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물론 난 M에게 동의했소. 그를 처벌하기로 말이 요." 진웅의 설명은 이어졌다. 그가 짐짓 한숨짓는 소리 가 전화선을 타고 전해져왔다. 어쨌거나 조직에서의 처벌이란 죽음의 집행을 뜻한 다. 아마 조직은 마동권이 항의해서라기보다는 남태인 의 실패를 용서할 수 없는 듯했다. 더구나 조직의 자 존심에 상처를 입히지 않았는가. 그런데 남태인이 실패하다니...... 그래도 현역 일꾼 중에서 가장 프로페셔널한 1급 킬 러가 아니던가. 필경은 그도 마동권의 적수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과연 어떨까? 아직은 마동권이 한 수 위라고 봐야 할까? "모형, 당신이 그를 찾아내 이 문제를 마무리지어 주구려." "......" "우린 이 일을 모형에게 맡기려고는 하지 않았소." "......" "하지만 이젠 시한이 얼마 남지않았소, M이 정한 시한말이요. 그가 빈정대는 것도 더는 참을 수가 없 소." "......" "그런데 우린 아직 남태인의 거처를 찾아내지 못하 고 있소. 짐작도 못하고 있단 말이요. 근 한 달을 찾았 는데......" "으음." "모형, 어디 짐작이 가는 데라도 없으시오?" "그의 고향은요?" "뒤졌소." "그의 친구들은요?" "물론 뒤졌소." "혹시 김미숙의 집은요?" "그의 여자들의 집은 모조리 뒤졌소. 무엇보다 먼저 말이요. 이미숙의 집도 말이요." 그렇담 남태인은 어디로 잠적한 걸까.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남자들이란 위기의 순 간에, 평생 신의로 뭉쳐진 친구를 찾기보다는 하룻밤 이라도 살을 섞은 여자들의 집을 찾는다. 수배된 범인들이 콜 걸의 품속으로 숨지를 안던가. 여자들이란 묘하게도 일단 유사시엔 별볼일 없어 하 던 사내들을 위해서도 목숨을 건다. 어리석다고 해야 할까, 모질다고 해야 할까. 남태인이 김미숙의 집에도 이미숙의 집에도 없다면 모건으로서도 그가 갈 만한 곳을 찾을 길이 없다. 어디 겨울산에라도 간 걸까? 심산유곡의 사찰이라도 찾아서 말이다. 지난 겨울, 비가 내리던 구례 천은사 처마 밑에서 대나무 숲에 깔 린 짙은 안개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남태인의 옆모습이 언뜻 떠올랐다. 나라면 이 겨울철에 어디로 갈까. 모건은 문득 바다를 찾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의 시야에 부산 해운대의 망망한 겨울 바다가 천천히 떠 올랐다. 백만인파가 넘실대던 해운대의 백사장. 지금은 열기 도 사라지고 인적도 없으리라. 그러나 해변의 순환도 로에 자리잡은 노천카페로 불리는 강한 톤의 색감으로 치장된 포장마차들은 남아 있을 것이다. 술과 노래와 여자들도. 그리고 '후조들의 둥지'로 불리는 노점카페와 한신애 (韓信愛)도! "한 군데 가 볼 데가 있습니다." 이윽고 모건은 말했다. 모건은 막연하게나가 그의 이 한마디가 한신애의 운명에 그 어떤 영향을 미칠 거 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어디요?" 진웅이 금세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부산입니다." "부산?" "해운대에요." "그 친구가 그곳에 가 있을 것 같아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흐음." "한 여자를 찾아가려고 합니다." "그래요오." 모건은 한신애를 한번 떠올리게 되자 어떤 세찬 그 리움이 가슴 가득히 밀려왔다. 그래, 겨울 바다가 그리운 것이 아니라 겨울 바다를 지키고 있을 한신애가 그리운 것이다. 지난 가을에 모건은 해운대 노천카페에서 한신애를 만났었다. 그 만남은 만남이라기보다는 그냥 스쳐지나 감 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니 무슨 인연이 있는 사이도 기약을 나눈 사이도 아니다. 그러나 그녀의 이름도 그녀의 모습도 그의 뇌리와 망막에 인각처럼 새겨져 있었다. 뭐랄까, 길거리에서 우연히 스쳤어도 한번 뒤돌아보고 싶은 여자가 있고, 쫓아가 만나고 싶은 충동을 주는 여자가 있다. 신애는 말하자면 그런 느낌의 여자였다. 모건은 그녀를 남태 인과 함께 만났었다. 내가 찾고 싶어한다면 남태인도 찾고 싶어하지 않을 까. 그렇다면 그녀를 찾는 것이 남태인을 찾는 첩경이 다. 설사 남태인을 찾는 일에 실패해도 신애는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경부선 특급열차는 오후 한 시 정각에 서울역을 출 발했다. 모건의 눈길을 끌었던 두 여인은 기차가 출발 하자 이내 식당차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모건도 그녀들의 뒤를 따랐다. 늘씬한 체구에 '빌 브래스'의 롱 코트가 어울렸다. 그리고 그레이드가 높아보이는 에메랄드 반지와 이어 링! 그녀들의 주된 화제는 새로 바꾼 차의 이야기였고 연말의 주식시세였다. 그리고 뜻밖에도 연극과 음악을 화제로 삼는 것이었다. 그녀들은 맥주가 곁들인 새면 스테이크로 점심을 들고 있었다. 모건은 홀로 맥주잔을 기울이며 시간을 보냈다. 그 녀들을 따라 객차로 돌아온 것이 두 시반께였다. 기차가 대전역에 도착하자 신혼부부 한 쌍이 오르고 있었다. 한겨울에 혼례를 올린 그들이 어딘지 모르게 낭만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들은 줄곧 화 난 사람들처럼 앉아 있었다. 열차가 마침내 부산에 당도한 것이 5시 15분이었다. 모건은 택시를 잡아타고 해운대로 직행했다. 그는 바 닷가의 네오모던의 콘도미니엄에 여장을 풀었다. 그때가 저녁 6시께였다. 바다는 이미 어둠 속에 잠 겨 있었다. 모건은 바닷가 싸구려 횟집에서 저녁을 들 고 식후 커피는 호텔에서 들었다. 초호화판으로 신축 된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는 귀족풍의 하이야트 호 텔의 까페 씨스케이프에서...... 지하 디스코 머피스에 서는 알렉산더를 주문했고, 하얀 드레스의 아름다운 여인이 연주하는 플롯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시간을 죽였다. 열차에서 만난 두 여인을 그는 하이야트호텔의 로비 라운지 코니쉬에서 다니 만났다. 무엇하는 여자들일까. 그녀들은 바로 엄효진이 죽자꾸나 쫓던 조소아와 정 예선이었다. 겨울 바다가 그리워서가 아니라 해운대의 카지노를 찾아서 온 듯 싶었다. 아니면 장회장이나 엄효진을 대 신하는 보이헌팅을 위해 내려왔던가...... 밤11시께에 모건은 마침내 그가 만나고자 하는 신애 를 찾아나섰다. 신애는 바로 해운대 해수욕장의 순환도로에 즐비하 니 늘어선 어느 노점카페의 여주인이자 무명가수였다. 이 노점카페는 재래식 포장마차와는 달라 주로 칵테 일을 팔고 있는데 통기타나 가라오께 같은 것을 설치 해 놓고 손님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노점카페의 주인들은 대부분 젊은이들이고 손님들도 거개가 젊음을 구가하는 대학생과 청소년들로서 밤바 다의 정취와 낭만을 만끽한다. 그리고 까페의 이름들도 다양하고 재미가 있다. '목 이 마르죠'와 '망마르트'를 합성한 듯한 '몽마르죠'라는 이름에 '혼수상태'라는 익살스런 이름 따위다. 신애가 차린 노점카페의 이름은 무슨 작품의 이름과 도 같은 '후조들의 둥지'였다. 어디쯤이었더라? 모건은 순환도로를 거닐며 '후조들의 둥지'를 찾기 시작했다. 겨울 바닷바람은 싸늘했다. 바닷바람에 그의 빨간 다운 파카자락도 펄럭였고, 카페의 천막자락도 푸득거렸다. 노랑에 빨강의 원색 천막들은 을씨년스러웠고 희미 하게 새어나오는 불빛들도 차가왔다. 포장마차마다 텅 비어 있다시피 했다. 얼마 안 가서 모건은 '후조들의 둥지'를 찾아냈다. 등불로 새어나왔고 노래소리도 바람에 실려왔다. 아, 신애가 있구나! 신애는 여전히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 사이 신애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사내도 없었던 것이다. 모건은 카페식 포장마차의 자락을 들치며 안에 들어 섰다. 생각 밖으로 여러 사람이 있었다. 모두가 함께 온 손님들처럼 보였는데 말쑥한 중년의 신사들이었다. 무슨 세미나라도 있었던 것일까. 신애는 그들을위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녀의 노점카페에서는 그녀가 자랑하는 대형스피커와 마이크 가 설치되어 있었다. 모건은 구석진 곳에 앉았다. 신애가 미소지으며 그를 반겼다. 나를 알아보는 걸까? 아니면 그냥 그저 직업적인 미소인 걸까? 신애는 패티 김의 '초우'를 열창하고 있었다. 그녀는 괘나 독특한 가창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강한 톤의 허 스키한 목소리에 남모를 호소력이 깃들어 있었다. 모 건은 담배를 피워물며 신애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오랜 만에 오셨군요." 신애는 일단 노래를 끝내자 모건에게로 다가왔다. "오랜 만이요." 모건은 신애가 그를 알아보는 듯해서 기뻤다. "뭘 드릴까요?" "으음, 아무거나......" "진토닉?" "좋아요. 근데......" 신애는 '근데요?'하고 눈으로 묻는 것이었다. "나를 기억하오?" 모건은 바보스런 질문을 한다 싶었다. "암요, 선생님은 지난 가을에 오셨잖아요." "흐음." "청회색의 싱글에 파란 스트라이트의 검은 넥타이 에...... 그리고 다시 찾아주신다고 하셨어요." "이거 눌랍군." "뭘요." 그러면서 신애는 돌아서는 것이었다. 신애는 이윽고 진토닉을 만들어 모건에게 건네어 주 었다. 지금은 노래가 손님들의 몫이었다. 신애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화장하지 않은 얼굴에 어깨위에 넘실대는 긴 머리, 넓은 이마에 갸름한 턱, 윤곽은 미인형이고 여성적이 다. 그런데 콧마루가 높고 불의 살이 파여 있다. 그런 탓으로 어딘지 모르게 앙상한 느낌을 주고 있었고 피 곤에 지친 영혼을 지닌 여인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었 다. 벌써 살아가는 데 지쳐 있는 듯이 보였다. 스물일곱, 여덟은 되었을까. 아무튼 쉽사리 잊기 어 려운 개성있는 마스크의 여인이었다. 얼마 후 손님들을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노점카페에는 모건과 신애만이 남았다. 그러자 갑자 기 썰렁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술 더 하시겠어요?" 신애가 마주 서며 물었다. "한 잔 더 주시오." 모건은 얼음만이 남은 빈 글라스를 내밀었다. "가끔 내려오시나 보죠?" "아니......" "그럼......" "거길 만나기 위해 일부러 내려온 거요." "어머, 그래요?" "거짓말이 아니요." "암튼 이렇게 찾아주셔서 고마워요." 그런데 신애는 적어도 한 가지 사실에 대해 둔감한 양 행동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거짓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으레 '지난번에 함께 온 친구분은 왜 같이 오시지 않았지요?'하고 물었어야 했다. 그녀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남태인이 이미 이곳 에 와 있다는 것을 뜻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가을 신애의 인상에 남았을 사람은 모건, 그가 아니라 남태인이다. 남태인이 그녀에게 진하게 다가섰던 것이다. "선생님, 한 곡 부르지 않겠어요?" "아니......" 모건은 질겁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남이 알아 주는 음치였다. "난 거기 노래를 등기 위해 이곳까지 내려온 거요." "그럼 노래 한 곡 청하세요." "이 노래를 듣고 싶군." 모건은 굳이 메모지에 그의 희망곡을 적어 신애애게 건네주었다. 그의 희망곡은 강은철의 "삼포로 가는 길"이었다. "선생님. 지난번에도 "삼포로 가는 길"을 청하셨어 요." "그랬던가......" 그렇게 그의 희망곡은 메모지에 적혀 세 차례에 걸 쳐 건네어졌다. 그런데 그가 건네어준 것은 메모지가 아니라 수표쪽 지였다. 그러니 모건은 석 장의 수표를 신애한테 넘겨 준 셈이었다. 신애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뭐라 말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모건은 말했다. "어머, 이걸 어쩌지요. 난로는 피웠는데......" "잘 있어요." 모건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어머, 가시게요?" "다시 들르리다." 모건은 만 원권 몇 장을 끄집어내 카운터 위에 내놓 고는 돌아섰다. "잠깐만요." 신애가 모건을 불러세웠다. 모건은 천천히 돌아섰다. 신애는 잠시 모건의 모습을 곰곰이 살피는 것이었 다. "선생님......" "......" 신애의 눈길에 일순 망설임의 구름이 가로지르는 것 을 모건은 놓치지 않았다. "어디에 투숙하고 계시죠?" 이윽고 신애가 물었다. 갈등의 한 순간이 지나간 것이다. "이 앞의 콘도요." "몇 호실이에요?" "1002호실이요." "저도 이젠 가게문을 닫아야 할까봐요. 추워지네요." "흐음." 모건은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돌아섰다. 그리 고 천막자락을 들치고 신애의 노점카페를 물러났다. 신애의 눈길이 그의 목덜미에 뜨겁게 머물러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그때가 새벽 한 시께였다. 모건은 천천히 그의 콘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콘도의 침실로 돌아온 모건은 그의 자동권총부터 챙 겼다. 매거진 속에는 강력탄이 채곡이 채워져 있었고 격발의 감촉도 좋았다. 그는 침대머리 배개 밑에 그의 모제르를 감추었다. 남태인은 지금 신애와 함께 있는 걸까? 혹시 잘못 짚은 건 아닐까? 아무튼 신애가 남태인을 찾는 실마리인 듯싶었다. 모건은 방안의 불을 끄고는 샤워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뜨거운 물 속에서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지금쯤 신애가 남태인한테 연락이라도 취하는 건 아 닐까? 친구가 찾아왔다고. 아니 살인자가 찾아왔다고. 모건이 이 시점에서 간절히 바라는 것은 남태인이 해운대에 내려오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었고 신애와의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었다. 모건이 샤워들 끝내고 나신인 채 소파에 걸터앉아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을 때였다. 도어의 부저가 울렸다. 신애가 찾아온 것이다. 모건은 예상보다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재빨리 맨살 위에 바지를 입고 와이셔츠를 걸 쳤다. 그는 일종의 결벽증 탓으로 흰 셔츠만을 즐겨 입었다. 그는 권총을 찾아 바지 뒷호주머니 속에 질끈 쑤셔 넣었다. "누구시오?" 모건의 목소리는 어둠 속에서 저도 모르게 긴장했 다. "저예요." 신애의 목소리가 도어 저편에서 금세 들려왔다. 그 녀의 독특한 조금은 투박하고 쉰 듯한 목소리가. 모건의 이성은 계속 조심하라고 경고를 발하고 있었 으나 그의 손은 재빨리 도어의 놉을 돌리고 있었다. 신애를 맞으려는 조바심 탓이었다. 그곳에 신애가 코트 주머니 속에 두 손을 집어넣는 채 지친 듯한 미소를 띄우고 서 있었다. 신애뿐이었다. 모건은 지체하지 않고 방안의 불을 켰다. 불빛 속에 우뚝 선 신애는 생각보다 키가 컸다. 늘 카운터 저편에서 움직이는 모습밖에 보지 못했는데 롱 코트를 걸치고 선 그녀의 모습은 늘씬하기만 했다. 코트의 빛깔이 타는 듯한 장미빛이어서일까, 눈은 지친 듯해도 그녀의 모습은 화사했다. 그리고 추위 속 을 걸어와서인지 아니면 한밤중에 사내의 침실을 노크 하는 여인의 불안을 잉태한, 그러면 서도 신선한 자극 과 흥분 탓인지 뺨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추워지고 있어요." 신애는 마치 자기 집에 들어서는 주부처럼 익숙하고 도 친근한 어조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스스럼없 이 방안에 들어서고 있었다. 모건도 어색하지 않게 신애의 코트를 받아 행어에 걸어주고 있었다. "술 한 잔 하겠소?" 모건이 물었다. "나, 한 잔 주세요." 신애는 서성이듯 하며 말했다. "가게 문은 닫았소?" "네." "원래 몇 시에 닫는 거요?" "새벽 다섯시께에요." "그럼 이제부터 다섯 시까지는 내 몫이군." 신애는 다만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그러더니 몸을 고추세운 채 소파에 가만히 걸터앉는 것이었다. "지난 가을에 처음 보았을 때 말요......" 모건은 가득 따른 맥주잔을 신애한테 건네며 술회하 듯 말했다. 신애는 다만 모건을 가만히 쳐다볼 뿐이었 다. "어디에선가 꼭 본 듯한 느낌이 들었소." "네에." "우리가 언제 만난 일이라도 있었을까?" "그렇지는 않아요." "흐음." "난 그런 소릴 가끔 들어요. 아마......" "......" "예전에 텔레비젼에 잠깐 출연한 일이 있어서인가 봐요. 그게......" "......" "모두에게 그 어떤 영상으로 남아 있나 봐요." "흐음, 그랬었나......" "잠시 반짝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것도 아주 짧게 요. 하지만 아주 눈부시게요. 칠년 전쯤에요." "어쨌거나 그 가창력이면 대성할 수도 있었을 텐 데......" "네에, 옆으로 새지만 않았다면요." 신애는 말해놓고는 심약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그리 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뭔가를 떨치려는 듯이. 신애는 갈증난 사람처럼 글라스의 맥주를 비우더니 충동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나, 샤워하고 나와도 돼요?" 신애는 굳이 물을 것도 없는 말을 입밖에 내고 있었 다. 그것은 이제 사랑이나 나누는 게 어떻겠느냐 하는 메시지의 전달인 듯 싶었다. 모건은 신애에게로 성큼 다가섰다. 신애가 발걸음을 옮기려다 말고 멈추어섰다. 모건은 신애를 가만히 감싸안았다. 신애의 긴 머리 카락이 그의 뺨에 와 닿았다. 그리고 그녀의 체취와 체온이 스며왔다. "보고 싶었소." "......" "늘 머리에서 떠나질 않더군." "......" "난 오늘 이곳에 온 걸 다행으로 생각하오. 그렇게 같이 있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요. 꿈만 같구려." "......" 신애는 끝내 뭐라 대꾸를 아니했다. 다만 그녀의 온 몸의 떨림이 미세하게 전해져왔다. 남자를 처음 대하 는 여자가 불안을 나타낼 때처럼. 신애는 무엇을 겁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 자신에게 화가 나 있는 걸까? 신애는 어떻게 보면 석 장의 수표를 받은 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 모건을 찾아온 것이었다.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아서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 까짓 수표야 얼마든지 돌려줄 수도 있는 것이었으니 까. 이 겨울철에 그녀를 찾아 바다에 내려온 사내의 뜻 을 높이 샀다고 할 수 있었다. 신애는 사내를 가만히 밀어붙이며 사내의 품에서 헤 어났다. 그리고 말없이 욕실로 걸음을 옮겼다. 신애는 줄기찬 샤워의 물길 속에 자신의 나신(裸身) 을 바로 세웠다. 뜨거운 물길 속에 서 있으려니 그렇 게 좋을 수가 없었다. 추위도 피곤도 일시에 가시는 것같았다. 얼마나 그렇게 서 있었을까. 신애는 문득 거울 앞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는 그 앞에 서있는 자신의 나신을, 물기에 젖은 나신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쓸 만한 걸까? 젖가슴은 여전히 고추서 있다. 그리고 소담스럽다. 허리는 아직 갸냘프고 둔부로 흐르는 선도 유연하고 절묘한 선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둔부가 생각보다 옆 으로 퍼지고 커진 듯 했다. 좋게 말해 살이 올랐다고 할까. 신애는 일순 싱긋 미소지었다. 자신의 물기 오른 나 신에 만족한 것이다. 잠시 나르시즘적인 도취감에 휩 싸이기도 했다. 그러나 언젠가모든 것이 허물어지고 무너질 것이다. 신애는 습관적으로 엄습하는 까닭없는 불안감을 밀 어내며 천천히 그녀의 나신에 비누질하기 시작했다. 신애는 비누질을 끝내면서 다시금 그녀의 아름다운 나신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녀는 한동안 바라보기만 할 뿐 손길을 놓고 있었다. 이 쭉 빠진 나신이 뭇 남성들이 그녀에게 정신을 잃 는 이유인걸까. 신애는 자신의 나신을 애무하고 싶은 유혹을 겨우 참았다. 신애는 다시금 뜨거운 샤워의 물길 속에 섰다. 신애는 샤워를 끝내고 거실로 나왔다. 모건은 소파 에 길게 누워 심야 텔레비젼 프로에 눈길을 보내며 그 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줄담배를 피워물 고 있었다. "샤워하실래요? 물이 뜨거워요." 신애는 탁자 위의 술잔에 새로운 맥주를 따르며 말 했다. "아니, 난 끝냈소." 모건이 누웠던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신애는 모건의 얼굴 모습이 그가 걸친 흰 와이셔츠 만큼이나 정갈하다고생각했다. 그런데 그 눈빛만큼은 싫었다. 나무나 차가와 보이는 것이다. 웃을 때 소리 내지 않는 것도 싫었다. 어린지 모르게 냉소적인 모습 인 것이다. 그러나 그의 모습에선 여성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연약하고 섬세한 무언가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드물게 잘생긴 사내였다. "당신, 집이 어디요?" 모건은 무심한 어조로 물었다, 그의 빈 술잔에 술을 따르며 옆으로 비켜선 채. 말하자면 신애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묻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얼마 되지 않아요." 신애도 무심하게 대꾸했다. 해운대 비치아파트, 5동 301호! 모건은 신애의 핸드백에서 그녀의 거처를 이미 확인했었다. "어딘데?" 그러면서도 모건은 또다시 물었다. "비치아파트라구 하는데, 여기에서 오백 미터쯤 떨 어진 곳에 있어요." "흐음." "왜 묻죠?" "누구나 물어보는 질문 아니오?" "하긴요." 신애는 한 가닥 불안이 머리를 스치긴 했으나 지우 려 애썼다. 지금쯤 태인씨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태인씨가 과 연 놓칠 수 없는 나의 운명의 끈을 쥐고 있는 남자일 까? 아니면 잠시 그녀의 둥지에 머물러 있다가 떠날 후 조 같은 남자일까? 요즈음 자주 생각에 남기는 과제였다. 그런데 태인씬 누군가에게서 도망치고 있다는 생각 을 영 지울수가 없었다. 혹시 눈 앞의 남자가 태인씨를 쫓는 사내는 아닐까. 그래도 명색이 친구지간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렇듯 부산에 내려온 것이 한갓 우연일까. 신애는 마음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부질없는 생 각일랑 떨치고 싶었다. 눈 앞의 밤의 향연에나 마음을 쓰자. "우리 이젠 자요." 신애는 여전히 스스럼 없이 굴었다. 일상의 생활에 익숙한 주부처럼. 신애는 먼저 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시 트를 걷고 그 속에 파묻혔다. 슈미즈도 즈로즈도 걸친 채로. 그것은 언제나 남자들의 몫이었다. 그런데 사내가 얼른 따라 들어서지 않았다. 사내가 혹시 나를 잘 길들여진 창부로나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신애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화장실의 물이 쏴 하고 내려가는 소리가 들러왔다. 이윽고 남자가 침실에 들어왔다. 그가 잠시 그녀를 지긋이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림 자가 드리운 듯한 눈길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스탠드의 불빛 속에서 그가 주섬주섬 옷을 벗 고 있었다. 와이셔츠 밑에 감추어진 가슴팍은 그 얄상한 마스크 와는 달리 우람했다. 그가 바지를 벗었다. 바지 속에는 아무것도 걸친 것이 없었다. 사내는 그 어떤 자신감을 얼굴에 드러내고 있었다. 그 자신감이 신애의 기대를 부풀게 하는 강렬한 메시지로 전해왔다. 신애는 그녀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남자가 담요 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당신과 함께 지내고 싶었소." "......" "당신과의 사이에 그 어떤 숙명 같은 것을 느껴왔다 면 어떻게 하겠소." 사내의 비록 어설픈 대사이긴 했으나 진정으로 가슴 에 와 닿았다. 신애는 남자가 그녀와 잠이나 자고 싶 어 이러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것이 그녀를 기쁘게 했다. "당신이 좋아요." 신애는 얼떨결에 말했다. "당신을 즐겁게 해드리고 싶어요." 신애는 어느 사이 담요를 걷어내고 있었다. 남자의 조상(彫像)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에선가 멀리에서 뱃고동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 다. 지금 몇 시쯤이나 된 걸까. 그리고 태인씨는 지금 잠 속에 파묻혀 있을까? 아니 면 눈을 하얗게 뜨고 창 밖을 내다보고 있을까? 다음날 아침. 정확하게는 새벽 5시 30분. 모건은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애는 아직도 깊은 잠 속에 빠져 있었다. 피곤도 하리라. 그녀의 부드러운 선을 드러낸 어깨가 시트 밖으로 나와 있다. 어젯밤엔 그렇게 탐닉할 수가 없었다. 순진무구하다 고 할까, 적나라하다고 할까. 몇 번이고 오르가즘에 오 르는 걸 감추려 하지 않았다. 남자에게도 헌신적이었 다. 아니 자기 자신의 기분에 정직했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모건은 신애가 잊을 수 없는 여인이 될 거라는 생각 을 지우지 못했다. 모건은 처음 서울에서 출발할 때는 신애의 죽음도 불가피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녀만이 그와 남태인을 연 결하는 인연의 고리라고 할 수 있었다. 재콜 같은 테러리스트가 아니어도 그녀를 살려둘 수 없는 것은 그들 사회의 철칙이다. 비록 그녀가 미모의 여인이고 잠을 함께 잔 사이라고 해도 말이다. 모건은 조심스레 방을 나섰다. 물론 그가 걸친 다운 파카의 깊숙한 호주머니 속엔 권총이 숨겨져 있었다. 앨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자 금세 올라왔다. 그 네 모난 공간 속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이 다행스럽긴 했 으나 폐소공포증 같은 것이 있는 그로서는 그 작은 공 간에 아무도 없는 것이 싫었다. 만일의 경우 함께 불 행을 당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아래층 로비에서도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해변에 나서자 바다는 아직도 어둠 속에 잠겨 있었 다. 모건은 쏴 하는 물결 소리에 그가 바닷가에 섰음 을 알았다. 그는 담배부터 피워물었다. 식전의 아침담배가 유난 히 나쁘다고 들었다. 하지만 친구의 가슴에 방아쇠를 당기려 떠나는 아침이 아닌가. 그는 한껏 깊이 들이마셨다. 약간의 현기증이 물려왔다. 그것이 그렇게 좋을 수 가 없었다. 그의 이성도 마비시켜 주었다. 모건은 무작정 해변의 콘크리트 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놀랍게도 해변의 조깅코스에 벌써부터 새벽의 조깅 족이 한두 사람 눈에 띄었다. 바닷바람은 차가왔고 매 서웠다. 모건은 파카 깃을 세웠다. 얼마나 걸었을까. 누구에게 물어볼 것도 없이 해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아파트 단지가 나타났다. 외등이 비치아파 트라는 이름도 부각시켜주었다. 모건은 어렵지 않게 5등을 찾아냈다. "여기가 비치 아파트 5등인가요?" 모건은 일부러 아파트 수위에게 말을 건네었다. 졸 고 있던 경비실의 수위가 부시시 일어났다. "네, 그런데요." "301호를 찾고 있습니다. 한신애 씨 댁을요." "네에. 하지만 지금 집에 없을 텐데요." "알고 있어요. 전 함께 사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동거인을요." "근데, 어디서 오셨지요?" "인터폴이오!" "인터폴?" "국제경찰도 모르시오?" "아, 네에." "지금 몇 시지요?" "5시 50분이군요." "알았어요." 모건은 말하자면 수위에게 그의 모습을 애써 노출시 킨 것이다. 나중에라도 신애에게 돌아갈 혐의를 생각해서다. 모건은 물론 그의 모습에 약간의 변화는 시도했다. 빨간색의 털모자를 눌러썼고 검은테의 안경도 끼었다. 수위의 진술로 몽타주 를 만든다고 해도 경찰은 그 많은 아침 산책객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빨간 색깔 의 털모자에 빨간 다운 파카에 오랫동안 매달릴 것이 다. 모건은 이윽고 301호 앞에 우뚝섰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녹색의 스틸 도어가 굳게 닫 혀 있었다. 모건은 머뭇거리지 않고 도어의 버저를 눌 렀다. 집안에 버저가 울려퍼지는 소리가 도어 저편에 서 들렸다. 이윽고 슬리퍼를 질질 끄는 소리도 전해져 왔다. 그래, 집안에 신애의 동거인이 있는 것이다. 수위도 굳이 부인하지 않았었다. 도어는 지체없이 열렸다. 누구냐는 물음도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신애가 가게문을 닫고 언제 나처럼 돌아올 시간인 것이다. 그리고 사내는 신애가 돌아오기를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었던 처지이기도 했 다. 그 사내는 십중팔구 그의 친구이자 생명의 은인인 남태인일 것이다. 그리고 어김없이 남태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나 처럼 듬직한 사내다운 모습으로. 굵직한 선의 완강한 체격의 사나이. 전형적인 스포 츠맨다운 풍모였다. "아니, 이게 누군가?" 남태인이 보인 첫 번째 반응은 놀라움이었다. "자네가 날 찾아냈군." 그가 두 번째로 보인 반응은 반가움이었다. 그리고 일종의 감동 같은 것이었다. 과거의 모든 선과 단절했 던 그로서는 뜻밖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네가 날 찾아오다니!" 남태인이 마지막으로 보인 반응은 불신이었다. 아니 공포였다. 그의 널찍한 얼굴에서 핏기가 일시에 가시 는 것을 모건은 놓치지 않았다. 남태인이 위험을 직감한 동물적인 본능으로 한 걸음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아니, 그는 필사적으로 뒷걸음 치고 있었다. 모건은 그가 단순히 걸음치는 것이 아 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가 숨겨놓았을 권총을 집 어들려 하는 것이다. 남태인은 현명하게도 그의 동료가, 그가 목숨마저 구해준 친구가 그의 가슴에 능히 방아쇠를 당길 수 있 는 비정한 심장을 지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 다. 모건은 남태인을 따라 집안에 들어섰다. 문은 모건 의 등 뒤에서 자동으로 닫혀지고 있었다. "오랜 만일세." 하면서도 모건은 남태인의 생각에 부응이나 하듯이 권 총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모제르라는 이름의 독일제 자동권총을. "마지막 부탁은 없는지 모르겠군." 모건으로서는 드문 선심이었다. "으음." 이 절박한 순간, 오만 가지 생각이 남태인의 머릿속 을 휘젓는 듯했다. 남태인은 혼돈과 불안과 공포의, 아니 전율의 극치 를 나타내보이고 있었다. 모건은 기다렸다. 마음 속으로 1초, 2초 하고, 시간을 헤아리며...... 모건은 그러나 3초 이상은 기다리지 않았다. 그가 움켜쥔 권총은 어느새 수평으로 뻗고 있었다. "신애를 살려주게!" 남태인의 필사적이라고 할 마지막 부탁이었다. 그러 나 그의 말은 모건의 총구에서 발사된 총탄 소리에 지 워졌다. 사일렌서가 달려 있지 않은 총성은 새벽의 고요를 허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모건은 새벽의 적막을 허 무는 총성이 이토록 클 줄은 몰랐다. 어쨌거나 모제르 수퍼의 강력탄은 정확하게 남태인 의 미간을 꿰뚫었고 그의 숨을 멈추게 했다. 한 인간의 목숨이 순식간에 지상으로부터 영원으로 사라진 것이다. 언제나 그러했지만 너무나 맥빠지는 일이었다. 이토록 인간의 목숨이란 바람 앞의 등불인 걸까. 모건으로서는 남태인의 공포의 순간도 그리고 고통 의 신간도 짧았을 거라는 생각이 일말의 위안이 되었 다. 모건이 유일하게 남태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잠 깐의 고통으로 끝내주는 것이었다. 모건은 거실바닥에 쓰러진 그의 친구에게로 다가갔 다. 남태인의 눈은 치켜떠 있었다. 모건은 가만히 그의 눈을 감겼다. 언젠가 내가 길바닥에 쓰러졌을 때 나의 눈을 감겨 줄 친구라도 옆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모건은 일순 자조적인 웃음을 입가에 띄었다. 모건은 서서히 돌아섰다. 그런데 놀랍게도 문가에 신애가 서 있었다. 언제 돌아온 것일까? 코트의 단추도 채우지 못했고, 머리도 풀어헤친 채 였다. 숨도 턱에 차 있었다. "신애!" 모건으로서는 예상 밖의 일이었다. 신애는 다만 눈 앞의 사태를 이해하려 무진 애를 쓰 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얼굴은 공포로 하얗게 질려 있어도 의연한 자세로 서 있었다. 모건은 일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신애는 이 사태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분명한 눈길로 모건을 주시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얼마 동안 마주섰다. 먼저 입을 뗀 사람은 모건이었다. "나중에 다시 들르겠소." "......" "얼마 동안 경찰에 시달리게 될 거요." "......" "사태가 수습되는 대로 다시 찾아오겠소." "......" "아니면 당신이 서울로 올라오던가......" "......" 신애는 끝내 아무 대꾸도 아니했다. 다만 지글거리 는 분노를 애써 참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다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녀가 마침내 숨죽인 분노를 폭발시켰다. "당신을 가만히 놔두진 않겠어요." "......" "당신을 경찰에 고발하겠어요." "......" 모건은 더는 신애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안고 그녀의 아파트를 뒤로 했다. "지금 몇 시요?" 모건은 아파트 단지를 물러나며 경비실의 수위에게 다시금 말을 건넸다. "무슨 일입니까?" 수위는 대꾸하기에 앞서 물었다. "올라가 보시오. 사람이 죽었소." 말이 떨어지자 수위가 기다렸다는 듯이 움직이기 시 작했다. 신애는 과연 수위에게 진실을 알릴까? 그리고 경찰 에 고발할까? 먼저 사내를 위해서 나중 남자를 말이다. 모건은 해답 없는 수수께끼 같은 것을 가슴에 안고 아파트를 떠났다. 아니 부산을 떠났다. 서울에 돌아온 그는 깊고 깊은 잠 속에 빠져 있었 다. 경찰이 들이닥친다고 해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런 탓으로 그는 민하경이, 그의 전처가 그의 아파트를 찾 아온 것도 알지 못했다.
첫댓글 ♥♠ 늘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즐독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