 가운데 몇이 이 말씀을 듣고 말하였다.
▣ “저것 봐! 엘리야를 부르네.”
36 ○ 그러자 어떤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을 신 포도주에 적신 다음,
갈대에 꽂아 예수님께 마시라고 갖다 대며 말하였다.
● “자,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봅시다.”
37 ○ 예수님께서는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셨다.
<무릎을 꿇고 잠깐 묵상한다.>
38 ○ 그때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다.
39 그리고 예수님을 마주 보고 서 있던 백인대장이
그분께서 그렇게 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40 ○ 여자들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있었다.
41 그들은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그분을 따르며 시중들던 여자들이었다.
그 밖에도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42 이미 저녁때가 되어 있었다. 그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었으므로,
43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빌라도에게 당당히 들어가,
예수님의 시신을 내 달라고 청하였다.
그는 명망 있는 의회 의원으로서 하느님의 나라를 열심히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44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벌써 돌아가셨을까 의아하게 생각하여,
백인대장을 불러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지 오래되었느냐고 물었다.
45 빌라도는 백인대장에게 알아보고 나서 요셉에게 시신을 내주었다.
46 요셉은 아마포를 사 가지고 와서,
그분의 시신을 내려 아마포로 싼 다음 바위를 깎아 만든 무덤에 모시고,
무덤 입구에 돌을 굴려 막아 놓았다.
47 마리아 막달레나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는
그분을 어디에 모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거룩한 교환: 하느님께서 우리 아버지시라는 증거
오늘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는 우리가 성체를 모시는 일과 같습니다. 종이에 성체가 피로 변해 스며든 카시아의 성체 기적처럼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스며드심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의로움을 입어 에덴동산에서 가죽옷을 입은 아담과 하와처럼 주님 앞에 설 수 있게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갈라 3,27)라고 합니다. 마치 야곱이 이사악 앞에서 에사우의 옷을 입고 자신이 에사우라고 우기기만 하면 상속을 받게 된 것과 같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도 무언가 드려야 합니다. 성모님도 하느님을 잉태하시기 위해 당신 인성을 드려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예루살렘 주민들이 자기 겉옷을 깐 이유와 같습니다. 겉옷은 그들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도 당신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방법은 십자가의 죽음이었습니다.
교부들은 이를 ‘거룩환 교환’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이사야서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이사 53,5)에도 나와 있고, 신약의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1코린 8,9)에도 잘 표현됩니다.
가장 완전한 거룩한 교환은 성모 마리아에게서 실현되었습니다. 성 아타나시오는 “하느님의 아드님이 사람이 되신 것은 우리가 하느님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육화론 54,3)라고 표현했고, 성무일도 제1권,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제1, 제2 저녁기도, 후렴 1에도 위 교부들의 신학을 받아들여 “감탄하올 교환이여, 창조주께서 육신을 취하시어 동정녀에게서 나시기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인간의 협력 없이 사람이 되셨으며, 우리를 그 신성에 참여케 하셨도다.”라고 노래합니다.
제가 본당신부를 하고 있을 때 한 청년이 희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을 고비에 있어 병자성사를 간 적이 있습니다. 바이러스 감염 환자의 모습을 처음 본 저는 조금 충격을 받았습니다. 온몸이 노란색이었고 얼굴은 부어 눈도 제대로 깜빡일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눈동자는 거의 흰자만 보였습니다. 그 청년에게 병자 성유를 바르는데 얼핏 바이러스가 저에게 옮기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살이 닿지 않으면 어떻게 성유를 바를 수 있겠습니까? 살이 닿으려면 상대의 바이러스가 내게 옮겨올 수 있음을 감수해야 합니다. 뭔가를 주려면 필연적으로 상대를 받아들일 준비도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때 거룩한 하느님께서 신성을 내어주시기 위해 인간의 인성을 받아들이신 것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좋아서 인간의 인성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를 뒤집어쓰시러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께 우리 인성과 죄를 내어드리고 그분의 신성을 받아 하느님 앞에 의로운 모습으로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성당에 앉아 있을 때마다 십자가에서 저에게 푸르고 맑은 물과 같은 것이 들어오는 게 보였습니다. 또 저에게서는 똥과 같이 더러운 것이 예수님께 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것이 신학적으로는 ‘거룩한 교환’이라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거룩한 교환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상황은 부모와 자녀 사이입니다. 자신을 잔인하게 살해한 아들에게 “옷을 갈아입고 도망쳐라.”라고 하신 어머니나, 보험금을 노리고 자신을 교통사고로 죽이려 한 아들의 선처를 바라며 경찰서로 휠체어를 타고 찾아온 어머니를 보십시오. 저도 채변봉투를 재래식 화장실에 빠뜨렸을 때 아버지께서 그냥 아버지라는 이유로 손과 옷에 똥을 묻혀가며 그 봉투를 건져 올려주셨습니다. 저는 어떻게 생각해야겠습니까? 그분이 나의 아버지이심을 확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녀가 부모를 알아보는 방법은 이 거룩한 교환의 방법밖에 없습니다. 어떤 회사에서 토요타 차량을 리콜하고 있다면 그 회사는 토요타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만든 것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집니다.
이제 십자가를 대하는 자세가 우리 구원을 결정합니다. 노아의 벌거벗은 모습을 비웃은 함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눈물의 겉옷으로 나의 모든 더러움을 짊어지신 분을 덮어드려야 합니다.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그리스어 성경에서 보면 ‘십자가를 진다’는 단어는 βασταξειν(바스타제인)의 번역입니다. 이 단어의 첫 번째 의미는 ‘귀중한 것을 품고 가다.’입니다. 구체적인 예로 어머니가 아기를 품고 갈 때, 이 동사를 씁니다. 복음을 보면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루카 11,27)에서 ‘배었던’이 바로 바스타제인입니다.
결국 십자가는 그 무게에 눌려 힘들게 버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안고 가는 것입니다. 단순히 버티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는 곧 내 삶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이 모두는 삶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어야 가능합니다.
고통과 시련은 우리 삶의 일부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고통과 시련을 거부하고 없어지기만을 바라는 우리입니다. 이때는 십자가에 눌려 있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십자가를 안는 사람은 자기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 힘차게 앞으로 갈 수 있습니다.
복음을 보면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주어라.”(마태 5,41)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는 당대 로마법을 기억하게 하는 구절입니다. 로마 병사는 언제든지 식민지 백성을 붙들어 짐을 나르게 명령할 수 있습니다. 그 거리가 천 걸음, 약 1.5km입니다. 키레네 사람 시몬도 이 법에 따라 예수님 대신에 십자가를 진 경우였습니다.
식민지 백성이 이런 명령을 받으면 기분이 좋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먼저 나서서 천 걸음을 더 가겠다고 합니다. 처음 천 걸음은 명령이지만, 두 번째 천 걸음을 나의 선택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끌려가는 삶이 아닌 이끄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구원을 위한 파스카 신비를 완성하시려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날을 시작으로 우리는 거룩한 성주간을 보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교회의 명령이라면서 성주간 예식에만 참여하면 그만일까요? 아닙니다. 바스타제인이라는 단어의 뜻인 ‘귀중한 것을 품고 가다’라는 의미를 기억하면서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자기 의지를 앞세워서 주님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끌려가는 삶이 아닌 자기 삶을 이끌면서 살아야 합니다.
인터넷에서 칠곡 할머니들이 모여 만든 대한민국 최초의 할머니 래퍼 그룹 영상을 보았습니다. 평균 연령 85세의 8인조 칠곡 할매 래퍼 그룹 ‘수니와 칠공주’입니다. 팔십 넘은 할머니들이 이제야 글을 배우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래퍼 그룹도 만들었습니다. 억지로 시켜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늦었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나이이지만, 자기 의지를 앞세워서 이끄는 삶을 살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도 하느님께서 하느님 나라로 우리를 부르시는 그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욕심의 반대는 욕심이 없음이 아닌, 잠시 내게 머무름에 대한 만족입니다(달라이 라마).
사진설명: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