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張維)-설리산다(雪裏山茶)(눈 속에 핀 동백꽃)
雪壓松筠也欲摧(설압송균야욕최) 눈 쌓여 송죽(松竹)도 곧 꺾일 지경인데
繁紅數朶斬新開(번홍삭타참신개) 선홍빛 몇 봉오리 산뜻하게 피었구나
山扉寂寂無人到(산비적적무인도) 아무도 찾지 않는 고요한 산속 집에
時有幽禽暗啄來(시유유금암탁내) 이따금 새 날아와 남몰래 꽃을 쪼네
*위 시는 “한시 감상 景경, 자연을 노래하다(한국고전번역원 엮음)”(谿谷集계곡집)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 본 것입니다.
*하승현님은 “조선 중기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 중 한 사람인 계곡(谿谷) 장유(張維)의 시이다.
어려서부터 같이 공부한 친구 동야(東野, 임동(林埬)의 자)가 늘그막에 한가히 지낼 생각으로 금성(錦城 나주羅州의 옛 이름)에 만휴당을 짓고 계곡에게 글을 지어 달라고 청하였다. 계곡은 「임동야를 위해 지은 만휴당 십육영(晚休堂十六詠 爲林東野賦)」이란 제목으로 만휴당의 풍경을 노래한 시 16수를 지어서 그에게 주었다. 이 시는 그 가운데 한 수로, 흰 눈이 쌓인 추운 겨울에 선홍빛으로 곱게 핀 동백꽃을 노래하고 있다.
눈 내린 깊은 산중에 찾아오는 이 하나 없는데, 흰 눈이 온 세상을 다 덮고 있으니 더욱 고요하다. 시간이 멎은 듯 적막하여 조금은 쓸쓸하기도 한 가운데 반가운 것이 눈에 들어온다. 눈 쌓인 하얀 가지 위에서 더 붉어 보이는 동백꽃 봉우리들이다. 동백꽃이 불러들인 새들의 바쁜 몸짓과 지저귐까지 더해져 적막한 산골의 풍경에 다시 생기가 돈다.
‘이십사번화신풍(二十四番花信風)’이란 말이 있다. 소한(小寒)부터 곡우(穀雨)까지 스물네 번 꽃 소식을 전하는 바람이란 뜻이다. 『연감류함(淵鑑類函)』 ‘천부(天部) 풍(風)’ 조에 보면 이런 글이 있다.
‘소한(小寒) 소식은 매화(梅花)ㆍ동백꽃(山茶)ㆍ수선화(水仙)이 전하고, 대한(大寒) 소식은 천리향(瑞香)ㆍ난초의 꽃(蘭花)ㆍ산반화(山礬 )가 전하고, 입춘(立春) 소식은 개나리(迎春)ㆍ앵두꽃(櫻桃)ㆍ목력(望春)이 전하고, 우수(雨水) 소식은 유채꽃(菜花)ㆍ살구꽃(杏花)ㆍ자두꽃(李花)이 전하고, 경칩(驚蟄) 소식은 복숭아꽃(桃花)ㆍ산앵두꽃(棣棠 체당)ㆍ장미(薔薇)가 전하고, 춘분(春分) 소식은 해당화(海棠)ㆍ배꽃(梨花)ㆍ목란나무의 꽃(木蘭)이 전하고, 청명(清明) 소식은 오동나무꽃(桐花)ㆍ보리꽃(麥花)ㆍ버드나무꽃(柳花)이 전하고, 곡우(榖雨) 소식은 모란(牧丹)ㆍ장미과의 만생(蔓生) 관목(酴釄 도미)ㆍ멀구슬나무(楝花 연화)가 전한다. 이것이 이십사번화신풍이다.’
우리나라 절기와 조금 맞지 않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꽃이 절기 소식을 전한다는 발상이 재미있다. 달력의 숫자를 짚으며 시간의 흐름을 좇지 않더라도 그때그때 피어나는 꽃과 그 꽃이 필 즈음 불어오는 바람에서도 절기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오감으로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을 내 삶 속에 들이고 싶다.”라고 감상평을 하셨습니다.
*장유[張維), 1587년(선조 20)~1638년(인조 16), 본관 덕수(德水), 자 지국(持國), 호 계곡(谿谷), 묵소(默所), 시호 문충(文忠)]-조선 중기 좌부빈객, 예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장례원사의 장자중(張自重)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목천현감 장일(張逸)이고, 아버지는 판서 장운익(張雲翼)이며, 어머니는 판윤 박숭원(朴崇元)의 딸이다.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의 사위로 효종비 인선왕후(仁宣王后)의 아버지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1605년(선조 39) 사마시를 거쳐 1609년(광해군 1)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 호당(湖堂: 독서당의 다른 이름)에 들어갔다. 이듬해 겸설서를 거쳐 검열 · 주서 등을 지냈다. 1612년 김직재(金直哉)의 무옥(誣獄)에 연루해 파직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에 가담해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에 녹훈되고 봉교를 거쳐 전적과 예조 · 이조의 낭관을 지내고, 그 뒤 대사간 · 대사성 ·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 때 왕을 공주로 호종한 공으로 이듬해 신풍군(新豊君)에 책봉되어 이조참판 · 부제학 · 대사헌 등을 지냈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로 왕을 호종하였다. 그 뒤 대제학으로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를 겸임했고, 1629년 나만갑(羅萬甲)을 신구(伸救)하다가 나주목사로 좌천되었다. 다음 해 대사헌 · 좌부빈객(左副賓客) · 예조판서 · 이조판서 등을 역임했으며, 1631년 원종추숭론(元宗追崇論)이 대두하자 반대하고 전례문답(典禮問答) 8조를 지어 왕에게 바쳤다. 1636년 병자호란 때 공조판서로 최명길(崔鳴吉)과 더불어 강화론을 주장하였다. 이듬해 예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어머니의 부음(訃音)으로 18차례나 사직소를 올려 끝내 사퇴했고, 장례 후 과로로 병사하였다. 일찍이 양명학(陽明學)에 접한 그는 당시 주자학(朱子學)의 편협한 학문 풍토를 비판해, 학문에 실심(實心)이 없이 명분에만 빠지면 허학(虛學)이 되고 만다 하였다. 또한,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장, 마음을 바로 알고 행동을 통해 진실을 인식하려 했던 양명학적 사고방식을 가졌다. 이식(李植)은 그의 학설이 주자(朱子)와 반대된 것이 많다 하여 육왕학파(陸王學派)로 지적했으나, 송시열(宋時烈)은 “그는 문장이 뛰어나고 의리가 정자(程子)와 주자를 주로 했으므로 그와 더불어 비교할만한 이가 없다.”고 칭송하였다. 천문 · 지리 · 의술 · 병서 등 각종 학문에 능통했고, 서화와 특히 문장에 뛰어나 이정구(李廷龜) · 신흠(申欽) · 이식 등과 더불어 조선 문학의 사대가(四大家)라는 칭호를 받았다. 많은 저서가 있다고 하나 대부분 없어지고 현재 『계곡만필』 · 『계곡집』 · 『음부경주해(陰符經注解)』가 전한다. 신풍부원군(新豊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筠(균) : 대나무 균 1.대나무 2.(대나무의 푸른)껍질 3. 피리(악기의 하나)
*朶(타) : 늘어질 타 1.늘어지다 2.나뭇가지가 휘휘 늘어지다 3.움직이다, 흔들다, 朵(타)와 동자(同字). 𣎾(동자), 𣎿(동자), 朵(동자), 𣏻(동자)
첫댓글 눈 쌓인 송죽에 핀 동백꽃이라....
산 새들의 노래가 듣고 싶어 피었나
아니면 외로움 달래려 피었나....
설동백이라 불러도 좋겠군요,
그 광경을 그림으로 그리면 정말 멋지겠네요,
지기님의 댓글과 감성에 감사드리고,
오늘도 좋은 날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