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마지막 월요일. 한국은 석가탄신일 연휴일 , 여기는 메모리얼데이 연휴입니다. 우리로 치면 현충일 정도라고 할까요? 그러나 현충일이 '호국 영령'이라는 이름으로 선열들의 희생을 뭉뚱그려서 추모하는 측면이 있다고 한다면, 미국의 메모리얼 데이는 조금 더 구체적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전몰 장병을 기리는 날로서의 메모리얼 데이의 시작은 남북전쟁때부터라고 합니다. 원래 남북전쟁의 북군들의 묘에 꽃을 바치며 이것을 '데코레이션 데이'라는 이름으로 기념했고, 그것이 점차 남북군 가리지 않고 함께 전몰장병에 대해 추모의 념을 바치는 날로서 메모리얼 데이의 의미가 바뀌었고, 나중엔 미국 역사에 있었던 어떤 전쟁에서든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한 날로서 그 의미가 바뀌었습니다. 특히 1968년 연방의회가 5월 마지막 월요일을 메모리얼 데이로 기념할 것을 법으로 규정하면서 메모리얼데이의 위상은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그런데, 메모리얼 데이와 비슷하지만, 전쟁에 참전했고 생존한 이들을 위한 날이 '재향군인의 날'이라고 번역되는 '베터런스 데이' 입니다. 이날은 미국에서는 몇 안 되는 날짜가 지정되어 있는 공휴일로서, 11월 11일에 이 날을 기념합니다. 또 '대통령의 날'이나 '마틴 루터 킹 데이'같은 날들이 미국 사회를 위해 희생하고 공헌한 이들을 기리는 날들이지요. 보다 구체적으로 누구를, 또 무엇을 기념할지에 대해 비교적 명확한 것이지요.
물론, 이 날의 의미가 서머 베케이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때여서, 야외 활동에 딱 적합한 시기입니다. 그러다 보니 바베큐를 하거나 짧은 여행을 하는 날로서 사람들이 활용하고, 그러다보니 메모리얼 데이는 그 전후로 기름값이 달라지는 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행락철이라고 부르는 시즌도 이 메모리얼데이부터 시작해 9월 첫째 월요일의 '레이버 데이'연휴까지이고, 이 때는 숙박비나 항공료도 이른바 '성수기 요금'이 적용됩니다. 메모리얼 데이의 이유가 퇴색됐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의미들이 이 날에 겹쳐있기 때문일겁니다.
이제 이렇게 5월을 보내고 나면, 6월 말 쯤엔 각급 학교의 방학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나서 긴 여름방학이 지나 9월이 되면 레이버데이가 오고, 그리고 나면 각급학교는 신학기로서 개강하게 됩니다. 그때쯤이면 천천히 대기에도 차분함이 깃들기 시작할 때지요. 초봄의 이상한 싱숭생숭한 생동감, 그리고 여름의 뜨거운 불볕더위 아래서의 나른함 같은 것이 아닌 차분함.
여름이 시작되기 전의 마지막 봄의 모습이 눈에 밟히는 때입니다. 뭐 특별히 메모리얼데이 바비큐를 하는 것도 아니고, 어딜 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하루 몸을 쉬게 해 줄 뿐입니다. 아, 부모님 댁 잔디 관리 정도는 해 드려야겠지요. 우리집도 손볼 것들도 많고. 그렇지만 미국이 일으킨 그 수많은 전쟁들에서 죽어간 사람들을 생각하며, 평화란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것인지, 그리고 그 평화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는지 정도는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정도의 의미라도 챙기는, 그런 메모리얼 데이이고 싶습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