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_무엇으로_사는가?
한국계 민족학교라고 하는 교토 국제고가 고시엔 야구대회에서 사상 첫 우승을 했다고 합니다.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아침 저녁 몸과 덕 닦는 우리의 정다운 보금자리 한국의 학원’이라는 가사의 한국어 교가가 일본 공영방송을 통해 일본 전역에 생중계 되었습니다. 전교생이 161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학교가 일본 전국 야구대회 우승을 했다는 것은 단순한 요행이 아닙니다.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수많은 땀과 눈물을 아는 사람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학생들의 80%가 일본인들이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함께 기뻐하고 뜨거운 응원을 보내는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동일한 민족적 정체성이 그 가운데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막바지 여름의 폭염이 어제까지 계속되더니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루 사이에 가을의 냄새가 납니다. ‘처서 매직’이라는 생소한 단어도 들었습니다. ‘처서’는 여름을 지나 한 더위가 그치고, 날씨가 서늘해져서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는 24절기의 14번째 절기입니다. 이런 ‘처서’라는 고유어에 ‘매직’이라는 영어 단어가 붙었습니다. 신조어인 셈인데, 그 말의 뜻을 굳이 듣지 않아도 금방 이해가 됩니다. 하루아침에 달라진 날씨의 감정이 요즈음 우리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이렇듯 대내외적으로 변화가 많고 놀라운 일들도 잦아서 이젠 날씨 정도는 그렇게 새삼스럽지도 않습니다.
작은 교회들이 참 힘겨운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삼복더위가 한창이던 지난 몇 주간 개척교회와 작은 교회 목회자들이 사역과 일상이라는 두 갈래 길에서 많이도 힘들어하는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삶을 영위하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들이 갖춰지지 못한 채로 교회와 가정을 모두 책임져야 하는 이들의 한숨이 너무나 무겁습니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작품 중에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천사 미하일이 인간 세상에 보내져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게 됩니다. 그 세 가지 질문은 먼저, 사람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의 마음에는 사랑이 있다는 것과 사람에게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능력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과 모든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문학적인 함유를 신학적으로 해석하기에는 거치는 것들이 많지만, 그 본질적인 뜻을 이해하는데는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엇으로 사는 것일까요? 그 질문에 앞서 교회의 내면에는 무엇이 있어야 하나요? 교회는 무엇보다 진정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랑은 타인의 슬픔에 마음이 동요되고, 기쁨에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공감이 기반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치, 일본이라는 다른 나라에서 한국계 작은 고등학교의 놀라운 감동이 우리에게 큰 기쁨으로 다가오는 그런 감정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에 부합하여 교회에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몸된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실함’이라 하겠습니다. 참된 교회라면 절대 그리스도의 머리 되심을 상실해서도,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아이러니하게도 머리 되신 예수님이 계시지 않은 듯한 교회들이 많아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무엇으로 사는 것일까요? 그것은 당연히 타인을 향한 사랑의 실천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아파하고, 슬픔의 자리에 함께 앉아 울 수 있는 교회, 그런 타자를 향한 사랑의 실천이 교회를 교회답게 살아갈 힘을 주는 것은 아닐까요? 제가 목회자이기에 먼저 어려운 현실속에서 눈물로 자신의 발을 적시는 많은 개척교회 목회자들이 생각납니다. 물론, 천사 미하일이 모든 답을 찾고 웃으며 하늘로 돌아갔던 일은 현실 세계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미련한 생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참된 교회로 살아가기를 애쓰려 합니다. 여전히 같은 마음을 가진 성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여전히 복된 하루입니다.
고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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