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밭 공원
서울 북한산 동쪽 우이동에 100년이나 된 1천여 그루 소나무가 울창한
솔밭 공원이 있다. 특이하게도 산이나 언덕이 아닌 도시의 평지에 삼 만
4,955 평방미터나 되는 넓은 면적이다.
공원 안에는 실개울, 생태연못, 산책로 등 조경 시설이 아름답다.
배드민턴장, 건강지압보드 등 여러 가지 운동시설이 갖추어져 있고, 어린이 놀이터, 장기바둑 쉼터에는 늘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서울 도심의 유일한 소나무 숲이며 북한산을 찾는 등산객들이 모여 산행을 출발하는 곳이기도 하다.
언제부턴가 일요일마다 강북(한강이북)에 사는 친구들이 모여 하루를 소일하는 장소다. 팔순을 넘긴 노구를 이끌고 산책하며 휴식을 취하는 단골 장소가 된 셈이다. 노년의 삶을 즐기는 낙원이란 따로 있는 게 아닌가보다.
우리는 약속 식간에 모이면 하얗게 꽃이 피고 있는 옥잠화를 따라 소박한 산책로를 걷기 시작한다. 공원 안쪽으로 광장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운동과 휴식을 취하고 있다.
광장을 뒤로 하고 산책로를 따라 계속 걸어 ‘삼각산 송림정’ 쉼터에서 발을 멈춘다. 삼각산을 상징하는 돌탑이 쌓여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마을의 협동 의례와 천재지변 등의 액운을 막기 위해 돌을 쌓았던 의미다. 소나무 사이로 만경봉, 백운봉, 인수봉 삼각이 북한산의 수려한 산봉우리를 이루고 있다.
우리가 늘 차지하고 하루를 보내는 자리 옆으로는 실개천이 흘러 생태 연못으로 들어간다. 연못가에 활짝 핀 보라색 맥문동 꽃이 우리를 유혹한다.
울창한 소나무 덕분에 한여름에도 시원한 그늘이 있다.
각자가 집에서 준비해 온 간식과 식사를 곁들여 소주잔도 부딪치며 흥을 돋우어 본다. 건강, 시국담, 옛 친구들 소식 등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오후 늦은 시간이 되면 자리에서 일어선다.
우리가 귀가하는 시간 우이동 경전철은 늘 한가한 편이다.
자리를 잡고 앉아 지그시 눈을 감으니 옛날 고향 땅의 아름답고 정답던 풍경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옛날부터 소나무는 내게 그리움의 상징이었다. 어린 시절 집을 나서며 고개를 들면 소나무가 총총한 우리 집 안산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산에는 언제나 늘푸른 소나나무들이 온 산을 덮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추석 송편에 쓸 솔잎을 따고, 땔감이 부족하던 시절 나무 밑에 쌓인 솔잎을 긁어모아 연료로 쓰는 걸 보았다.
십여 리가 넘는 초등학교를 가는 산길에는 내 키보다 큰 소나무들이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었다. 소나무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은 등하교 길에 하루 두 번 걷는 길이었다. 마치 터널 속을 걷는 기분같이 재미도 있었다.
어릴 적에 친구 집 앞에 갔더니 새끼줄에 솔잎을 듬성듬성 끼운 금줄이 사립문에 걸려 있었다. 그 집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어른들 말씀에 겁이 나기도 했었다. 새 생명의 탄생을 알리고 집안 출입을 통제하는 신호였던 것이다.
내게 영원히 잊히지 않는 추억은 뒷동산 노송나무 가지에 걸려 있던 둥근 달이다. 휘영청 둥근 보름달 밤에 노송나무 아래 잔디밭에는 청춘 남녀가 앉아 있었다. 첫사랑 그녀와 손을 잡고 밤 가는 줄 모르며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던 곳이다.
우리 농촌의 역사도 소나무의 성쇠(盛衰)와 함께 바뀐 것 같다.
지금은 고향에 돌아 와도 푸른 소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뒷동산 노송은 간 곳이 없고 반갑잖은 비닐하우스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시태발이 드나들던 오솔길은 포장도로가 되어 자동차 행렬이 이어진다. 달빛에 반짝이던 아름답던 초가지붕들도 영원히 사라진 것 같다.
옛 고향의 소나무 숲과 노송나무 가지에 걸려 있던 둥근 보름달은 내 청춘 낭만의 추억이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북한산과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소나무 군락을 원 없이 만날 수 있는 곳, 솔잎공원은 휴식과 사색을 할 수 있는 노년의 낙원인 것 같다.
첫댓글 한 시대의 주역이셨던 주름진 얼굴이 떠오릅니다.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