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4. 5. 16. 목요일.
햇볕은 났으나 기온은 무척이나 내려가서 나는 추위를 느꼈다.
요즘 꽃가루 알레르기 현상으로 콧물이 줄줄 흘리고, 이따금씩 재치기를 심하게 한다.
무척이나 지치고, 피곤해서, 몸이 늘어진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떨군 채 잠이 들고....
<한국 국보문학카페> '등단 시인방'에 초포 황규환 님의 시가 올랐다.
청령포를 찿아
젊어 감돌던 설움은
깎아지른 절벽에 새겨두고
망향 탑에 쌓은 그리움이
원망보다 절절하게 조여 오는 세월
.....
내가 댓글 달고는 퍼서 여기에 올려서 내 글감으로 삼는다.
댓글1
시가 끝난 하단에 청령포 위치를 보충설명하면 더욱 좋을 터
* 청령포(淸泠浦) :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에 위치
남쪽은 기암절벽으로 막혀 있고 동 · 북 · 서쪽은 남한강 상류의 지류인 서강(西江)이 곡류하고 있어 배로 강을 건너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특수한 지형.
이곳은 1457년(세조 3) 세조(世祖)에 의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된 단종의 유배지로, 그 해 여름 홍수로 서강이 범람하여 처소를 영월 객사인 관풍헌(觀風軒)으로 옮기기 전까지 단종이 머물던 곳.
조선조 제6대왕 단종(세종대왕의 손자(1441. 8. ~ 1457. 11.)이 숙부 수양대군한테 왕위를 빼앗기고
이곳으로 유배되었으나 홍수가 나는 바람에 영월 관풍정(客舍 객사)으로 옮겨졌다가 이곳에서 살해당했다.
불과 만나이 16살.
2023. 7. 31. 이곳에 다시 방문했던 기억이 납니다.
엄지 척! 합니다.
댓글 2
단종은 광풍헌에서 화살줄로 목 졸려서 살해당한 뒤 동강에 버려졌는데 영월의 호장이었던 엄홍도가 시신을 몰래 수습하여 산자락에 암장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묘의 위치조차 알 수 없었는데 100여 년이 지난 중종조에 당시 영월군수 박충원이 묘를 찾아 묘역을 정비하였고,
250여 년이 지난 숙종조에 와서야 비로소 단종으로 복위되어 무덤도 장릉이란 능호를 갖게 된 것이다.
댓글 3
금부도사 왕방연이 사약을 받들고 영월에 이르러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으니, 나장이 시각이 늦어진다고 발을 굴렀다.
도사가 하는 수 없이 들어가 뜰 가운데 엎드려 있으니, 단종이 익선관과 곤룡포를 갖추고 나와서 온 까닭을 물었으나, 도사가 대답을 못하였다.
통인 하나가 항상 노산군을 모시고 있었는데, 스스로 할 것을 자청하고
활줄에 긴 노끈을 이어서, 앉은 좌석 뒤의 창문으로 그 끈을 잡아당기니 아홉 구멍에서 피가 흘러 즉사하였다.
살해한 뒤 시체는 강물에 내던지고.....
추가 자료.
<국보문학카페> '세상사는 이야기방'에는 단종애사에 관한 글이 있다
2236번 '역사는 강자가 고쳐 쓴다' (2019. 8. 8. 수록)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나가야 하며, 중앙에 있는 소나무숲 뒷편에 유배지가 있다.
천하를 호령하던 왕이지만 세조는 단종이 이 공간 안에서만 생활하도록 행동 범위를 제한했
다.
시신이 청령포 물속에 떠 있는 것을 평소부터 충성심이 강했던 영월호장 엄홍도가 몰래 수습해 암장한 뒤 도망쳤다.
훗날 단종의 시신을 찿아내서 현재의 장릉에 안장했다.
장릉은 세자 묘의 형식을 따르고 있고, 석물도 작고 간단하게 만들어진 후릉을 따랐다.
* 오래전 강원도 출신의 직장 동료의 안내로 영월 장릉, 동강 등을 견학한 적이 있었다.
사진은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용서해 주실 게다.
사진에 마우스를 대고 누르면 사진이 크게 보임
2024. 5. 16. 목요일.
"권력이 된다면, 돈이 된다면 그 어떤 짓도 저지르는 짐승이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