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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일본의 후쿠시마 핵폐수 투기가 임박했다. 그동안 일본은 해양방류, 증발, 지하처분, 수소분리 등 핵폐수 처리방안 5가지를 놓고 투명(?)하게 비교 평가한 결과 해양방류가 34억 엔으로 가장 싸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해양방류는 배출을 위한 터널 1km를 파는 비용만 10배가 넘는 350억 엔이 소요되었고, 30년간 측정 비용 250억 엔, 주민보상비용 5천억 엔, 그리고 비싼 필터 교체 비용과 인건비 등 운영비용까지 추가하면 34억 엔은 원래부터 터무니없는 비용이다. 결국 5가지 방안 중 해양방류가 절대로 싸지 않음에도 계속 해양방류를 추진하는 것은 향후 수십 년 동안 쏟아져 나올 오염수 역시 공해상에 투기하는 것을 염두에 둔 무책임한 계산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 수명 연장된 다카하마원전 1호기 재가동으로 일본의 가동 원전은 11기에 달하며 27기 재가동을 목표로 안전성 강화에 호기당 2조 원이 넘는 예산을 퍼붓고 있다. 전국이 지진대인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사고라는 사상 최악의 재앙을 맞이하고도 핵발전소 재가동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은 무책임을 넘어 무모하기까지 하다. 일본의 이러한 원전 가동은 핵무기 제조와 관련한 핵심기술인 재처리와 무관하지 않다. 일본 사토 총리가 1967년 내세운 핵을 들여오지도, 보유하지도, 만들지도 않겠다는 비핵 3무원칙은 지금도 일본의 국정기조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은 천문학적인 로비 비용을 퍼부으며 미국을 설득하여 플루토늄 농축을 위한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허락을 받았다. 하지만 재처리로 확보한 핵무기 원료인 농축플루토늄은 원전 연료로 재사용하지 않는다면, 비핵 3무원칙에 위배된다. 그러므로 재처리 플루토늄을 핵발전소 연료로 사용하고, 막대한 재처리 비용 조달을 위해 원전 가동이 필요하게 된다. 2017년도 기준 일본의 산화 플루토늄은 시험 및 가공단계, 신연료 개발을 명분으로 자국에 약 3.9톤이 있고 해외에 약 36.5톤을 보관하여 국내외 총 40.453톤에 이른다. 이는 5000~6000개의 플루토늄 핵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재처리한 MOX(혼합산화물) 연료는 원전 이외에 고속로 연료로도 사용된다. 이를 위해 건설한 몬주고속로는 1995년 가동되자마자 냉각재로 사용되는 나트륨(Na)누출사고로 가동 중단되었다. 고속로는 금속 나트륨을 냉각재로 활용하는데, 누설되면 공기 중에서 화재, 폭발의 위험이 있어서 사장된 기술에 가깝다. 가동 중단된 몬주고속로는 기술적인 문제로 당장 폐로하지 못했지만 현재 매년 200억 엔을 운영비로 투입하며 30년의 폐로기간을 포함, 총 2조 엔이 소요될 전망이라고 한다.
고속로는 1980년대 이미 기술경제적으로 효용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된 원자로임에도 또 다른 신규 고속로를 추진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3호기에 플루토늄을 7%까지 농축한 MOX 핵연료가 사용되었다. 수백 개의 원자폭탄을 생산할 수 있는 플루토늄이 다른 핵물질과 함께 3호기 건물 바닥에 녹아 떨어져 지하수를 오염시키며 핵폐수를 생산하는 사상 최악의 재앙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 본격 가동이 임박한 롯까쇼무라 재처리공장은 MOX 핵연료 생산이 목적이지만 가동원전보다 수백, 수천 배의 핵물질을 공해상에 배출한다.
최근 후쿠시마 핵오염수 투기과정에서 거짓말을 일삼는 당국의 모습은 사고 때나 지금이나 바뀐 게 전혀 없다. 후쿠시마 오염수 배출은 철저하게 농도기준에 따라 배출하는 소위 통제된 배출만 따진 것이며 기존에 사고로 방대하게 오염된 환경은 관심사항이 아니다. 환경을 보호하지 않는 핵의 평화적 이용은 거짓이다. 일본은 통제된 배출 영향만 따질 것이 아니고 방대하게 오염된 주변 생태환경에 의한 장기적인 주변국 영향과 피해도 함께 고려해야만 한다. IAEA 핵폐기물 관리 기본원칙(Fundamental Princliple) 중 하나가 주변국을 보호하라는 것이다. 국제안전기준 중 가장 우선적으로 검토되어야 하는 게 빠진 것이다. 따라서 오염수 배출을 검토한 IAEA 최종보고서가 국제안전기준에 부합한다고 내린 결론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수행한 IAEA 보고서의 적정성도 제대로 봐야겠지만 장기적으로 주변국 피해를 평가하는 2단계 평가가 남았다. 주권국들이 협력하여 IAEA와 일본에 이를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물론 IAEA의 비중을 낮추고 WHO, IMO 등 국제 환경기구와 주변국이 주도하는 형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 평가가 종료될 때까지 일본 정부에 오염수 투기 중단을 당연히 요구해야 한다. 일본의 돈을 받아 일본이 원하는 모습만을 그려 준 IAEA 최종보고서는 당연히 재평가되어야 하며, 국제기구인 IAEA가 특정 국가의 이익만을 위해 일할 수는 없다.
이처럼 무모하게 추진하는 일본의 핵정책을 들여다보면 핵사고가 한 번 더 날 것 같은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폐쇄적이며 거짓말하는 당국의 모습은 핵사고 이전과 현재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두 방의 원폭에 항복했던 침략자 일본은 기어이 또 한 차례 핵사고 재앙을 추가로 당해야 바뀔 것인가?
문제는 핵사고가 그들만의 재앙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도 무리한 핵정책으로 안전위협이 상당히 증가하고 있다. 핵이 우리를 구해줄 것이라는 무모하고 무책임한 핵몽(核夢)에 의해 모두가 비참한 재앙적 종말을 맞이할까 우려된다. 핵을 평화적으로 이용한다는 명분으로 환경을 핵으로 오염시키는 폭력과 파괴의 속성은 숨기면서 이룰 수 없는 꿈을 향해 돌진하는 범죄행위에 맞서 싸워야 한다. 핵몽에 빠진 이들에게는 지속가능성을 위한 최우선 요소인 환경과 사회적 책임성은 고려사항이 아님을 널리 알려야 한다.
핵몽(核夢)은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이다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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