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 onto the overturned keel Clamber, with a heart of steel Cold is the ocean's spray And your death is on its way With maidens you have had your way Each must die some day!"
앞으로 크킹2하다가 방패벽 전술 뜬다면 대충 이 영상에 나온 광경이 스케일 커져서 나타난다고 보시면 됩니다.
첫댓글이 씬의 스케일 자체는 다른 전쟁영화같은 것에 비해 작아서 조촐해보일지 모르지만, CG로 머릿수 불리기 없이 순전히 엑스트라들로만 저 머릿수 채워서 장면을 찍었고 완벽한 고증을 갖췄으며 일사분란한 지휘로 두개의 다른 진형간 격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가히 알렉산더 영화의 가우가멜라 전투와 비교될만한 장면입니다. 역시 영화 알렉산더처럼 바이킹즈 미드도 그리 완성도 높은 미드는 아니지만, 역시 영화 알렉산더처럼 바이킹즈 미드도 저 전투씬 하나만 봤다 해도 돈값 했다 볼 수 있는 미드입니다.
영화 300은 이 전투씬 후에 전투씬이 하나 더 있는대, 그것과 닮았다 볼 수는 있지만 이 전투씬과는 닮았다 보기 힘듭니다. 영화 300은 한명한명이 개인적으로 용맹을 뽐내며 싸우는 액션을 주로 했었고 이 전투씬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하나의 집단으로서 뭉쳐 싸우는 액션을 보여줬으니까요.
활쏘기 전에 달려서 검을 쳐도 되는 거리를 그냥 기다렸다가 로마식의 방어(거북이)로 막고 로마식으로 철벽 세우고 하나씩 끌어 드려서 찌르고 그나저나 라운딩 방패라서 방어 면적이 작아서 발쪽은 텅텅 비는데 거긴 왜 안 치는지... 씬이 허접하네요.. 그나저나 바이킹 맞나? 바이킹은 대부분이 중장비인 도끼를 들고 돌격하는데 말이에요 ㅎㅎ
활쏘기 전에 왜 돌격하지 않았냐니, 위 영상에서 두 진영간의 거리상 바이킹들이 돌격했다면 대부분 천옷정도의 경갑만 입은 바이킹들이 노썸브리아 궁수의 직사에 큰 피해를 입고 선봉이 꺾일 수 있는 상황이였기에 방패벽으로 궁수 곡사를 큰 피해없이 막아낸 것입니다.(활의 유효사거리는 곡사시 50m에서 150m 사이니 두 진영간의 거리는 대략 100m 내외였다 볼 수 있습니다. 한번 쏘고 재장전해 또 쏜다음 궁수가 뒤로 물러서고 창병으로 기가 꺾인 적의 공격을 받아낼 수 있을만한 거리.)
또, 방패를 내세워 원거리 공격을 막아내는 전술은 로마뿐만 아니라 서양 전역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전략이였고
예로 들어보자면 그리스의 호플리타이 전술(팔랑크스 말고)이 호플론이라는 원형방패와 오버핸드 중창을 이용한 밀집방진전술을 사용했고, 다양한 전술과 진형들이 운용됬던 동양에서도 귀갑진으로 존재했었고 그 외 다양한 지역에서 방패를 이용한 밀집방진전술이 사용됬었습니다. 라운딩 방패가 아니라 라운드 방패, 혹은 라운드 쉴드, 혹은 원형 방패입니다. 발 쪽이 텅텅 비는대 왜 거긴 안 치냐고요? 그곳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전면의 적을 무시하고 타점을 극도로 아래로 내리거나, 아예 아래로 엎드려야만 합니다. 전면의 적을 무시하고 타점을 극도로 아래로 내린다면 방패에 걸려서 효과적인 타격이 불가능하고
전면의 적이 공격해올시 방어할 방법이 전혀 없으니 그냥 자살행위입니다. 아래로 엎드린다면 뒤에서 돌격해오는 아군에게 짓밟혀 공격해보지도 못하고 죽을테니 역시 자살행위입니다. 아래로 엎드려서 단검들고 공격하는 것은 후기 중세및 초기 르네상스 파이크방진들끼리 싸울 때처럼 중간에 공간이 크게 남는 특수한 경우에나 사용가능한 전술입니다. 또, 저기 보면 알겠지만 손도끼 사용하는 바이킹들 여럿 있습니다. 검도 사용했고 손도끼도 사용했고 바이킹들은 왠만한 무기는 다 사용했는대, 방패를 사용해야했기에 양손무기들은 사용하긴 했지만 극도로 드물었습니다. 그러니 중장비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실드월 전술은 고대에도 많았음 사실 로마의 실드월도 그리스 영향 받았음요. ㅇㅇ 동양에서도 흔해요. 그리고 저기 입고있는거 보니깐 바이킹들은 경무장이고 상대방이 중무장임 끌어들여서 공격하는것도 동양에서도 비슷하게 많았음 예시로 신라의 대기병전술이 장창병2과 궁병 혼합으로 알고 있어요. 고구려도 부월수(도끼병)와 궁수 혼합한 진형썻고
솔직히 저 장면은 예산상 문제로 인원수, 배경을 축소 시킨게 아닐까 합니다.(주인공이 나중에 얼과 마을 사람에게 "거대한 군세의 색슨족이 가로막았지만 이겼습니다!" 라고 하는 대사도 있고요. 겨우 몇십명 싸우는데 위대한 승리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죠?) 저기에 머릿수를 몇배로 뿔리고 지형 역시 좀 넓게 생각하는게 이치에 맞다고 생각합니다.
바이킹스가 재미있기는 하지만 많은 내용을 적은 편수에 집어넣으려다 보니 말이 안되는 부분도 있더라구요. 라그나가 항로 발견하는건 이해가 안되던데요. 실험적인 항해로 그 먼거리를 항해한다는게 말이 안되더라구요. 보통은 가까운거리를 항해하면서 경험이 축적되서 먼거리 항해를 가는데 그런게 좀 아쉽더라구요. 그 과정을 생략할거면 항해술은 있지만 항로는 발견하지 못했다는 식으로 해야하는데 온갖 항해기술을 라그나가 최초로 도입한것처럼 나오더라구요.
애초에 라그나 로드브룩이 최초로 서쪽에 간 바이킹인 것도 아니에요. 중간에 나오는 캐릭터인 덴마크왕의 부친이 샤를마뉴 제국에 대한 성공적인 약탈로 명성이 드높던 인물이니까요. 주인공을 부각시키기 위해 고증적 사실들을 여럿 없앴는대, 정작 쓰레기같은 스토리텔링 능력으로 캐릭터 구현을 제대로 못했으니 졸작이라 할 수 있겠죠. 스토리텔링만 좋았어도 정말 좋았을텐데, 각본가만 잘 고용했어도 참 좋았을텐데.
첫댓글 이 씬의 스케일 자체는 다른 전쟁영화같은 것에 비해 작아서 조촐해보일지 모르지만, CG로 머릿수 불리기 없이 순전히 엑스트라들로만 저 머릿수 채워서 장면을 찍었고 완벽한 고증을 갖췄으며 일사분란한 지휘로 두개의 다른 진형간 격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가히 알렉산더 영화의 가우가멜라 전투와 비교될만한 장면입니다. 역시 영화 알렉산더처럼 바이킹즈 미드도 그리 완성도 높은 미드는 아니지만, 역시 영화 알렉산더처럼 바이킹즈 미드도 저 전투씬 하나만 봤다 해도 돈값 했다 볼 수 있는 미드입니다.
순간 영화 300이 스쳐니자가는군요 ㅋ
영화 300은 이 전투씬 후에 전투씬이 하나 더 있는대, 그것과 닮았다 볼 수는 있지만 이 전투씬과는 닮았다 보기 힘듭니다. 영화 300은 한명한명이 개인적으로 용맹을 뽐내며 싸우는 액션을 주로 했었고 이 전투씬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하나의 집단으로서 뭉쳐 싸우는 액션을 보여줬으니까요.
바이킹스 주인공 라그나가 게임속 역사 인물로 존재도 하죠. 죽어서 플레이는 안대지만.. 아들 비욘으로는 가능하다는
활쏘기 전에 달려서 검을 쳐도 되는 거리를 그냥 기다렸다가 로마식의 방어(거북이)로 막고 로마식으로 철벽 세우고 하나씩 끌어 드려서 찌르고 그나저나 라운딩 방패라서 방어 면적이 작아서 발쪽은 텅텅 비는데 거긴 왜 안 치는지... 씬이 허접하네요.. 그나저나 바이킹 맞나? 바이킹은 대부분이 중장비인 도끼를 들고 돌격하는데 말이에요 ㅎㅎ
활쏘기 전에 왜 돌격하지 않았냐니, 위 영상에서 두 진영간의 거리상 바이킹들이 돌격했다면 대부분 천옷정도의 경갑만 입은 바이킹들이 노썸브리아 궁수의 직사에 큰 피해를 입고 선봉이 꺾일 수 있는 상황이였기에 방패벽으로 궁수 곡사를 큰 피해없이 막아낸 것입니다.(활의 유효사거리는 곡사시 50m에서 150m 사이니 두 진영간의 거리는 대략 100m 내외였다 볼 수 있습니다. 한번 쏘고 재장전해 또 쏜다음 궁수가 뒤로 물러서고 창병으로 기가 꺾인 적의 공격을 받아낼 수 있을만한 거리.)
또, 방패를 내세워 원거리 공격을 막아내는 전술은 로마뿐만 아니라 서양 전역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전략이였고
예로 들어보자면 그리스의 호플리타이 전술(팔랑크스 말고)이 호플론이라는 원형방패와 오버핸드 중창을 이용한 밀집방진전술을 사용했고, 다양한 전술과 진형들이 운용됬던 동양에서도 귀갑진으로 존재했었고 그 외 다양한 지역에서 방패를 이용한 밀집방진전술이 사용됬었습니다. 라운딩 방패가 아니라 라운드 방패, 혹은 라운드 쉴드, 혹은 원형 방패입니다. 발 쪽이 텅텅 비는대 왜 거긴 안 치냐고요? 그곳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전면의 적을 무시하고 타점을 극도로 아래로 내리거나, 아예 아래로 엎드려야만 합니다. 전면의 적을 무시하고 타점을 극도로 아래로 내린다면 방패에 걸려서 효과적인 타격이 불가능하고
전면의 적이 공격해올시 방어할 방법이 전혀 없으니 그냥 자살행위입니다. 아래로 엎드린다면 뒤에서 돌격해오는 아군에게 짓밟혀 공격해보지도 못하고 죽을테니 역시 자살행위입니다. 아래로 엎드려서 단검들고 공격하는 것은 후기 중세및 초기 르네상스 파이크방진들끼리 싸울 때처럼 중간에 공간이 크게 남는 특수한 경우에나 사용가능한 전술입니다. 또, 저기 보면 알겠지만 손도끼 사용하는 바이킹들 여럿 있습니다. 검도 사용했고 손도끼도 사용했고 바이킹들은 왠만한 무기는 다 사용했는대, 방패를 사용해야했기에 양손무기들은 사용하긴 했지만 극도로 드물었습니다. 그러니 중장비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고정관념들이 여럿 머릿속에 박혀 계시네요. 왜 바이킹들이 뿔 달린 투구 안 썼는지는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쉴드월 전술은 바이킹만 쓴게 아니라 중세초 서유럽에서 널리 쓰인 가장 일반적인 전투 방식이었습니다. 계속 로마식 어쩌고 하시는거보니 저런 전술 로마인들만 쓴줄 아시나본데요, 방패랑 한손무기로 싸운다고 해서 다 똑같은건 아니랍니다.
실드월 전술은 고대에도 많았음 사실 로마의 실드월도 그리스 영향 받았음요. ㅇㅇ 동양에서도 흔해요.
그리고 저기 입고있는거 보니깐 바이킹들은 경무장이고 상대방이 중무장임
끌어들여서 공격하는것도 동양에서도 비슷하게 많았음
예시로 신라의 대기병전술이 장창병2과 궁병 혼합으로 알고 있어요.
고구려도 부월수(도끼병)와 궁수 혼합한 진형썻고
솔직히 저 장면은 예산상 문제로 인원수, 배경을 축소 시킨게 아닐까 합니다.(주인공이 나중에 얼과 마을 사람에게 "거대한 군세의 색슨족이 가로막았지만 이겼습니다!" 라고 하는 대사도 있고요. 겨우 몇십명 싸우는데 위대한 승리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죠?) 저기에 머릿수를 몇배로 뿔리고 지형 역시 좀 넓게 생각하는게 이치에 맞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거 외에도 저 노섬브리아 vs 바이킹 전투 장면은 굉장히 멋졌습니다. 방벽 하악하악. 나중에 노섬브리아 기병대 돌격도 멋졌습니다.. 왕창 깨지긴 했지만..
아,, 기병대 돌격 안습이였죠. 기세좋게 달려가는대 라그나 로드브룩의 함정이 숨겨져 있었다니!
통수 치고 기세좋게 돌격한건 좋았는데 이미 예측해놓고 함정을 설치해놔서 완벽하게 깨졌죠. 그리고 왕의 동생인지 친척은 으앙 주금..
기습이였고 보병이 제대로 뭉치지 못한채 흩어져있는 상황이였으니 함정이 없었다면 바이킹들이 대패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지만 역으로 그렇기에 그런 상황을 피하고자 미리 철저히 준비해뒀던 것 같습니다. 역시 바이킹 하면 떠오르는 바이킹 설화속 영웅들중 하나네요.
바이킹스가 재미있기는 하지만 많은 내용을 적은 편수에 집어넣으려다 보니 말이 안되는 부분도 있더라구요. 라그나가 항로 발견하는건 이해가 안되던데요. 실험적인 항해로 그 먼거리를 항해한다는게 말이 안되더라구요. 보통은 가까운거리를 항해하면서 경험이 축적되서 먼거리 항해를 가는데 그런게 좀 아쉽더라구요. 그 과정을 생략할거면 항해술은 있지만 항로는 발견하지 못했다는 식으로 해야하는데 온갖 항해기술을 라그나가 최초로 도입한것처럼 나오더라구요.
애초에 라그나 로드브룩이 최초로 서쪽에 간 바이킹인 것도 아니에요. 중간에 나오는 캐릭터인 덴마크왕의 부친이 샤를마뉴 제국에 대한 성공적인 약탈로 명성이 드높던 인물이니까요. 주인공을 부각시키기 위해 고증적 사실들을 여럿 없앴는대, 정작 쓰레기같은 스토리텔링 능력으로 캐릭터 구현을 제대로 못했으니 졸작이라 할 수 있겠죠. 스토리텔링만 좋았어도 정말 좋았을텐데, 각본가만 잘 고용했어도 참 좋았을텐데.
라그나도 승리자고 동생도 승리자.
발할라
버나드 콘웰이 쓴 아서왕 3부작의 전투씬 생각나네요. 크킹 모드로도 만들어져서 게시판에도 몇번 올라온 물건인데 ㄲㄲ;
근데 옛날부터 궁금한게 방패염색은 어떻게 했을까 하는거임
어떻게 한거지... 바이킹은 기반 산업이 대단치 않을텐데...
방패염색은 전투 후에 염색 안할부분만 닦고 나머지는 놔두면 됩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