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기산에서/梁該憬
오랜만에 왔는데 기억 속의 바람은 만나지 못했지만 만발한 수정꽃 때문에 화관을 쓴 신부처럼 설산에 든다
능선을 따라 눈부시게 하얀 세상 좋다 정말 좋다 이 말을 아는지 모르는지 풍경은 느린 걸음이다
어떻게 살까 고민하지 않아도 오늘 설국에서 티끌 없이 행복했네 종일 함께 걸어주는 설경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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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13. 토. 횡성 태기산
날씨: 맑음
산행코스: 무이쉼터(양구두미재)- 태기분교~ 전망대~정상(군부대)~ 양구두미재(임도길, 원점회귀)
산행거리:약 10km
산행시간:오전 9시-오후 1시 30분(놀멍 쉴 멍 사진 찍으며)
누구와: 인천 산사야 산악회
출발지:양구두미재(무이쉼터)-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봉평면 진조리 산 80-67
양구두미 (兩鳩頭尾)재 전설
해발고도 980m의 고갯마루인 양구두미재와 그 아랫마을인 둔내면 삽교3리 '구두미' 마을은 얼핏 같은 듯하지만 서로 다른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양구두미재에 얽힌 전설은 한자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비둘기가 주인공이다. 옛날 어느 가난한 선비가 묘를 잘 쓰면 부자가 된다는 말을 듣고 용한 지관을 통해 아버지의 묘를 쓴 곳이 바로, 이 고갯마루다. 한참이 지나도 재산이 늘지 않자 선비는 묘를 이장하기 위해 관을 들어냈다. 이 때 땅속에서 두 마리의 황금 비둘기가 나와 고개 너머로 날아 가버렸다. 그 후로 이 고개를 '양구데미'라고 불렀다는 전설이다. |
많이 왔던 산이고
힘들지 않아 좋아하는 태기산
언제나 그랬듯이 시작은 양구두미재다
초입부터 크리스털처럼 영롱한 빙하빙 설경이 펼쳐진다
오호... 성공이다... 상고대가 반겨주겠구나
이런 날은 주어진 시간을 1분도 남김없이 사용하며
아주 천천히 걸어볼 생각이다
다행히 바람이 없어
저 많은 빙화들이 얌전히 피어있을 수 있겠다
20분쯤 올라 뒤돌아 본 풍경
무이쉼터 뒤편 횡성 선자령 자락의 통신시설과 풍력발전기가
겨울을 만나니 하얗게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수묵의 농도가 전해지는 풍경이다
태기산은 낙엽송군락이 많아서
다른 산과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겨울산은 상고대를 보기 위해 찾지만
산마다 설경의 얼굴은 다르다
오늘 태기산은 상고대가 녹았다가 어젯밤 영하의 기온을 만나
영롱한 빙화를 만발했다
겨울 산은 이맛이지
멀리까지 확보된 시야와 시원한 사이다 같은 촉감
여기다 바람한줄기 확 불어준다면 더없이 짜릿하지만
오늘은 바람이 잠을 자는가 보다
푸른 하늘이 넓게 넓게 퍼져 있어서 기분이 원 없이 하늘을 올라간다
무거운 상고대를 못 이겨
축축 처져 있는 나무들
그래도 우리는 저 풍경 때문에 좋아서 죽는다
확 트인 시야와 상고대가 펼쳐진 곳에서
저마다 멈추어서 인증사진을 찍느라 난리다
태기산 풍력단지
어찌 보면 자연을 훼손하는 것 같아 좋아하지는 않지만
눈 내린 설경과 어울려 하루종일 모델이 되어준다
다른 모델을 찍으래야 찍을 수 없는 태기산의 풍경이다
태기산 정상부
한 고개 올라서면 쉽게 보여주는 정상부
한국방송공사 송신소와 군통신부대가 자리하고 있어서 입장 불가다
이 앞에서 골짜기를 타고 올라
통신부대 담장옆으로 한 바퀴 돌아서 정상석 쪽으로 이동하면 거리가 단축되는데
아프리카 돼지 열병으로 철조망문을 잠가 두었다
널따란 임도를 따라 정상석이 있는 전망대까지는 대략 4.5km 거리다
태기산의 유명 포토존이다
문득 저 바람개비가 실제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한 번도 돌아가는 것을 못 봤다
묵직하게 상고대가 매달려서 폼만 멋지게 잡고 있다
길을 나서면
구불구불 이어진 길 풍경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오늘도 맘에 드는 풍경 하나 건네주는 태기산
군부대를 이동하는 차량 때문인지 경사진 길에는 제설작업이 잘 되어있다
때문에 아이젠을 신고 걷기에는 충격이 올라와 다소 발바닥이 아프다
전봇대며 나무며 전부 얼어붙은 설국이다
그래도 오늘은 그리 춥지 않아서 걸을만하다
춥다고 곰처럼 껴입었던 옷을 한 겹 벗고 가볍게 길을 따라가는 중이다
분칠 한 세상
새 한 마리 푸덕이면
흰 비둘기 날갯죽지 같은 설경이 전부 눈을 털어버릴 것도 같다
바람이 어찌나 잠잠한지
풍력발전기는 전부 스톱이다
한쪽은 음지
한쪽은 양지
반 뚝 갈라서 다른 세상이다
너의 마음은 양지
나의 마음은 음지일지라도
부러울 일이 아니다
몇 발짝 건너오면 세상이 바뀔 것 같다
비박의 성지
오늘도 몇 팀이 전나무 숲에 둥지를 마련하고
이 시린 겨울을 보냈나 보다
숲 속에서 좀 더 깊이 들어가니
온전한 설국이 기다리고 있다
이길로 내려가면 태기왕 전선길로
태기산성을 지나 송덕사까지 약 4km 정도 거리다
이길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대장님이 오늘은 원점회귀라 한다
겨울임에도 그늘에 든 것처럼 시원한 풍경이다
태기분교와 어울리는 낙엽송 상고대
태기산 산행 중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라 생각한다
이곳에서 하룻밤 자고 나면 동화 한 편 읽는 것 같은 느낌이다
태기분교 옛 모습
분교를 벗어나 정상까지.....
침엽수림의 극치를 달리는 설경
저 풍력발전기가 없다면
핀란드 어느 숲을 걷는 것 같은 풍경이다
하도 좋아서 뒤돌아서 한 번 더 찍고....
높은 키를 자랑하는 나무에
묵직한 상고대가 쌓이고 또 쌓이고...
저 발전기가 돌아갈 때마다 주변의 눈을 쓸어내릴 것만 같다
정상바로 아래
눈길이 이어지는 길
군부대까지 차량이 다니다 보니
산행길은 끝까지 신작로다
우리나라 1000 고지 이상의 산 중 접근이 가장 쉬운 산이고
설경감상과 별사진 찍기에 좋은 곳이 태기산이다
양구두미재가 대략 1000 고지
정상이 대략 1300 고지가 못된다
돌아 돌아 느릿느릿 걸어가는 곳이 바로 태기산이다
겨울왕국으로 들어가는 터널 같다
저 전나무 숲으로 들어가려고 했더니
눈이 푹푹 빠져서 내려가다 말고 뒤돌아섰다
태기산 泰岐山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과 횡성군 둔내면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 1,261m. 신라에 패한 진한의 태기왕이 성을 쌓고 항쟁을 하던 곳이라 하여 이름이 붙여졌으며, 그때 쌓았던 성을 태기산성이라 했으며 지금은 산성터가 남아 있다. 태백산맥의 지맥에 솟아 있으며, 주위에 회령봉·대미산·청태산·흥정산·봉복산 등이 있다. 능선이 남북방향으로 뻗어 있으며, 사방이 비교적 완만하다.
동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물은 흥정천으로, 서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물은 유동천으로 각각 흘러들며, 남쪽 사면에서 주천강이 발원한다.
과거에는 산기슭에 화전민들이 살고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인근 마을로 분산·정착했다. 남쪽의 양구두미재를 지나는 서울-강릉 간 국도는 청태산과의 사이에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교통량이 감소되었으며, 봉평면 면온리에서 영동고속도로와 연결된다. 일대에는 봉복사·송덕사 등의 사찰과 이효석문화마을이다. |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 #1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 #2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 #3
정상석은 군부대보다 조금 아래 있다
정상석에서 군부대까지 10분 정도 올라가 보기로 했다
통신탑의 설경도 장관이고
부대를 둘러싼 철망의 상고대도 볼만하기 때문이다
풍력발전단지가 시야를 막고 있지만
걸어왔던 길과 건너편 횡성 휘닉스파크가 흐릿하게 들어온다
산을 너무 사랑하는가...
그 어떤 시설도 산에 있으면 싫다
나는 나 그대로
산은 산 그대로....
정상부근의 전봇대도 흰옷을 입었다
눈이 시리게 푸른 하늘과
눈이 시리게 하얀 세상과
너무 좋은데 왠지 가슴이 시린 내가 서있다
와우~
정상석에서 더 올라오길 잘했다
두툼하게 입은 상고대
곰단지처럼 무겁게 입고 있다
1200 고지의 위용을 자랑하듯 말이다
내친김에 더더더더....
높이를 더할 때마다
하늘은 더 푸르러오고
설경은 점입가경이다
풍력발전기를 따라 나있는 길이
내가 느릿느릿 올라온 길이다
다시 저 길을 따라 원점으로 돌아갈 것이다
돌아보는 인생사가 그립고 아름다웠듯이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면 아름다운 길이 참 많다
이 길처럼 우리 인생도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태기산 정상부
군부대 철망을 따라 빼곡히 붙어있는 상고대가 보고 싶어서 왔다
한번 툭 치면 후드득 떨어지겠다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는 통신탑이 우주로 날아갈 것만 같다
오늘은 딱 두 개의 색으로 나를 최대한으로 감동케 한다
모 아니면 도가 아니라
흰색 아니면 푸른색이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흰 세상 앞에서 만세 한 번 외치고 싶은 날이다
정상부에서 내려다본 횡성군 청일면 일대의 풍경
하도 푸르러 저 멀리 바다가 있는 것 같다
앞에 있는 하얀 눈들이 물살처럼 아래로 밀려갈 것 같은 풍경이다
다른 때에는 정상부의 바람 때문에 오래 머물기 힘들지만
어쩌면 그렇게도 순한 겨울날이었는지
이렇게 멋진 설국 풍경을 만들어놓고도 거만스럽지 않은 날이다
아쉽지만
풍성한 겨울풍경을 그대로 두고
나는 발길을 아래로 돌린다
삐죽 내민 가지하나
잡고 흔들고 싶은 마음이다
내려오면서 본 전망대 풍경
정상석 인증 사진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
백패킹을 하는 사람
산이 좋아 오는 사람
인기 많은 태기산이다
같은 길을 되돌아 하산하는 길
그래도 지루하지 않다
카메라 똥침을 쉴틈을 눌러댄다
눈감고 눌러도 멋진 날이 바로 오늘이리라
도로 안전휀스까지도 아름다운 날이
오늘 말고 또 있었을까
정오를 넘어서는 시간
아침보다 영롱함은 줄었지만
산을 가득히 덮고 있는 상고대 때문에
함께하는 걷는 사람과 수다도 줄었다
십자가의 세상
이곳이 천국이었나
설국 그대를 만나
천국에서 놀다 가노라
올라갈 때 못 보았던 붉은 빙화
햇빛을 받아 영롱히 빛나는데
그 빛을 찍을 수 없어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맘에 든 상상의 사진은 아니지만 이뻐서 킵했다
올해는 눈 풍년이라고
여기저기서 상고대를 보았다고....
태기산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동화 같은 세상이었다가
수만 평 넓은 흰 세상이 전부 내 것 같았다가
어디에 발을 디뎌도 펼쳐지는 수빙의 향연
이 넓은 풍경을 가슴에 안았으니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한편 꿈결 같고
한편 순간이동을 한 다른 세상인것 같고
잠시 지나간 섬광 같기도 한 세상을 걸었다
내년에 이곳에 또 왔을 때 이만큼의 세상이 아니면 어쩌지.
20240113. 토. by gyeong~
첫댓글 햐~~~!
기막힌 그림들...
내가 저길을 걸었구나 새삼 감탄이 절로납니다.
아름다운 글귀속에 한참을 다시금 걸어봅니다.
겨울왕국 ~~
좋은 곳 때 맞추어 안내해주신 왕대님 짱 입니다
남들 다 보았다는 상고대가 나만 피해다니는 것 같았는데
왕대님 덕을 톡톡히 보고 왔습니다
수경님의 태기산 ~
가지못해 못내 아쉬움
가득이었지만 글과 함께
읽으며 같이 돌아보는
마음으로 저도 그길을
걷고 있었네요.
덕분에 태기산 정상까지
수경님 발걸음따라 즐겁게 공감하며 잘 봤네요.
딱 언니코스였는데
오셨으면 손이 어는 것도 모르고 카메라 똥침을 원없이 눌렀을 풍경이었습니다
태기산도 언니가 안와서 섭섭했을 꺼에요
작품 글귀 와~~태기산속에 들어간 기분입니다 즐감
잘보고 갑니다
방문해 주셔셔 감사합니다
사진을 찍어왔을때 한번 정리하고 그만인 풍경이 있고
몇번이나 들여다보며 즐거워하는 풍경이 있지요
태기산은 늘 탁트인 시야때문에 몇번이나 다시가게 하는 풍경입니다
울 수경님의 감성이 가득 담긴 태기산 설빙길 이야기 역시 입니다. 그길을 걷는 사람 모두에게 평등했던길.
아름다움에 빠져들어 봅니다.
여전히 파워풀한 기운을 가지고 산사야를 리드하는 경환쌤
오랫만에 반가웠으요
풍경이 하도 좋아 천천히 즐길 마음으로 함께 걷지 못해 미안합니다
눈을뜨니 오늘도 태기산을 걷고 있네요,
글과 영상, 그날의 황홀했던 설경 그대로 아름다움을 또 즐김니다.
산악회의 같은 사진이 지겹게 올라와도
그날의 태기산 풍경은 참으로 훌륭했습니다
앵글에 표현이 안되어서 아쉬울 뿐입니다
사진 학교를 가던가 해야 할 것 같아요
우와~~~
태기산 설경을 너무 멋지게 찍으셨네요ㅎ
작품 감상 잘했습니다👍❄️
눈감고 찍어도 어느 곳이나 좋았던 하루였습니다
마음의 찌거기가 전부 산화하는 듯한 시원한 풍경
앞서거니 뒷서거니 그래도 동호인이 함께 걸으며
벗이 되어 주셔셔 감사합니다
역시 저명한 블러거 답게 멋진 글과 사진
대단합니다 다시 한번 가고픈 멋진 상고대의
감동을 느끼게 해주네요 감상 잘했습니다
그쵸...
감동스런 날이었어요
처음엔 뵈었는데 나중엔 어디로 가셨는지
보이지 않으시더군요
해운대님 뵈러 산사야에 자주 와야겠어요
이주 연이어 뵈니 더 반가웠습니다
다음 태기산은 기억속의 바람을 만나
수정꽃 화환을 머리에 쓴 신부가 되시기바랍니다,,,,^^
오랫만에 아쿠아마린을 만났답니다
거기다 크리스탈이 이렇게 많은건 처음이었어요
햇빛에 빛나는 모습이 높아서 그런가요 사진에 안남아요
한수 갈챠주세요
가고 싶었던 겨울 태기산을 수경님의 멋진 여행기와 사진으로 대신합니다~~Good~~!!!
언니가 가야 설경사진 지데루 찍을텐데
이제 우린 엇갈린 운명인가봐요 ㅠㅠ
3월 사량도에서 만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