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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발전포럼단톡방에서]
[박찬화의장님제공]
[이덕일의 역사를 말하다]
두 개의 철령 2021.05.17
https://www.kgnews.co.kr/news/article.html?no=645999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 이마니시 류(今西龍) 같은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은 만주에도 철령이 있고 함경도에도 철령이 있는 것을
이용해 만주 철령을 함경도 철령으로 바꿔치기 하는 사기극을 구상하고 실천했다. 명나라에서 철령위를 설치하려던 철령이 만주 철령이 아니라 함경도 철령이라고 우겼던 것이다. 철령에 대해서 조금만 공부하면 초등학생도 사기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이 사기극을 아직도 한국 사학계를 장악한 강단사학자들이 추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현재 사용하는 검정 교과서는 명나라에서 설치하려던 철령위를 함경도에 있는 것으로 서술해서 국민들을 속이고, 미래 우리 사회의 주역인 중·고교생들에게 씻지 못할 죄악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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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숙글로벌리더님제공]
(선물)(주)KSG 원터치 핸드그라인더 사업비젼
국내유통ㆍ대리점
수출무역ㆍ하실분
로사 2010 3901
https://youtu.be/0GBWDER9MJI
(입술) 코씨ㆍ전쟁터 모두가 힘든상황 힘내세요.
짐로서스는 대한민국이 급부상하고 제2의 경제대국이 될것이다.
영상 꼭 보시면 힘이 납니다.
https://youtu.be/vYw_gcE3b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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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곤청학동훈장님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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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현가빈쌤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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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 어디서 ?
21.05.23 일 - 서울 마포
21.05.29 토 - 서울 마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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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간 오전10시 ~ 오후 6시(8시간)
준비물 스마트폰 , 보조배터리
수강료 1일 8시간 150,000원
(재수강 100,000원)
국민 : 224-24-0352-401 박정현
(입금선착순 3인 마감)
입금확인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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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석선생님제공]
앞으로 세 걸음, 뒤로 세 걸음~
어떤 상인이 장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스님과 함께 걷게 되었다.
적막한 산길을 말동무 삼아 걸으면서 스님이 말했다,
"이렇게 함께 길을 가는 것도 큰 인연이니 내 그대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지혜의 말을 일러 주리다."
"지혜의 말이오?"
"그렇소!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날 때는 꼭! 이 말을 생각한 후에 행동하시오."
"대체 무슨 말입니까?"
"앞으로 세 걸음 걸으며 생각하고
뒤로 세 걸음 물러나 생각하라.
성이 날 때는 반드시 이 말을 생각하시오!
그러면 큰 화를 면할 것이오."
상인은 스님의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 사뭇 깊었다.
그런데 방문 앞에 웬 신발이 두 켤레가 나란히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
하나는 아내의 신발 다른 하나는 하얀 남자 고무신이었다.
창에 구멍을 내고 들여다보니 아내는
까까머리 중을 꼬옥 껴안고 잠이 들어 있었다.
상인은 화가 불처럼 치밀어 올라
부엌으로 가서 식칼을 가지고 뛰어 나왔다.
막 방문을 들어서려는 순간 스님의 말이 생각났다.
상인이 씨근덕거리며 스님의 그 말을 외면서 왔다갔다하는 소리에 아내가 깨어 밖으로 나오며 반갑게 맞이했다.
이윽고 중도 뒤따라 나오며
"형부 오랜만에 뵙습니다."
하며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까까머리 중은 남자가 아니고
출가해 여승이 된 상인의 처제였다
상인은 칼을 내 던지며 스님이 들려준 말을 다시 한 번 외쳤다.
"앞으로 세 걸음 걸으며 생각하고
뒤로 세 걸음 물러나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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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계황박사님제공]
[칼럼] 미완의 혁명 5·18
2020.05.18 10:26 입력
▲영토학자 장계황(한국역사영토재단 이사장, 행정학박사) (c)시사타임즈 |
[시사타임즈 = 장계황 박사]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거리에 다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들린다. 나도 따라 흥얼거린다.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라는 대목에서 옛 동지들을 떠올려 본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동지들과 함께한 ‘뜨거운 맹세’에서 ‘산 자여 따르라’고 한 대목에 과연 내가 그렇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 반문도 해 본다.
5·18은 결과가 아닌 역사적 과정의 이해이다
5·18 민주화 혁명은 미완의 혁명으로 사실 결과 보다는 그 과정의 이해를 통해 우리 사회를 돌아보는 것이 더 의의가 있다.
5·18 민주화 투쟁은 어느 날 갑자기 떠진 일이 아니다. 그 시대적 전후 상황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민주화 투쟁의 의미를 알수가 있다. 그 시작은 유신헌법으로부터 시작이 되며 그 절정기에 이르렀을 당시 영남을 대표하는 김영삼 의원이 국회에서 제명이 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 유신독재 체제에서나 일어 날수 있는 일로서 이를 계기로 지역항쟁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바로 부마항쟁이다. 79년 김영삼이 신민당 총재로 당선이 되자 박정희는 김영삼을 의원직 제명을 함으로서 민주회복에 대해 맥을 끊으려 하는데 이에 대해 유신체제타도를 외치는 반정부 시위가 시작이 되는 것이다.
부마항쟁의 대응 방법을 놓고 박정희의 친위세력인 차지철과 김재규가 갈등을 하게 되는데 차지철은 이 당시 탱크를 동원해 무력 제압을 주장하고 김재규는 선 대화 방식을 채택하자고 맞서게 되어 두 사람의 갈등은 대한민국 명운을 달리하게 만든 사건이 되는데 이것이 바로 김재규가 박정희를 사살하는 10.26사태이다.
박정희가 죽음으로서 대한민국 정치는 새바람이 일어날 수 있는 좋은 계기였으나 하나회의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중심이 되어 12.12 사태가 1979년 같은 해 일어나게 된다. 박정희가 죽음으로서 다수의 국민들은 민주화가 올 것을 기대 하였으나 다시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민주화의 물결을 막다보니 국민들은 투쟁을 시작하였고 이에 대해 신군부는 계엄령을 80년 5월 초에 발동함으로서 국민과 대치하게 된다.
5·18의 전초인 서울역 회군
5·18민주화 운동은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닌 유신독재를 타도하려는 민란의 연장선이었으며 이 민란의 도화선은 서울역 회군에서 출발하였다.
5.15 서울역 집회는 1980년 5월 15일에 일어난 시위로, 서울역 회군이라는 명칭으로 자주 불린다. 1980년 5월 초 계엄령 하에 억눌려있던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가 거세지면서 5월 13일부터 학내에 머무르던 대학생들은 가두로 진출하여 시위를 벌였다. 5월 15일에는 서울역 지상 광장 앞에서 10만여 명 이상의 대학생 및 시민이 자발적으로 모였다. 시위대는 조속한 시일 내에 계엄을 해제하고 민주화를 추진할 것을 주장했다.
이 시기에는 모두가 ‘서울의 봄’이 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으나 신군부는 정치 욕이 생기면서 계엄령을 발동하고 이에 맞서기 위한 민주화 운동이 5·18 민주화 혁명으로 표현이 된 것이다.
사태에서 혁명으로, 폭도에서 유공자로
5·18 민주화 혁명이 일어나고 신 군부가 정치를 장악하면서 5·18의 정신과 가치는 훼손되기 시작을 한다. 그들의 악행과 만행을 덮으려 하다 보니 이 사건 자체를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으로 조작하고 때로는 북한 군 개입설이 등장하며 정국에 불만을 가진 시민 폭동 군이 내란을 일으킨 정도로 언론과 합작하여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둔갑시킨다. 실제 그 당시 광주로 들어가는 모든 길목을 차단하고 광주만 고립 시킨 채 언론은 폭도들에 의한 폭동으로 그리고 김대중이 내란을 목적으로 사주한 것으로 전 국민에게 알리고 뇌리에 박기 시작하는데 일부 국민들은 아직도 5·18 민주화 혁명을 그런 시각으로 보고 있어 씁쓸하다.
5·18의 가치는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면서 재조명되기 시작을 하였고 여러 경로를 통해 재조명 되는데 법리적 재조명을 통해 성공한 쿠데타에 대한 부분의 결론을 얻어 내는데 1993년 5월 김영삼은 5·18 특별담화에서 "진상규명과 관련해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훗날의 역사에 맡기는 것이 도리"라고 선을 긋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문민정부의 소극적인 모습에 실망한 시민 사회는 전두환·노태우 등 책임자들을 직접 서울지방검찰청에 고소·고발하게 되었고, 자연히 시민들의 관심은 검찰의 결론에 모아졌다. 그리고 1995년 7월 18일 이 사건을 맡게 된 서울지검 공안1부장 장윤석 검사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히게 되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이를 통치 행위로 본 것이다. 검찰 발언으로의 이러한 결정은 전 국민에게 반발을 가져왔다. 이에 정치권은 특별검사제를 주장하면서 검찰을 압박하였고, 김영삼의 특별 지시가 떨어진 이후인 1995년 11월 30일에 12.12 및 5·18 사건 특별 수사본부의 발족과 함께 검찰이 재수사를 결정하게 된다.
결국 전두환과 노태우에 대한 기소가 이루어 졌으며,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전두환은 무기징역과 2,205억 원의 추징이 선고되었고 노태우는 징역 17년에 2,628억 원이 선고되었다. 그러나 8개월 후 1997년 12월 22일 김영삼과 김대중 대선 당선인의 사면으로 두 사람을 포함한 하나회의 구성원들이 자유의 몸으로 석방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5·18 민주화 혁명의 과정이 낱낱이 들어 나게 되고 광주 시민들은 폭도에서 민주화를 만들어낸 가치를 인정받아 폭도에서 유공자가 된 것이다. 아직도 일부의 국민들은 유공자가 된 부분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부분이 있는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공자로서 가치가 충분히 인정이 된다. 다른 아닌 목숨을 걸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세상에 알리고 민주적 절차에 의한 평가와 보상 등의 행위가 이루어 질만한 가치가 우리 사회에 변화를 가져 왔다는 점이다.
5·18정신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5·18 민주화 혁명의 가치는 우리들만의 가치가 아니다. 이미 세계가 인정을 하여 5·18 정신에 관련 한 모든 부분들은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에 등재가 될 만큼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1980년대를 지나면서 5·18은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었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광복이 시대정신이었다고 하면 그 이후 한국전쟁의 전후 복구를 통하여 잘 먹고 잘 사는 시대정신의 시대를 지나 우리 사회에 민주화에 대한 시대정신이 만들어 진 계기가 바로 5·18 민주화혁명이다. 이 혁명을 통하여 우리 사회에 민주주의가 꽃을 피 울 수 있었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전 국민이 느끼고 실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5·18의 시대정신은 위대한 것이며 보편, 평등주의의 민주주의가 우리 땅에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오늘날의 우리 사회도 이 정신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비록 그 당시 혁명은 성공하지 못한 미완의 혁명이었지만 그 정신은 우리와 함께 영원히 할 것이다.
覺永堂 學人
靑島 장계황 / 行政學博士
한국역사영토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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