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전화가 왔는데, 전남 지역의 한정식 상차림을 주제로 한다는 거다. 내가 그랬지. '한정식 앞세워서 못 나갈 텐데? 일단 와!' 카메라 앞에 두고 한정식의 유래에 대해 두 시간 떠들었다. 조선에는 아예 없던 음식이고, 일제강점기 때 기생집에서 만들어진 음식이고, '정식'이라는 말은 '료칸 음식'에 한자 붙은 거고, 한정식이라는 말은 1950년대에 생기고, 1960년대에 세금 문제 때문에 기생집이 간판을 바꿔 달고, 룸살롱하고의 경쟁에서 져서 없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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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국인의 밥상>을 보는데, '조선의 궁중 음식' '반가의 상차림' 이런 식으로 왜곡된 정보가 나가는 걸 막은 거지 않나.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KBS는 나 출연도 안 시켜주고 말이야!"
저게 사실일까?
열구자탕 (신선로)
열구자탕은 화로 모양의 신선로(神仙爐)에 여러 가지 어육(魚肉)과 채소를 넣어 끓인 음식으로 다채로운 색까을 띠고 있으며, 맛이 좋다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열구자탕을 소개한 책자들은 『소문사설(謏聞事說)』,『송남잡지(松南雜識)』, 『규합총서(閨閤叢書)』, 『시의전서(是議全書)』·『해동죽지(海東竹枝)』,『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책 외에도 의궤나 등록으로는 1765년(영조 41)의 행사를 기록한 『(乙酉)受爵儀軌』과 『경현당수작시등록(景賢堂受爵時謄錄)』등을 들 수 있으며, 이후 『園幸乙卯整理儀軌』, 『內外進宴謄錄』,『高宗壬寅進宴儀軌』 등 다수의 의궤에도 등장한다.
열구자탕의 이치는 수화기제(水火旣濟)의 이치를 이용하여 화로를 만든 것으로, 여러 가지 채소를 한데 넣어 익혀 먹는 것이다. 이를 만든 이가 신선이 되어 속세를 떠나간 뒤에 세상 사람들이 그 화로를 신선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열구자탕이 등장하는 빠른 의궤의 기록은 1765년(영조 41)에 등장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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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평채
탕평채(蕩平菜)는 청포묵과 쇠고기, 미나리, 숙주, 달걀 등이 들어가 영양소도 고르게 들어있고 오색의 고명이 화려하게 어우러진 음식이다. ‘탕평채(蕩平菜)’라는 이름은 어느 쪽에도 치우침 없이 고르다는 뜻을 지닌 ‘탕탕평평(蕩蕩平平)’이란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영조 때 탕평책을 논하는 자리의 음식상에 처음으로 등장하였는데「명물기략(名物紀略, 1870년경)」에 보면 “사색인(四色人)의 탕평(蕩平 :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다는 뜻)"을 바라는 마음에서 갖은 재료를 고루 섞은 묵나물에 탕평채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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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름적 (화양적)
- 조선시대 의궤 16책에 수록되어 있는 궁중음식 중 화양적(花陽炙)에 대하여 문헌 고찰하였다. 황적과 잡적이 어우러진 화양적이 35.2%로 가장 높았으며, 황적화양적 16.7%, 생복화양적(生鰒花陽炙),과 락제화양적(絡蹄花陽炙) 이 각각 11.1%, 어화양적(魚花陽炙) 9.3%, 동과화양적(冬苽花陽炙) 5.6%, 천엽화양적과 양화양적(羘花陽炙)이 각각 3.7%, 계란화양적과 압란화양적이 각각 1.8% 순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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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름이와 화양적을 누름적이라 하였다
- 조선왕조 궁중음식 중 화양적의 종류 조선왕조 궁중음식에 나타난 화양적의 종류는 <Table 2>와 같다.
화양적의 종류에는 표기에 따라 화양적, 양색화양적, 각색화양적, 양(羘: 소의 위)화양적, 압란(鴨卵: 오리 알)화양적, 락제(絡蹄: 낙지)화양적, 천엽화양적, 어 (魚: 물고기)화양적, 생복화양적, 동과(冬瓜)화양적이 있었다.
화양적(花陽炙)은 의궤에 수록된 표기에 따라 알아 보았다. 「기해 진연의궤(己亥 進宴儀軌)」(1719년) 의 생복어음적 등 5종, 「을유 수작의궤(乙酉 受爵儀 軌)」(1765년)의 색어음적 1종, 「원행을묘정리의 궤」(1795)의 화양적(花陽炙) 등 2종, 「정해 정례의 궤(丁亥 整礼儀軌)」(1827)의 화양적(花陽炙) 등 3 종, 「무자 진작의궤(戊子 進爵儀軌)」(1828년)의 화 양적(花陽炙) 등 2종, 「기축 진찬의궤(己丑 進饌儀軌)」(1829년)의 각색화양적(各色花陽炙) 등 7종, 「무신 진찬의궤(戊申 進饌儀軌)」(1848년)의 화양 적(花陽炙) 등 2종, 「무진 진찬의궤(戊辰 進饌儀 軌)」(1868년)의 화양적(花陽炙) 등 3종, 「계유 진 작의궤(癸酉 進爵儀軌)」(1873년)의 화양적(花陽炙) 등 2종. 「정축 진찬의궤(丁丑 進饌儀軌)」(1877년) 의 화양적(花陽炙) 등 2종, 「정해 진찬의궤(丁亥 進饌 儀軌)」(1887년)의 화양적(花陽炙) 등 2종, 「임진 진찬의궤(壬辰 進饌儀軌)」(1892년)의 화양적(花陽 炙) 등 6종, 「신축 진찬의궤(辛丑 進饌儀軌)」(1901 년 5월)의 화양적(花陽炙) 등 2종, 「신축 진연의궤 (辛丑 進宴儀軌)」(1901년 7월)의 화양적(花陽炙) 등 6종, 「임인 진찬의궤(壬寅 進饌儀軌)」(1902년 4월) 의 각색화양적(各色花陽炙) 등 4종, 「임인 진연의궤 (壬寅 進宴儀軌)」(1902년 11월)의 각색화양적(各色 花陽炙) 등 5종, 총 54종이 소개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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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enBlue 기인것도 아니라고 얘기를 하시니까 그렇게 보여서요
@베켄바워 "한정식의 유래에 대해 두 시간 떠들었다. 조선에는 아예 없던 음식이고, 일제강점기 때 기생집에서 만들어진 음식"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이걸 "상차림 형식"으로 받아들일 사람은 없을 것 같아요 지금 여기서 댓글 다는 몇몇분들 빼면 ㅋ
@베켄바워 남들이 모두 틀렸다고 하면 '아 내가 틀린 건가?' 생각해볼 줄도 아셔야지 할말 없으니 모두를 지지자로 모는 게 정상적인 토론입니까?
@베켄바워 그럼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시던지요.
@DeepenBlue ┗ Renault 5 Turbo II 19:10
베켄바워 아마 한정식 음식중에 조선에는 없는 음식도 있나보네요. 말을 하다보면 실수를 할 수도 있는거고 그걸 글로 옮길때 실수를 할 수도 있는거라서 글을 부분적인 부분에 치중하기보다는 전체적으로 봐야 오해를 안할 거 같아요. 설마 황교익씨가 신선로라는 음식의 유래를 몰라서 없다고 했을리는 없으니깐요.
@DeepenBlue 윗세오름 19:13
베켄바워 황교익씨가 그걸 몰랐을리도 없고, 일부러 왜곡할 사람도 아니라고 보기에
윗분 말대로 말을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었던거 같네요.
황교익씨가 직접 쓴 글도 아니고 기자가 황교익씨를 인터뷰한후 재편집한 기사인데, 그 과정에서 충분히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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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분도 황교익의 발언이 형식이 아닌 음식인 것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이는데요? 단지 차이가 있다면 그걸 기자가 옮기는 과정에서 실수한 것으로 보는거구요
@베켄바워 님 이런건 소신이 아니고 고집이라는 겁니다... 혹시 수능 언어영억 등급 상태가...??
@베켄바워 거 참 ㅋㅋㅋ 굉장히 열성적이시네
황교익한테 뚜들겨 맞았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황교익 얘기는 오늘 처음하는거거든요. 그렇게 말하는 님은 황교익 본인이세요?
@베켄바워 오늘 처음 하는지는 제가 알바 아니고요. 그냥 안타까워서요. 쉐도우 복싱 열심히 하세요!
정 황교익씨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이해가 안가시면 여기서 쉐도우 복싱하시지 마시고 황교익씨 네이버 블로그나 페이스북으로 물어보시는게 좋을 것 같네요
갠적으론 언제 어디서 만들어졌든 상관없는데
님 적당히 해요 괜히 훌륭한 선수 닉네임갖고 혼자 입에 거품물고 논리도 안되면서 멀쩡한 다른 사람들보고 지지자니 뭐니 헛소리하지말고^^
오해의 소지가 있을 법하네요. 탕평채같은 음식은 조선시대에도 있었는데... 독상문화였던 건 맞지만요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황교익씨가 무슨 말 하는지 분명히 이해가 가는데
글쓴이 독해수준이 의심된다
탕평채가 조선시대 수라상에 오른 음식이라는건 대장금만봐도 알수있는데
학문뽕맞은 학사의 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