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어지간히 나빠 초시에도 매번 떨어져서 이제 공부는 때려치고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우둔한 선비가 살았다. 다행스럽게도 부모한테 물려받은 재산이 많아 하는 일과가 처먹고 놀면서 지지배 후리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동네 한량들과 어울려 다니며 기방 출입을 하다가 얼굴이 좀 반반하다 싶은 기생을 보면 기와집을 사 주고 머리를 얹어 주었다. 이렇게해서 머리를 얹어준 지지배가 시쳇말로 도락꾸로 한 도락꾸가 되었다. 하지만 개 버릇 남 못준다고 얼굴이 반반하다 싶으면 모조리 침발라 놓았다.
어느 겨울날, 난봉군들과 매사냥을 나가서 장끼 몇마리를 잡아 주막에서 그걸 안주로 술을 마시고 초저녁부터 기생의 집으로 갔다. 들어서자마자 기생을 쓰러뜨리고 막 치마를 걷어 올리려던 참에, 기방의 사동이 대문을 두드리며 “사또가 베푸는 관아 주연에 가야 하니 떡방아 그만 찧고 나오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기생이 선비를 밀치고 옷매무새를 고치며 경대 앞에 앉아 화장을 하자 선비가 못마땅한 듯 씩씩거리던 숨을 가다듬었다.
“네년은 참 좋겠네. 오늘 또 새서방을 만날 테니까….”
그 말에 기생이 홱 돌아앉아 눈을 흘기며 대꾸를 했다.
“관아에 들어갈 때마다 새서방을 만나면 이 세상 남자는 모두가 내 서방이 되겠네? 앙그려?”
다시 돌아앉아 화장을 하던 기생이 머리에 동백기름을 바르고 나서 경대 서랍을 열고 피 묻은 개짐(월경대)을 꺼냈다. 그리고는 치마를 올리고 고쟁이를 내리더니 개짐을 거시기에 찼다.
“서방님, 제발 쓸데없는 걱정이랑 북풍에 날려 버리시와요. 이렇게 하면 월경 중인데 누가 감히 나를 탐하겠어!”
기생은 선비에게 눈을 찡긋하더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누워 있던 선비가 벌떡 일어나 어둠 속으로 살금살금 기생첩을 미행하기 시작했다. 엉덩짝을 흔들며 골목길을 돌아가던 기생이 관아 뒷담장을 따라가다 걸음을 멈추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선비는 잽싸게 몸을 숨겼다. 그녀는 담장 모퉁이에서 치마 밑으로 손을 쑤욱 넣더니 "개짐"을 꺼내어 담장 기와 밑에 끼워 넣고는 황급히 발걸음을 재촉해 관아로 들어갔다. 선비는 기와 밑에 끼워 둔 개짐을 꺼내 들고 이를 갈며 집으로 돌아왔다.
“이년! 들어오기만 해 봐라. 내 오늘 요절을 내리라.”
밤이 깊어 삼경이 지나갈 무렵 기생이 살며시 집으로 들어와 방문을 빠끔히 열자 어리석은 선비는 벽에 기대어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고 자고 있었다. 낮에 온종일 꿩을 쫓느라 들판을 쏘다녔고 초저녁부터 술을 퍼 마셨으니 이 시간까지 잠들지 않을 장사가 있겠는가! 기생이 선비 손에 들린 개짐을 살짝 빼서 옥문에 차고 그 손아귀에 목도리를 쥐여 줬다.
“서방님, 소첩이 왔사와요. 안아 주지도 않고 그냥 주무시기에요?”
기생이 흔들어 깨우자 부스스 눈을 뜬 선비가 목도리를 흔들며
“내, 오늘 네년과 사생결단을 내고야 말겠다. 뭐라고? 이 개짐을 차고 가서…
엉????? 근데 이건 뭐야?”
“서방님이 초저녁부터 약주가 과하셨나 봐요. 이것 보세요.”
기생이 고쟁이를 벗어 개짐을 보여 주며 우둔한 선비 품에 안겨 탱탱한 젖무덤으로 입을 막아 버렸다. 갈고닦은 기교로 선비를 녹여 버리니 긴 숨을 내뱉은 선비가 말하길 “내가 꿈속에서 헛것을 보았나? 분명 담장에 짱박은 개짐을 가져왔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