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왜, 내 말이 믿어지지 않아요?" 범경위는 얼마간 지친 듯한 미소를 입가에 띄우고 있었다. "그럼, 우리 눈 앞에 펼쳐진 엄효진의 죽음은 뭐라 설명할 겁니까?" 강민은 항변하는 어조로 반문했다. 그의 목숨을 구 해주려는 듯한 범경위의 말이었지만 강민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 같은 낯빛을 짓고 있었다. "그 시각에 그 장소에 있었던 다른 인물에 의해 사 살되었어요. 엄효진 씨는......" "그게 정말입니까?" "그곳엔 제 3의 사나이가 잠복하고 있었어요." "으음." "총의 구경이 다르고 사창(射創)의 모양이 달라요." "구경이 다르고 사창이 다르다구요?" "내 말은 엄효진 씨는 당신 총에 맞아 죽은 것이 아 니고, 다른 사람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는 얘깁니다." "흐음." "당신의 총은 빗나갔어요." "설마......" "아시겠소? 살인자는...... M이라고 해야 할까...... 엄 연히 따로 있었던 게요. 엄효진이 아닌...... 당신은 헛 짚었던 거요." "맙소사!" 그후 범경위의 설명은 이러했다. 엄효진의 미간을 꿰뚫은 실탄은 9밀리의 파라베람탄 으로 부로우닝 하이파워에나 사용되는 탄알이라는 것 이다. 그러니 효진은 M이 즐겨 사용하는 부로우닝 권 총에 의해 사살되었다는 이야기다. "강민씨, 당신의 권총은 38구경의 소형 리볼바요. 총 신이 짧은......" 그러니 구경이 다르고 탄알의 크기가 다른 것이다. "사창의 모양을 살펴도, 강민씨, 당신의 진술과 달라 요." 강민은 효진을 30미터 거리에서 쏘았다고 했다. 그 런데 사창의 모양을 살펴보니 근 70미터 거리에서 쏜 것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사거리에 따라 사창의 모양 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가 당신 등 뒤에서 당신 어깨너머로 효진씨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던 거요. 소음기라도 부 착했을 테지만 말아요." "흐음." "이젠 이해하시겠소? 그곳엔 제 3의 사나이가 있었 다는 내 말을 말이요." 이젠 분명하다. 그때 누군가가 지하주차장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 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강민의 후방에서 전방의 효진 을 향해 총을 쏜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일까? 무섭도록 놀라운 사격솜씨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보나마나 고도로 훈련된 1급 킬러일 것이다. 그가 바 로 황박사도 곽만길씨고 윤세화도 살해한 인물이다. 그리고 마동권도 말이다. 얼마나 능력이 비상하면 그 럴 수가 있을까. 결코 엄효진의 솜씨일 수는 없다. 강민의 시야에 한순간 재콜 같은 사나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핏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창백한 모습의, 그 리고 눈의 초점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무표정한 모습 의 사나이의 얼굴이 말이다. "문제는 말예요......" 범경위가 주섬주섬 말을 이었다. "살인자가 왜 당신을 해치지 않고 하필이면 엄효진 을 해쳤느냐 하는 점이오. 살인자는 바로 당신 등 뒤 에 있었거든요. 당신도 죽음의 카드를 받은 사람이고 말예요." 글세, 왜 그랬을까? 강민 그를 살해하기란 식은 죽 먹기보다 더 쉬웠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엄효진은 또 무엇 때문에 살인자의 표적이 되었느냐하는 점이오." 그렇다. 엄효진이 살인자의 표적이 되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만은 이 일련의 범죄에서 순진무구한 입장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는 억울한 입장의 말하자 면 선의의 피해자일 뿐이다. 어떻게 된 걸까? 범경위가 지닌 두 가지 의문은 강민의 마음 속에서 도 떠나지 않았다. 강민은 며칠 후 석방되었다. 그 사이 얼마간 경찰에 시달리긴 했으나 그는 엄밀 히 말해서 엄효진의 목숨을 앗은 살인자가 아니었다. 그는 다만 불법무기휴대로 처벌받으면 될 것이었다. 그가 아쉬워한 것은 그의 소형 리볼바를 압수당한 사 실이었다. 아직은 아스팔트의 도살자가 그의 주변에서 숨을 쉬고 있는 처지인 것이다. 엄효진의 장례식은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그의 장 례식도 그의 형의 장례방식대로 진행되었다. 벽제에서 화장되었으며 한강 상류의 어느 이름 모를 강변에서 흩뿌려졌다. 효진이 이 세상에 남긴 것이라고는 그가 애용하던 차뿐이었다. 그 주인 잃은 메르세데스가 그 자태를 드 러낼수록 그 허망함도 컸다. 효진의 장례식엔 그의 연인들도 모습을 나타냈다. 한결같이 최고급 여성들로 보이는 그녀들의 모습은 사 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검은 상복을 걸쳤지만 손가락 에선 큼직한 다이아반지가 반짝였다. 그녀들은 울지는 않았다. 엊그제 효진과의 결합을 다짐했던 조소아가 그녀의 친구 정예선과 함께 나타나 주었다. 그녀의 얼굴에 짙 게 드리워진 허무의 그림자 뒤에는 일종의 해방감 같 은 것도 흐르고 있었다. '시바의 여왕'의 여주인 현수정도 모습을 보였다. 그 녀는 내내 높은 하늘의 구름의 흐름만을 지켜보고 있 었다. 그녀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었다. 효진을 위해 눈물을 흘린 여인은 엄채영뿐이었다. 남편 황박사가 죽었을 당시에 그녀는 울지 않았다. 하 긴 그땐 백난옥이라는 이름의 여인이 울었었다. 장례를 지켜보며 강민의 마음을 지배한 생각은 오직 하나였다. 그것은 효진은 무엇 때문에 살인자의 표적 이 되었느냐 하는 생각이었다. 살인자의 표적은 한결 같이 민하경에 의해 포섭된 공모자들이었다. 황박사가 그러했고 곽만길 씨에 윤세화도 그러했다. 이렇듯 생각이 미치자 강민을 강하게 일깨우는 뭔가 가 있었다. 마치 칠흑의 어둠 속에서 갑자기 울리는 천둥소리만큼이나 그의 귀청을 때렸다. 엄효진이 혹시 하경의 공모자는 아니었을까? 설마....... 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 효진이야말로 하경이 포섭한 마지막 공모자 인 것이다. 이것만이 모든 수수께끼에 대한 유일한 해답이다. 그러면 그렇지, 효진이 그토록 알맞은 타이밍에 고 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엄사장이 죽었을 때 효진은 그의 형의 시신이 벽제 화장터에 당도했을 즈음에서야 비로소 경찰에 고발했 었다. 아니 7번화구에 불이 지펴진 다음에야 고발했던 것이다. 그는 시신이 안치된 3일간을 허송했었다. 남다 른 치밀한 계산이 없고서야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 효진은 결코 하경의 적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하경의 동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효진의 외롭게만 보였던 그 싸움도 하나의 연극에 불과했고, 그들의 무섭도록 치열했던 싸움도 하나의 희극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의 피도 눈 물도 없는 비정한 연출에 강민은 잠시 어안이 벙벙해 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효진은 무엇 때문에 그의 형을 독살하는 일 에 그토록 쉽게 한 몫 끼게 되었을까? '햄릿'에 등장하는 덴마크 왕처럼 그의 형을 독살함 으로써 왕관과 함께 왕비마저 쟁취할 수 있다고 믿을 탓일까? 아니면 조소아라는 미모의 여류작가를 어떤 수를 써 서라도 손에 넣기 위해선 그의 형이 독배를 드는 일을 거들어야 했을까? 강민은 갑자기 깔깔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토록 어질게만 보였던 효진이 또 하나의 마스크를 지닐 줄이야. 그렇게 깊어만 보이던 형제지간의 우애 가 한갖 농담에 지나지 않을 줄이야. 어쨌거나 이것만은 분명하다. 효진의 냉혹하고도 절묘한 연출이 있었기에 하경은 그 당시 엄씨 일가와 사직 당국의 의혹의 손길에서 벗 어날 수가 있었던 것이다. 효진의 등장이야말로 바로 극적 등장이었다. 그렇다면 살인자는 현명하게도 엄효진이 하경의 공 모자라는 사실을 간파했던 것이다. 그러니 그의 미간 에 방아쇠를 당길 수밖에! 효진은 아마도 그가 간절히 소망하던 그러나 그의 형이 반대하던 호텔 건립사업에 전력투구했을 것이었 다. 그리고 제1그룹의 장회장의 여자라는 조소아도 쟁 취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걸 쟁취하기 일 보 직전에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데 효진은 또 무엇 때문에 강민 그를 저격하려 했을까? 효진은 무기도 준비했으며 그를 꾸준히 미행했었다. 그것은 강민이 효진을 까닭없이 의심했던 것처럼 효 진도 강민을 의심했던 것이다. 죄많은 인생들이 지니 기 마련인 의혹의 심지가 자라고 있었다고나 할까. 일 단 목적을 달성한 동지끼리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시작된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흔히 있는 일이 아니든 가. 제2라운드로 말이다. 그나저나 살인자는 누구일까? M의 이름으로 하경의 공모자들에게 차례차례 사형 을 집행하는 살인자의 참다운 정체가 궁금했다. 마동권은 벌써 죽었다. 마동권을 가장한 것으로 알았던 엄효진도 죽었다. 조직의 살인지령자인 진웅도 죽었고, 조직의 1급킬 러인 모건도 죽었다. 황박사도 죽었고 곽만길씨도 죽었다. 그렇다면 이젠 누가 또 남는 걸까? 잠시 강민은 생각에 잠겼다. 모든 불가능성이 하나하나 지워져 갔을 때 남아 있 는 것이 아무리 불가능하게 보여도 그것이 진실임에 틀림없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아무리 증명할 수 없는 것일지라도 마지막 으로 남는 사람은 누구일까? 구태여 꼽으라면 유일한 인물이 있다. 바로 엄대진인 것이다. 그는 그의 아내와 공모자들에 의해서, 그의 동생까 지 포함해서, 독살된 것이다. 그런데 그는 정말 죽는 것일까? 혹시 그가 살아 있는 건 아닐까? 그의 죽음을 지켜본 시간은 극히 짧다. 그게 아마 10초쯤 되었을까? 그래, 엄대진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지도 모른다. 도 스 그의 시신이 이 대명천지(大明天地)에 없지를 아니 한가. 그는 잠시 혼절했을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의 버 섯요리에 뿌린 비소의 양이 적었을는지도 모를 일이 다. 무엇보다도 그가 죽은 모습을 본 것은 일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도 한밤중의 형광등 불빛 아래서 다. 이 일련의 암살극이 엄대진의 복수극이라면 말이 된 다. 그의 원한은 그의 동생마저 살해할 만큼 골수에 사 무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두가 상상의 비약은 아닐까? 그나저나 강렬한 영상으로 남아 그의 망막에서 지워 지지 안는 광경은 윤세화가 살해되는 광경이었다. 그 리고 부서진 창가의 베란다에서 그를 가만히 쳐다보던 살인자의 모습이었다. 그는 이른바 밀리터리 룩 차림 이었다. 특히 그 유난스러운 군용파카 차림이 왠지 모 르게 그의 신경을 거슬렀다. 어쩐지 낯이 설지 않은 모습인 것이다. 야전파카 차림의 암살자! 그는 과연 누구일까? 벽제 화장터에서 돌아오는 차 속에서 하경이 처음으 로 훌쩍였다. 그녀도 이 일련의 어기찬 사태에 마음 아파하는 듯이 보였다. 그녀가 예상했던 이상으로 사 태는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는 것이다. 그 사이 입을 앙다물고 감내하기만 하던 그녀의 무쇠 같은 심성도 무너지는 듯싶었다. 그들은 얼마 후 서울로 돌아왔다. 하늘은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거리의 나트륨 등도 불 을 밝히기 시작했다. 밤의 네온싸인도 생동감을 찾고 있었다. 죽음의 거리에서 생명 있는 도시로 돌아온 느 낌이었다. "하경이, 당신한테 한 가지만 묻겠소." 강민은 옆 좌석의 하경에게 말했다. 하경은 고개를 돌려, 뭣 말예요, 하는 낯빛으로 강민 을 바라볼 뿐이다. 그녀는 지금은 훌쩍이지 않았다. "엄효진도 당신의 공모자요?" 강민의 말투는 얼마간 퉁명스러웠다. 막상 하경은 그에게 비밀이 너무 많았다. "그렇지가 않아요." 하경은 한마디로 부인했다. 그러나 완강하지는 않았 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포섭한 공모자로 보이는데...... 엄효진은......" "그건 지나친 생각이에요." "그럴까?" "그래요." "하지만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가 보오. 효진 에게 방아쇠를 당긴 사람이 있는 걸 보면 말이요." "으음." "난 그 사람이 누군지 알 것만 같군." "누군데요?" "엄......대......진......!" 강민은 극적인 효과를 노리려는 듯이 말했다. 그래 서인지 그의 목소리엔 물리칠 수 없는 무게가 실려 있 었다. "뭐라구요?" 하경의 놀란 목소리가 금세 되돌아왔다. 놀라움이라 기보다는 어처구니 없어 하는 그런 목소리였다. "엄대진이라고 했소. 엄대진 사장!" "엄사장이라뇨? 그게 무슨 객쩍은 소리예요?" 하경은 어안이 벙벙해 하는 모습으로 강민을 빤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내 말이 무슨 소린지 모르겠소?" 강민은 하경을 흘깃 쳐다보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 의미 모를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양반이 효진씨를 살해했다는 얘기예 요?" "그렇소." "그럼 그 사람이 살아 있기라도 하다는 얘기예요, 뭐예요?" "엄사장이 살아 있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오." "아니, 당신 돌았어요?" "글세, 그럴지도 모르지. 요즈음 같아서야 돌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군." "강민씨, 우린 그 사람이 죽은 걸 똑똑히 보았어요. 우리 두 눈으로요. 그 양반의 침실에서요." "보기야 했었지. 극히 짧은 시간동안...... 아주 잠시 였소."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 야단이에요? 강민 씬......" "아무리 눈을 비비고 봐도 엄사장의 시신이 보이질 않소.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단 말이오. 아니 모든 사람 의 시야에서......" "아무려나 그렇기로서니......" "곽만길 씨가 시신을 바꿔치기 하면서 어디엔가 숨 겼을거요. 우리가 죽었다고 믿는 엄사장을 말이요." "그럼 이 일련의 살인은 엄사장 그 양반의 복수극이 구요?" "난 그렇게 보는데......" "그렇담 내일이라도 엄사장 그 사람이 권총을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나겠군요." "그럴지도 모르지." "지나친 생각이에요. 강민씨, 그건 비약도 아니예요. 그건 맹추 같은 생각이라구요." 하경은 신랄하게조차 여겨지는 야멸찬 말투로 부인 했다. 그녀는 고개마저 내젖는 것이었다. "정말 그럴까?" 강민은 맥없이 말했다. 강민도 지나친 상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유일한 해답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집요하게 고개를 드는 의혹을 쉽사리 지우지 못했다. 지금 평창동 집에라도 돌아가면 엄사장이 그의 침실 의 창가에서 그들의 귀로를 지켜보고 있을 듯만 싶은 것이다. 그들이 집에 돌아와보니 2층의 엄사장의 침실 은 그가 죽은 후 늘 그러했듯이 커튼도 닫혀 있었고, 불도 꺼져 있었다. 두 사람은 누구의 뜻이랄 것도 없이 엄사장의 침실 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경이 도어의 놉을 돌렸다. 그리고 그들은 방안에 들어섰다. 어둠이 일순 그들을 감쌌다. 강민이 얼른 불 을 밝혔다. 침실은 언제나처럼 음침하니 가라앉아 있었다. 벽시 계의 분침이 돌아가는 모습도, 딜럭스 침대의 화려한 모습도 그대로다. 나이트 테이블 위에 놓인 엄대진의 동제 액자 속의 사진도 그대로다. 그 사진 속의 눈동 자가 그들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도 방안에 선 약 냄새가 스며나왔다. 그것이 엄대진이 얼마 전까 지 이 방에서 살았음을 일깨워 주었다. "우리, 나가요." 하경이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돌아섰다. 강민도 방 안의 불을 끄며 따라 나섰다. 바로 그때 방안에서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그건 마 치 지하동굴에서나 울려나오는 듯한 이상한 효과를 지 니고 방안에 메아리쳤다. 하경이 일순 숨을 훅 하고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강민도 어둠과 정적을 허무는 갑작스러운 전화벨 소리 에 얼어 붙었다. 그들은 발을 떼지 못했다. 그들에게 무엇을 전하려는 전화벨 소리일까? 그런데 지금 울리고 있는 전화는 엄대진 개인 전용 의 전화라는 사실이다. 그 전화번호를 아는 사람은 별 로 없다. 그의 연인들이나 알고 있을 것이다. 하경의 눈과 강민의 눈이 일순 마주쳤다. 두 사람 다 의아해 했다. 엄사장의 어느 연인의 전화일까? 아니면 엄사장 자신의 전화인 걸까? 닫혀지지 않은 도어를 통해 전화벨 소리는 집요하게 들려왔다. 강민은 그 소리를 잠재우고 싶었다. 영원히 침묵케 하고 싶었다. 그러나 뭔가 그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려 하는 것 같았다. 필경은 불길한 소식이리라. 그 들은 그렇게 예감했다. 그런탓일까, 그들 얼굴에 무시 하려는 표정이 나타났다. 그러나 무시하기엔 그들의 호기심을 부채질하는 알지 못할 힘이 있었다. 하경이 다시 침실에 들어섰다. 강민도 따라 들어섰 다. 방안의 불을 켜자 나이트 데스크 위에 놓인 백옥 색의 전화기가 몸부림치듯 벨을 울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경이 수화기를 집어들려 했다. 그러면서 강민에게 침실의 화장실을 눈짓했다. 그것은 화장실 벽에 따로 부릿지된 전화를 함께 받자는 시늉으로 보였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하경이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러나 상대방은 금세 반응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숨죽인 호흡소리만이 전해왔다. 강민은 직감적으로 깨 달았다. M으로 자처하는 살인자의 전화라는 것을.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살인자는 아직 말이 없었다. 하경도 말없이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말없는 실랑이가 지속되었을까. "장례식은 잘 끝냈는지 모르겠군." 이윽고 살인자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들려왔다. 그 침전된듯한 낮은 음성은 강민에게는 귀에 익었다. "다음은, 민하경 씨, 당신 장례식이오." 살인자는 속삭이듯 말했다. 비록 음울하기는 했으니 애무하는 듯한 나긋하게조차 여겨지는 조용한 목소리 였다. "물론 당신 남자와 함께 말이오." 살인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상냥했다. 식탁에 마주 앉은 연인에게 와인이라도 권하듯 했다. "이젠 더는 지체할 수가 없구려. 경찰이 성가시게 구는군." 살인자는 그의 일을 마무리지으려는 듯했다. 그에게 서 조바심 같은 것도 읽을 수가 있었다. 강민은 살인자와의 마지막 게임이 임박했음을 본능 적으로 깨달았다. 사태의 위급함과 절박성을 절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솜씨는 이미 알고 있을 거요. 난 실패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오. 허구 내 솜씨는 가히 예술적이라고 할 수 있소." 살인자가 떠벌이지 않더라도 그건 분명했다. 그는 한 번도 그의 언약을 어기지 않았고 실수도 하지 않았 다. 그리고 그에겐 피도 눈물도 없다. 그에게 있는 것 이라고는 차가운 심장이고 놀라운 집행력이다. 그의 죽음의 손길은 어둠이 찾아오듯이 어김없이 찾아오고 는 했던 것이다. "당신 누구예요?" 하경이 처음으로 입을 떼었다. 침묵을 강요당하던 그녀로서는 용기가 필요한 물음이었다. 그녀의 호기심 이 그녀를 내몰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 의 목소리는 흐느낌에 가까웠다. "나를 알고 있는 걸도 아는데...... 당신들만큼은......" 살인자가 빈정거렸다. "으음." 하경이 무섭게 신음소리를 흘렸다. "우리의 게임은 끝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되는군." "......" "우린 내일이라도 만나게 될거요." "......" "서울을 떠날 생각일랑 않는 게 좋을 거요." 살인자의 마지막 대사였다. 살인자의 목소리엔 서릿 발과도 같은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전 화를 끊는 것이었다. "엄대진의 목소리요?" 강민은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대뜸 물었다. 무엇보다 도 궁금하던 내용이었다. "아니예요." 하경은 넋나간 모습으로 대꾸했다.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있소?" "글쎄요. 강민씨, 당신의 느낌으로는 어때요?" "글세 나도 모르겠소." 하경은 아마 난생 처음 살인자라는 인물한테서 협박 전화를 받았을 것이다. 그녀의 낯빛은 시신보다 더 창 백하다. 그녀의 무섭게조차 여겨졌던 강인성도 그리고 자제력도 이미 완벽하게 무너져 있었다. '그래, 우린 내일 죽는다!' 하경의 얼굴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죽음은 남의 운명이려니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녀는 언제나 죽음을 집행하는 편에 서 있었 다. 그런데 그녀의 몸에 죽음의 손길이 닥친 것이다. 그것도 바로 눈앞에 말이다. 살인자는 어김없이 그의 말대로 행동에 옮길 것이 다. 아마 죽음이라는 결과를 착실히 들고 오리라. "강민씨, 우리 지금 당장 서울을 떠나요!" 하경이 마침내 내린 결론이었다. 그녀는 그 길만이 유일하게 살길이라는 태도였다. 사실 그러했다. 그냥 죽치고 눌러 있다가는 고스란히 당하기가 십상이었다. 살인자가 어디 보통 내기던다. "일단 여길 떠나는 거예요. 경찰이 살인자를 잡을 때까지 말예요." 언제나 그러했지만 하경의 결단은 분명했으며 행동 은 민첩했다. "강민씨, 당신 혹시 여권을 갖고 있어요?" "여권? 갖고 있소." "빨리 그걸 챙기세요." 하경의 얼굴엔 초조해 하는 빛이 완연했다. 그녀의 몸놀림도 침착스럽지 못했다. "해외에라도 나갈려구?" "우린 여러 가지 방도를 생각해야 해요." "반포의 집에 있소. 어떻게 하지?" "그럼 이따 가면서 챙겨요. 이따가요......" "그럽시다." "근데 지금 집에 현금이 얼마나 있지요?" "글세." "제발 어서 챙기세요." 하경은 마냥 허둥댔다. 아니 팔딱였다. "하경이, 천천히 해. 너무 서두는군." "내가 서둔다구요?" "으음." "강민씨, 우린 여길 떠나야 해요. 일단 서울을 떠나 야 한단 말예요!" 하경의 목소리는 이젠 울부짖음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녀의 눈은 핏발이 설 대로 서 있었다. "알았소." 강민도 덩달아 서둘렀다. "강민씨, 그냥 나가면 어떻게 해요? 무기도 없 이......" 하경이 강민을 불러세웠다. "자, 이걸 당신이 갖고 가요." 하경은 강민의 손에 베레타 M20을, 모건의 가슴에 방아쇠를 당겼던 소형 권총을 건네어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강민의 손을 힘주어 잡는 것이었다. 하경과 강민은 이윽고 밤 늦은 시간이지만 평창동 집을 떠났다. 하경의 오팔 베이지의 BMW로. 하경이 운전했다. 그녀는 미친 듯이 차를 몰았다. 그들이 잠든 희수의 얼굴을 잠시나마 보고 떠난 것만도 여간 다행 이 아니다 싶었다. 희수는 달게 무르익은 잠 속에 빠 져 있었다. 그들의 운명에 폭풍이 닥치고 있는 줄도 모르고. 강민이 반포의 아파트에 잠시 들렀을 때는 하경은 기다리는 초조로움으로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뭘 꾸물대는 거예요?" 강민이 여권을 챙겨 금세 뛰쳐내려 왔는데도 하경은 신경을 곤두세웠다. 홀로 길가의 차 속에 남겨졌다는 사실에 불안을 느꼈었나 보았다. "어디로 갈 거요?" 강민은 차에 오르며 물었다. "오늘 밤은 우선 용인 별장으로 가요." "용인에?" "일단 글루 가요. 그곳에서 하룻밤 묵고 내일이라도 부산이나 제주도로 가는 거예요. 거기에서 일본으로 떠나요. 그리고 미국으로 가던가...... 강민씨, 잠시 동안 이에요." "일단 그러게 하는 것도 좋겠지." 그들이 용인의 그들 별장에 도착한 것은 거의 자정 에 가까워서다. 하경은 BMW조차 비명을 지를 정도로 액셀을 밟았다. BMW는 최첨단의 차라는 그 명성에 손색없이 그 드라이빙의 진기를 십분 발휘하기도 했 다. 지성과 다이나미즘, 뛰어난 순발력과 가속능력은 알 아줄 만했다. 최고시속은 250킬로라고 했었다. 전세계적인 BMW의 선풍이 마침내 우리나라에도 상륙한 것이다. 별장은 여전히 달빛에 감싸여 있었고 울창한 숲에 파묻혀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적막감과 정일감에 감싸여 있었다. 그러나 계곡은 숨을 쉬고 있었다. 미풍 의 흔들림도 있었고 나뭇가지의 스치는 소리도 들렸고 냇물의 흐름 소리도 예전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그 모든 밤의 정경에 그들은 둔감할 수밖에 없었다. "추워요. 불을 지펴요." 하경은 별장에 들어서며 말했다. 불길한 여정 탓인 지 하경은 몸을 떨었다. 강민은 벽난로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하경에게 브 랜디를 따라 건네주기도 했다. "오, 고마워요. "하경이, 내가 일루 내려오면서 쭉 생각한 것이 있 는데......" 강민은 그 자신의 글라스에도 술을 따르며 말했다. "뭔데요?" "곽만길 씨가 엄사장의 시신을 빼돌렸을런지도 모른 다는 말을 한 것을 기억하는지 모르겠군." "네, 기억해요." "얼마 전에 곽씨가 평창동 집을 여러날 비운 적이 있었소. 어딜갔나 했었지." "그래서요?" "아무래도 이곳에라도 오지 않았나 싶어. 계기판의 당일 주행 거리를 살펴보니 말이요." "......" "아무래도 곽씨는 우리말고도 누군가하고 긴밀히 손 을 잡고 있었나 보오. 물론 지금 우릴 쫓고 있는 살인 자일 테지만...... 그리고 그 자신도 그 살인자한테 죽임 을 당했을 테지만 말요." "......" "하경이." "네." "엄사장이 죽었다면 그 양반의 시신은 필경 이 별장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게요." "그 사람이 살아 있다면요?" "그 양반이 살아 있다면 지금 우릴 쫓고 있을 거 요." "으음." "오늘 밤 우리 이 별장을 뒤져보도록 합시다. 무슨 흔적이 있어도 있을 거요." "네, 좋아요. 당신 생각이 정 그러시다면요." "우린 우리의 참다운 적의 정체를 알아야 하오." "그건 그래요." 그렇게 해서 강민과 하경은 숲 속의 별장을 뒤지게 되었다. 그들은 푸래쉬 라이트도 준비했고 랜턴도 준 비했다. 그런데 막상 어떻게 수색을 시작해야 할지 막 막했다. 그때 퍼뜩 에드거 앨런 포우가 그의 불후의 단편 "검은 고양이"에서 제시한, 시체를 처분하는 여러 방 법이 강민의 머리에 떠올랐다. 첫째로 시신을 토막내서 태우는 방법이 있다. 둘째로 지하실의 마루 밑에 무덤을 파는 방법도 있 다. 셋째로 뜨락의 우물 속에 던져 넣을 수도 있다. 넷째로 상품으로 포장해서 탁송하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옛날부터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가 장 좋은 편법이 있다. 그것은 지하실의 벽 속에 감추 는 방법이다. 중세의 수도사(修道士)들이 그들의 희생 자를 지하실의 벽 속에 집어넣고 발라버렸다는 그 방 법 말이다. 두 사람은 더는 망설이지 않고 지하실로 걸음을 옮 겼다. 해머와 도끼와 장도리와 철봉 같은 것도 준비했 다. 지하실은 부엌에 마련된 나무 계단을 통해 내려갈 수가 있었다. 나목의 감촉은 좋았다. 그러나 삐걱거리 는 그 소리는 싫었다. 그들은 발소리를 죽였다. 그들은 서로의 발소리에 겁먹고는 했다. 지하실은 널찍했다. 지하실의 사방 벽면은 빨간 벽돌로 채곡채곡 쌓여 있었다. 그 발가벗은 듯한 모습이 거칠었다. 지하실은 아무 장식도 치장도 없는 음습하고 숨막히는 단조로운 네모난 공간이었다. 지하실의 형광등의 불빛은 창백했고 희미했다. 강민은 랜턴으로 벽돌의 벽면을 면밀히 살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들은 지하계단으로 내려서는 입구에 살인자의 실 루엣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서 있다는 환상에 내내 시달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들을 향해 총세례라도 퍼부어질 것만 같았다. 그들은 줄곧 무서움에 떨었다. 강민은 지하실이 예전과 뭐 달라진 것이 없을까 하 고 살폈다. 그런데 지하실에도 마련된 벽난로가 사라지고 없었 다. 어떻게 된 걸까? 그 자리는 여느 벽면과 똑같이 벽돌로 쌓여 있다. 다만 그 부분이 돌출되어 있을 뿐이다. 그렇다. 곽만길 씨는 벽난로 속에 시신을 감추고는 그 자리를 벽돌로 막아버린 것이다. 그러나 곽씨도 포우의 "검은 고양이"를 본 것일까. 강민은 마침내 엄대진의 시신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 었다. 기쁨이 솟구쳤다. 그러나 오한도 솟구쳤다. 그는 열병에 들뜬 사람처럼 그곳을 허물어 갔다. 벽을 깨뜨 리는 해머 소리가 습기찬 지하공간에 울려퍼졌다. 리 드미칼하게 그러나 음울하게. 하경은 강민의 그런 모습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 다. 한밤중에 시신을 찾으려고 맹집에 한 모습으로 해머 를 휘두르는 사나이의 신들린 듯한 광경이 눈 앞에 펼 쳐져 있는 것이다. 그 사이 얼마나 많은 공포영화가 이 장면을 재현했 던가. 벽돌은 하나하나 뜯겨져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공 동(空洞)이 나타났다. 아니 무덤이 나타났다. 강민은 일순 뒤로 물러났다. 그 고동 속에서 검은 고양이가 시뻘건 입이라도 벌 리고 뛰쳐 나올 것만 같았다. 비명이라도 지르면서 말 이다. 어린 아이의 흐느끼는 듯한 울음소리로. 아니면 음부의 골짜기에 떨어진 자의 길에 이어지는 울부짖음 같은 소리로. 그러나 아무것도 뛰쳐나오지 않았다. 다만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이윽고 두 사람이 그 속에서 발견한 것은 염을 끝낸 한 인간의 시신이었다. 바로 엄대진의 시신이었다. 어김없는 엄대진의 시신이 그곳에 있었다. 혹시 살아 있지나 않을까, 그래서 복수의 이빨을 갈 고 있지나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엄대진은 틀림없이 죽어 있었다. 그리고 이미 부란(腐爛)할 대로 부란해 있었다. "오, 하느님!" 두 사람은 얼어붙은 채 꼼짝달짝 못했다. 그들의 얼 굴 위를 치닫고 있는 것은 오직 경악이었고 공포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토할 것 같은 모습을 짓고 있었다. 그러니 곽만길 씨가 청평의 풀장의 철제관 속에서 엄사장의 시신을 이곳에 싣고 와 감추고, 대신 그 빈 자리에 마동권의 시신을 집어넣은 것이다. 그는 말하 자면 시신을 바꿔치기한 것이다. 아무튼 그는 모든 비 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마동권의 죽음도 그리고 이 일련의 참다운 살인자의 정체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거실로 올라왔다. 하경은 핏기를 잃은 채 흐느꼈고, 강민은 연거푸 술 잔을 기울였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머리를 줄곧 지배 하는 것은 엄대진의 시신을 이번엔 그들의 손으로 깨 끗하게 없애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잘게 토막 을 내서 태워버리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도 그들의 머리를 스쳤다. 지금 거실엔 잘 설계돼 벽난로가 있다. 장작개비도 있다. 훨훨 불타고도 있다. 이젠 그건 강민의 소임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일을 해냈다. 강민은 밤새도록 도끼를 휘둘렀고 장작개비에 불을 지폈다. 엄대진의 시신을 위해 이 지상에서 완벽하게 말살한 것이다. 누가 한 여인을 위해 이토록 맹목적으로 헌신할 것 인가. 강민은 그의 여인으로부터 많은 칭찬을 방아야 했 다. 두둑한 보수도 받아야 했다. 그의 일을 훌륭히 해 냈으므로. 강민은 극도의 불안 속에서도 지독한 피로감 속에서 도 일종의 신비롭게조차 여겨지는 해방감을 느꼈다. 그토록 찾아해매던 엄사장의 시신도 찾았고 화장도 끝낸 것이다. 그리고 한줌 재도 숲속에 흩뿌렸다. 이젠 아무도 그를 독살범으로 법정에 세울 수가 없 다. 증인이라고 할 사람들도 깡그리 죽고 없는 처지다. 황박사도 곽만길 씨도. 동이 트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빗소리가 그들의 귓청을 때렸 다. 강민이 커튼을 젖혔다. 비가 제법 내리고 있었다. 비구름도 산허리에 실려 있었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비 에 젖은 오동나무도 싱그러웠다. "강민씨, 커피 드세요." 하경이 아침 커피를 들고 왔다. "고맙소." 그들이 건배를 해야 한다면 바로 지금이었다. 그런 데 바로 그 순간 별장의 전화가 벨을 울렸다. 그 벨 소리에 두 사람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새벽에 누가 다이얼을 돌린 걸까? 그 전화벨 소 리는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살인자의 존재를 그들에게 일깨웠다. 그나저나 살인자 M은 과연 누구일까? M의 이니셜을 지닌 인물은 더는 없는 걸까? 아무리 궁리해 봐도 달리 의심할 사람이 없는 것 같 았다. 그렇지만 지금 살인자가 보내는 죽음의 시그널이 방 안에 울려퍼지고 있지를 않는가. 전화벨 소리는 끈질겼다. "무시해요." 하경이 앙칼지게 말했다. "우리 여길 떠나요." 하경이 민첩하게 움직였다. "우리 부산으로 가요. 거기서 홍콩으로 가는 배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요. 조직에 보호를 요청하자구요. 이것이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에요. 그들이 우릴 보호할 거예요. 그 사이 경찰은 범인을 검거할 거구요. "그렇게 합시다." 두 사람은 지체하지 않고 용인의 별장을 뒤로 했다. 그들은 계곡을 벗어날 동안 내내 전전긍긍했다. 어느 산허리에선가 살인자가 뛰쳐나올 것만 같은 것이다. 길은 좁고 인적도 없다. 비구름도 낮게 가라 앉아 있 었다. 그들을 줄곧 지배한 것은 미칠 것만 같은 조바심이 었다. 고속도로에 나와서야 그들은 비로소 공포에서 해방 되는 기분을 맛보았다. 그토록 폭주하는 차들도 여느 때와는 달리 반갑기만 했다. 살아 숨쉬는 맥박과 고동 소리를 듣는 것만 같은 것이다. "어휴!" 하경은 한숨까지 내쉬는 것이었다. 그 사이 몇번인가 뒤돌아 보았던가. 안개비를 뚫고 산발한 시신이 덤벼오는 것만 같았었 다. 그들은 부산을 목표로 해서 달렸다. 운전은 주로 하경이 했다. 길은 수막이 형성되어 미 끄러웠다. 그러나 하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액셀을 한 껏 밟는 것이었다. 마치 그녀 자신의 운명의 손길과 경주하는 듯이 보였다. 비는 멈출 줄 몰랐고 와이퍼도 지칠 줄 몰랐다. 사람들은 무섭게 질주하는 BMW의 여주인에 혀를 내두르고는 했다. 환상적인 출 울의 흰색의 사파리를 아무렇게나 걸친, 그리고 검은 머리를 치렁치렁 늘어 뜨린 미모의 여인을 사람들은 잊지 못했을 것이다. 그 리고 그 여인 옆에는 건장한 젊은 사내도 있다. 아마 어느 부잣집 연인들의 겁없는 주말의 여행쯤으 로 생각했을 것이다. 여느 때 같으면 빗속의 여정이 낭만적이었을 테지만 두 사람에게는 서울을 탈출한다는 일념 외에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오후 1시께에, 그들은 마침내 그들의 목적지인 해운 대에 당도했다. "강민씨, 너무 염려하지 말아요. 우리가 부산에 내려 온 건 아무도 모르니까요. 우릴 찾는 다는 건 모래사 장에서 바늘찾기보다 어려울 거예요." 글세, 어떨까. 아마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해운대에서 며칠 밤을 보냈다. 그러나 호텔 을 자주 옮기고는 했다. 하이야트 호텔에도 묵었고 파 라다이스 호텔에도 묵었다. 강민은 무섭게 하경에게 탐닉하는 것이었다. "오, 당신이 그렇게 하는 것이 좋아요." 하경도 모든 것을 잊으려는 듯이 몰입하는 것이었 다. 그들은 내일 당장 지구의 종말이라도 닥쳐올 것처 럼 허둥댔다. 그들이 홍콩으로 출발하려는 계획도 착실히 직행되 었다. 그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조직의 전갈도 있었고 그들을 경호할 인물을 파견한다는 연락도 있었 다. "유가인을 보내겠소. 그는 믿어도 될 거요." 유가인이 온다! 그들을 지켜줄 사람이 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잘 풀릴 듯만 싶었다. 그러자 일종의 안 도감이 나른한 피곤처럼 온 몸에 스며오기도 했다. 우산 하나 달랑 들고 해변을 산책하는 여유도 생겼 다. 그들이 해운대에 머무는 동안에도 비는 쉴새없이 내렸다. 강민은 밤에 홀로 해변의 순환도로를 걸었다. 모건 도 걸었던 길 이었다. 빗속에 바다는 파도쳤다. 비는 콘크리트 길도 적셨 다. 가로등 불빛은 희미했다. 강민은 '후조들의 둥지'라는 노점카페에 들렀다. 모 건도 찾았던 카페였다. 강민은 어쩐지 그 이름에 끌렸 다. 지금 둥지를 찾아헤매는 그의 처지와 비슷해서일 것이다. 비가 오는 탓일까. 카페 안엔 손님이라고는 없었다. 한신애는 언제나처럼 홀로 그곳에 있었다. 피곤에 지친 느낌을 주는 여인의 모습으로. 그리고 강인하게 살아가는 여인의 모습으로. "나, 진토닉 한 잔 주시오." 강민은 신애의 시중을 받으며 술을 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불러주는 노래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신애가 부르는 노래는 패티 김의 "초우"가 아니고 모건이 그토록 좋아하던 강은철의 "삼포로 가는 길"이 었다. 그러니 그녀의 레퍼토리가 어느새 바뀐 것이다. 얼마 후 강민은 신애의 남다른 인상을 가슴에 안고 '후조들의 둥지'를 물러났다. 그때가 밤 11시께였다. 호텔에 돌아와 보니 하경은 텔레비젼 앞에 앉아 늦 은 밤의 쇼프로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녀는 그 녀의 흰 슬립 위에 강민의 흰 와이셔츠를 나이트 가운 처럼 걸치고 있었다. 그것이 그렇게 정갈한 느낌을 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오늘 밤은 해변에 새로 세워진 샹 그릴라호 텔의 19층에 묵고 있었다. 이상향이라는 이름의 샹 그릴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비경을 찾아헤매었던가. 그 런데 지금은 그런 꿈을 꾸지도 못하게 되었다. 온 세 상이, 온 지구가 발가벗겨져 있는 것이다. 강민은 창가에 섰다. 그리고 살며시 커튼을 젖혔다. 밤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파도소리만이 영겁의 절 규처럼 들려왔다. 아득히 먼 곳에서 청승맞게도 천둥 소리가 들렸다. 그가 방금 다녀온 해변의 노점카페의 불빛이 보였 다. 그러나, 그 불빛은 무등(霧燈)처럼 희미했다. 그리 고 선등(船燈)처럼 흔들렸다. 카페의 여주인의, 한신애라고 했던가, 아름다운 그러 나 삶에 지친 듯한 모습이 그의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 았다. 그녀를 그가 살아온 과정에서 본 듯만 싶었다. 지금쯤 누굴 위해 노래 부르고 있을까? 그녀가 일을 끝내고 돌아가면 그녀를 기다리는 남자 라도 있는 걸까? 그리고 그 남자는 또 어떤 사내일까? 강민은 일순 그녀의 아파트의 창가에서 그녀를 기다 리고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혔다. 강민은 공연히 감상적인 생각에 빠져 허위적거리는 그 자신을 비웃었다. 그를 막상 감상의 늪에서 구한 것은 갑작스러운 노크소리였다. 이 밤에 누구일까? 살인자 일까? 아니면 그들이 기다리는 그들을 구원하려는 손길일 까? 강민은 얼핏 하경을 쳐다보았다. "내가 맥주를 시켰어요. 조금 전에요." 하경이 텔레비젼 화면에서 눈길을 떼지 않으며 말했 다. 강민은 철렁했던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 었다. "객실 웨이터일 거예요. 문 좀 열어주세요." 하경이 명령했다. 침대 밖에서는 그녀는 언제나 그 의 상전이었다. 강민은 문께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 그렇지, 그들이 이 호텔에 묵은 걸 살인자가 알 턱이 없다. 바로 한두 시간 전에야 첵크 인한 처지 가 아닌가. 그래서 그 노크소리가 그들의 운명을 겨냥하는 소리 라는 걸 외면하게 되었다. "누구시오?" 강민은 건성으로 물으면서 도어 체인도 풀고 도어의 놉도 돌리고 있었다. 문의 시건장치가 모두 풀린 셈이 었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사람이 들어섰다. 그런데 객실 웨이터는 아닌 듯 싶었다. 누구일까? 유가인일까? 현관의 불빛 속에 사내의 모습이 들어왔다. 사내는 이른바 밀리터리 룩의, 종로서의 범도일 경위가 즐겨 입는 카키색의 군용 파카 차림이었다. 사내의 얼굴도 불빛 속에 나타났다. 그 얼굴 모습을 보는 순간 강민은 소스라치게 놀랐 다. "아니, 당신은......" 강민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한순간 피의 이슬을 맞는 것 같은 그래서 숨이 멎는 것 같은 기분을 맛보 았다. 일 초, 그리고 이 초가 흘렀다. "나를 기억하나?" 사내가 말했다. 그때 천둥소리가 다시 들렸다. 천둥소리는 점점 가 까워지고 있었다. "나를 기억하느냐구." 사내가 다시 말했다. 그는 바로 모건이었다. 놀랍게도 청평호반에서 하경에 의해 사살되고 곽만 길 씨에 의해 호수 속에 수장된 모건이었다. 모건의 얼굴을 타고 빗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어 떻게 보면 호수 속에서 막 기어나온 사람처럼 보였다. 강민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쳤다. 어떻게 모건이 살아 있을까? 하경은 분명히 그의 심장을 겨냥해서 방아쇠를 당겼 었다. 그것도 세 방이었다. 그리고 그를 호수 속 갚은 곳에 수장했었다. 곽씨가 돌까지 매달지 않았던가. 청 룡문신도 뚜렷한 그의 시신도 경찰이 건져올린 처지 다. 모건이 문을 닫으며 한 발 다가섰다. 도어의 놉의 실린더가 돌아가는 소리가 그리고 록 장치가 자동으로 걸리는 소리가 그렇게 메마르게 들릴 수가 없었다. 모건은 웃고 있었다. 그 반듯한 얼굴이 순진구무하게 웃음짓고 있는 것이 다. 그러나 그의 한쪽 손에는 독일이 그 성능을 자랑 하는 검은 모제르가 쥐어져 있었다. 강민은 그 총구가 분명하게 그의 가슴을 겨냥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나를 기억하는지 모르겠군." 모건은 그 의미없는 대사를 반복했다. 그 목소리는 분명히 새벽의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던 목소리였다. 그러니 그토록 그 정체를 알고 싶어했던 살인자가 마침내 베일을 벗고 나타난 것이다. 그는 때 로는 검은 캐시미어 코트를 걸친 마동권으로 가장했고 때로는 밀리터리 룩의 범도일 경위로 가장 했었다. 그나저나 모건은 어떻게 이곳을 알게 되었을까? 이 절박한 위기의 순간에서조차 강민의 마음을 사로 잡은 의혹이었다. 강민은 하경을 힐끗 쳐다보았다. 하경은 어느새 창가에 서 있었다. 그녀는 놀랍게도 무서워하지도 않았고 떨지도 않았다. 당황하지도 않았 고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다. 창가에서 팔짱을 낀 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하경은 뜻밖에도 한낱 관객이었다. 그냥 그저 지독 하게 담담한 무표정이었다. 저 무표정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걸까? "맙소사!" 강민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찬탄의 소 리를 냈다. 그는 비로소 그 어떤 잔인한 계략이 진행 되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렇다! 하경 그녀의 진정한 공모자는 강민 그가 아 니라 모건인 것이다. 어처구니 없게도 두 사람은 벌써부터 손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일련의 사건을 계획하고 추진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수처럼 행동했었다. 치밀 하고도 냉혹하게. '모든 것이 연극이었어!' 그렇다.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가 연극이었다. 하경이 모건을 향해 총을 쏜 것도, 모건이 피를 흘 리며 쓰러진 것도 연극이었다. 아마 하경은 공포탄을 쏘았을 것이고 모건은 토마토 케찹이라도 준비했을 것 이다. 그리고 호수 속 어딘가에 스킨 스쿠터 다이빙 장비라도 숨겨두었으리라. 몸 속에 감춘 단도 같은 것 으로 그를 동여맨 끈을 끊었을 것이고, 물안경에 오리 발을 끼고 헤엄쳐 나왔으리라. 하경이 그에게 건네어 준 베레타 M20엔 지금도 공 포탄이나 장전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아무 소용에 도 닿지 않는 권총을 그는 휴대했던 것이다. 그리고 모든 준비는 하경의 지시에 따라 곽만길씨가 했으리라. 청룡의 문신이 새겨진 진짜 시신도 곽씨가 준비했을 것이다. 모건은 다만 가짜 문신을 드러내 보이기만 하 면 될 것이었다. 한밤의 호반에서의 위장 살인극! 하경이 모건을 사살하는 과정이 어쩐지 어색하다 싶 었었다. 늘 그 광경이 서툰 연극처럼 비쳤었다. 곽씨가 서둘러 모건의 쓰러진 몸 위에 흰 시트를 덮 어씌우던 모습도, 그리고 호수 속에서 과장스레 들어 올리던 기억도 되살아났다. 곽씨는 누구보다도 헌신적인 종복이었다. 그런데 그 마저 살해한 것이다. 너무 비밀을 안다는 이유로. 하경이 줄곧 보인 불안은 모두 거짓이었고 그녀가 외친 비명도 모두 연극이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설지 숙이 남긴 메모에 대해서도 엄대진의 시신의 행방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뒤의 이야기는 뻔하다. 모건이 호수 속에서 기어나와 한 일이라고는 하경의 공모자들을 차례차례 제거하는 것이었다. M의 이름으 로. '마동권을 살해한 것도 모건일 거야.' 마동권의 실수라면 모건의 죽음을 일찌감치 믿은 일 이었고 모건의 능력을 만만히 본 이일 것이다. 엄효진만큼은 현명하게도 그와 손잡은 그의 형수가 그를 배신하려 하는 것을 간파했던 것이다. 그러니 권 총을 챙겨 뒤를 쫓을 수밖에. 선수를 칠 요량으로 말 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은 강민 그뿐이다. 하경은 어기차게도 강민 그의 목숨마저 원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 매몰차다. 너무 비정하다. 그런데 하경은 언제부터 그녀의 공모자들을 없애기도 마음먹은 걸까? 설지숙이 이끄는 장례팀이 그녀를 배반하자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비로소 작심한 걸까? 아니면 처음부터 그녀의 머릿속에서 치밀하게 계산되어 있었던 걸까? 아무튼 하경은 그녀의 범죄의 흔적을 이 지상에서 완벽하게 지우려 하는 것이다. 그녀의 그러한 염원은 사랑하는 연인이라고 해도 살해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듯 싶었다. '그래, 우리가 지금 샹 그릴라에 숨어 있는 걸 모건 한테 일러준 사람도 하경인 게야!' 그러니 모든 정보를 하경이 제공했으며 죽음의 지령 도 하경이 내린 것이다. 이젠 분명하다. 살인자 M은 바로 민하경의 성의 이니셜인 것이다. 마동권의 이니셜로 아니다. 살인자는 처음부터 M인 것이다. 죽음의 카드라 할 스페이드의 퀸을 M의 이름 으로 보낸 사람도 민하경이다. 살인자 M은 바로 민하 경인 것이다. 그녀가 홀로 이 모든 범죄를 주도한 것 이다. 그녀의 공모자들에게 때로는 홍당무를 던져주었 으며 때로는 채찍질했었다. 하경은 마침내 모든 위대한 범죄자들의 영원한 테 마, 완전범죄를 달성한 것이다. 그것도 이름도 얼굴도 없는 한낱 뒷골목의 밤무대의 무용수가 이룩한 것이 다. 그리고 모건이 그녀의 최후의 충실한 집행자인 것 이다. 그러고보니 모건의 성의 이니셜도 M이 아닌가. 이 모든 생각은 실상 일순간에 섬광처럼 강민의 머리 를 스친 상념들이었다. "자, 우리의 승부는 끝났네." 모건의 총구가 높아갔다. 그는 더는 말미를 주려하지 않았다. 그순간 다시금 천둥소리가 울렸다. 바로 그때 모건의 모제르 수퍼는 강민의 심장을 겨 냥해 불을 뿜었다. '오, 이럴 수가 없어!' 강민은 내부에서 오열이 솟구쳤다. 강민은 천천히 쓰러져 갔다. 이 모든 것이 한 여인에 대한 맹목적인 헌신의 대가 였다. 그나저나 하경은 무엇 때문에 그녀의 구원의 동반자 로 강민, 그를 선택하지 않고 모건을 선택했을까? 그 사실이 강민의 빈 가슴에 캄캄한 슬픔을 몰고왔 다. 필경은 모건이 희수의 생부인 탓일 게다. 아마도 종로서의 범도일 경위는 신기루 같은 살인자 M을 끝없이 쫓을 것이다. 이제 희망을 건다면 그에게 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말끔하게 범죄의 흔적이 지워지지 아니했는가. 마지막 순간, 강민의 안개낀 듯 흐릿한 망막에 엄대 진 사장이 쌓아올린 그러나 하경이 쟁취한 '아주 그룹' 이라는 찬란한 광휘속에 우뚝 솟을 커다란 성곽이 떠 올랐다. 아니 오팔 베이지의 BMW에 몸을 싣고 불타는 황 혼의 태양을 향해 한강변의 88대로를 질주하는 하경의 장미빛깔의 화려한 실루엣기 스쳐지나갔다. - 끝 -
첫댓글 재미있게 잘보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다음작품도 기대됩니다 항상 건강 하시고 행복하세요. ♡
녹색전사님 고맙습니다 ....
즐거운 시간 행복하세요
늘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늘 감사합니다 ♥♠♥♠♥♠♥♠
즐감하고 갑니다~~~
역시 추리는 반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