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운(朝雲)-가증남지정곤(歌贈南止亭袞)(남곤 선생에게 주는 노래)(그대와 누워)
富貴功名可且休(부귀공명가차휴) 부귀와 공명은 이제 잊으시고
有山有水足遨遊(유산유수족오유)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즐겁게 노닐어요
與君共臥一間屋(여군공와일간옥) 한 칸 집이라도 그대와 누워
秋風明月成白頭(추풍명월성백두) 가을바람 밝은 달 보며 늙을 때까지 살아요
*위 시는 “생각이 맑아지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한시 김용택의 한시산책1(김용택 엮음)(화니북스)”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 본 것입니다.
*김용택님은 “달과 산과 한 칸 집과 그리고 그대, 이것만 있으면 될까요?, 그래. 그것만 있으면 세상 최고의 행복이지요. 더 무엇을 바라겠습니까?”라고 감상평을 하셨습니다.
*조운[朝雲, 생몰년 미상]-『대동시선』에 전주(全州) 기녀로 연산군(燕山君, 재위 1494~1506) 때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가증남지정곤(歌贈南止亭袞)〉은 조운이 남곤(南袞, 1471~1527)에게 준 시이다. 남곤의 호는 지정(止亭) 또는 지족당(知足堂)이며 김종직의 문인이다. 성종 20년(1489) 생원시·진사시에 합격하고 연산군 2년(1496)에 수찬·정언을 지낸 다음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다. 1502년 응교·전한을 거쳐 부제학이 되었으며 1504년 갑자사화 때 서변(西邊)으로 유배되었다가 중종 1년(1506) 중종반정으로 풀려났다. 대사헌·예조 판서·이조 판서를 역임하고 중종 14년(1519) 심정(沈貞) 등과 함께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 등 신진사류를 숙청한 후 좌의정이 되고 1523년에는 영의정에 올랐다. 조운을 연산군 때 사람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이 시는 남곤이 연산군 때 유배되었다가 중종 1년 중종반정으로 풀려난 시기를 전후하여 지어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남곤에게 험난한 벼슬길에서 물러나 부귀와 공명을 멀리하고 자연에서 평온한 삶을 누릴 것을 권유하는 뜻을 담고 있다. 한편 남곤은 황해 감사로 있을 때 사랑한 해주 기생이 자신이 벼슬이 바뀌어 도성으로 돌아올 때 역에 와서 전별해 줄 것을 기대했는데 끝내 오지 않자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시 한 구절을 지어 벽 위에 썼다고 한다. 그 시가 현재 전하는데 염정의 시로서는 표현이 극진해서 다른 사람이 미칠 수 없는 작품이라고 했다고 한다.
*遨遊(오유) : 재미있고 즐겁게 놂
*白頭(백두) :「허옇게 센 머리」라는 뜻으로, 벼슬을 하지 못한 사람의 일컬음
첫댓글 한 폭의 그림 같은 곳에서 지내는 삶,,,,
부러울 것 없는 행복한 마음
여기에 술만 있으면 금상첨화~~~
ㅎ, 언제나 그런 삶을 살 수 있을런지?
가끔은 그런 유유자적한 생활이 무척 그리워지네요,
지기님의 댓글에 깊이 감사드리고,
이번 주도 행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