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지명설화》44편
두 마리 소를 묻은 골짜기, 밀양 우곡
옛날 밀양의 한 마을에 전염병이 돌아 소들이 모두 죽었다.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마을 사람들은 굶주림에 허덕였다. 어느 해, 소 두 마리가 마을로 들어왔다. 사람들은 기뻐하며 돌아가면서 소를 부렸다. 하지만 소를 너무 심하게 부린 탓에 과로한 소 두 마리가 다 죽고 말았다. 그제야 잘못을 뉘우친 마을 사람들은 소의 죽음을 슬퍼하며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이후 마을에는 해마다 풍년이 들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마을은 소를 묻은 언덕이라는 뜻으로 우곡이라 불렸다.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우곡리(牛谷里)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촌 마을이다. 고지대의 좁은 경작지는 화전민들이 개척했다고 한다. 자연마을로는 염동, 덕촌 마을이 있다. ‘염동’은 옛날에 염씨성(廉氏姓)을 가진 사람이 들어와 화전을 일구고 살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 ‘덕촌’은 마을 사람들이 도덕을 받들며 질서 있고 평화롭게 살아가야 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우곡리’즉 ‘쇠골’이라는 행정지명에는 소에 얽힌 이야기가 전한다.
조선 영조 때의 일이다. 한번은 무서운 전염병이 돌아 온 마을의 소들이 모두 죽었다. 소를 살리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온갖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시름시름 죽어가는 소들을 고칠 수가 없었다. 털썩털썩 쓰러지는 소들을 그냥 바라볼 수밖에 뾰족한 도리가 없었다. 문제는 소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밭이나 논을 사람 힘만으로 갈려고 하니 제대로 될 까닭이 없었다. 소출이 형편없어지자 마을 사람들의 살림살이도 나날이 쪼그라들었다. 굶주려 죽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로 많아졌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마을 어귀에 소 두 마리가 나타났다. 털빛이 자르르하고 몸피가 단단한 건강한 소들이었다. “소다. 소가 나타났다!” 마을 사람들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아이고, 이제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있겠네.” “그러게 말일세. 죽으란 법은 없네. 죽으란 법은 없어.” 마을 사람들은 누구부터 소를 부릴지를 가지고 밤새 의논한 끝에 마침내 순서를 정할 수 있었다. 농사는 때를 맞춰 지어야 하는 까닭에 한시가 급했다. 마을 사람들은 하루도 쉬지 않고 소를 부렸다. “아니 이 소들이 왜 이리 힘을 못 쓰나. 이랴! 이랴!” 힘에 부쳐 지친 소들을 다그쳐가며 억지로 밭을 갈았다.
소들은 하루하루 눈에 띄게 지쳐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밭을 갈던 소 두 마리가 쓰러져 그만 죽고 말았다. 그제야 마을 사람들은 너무 심하게 소를 부린 것을 후회했다. “우리 욕심에 귀한 소들을 잡았네.” “그러게나. 우리가 너무 심했어.” 마을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다. 그들은 마을 언덕 양지바른 곳에 소 두 마리를 잘 묻어주고 자신들을 위해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다가 떠난 그 넋을 진심을 다해 위로해주었다. 그 후, 해마다 이 마을에는 풍년이 들어 잘살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모두가 두 마리 소 덕분이라고 생각해서 더욱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이 후 이 마을은 ‘소를 묻은 언덕’이라는 뜻으로 ‘우곡(牛谷)’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우곡’이라는 지명에 얽힌 다른 의견으로는 소가 많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우곡과 이웃한 골짜기 이름은 ‘밤골’에서 연유한 율곡(栗谷)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냇물로 파여진 골짜기라 위에 무엇이 존재하느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밤나무가 많으면 율곡, 갈대가 무성하면 노곡(蘆谷), 소가 많으면 우곡이 된다고 이해한다.
참고자료
웹페이지
“밀양시 삼랑진읍 명칭유래”, 밀양시
웹페이지
두산백과, "우곡리", 네이버 지식백과
웹페이지
땅 이름 점의 미학, "우곡", 네이버 지식백과
지방문화원
밀양문화원 GO
집필자
박은영
첫댓글 밀야 우곡 잘보고 갑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두 마리 소를 묻은 골짜기, 밀양 우곡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