介丹
간편복만 입던 사람이 어쩌다가 정장 차림을 하면 표가 난다. 넥타이며 셔츠며 재킷 같은 것이 고급이더라도 풍기는 분위기가 어색한 것은 정장이 몸에 익는 데는 세월을 요하기 때문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정장만 하던 사람이 어쩌다 간편복을 입으면 어색해 보인다. 청바지가 몸에 익는 데도 세월을 요한다. 옷차림도 공부다.
정장이 불편할 때가 참 많다. 택배 기사가 아흔이 넘은 늙은이의 이름을 삼이웃이 떠나가도록 고함을 질러 댈 때에는 귀에 쥐가 난다. 아무나 불러도 무난하고 미소를 짓게 하는 호칭은 없을까? 간편복 같은 호칭이 필요했다.
두 글자로 된 별칭을 짓기로 하고 아래 글자부터 정하기로 했다. 왜 아래부턴가? 초목을 본떴다. 자고급금에 세상만사가 아래로부터 시작하지 않고 정상(正常)을 유지한 적이 있었던가? 아래 글자 곧 뿌리를 丹으로 했다. 철학박사라는 나의 학위의 시원인 也山 사부님이 하사하신 丹岡이란 호를 버린 것이 죄송해서 늦게나마 참회의 심정으로 丹을 다시 취했다.
丹의 뜻은 몇 가지가 있지만 ‘단약(丹藥)’이란 뜻을 선택한다. 단약은 후대에 와서는 약이 아니라 ‘운동’이란 뜻으로 바뀌었다.
위의 글자는 介로 한다. 介의 뜻도 여러 가지다. 『주역』의 ‘介于石’에서 업어왔다. 장개석(蔣介石)의 개석은 여기에서 취했지 싶다. 介于石에서 자고로 학자들은 자갈밭에 소처럼 쩔쩔 맨다. 견강부회가 고작이다. 나는 다산을 따라 介를 間厠으로 해석한다. ‘뒤섞이다’란 뜻이다. 다산을 따른 것은 여기까지.
『역』은 변화의 학문이다. 만유가 변화하기 때문이다. 間厠 두 글자를 자리를 바꾸면 厠間이다. 자리를 바꾸는 변화를『역』에서는 교역(交易)이라 한다. 厠間은 間厠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뒤섞여 홍몽세계가 아니던가.
두 자를 합하여 介丹으로 했다. 介는 측간이요 丹은 운동이니 介丹은 '똥 누는 운동'이다. 이 운동은 쉬울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어서 길 때도 있고 짧을 때도 있다. 介의 음은 길고 丹의 음은 짧기 때문이다. 이 운동을 규칙적으로 잘해야 건강하다. 측간에 앉아 빨부리를 입에 물든지 아니면 가만히 눈을 감아 보게나, 성리학의 주일무적(注一無適), 그런 공부가 따로 없으이.
이것을 호나 자라고 하자니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뭐 같아 보여서 싫고 필명이나 예명이라고 하자니 뭘 드러내려는 것 같아 싫다. 두 가지가 다 옷으로 치면 정장이다. 퇴직하고부터 나는 정장을 한 적이 거의 없다. 동쪽 바위에 팔았다고 ‘동바우’라고 하는 것처럼, 딸이 많은 집의 ‘꼭지’라는 이름처럼 ‘공주’라는 이름처럼 그 사람의 특징 같은 것에 착안하여 남들이 더러는 이름 대신에, 더러는 애칭으로, 더러는 조롱조로 부르는 별명쯤으로 인식되면 간편복 같아서 좋겠다.
요즘 들어 몸이 한결 가벼워지고 글구멍이 툭 터진 것 같다. 매미처럼, 귀뚜라미처럼 노염을 비웃으며 시를 토하고 수필을 음미한다. 아마도 단약 곧 운동 덕분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내 글은 한갓 매미 소리며 귀뚜라미 소린지도 모른다. 이의호(已矣乎)라 철이 바뀌면 들리지 않을 그 소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