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 올더스 레너드 헉슬리( 1894년 7월 26일 - 1963)
영국 출신의 작가이다. 그는 소설과 다양한 분야에 걸친 수필로 가장 유명하나, 단편이나 시, 기행문, 각본 등도 집필했다.Huxley)
1894~1963. 영국의 소설가. 아버지는 서리주(州) 고덜밍에 있는 차터하우스학교 부교장이었고, 조부는 저명한 동물학자 T.H.헉슬리이다. 시인이자 문예비평가인 M.아놀드, 종교와 사회문제를 대담한 소설로 묘사한 햄프리 워드 부인은 그 외척이고, 생물학자 J.S.헉슬리는 올더스 헉슬리의 형이다. 그는 이러한 지적(知的) 환경 속에 태어나 이튼스쿨을 졸업한 뒤 옥스퍼드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였다. 이튼스쿨 시절에 거의 실명(失明)에 가까운 안질을 앓은 탓으로, 당초에 마음먹었던 의학도의 길은 포기하였다.
이튼 칼리지를 졸업하고 의학도가 되려 하였으나, 점상 망막염을 앓고 3년간 사실상 맹인으로 지낸 후에는 그 길을 접고 옥스퍼드 대학교의 베일리얼 칼리지에서 영문학을 수학했다.
광범위한 지식뿐 아니라 뛰어나고도 예리한 지성과 우아한 문체에 때로는 오만하고 냉소적인 유머 감각으로 유명한 그는 이튼과 옥스퍼드의 밸리올 대학에서 교육을 받았다. 소설가로서 더 널리 알려지기는 했으나 수필, 전기, 희곡, 시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1921년에는 『크롬 옐로(Crome Yellow)』를 발표해서 당대의 가장 재치 있고 이지적인 작가라는 평을 들으며 위치를 굳혔다.
헉슬리가 본격적으로 소설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21년 소설 《크롬 옐로》로 인정을 받고 나서다. 소설 외에도 여러 수필들을 짓기도 했다. 그의 소설과 수필에서는 사회적 관행, 규범, 사상등에 대한 탐구와 비판이 주로 나타난다.
사망 전에는 말을 할 수가 없게 되어, 아내에게 종이로 "LSD 100 마이크로그램 근육 내 주사"와 같은 요청을 했다 한다. 그의 사망에 대한 기록은 그의 아내의 책 "이 영원한 순간"(This Timeless Moment)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녀는 헉슬리가 별세한 날 11시 45분, 한 번의 LSD 주사를 놓고 2시간 후 다시 LSD를 주사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날 17시 20분에 평화롭게 사망했다. 사망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같은 날 암살당한 존 F. 케네디에 의해 가려져서 그의 명성에 비해 크지 못했다
올더스 헉슬리는 1931년 5월에서 8월 사이 프랑스의 사나리수르메(Sanary-sur-Mer)에서 《멋진 신세계》를 썼다.[6] 당시 헉슬리는 이미 여러 편의 저술로 사회 풍자 작가의 명성을 쌓았다. 1920년 부터 《베너티 페어》(Vanity Fair)와 《보그》에 기고하기 시작하여 1921년에는 첫 소설 《크롬 옐로》를 발표하였고, 이후로도 《어릿광대의 춤》 (1923년), 《하찮은 이야기》 (1925년), 《연애대위법》 (1928년)과 같은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멋진 신세계》는 그의 다섯 번째 소설이자 최초의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가 H. G. 웰스의 《현대 유토피아》(1905년)와 《신과 같은 사람》(1923년)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회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