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천지맥 부뜰이와 천왕봉이 걸어온 용천지맥 지맥길46km(접속/이탈)/21시간4분 산행일=2019년3월2일 산행지=용천지맥 2구간(부산) 산행경로=곰내재=>함박산(457.2m)=>아홉산(359.9m)=>276.7봉=>315.4봉=>쌍다리재=>산성(368.2m)=>261봉=>516봉=>장산(634m)=>중봉(381m)=>옥녀봉(370m)간비오산(147.9m)=>동백섬 거리 및 소요시간=26.8km/11시간59분 어잿밤을 동백섬에서 보내고 소슬바람님 차량은 동백섬에 그데로 두고 내차로 어제 산행을 마무리한 곰내재로 이동하여 용천지맥 두번째 구간을 시작한다. 용천지맥 두번째구간 들머리인 곰내재는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에서 정관읍 매학리 당곡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함박산(含朴山:457.2m)과 문래봉(文萊峰:511.4m) 사이의 능선에 자리하고 있는 고개이다. 곰내재를 기준으로 우측으로는 함박산이 좌측으로는 문래봉이 있으며 함박산에서 동쪽으로 뻗은 능선으로 천마산(天馬山:419m)과 달음산(達陰山:(587m) 자락이 이여지는데. 문래봉(文萊峰:511.4m)에서 북쪽으로 철마산(鐵馬山:m)과 백운산(白雲山:520.2m) 자락이 이여지고 있다. 정관읍과 철마면 사람들이 오가는 교통의 요지로 곰내재를 지나 정관읍으로는 바로 신도시와 연결되여 있다. 지금은 이 고개 밑으노 곰내터널이 개통되여 한적한 고개가 돼였고 한우전문 식당이 영업을 하고 있다. 곰내재의 명칭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옛날 이곳 시냇가에 곰이 많이 살고 있어서 곰들이 내려와 냇물을 먹고 가는 곳이라고 하여 웅계(熊溪)라고 하다가 웅천(熊川)으로 바꾸어 불렀다고 전해지는데. 곰내재는 웅천리의 옛 지명을 따서 붙인 이름으로 보이며 현재도 웅천령과 혼용되여 불리기도 한다. 곰내재에서 함박산 방향으로 인증후 출발한다. 마루금 쪽으로 비포장 임도길이 있고. 아래쪽으로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 하나 더 있다. 지금은 윗쪽에 있는 비포장임도길로 올라 가지만 나중엔 밑에 있는 시멘트 임도길이 마루금에 올라와서 마루금을 이리저리 넘기도 하고 마루금상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곰내재에서 올라 서자마자 좌측 무명봉에 산패을 걸어 놓으셨다 해서 진짜 길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 밧지만 찿을 수 없었다. 후에 선생님께 말씀 드렸더니 밤에는 찿기 힘들거라 하신다. 무명봉에 산패를 설치했다고 해서 들어가 보지만 못보고 되돌아 나옴(길없음 방향) 함박산 갈림길 여기에 배냥 내려두고 함박산을 왕복한다. 왕복 20분 소요. 함박산에는 작은 돌탑이 있고 한쪽 구석에 식별을 할 수 없는 삼각점이 있고 조망은 그다지 좋을거 같지않다. 함박산은 천마산을 경유해서 달음산.월은산으로 이여는 갈림길이다. 후에 선생님께서 함박산에 산패가 있더나고 하신다. 못 밧다고 하니 홀대모 방장님이 왔을 때도 있었고 무한도전에서 왔을 때도 있었다고 하신다. 함박산(含朴山:457.9m)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예림리 북쪽에 있는 산으로 산의 생김새가 함지박을 엎어놓은 것 같다고 하여 붙은 이름으로 전해진다. 각종 지도나 기장군 행정 지도에는 명칭이 표기되여 있지 않으며 기장군 정관읍 남쪽의 천마산(天馬山)과 서쪽의 문래봉(文萊峰) 사이에 있는 치마산(治馬山)을 함박산으로도 부르나 예부터 정관읍 사람들은 예림리 뒷산을 함박산이라 불럿다. 여기서 동쪽으로 암릉이나 암벽이 없고 산봉우리가 둥굴다는 달음산(達陰山) 천마산(天馬山) 그 뒤에 철마산(鐵馬山)아홉산이 조망된다는데 지금 시간에는 볼 수가 없다. 삼각점은 뽐힌 체로 한쪽 구석에 버려지 듯 있었다. 다시 갈림길에 되돌아 와서 산행을 진행한다. 갈림길이 나오고 양쪽다 길이 좋다. 좌측 방향으로 진행한다. 애매한 곳에서는 선답자들의 리본에 새겨진 문구로 판단한다. 곰내정이란 사각정자와 운동기구와 쉼터가 있는 임도길에 내려서고 쉼터 뒷쪽으로 올라선다. 곧이여 자동차도 다닐만한 임도길이 나오고 이제 부터는 거의 임도길을 걷게된다. 굳게 닫힌 철문이 나오고 쪽문은 열려있다. 또 쉼터가 나오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정자로된 쉼터가 자주 나온다. 안내판은 클릭해서 원본으로 보기 y자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 직진으로 진행한다. 우리는 달음산 쪽에서 왔고 만화리 쪽으로 진행한다. 잠시후 좌측 숲으로 들어간다. 다시 임에 내려서고 또 다른 4각정자가 나온다. 다시 임도를 버리고 비알길을 오르면 아홉산 오름길이다. 이정목에는 아홉산이 0.8km라고 안내한다. 아홉산 직전에 249봉 만나는데. 땅 바닥에는 홀대모 방장님 시그널이 난도질을 당한체 흟어저 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수거 한다. 등로는 아늑하고 걷기에 좋다. 눌눌랄라 걷다보니 아홉산에 올라선다. 아홉산(361.2m)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연구리와 이곡리 일광읍 용천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봉우리가 아홉개라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가장 높은 봉우리 이고 서쪽 산록에서 웅천천이 발원하고 동쪽에서는 일광천의 지류들이 발원하고 장전천으로 합류한다. 북쪽으로 함박산. 천마산. 달음산으로 이루어진 산맥이 이여져 병풍처럼 곧게 뻗어 있고 동쪽으로는 일광 해안에서 임량해안으로 이여진 동해바다가 펼쳐져 있다. 곡산 장산의 봉우리가 이여져 있다. 아홉산의 삼각점 아홉산에서 내려가면 다시임도길을 만나고 임도길을 걷는다. 다시 숲으로 들어가고 잠시 올라서면 278봉에 올라서지만 조망도 없고 별달리 특징도 없는 평범한 봉우리다. 278봉에서 조금 내려가니 쉼터로 조성되여 있고 모처럼 조망이 트이는데 짙은 미세먼지로 조망이 별로 안좋다. 일출이라고 건진게 이모양이다. 다시 내림길을 걷고 예전에는 무슨 고개였을 텐데 마루금을 뭉텅 잘라내고 육교로 연결을 해 놓았는데 밑을 내려다보니 머리가 아찔할 정도로 깁게 파여있다. 차라리 터널을 뚫었으면 좋았을거 같다. 여기서 부터는 갈멧길이라 하였다. 육교위에서 일광면 용천리 방향 육교위에서 철마면 이곡리 방향 육교를 건너서 마루금을 올려다 보니 금방 임도에 내려설거 같아서 그냥 임도길을 걷는다. 우측으로 지나온 아홉산이 보인다 임도길에 정자는 수도 없이 많지만 아직 한번도 앉아보질 안았다. 우측에 마루금을 두고 계속 임도길을 따른다. 임도가 좌측으로 돌아가는 위치에서 우측에 사각 정자에서 스프와 빵으로 아침식사를 한다. 식사후 가볍게 한봉우리 올라서니 319.3봉이다. 319.3봉에서 옷 하나씩 벗더니 힉 가버린다. 319.3에서 내림길에 바위에 지적삼각보조점이 박혀있다. 아래쪽에는 八福点이라 써 있고 화살표시가 있다. 우측으로 조망 앞쪽에 우뚝솟은 산성산이 보이고 사진몇장 찍는 사이에 일행들은 저마치 앞서가고 있다. 좌측으로는 기장 동원로얄C.C가 보이기 시작한다. 점점 더 멀어진다 뭣이 저리 바뿔꼬 지나온 319.3봉 지금시각 8시43분 아직 골프를 치는 사람은 보이질 않는다. 잔뒤나 한번 밟아보자 부드럽고 좋네 임도가 골프장에 닫는 위치에서 직진으로 원형 철조망을 넘으면 공원묘지가 나오고 묘지 우측에 있는 길로 내려간다 내려와서 보니 부산진교회 교회묘역 이란 안내판이 있다 대문은 잠겨있고 옆으로 삐집고 나간다. 부산진교회 묘역을 내려서면 14번 국도가 지나는 쌍다리재에 닺는다. 쌍다리재에서 우측으로 해운대구 안평리 방향 우측에 임도가 우리가 내려온 길 쌍다리재는 부산관역시 기장군 기장읍 만화리에서 철마면 안평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쌍다리재라는 명칭은 안평리 쌍다리 마을에서 유래되였다고 하는데. 쌍다리 마을은 본래 안평마을 북쪽으로 윗쪽에 있는 상달(上達)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상달마을이 상달이 마을로 다시 쌍다리 마을로 바뀌였다. 쌍다리재는 달맞이 고개와 함께 기장에서 부산 도심으로 빠지는 주요 길목으로 모두 부산에서 울산으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인데. 몇년전만 하더라도 왕복 2차선으로 옛길을 따라 도로가 포장되였으며 꼬불꼬불한 고갯길 이있었는데.지금은 왕복 4차선으로 확장되여 기장과 동래를 잇는 주요 통로로 이용되고 있으며 고개 좌측에는 기장동원로얄c.c 와 부산진교회 공원묘지. 우측에는 함경북도 실향민들의 공원묘지인 영락동산이 자리하고 있다. 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쌍다리 험한 고개에 의적(義) 정봉서가 있었다. 예전엔 어디에나 사람들이 많이 넘었던 고개에는 도적들이 있었는데.부산의 고개에서 마주친 도둑 중에는 흉악범뿐만 아니라 의적도 있었다. 한양에 의적 홍길동이 있었다면 부산 기장에는 정봉서가 있었다. 그가 도적이 된 배경에는 기구한 사연이 있다. 원래 정봉서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어느 날 홀어머니가 병석에 누웠는데 한 의원이 개 1000마리를 먹어야 살 수 있다고 했다. 한마디로 살 수 없다는 애기였을 것이다. 이때부터 정봉서는 지나가는 개을 보기만 하면 훔쳐 뒷다리를 고와 어머니께 드렸다. 그렇게 시작한 바늘 도둑이 점차 소도둑이 되였다. 어머니를 위한 생계형 도둑질이 큰 도둑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여느 산적는 달랏다. 부잣집을 털어 가난한 집을 도와주는 일도 했다. 하루는 정봉서가 아이를 출산하는 집을 지났다. 산모를 위한 쌀과 미역을 준비하지 못해 한숨만 쉬는 남편을 보았다. 인기척이 들려 남편이 나가보니 쌀과 미역 고기가 놓여 었다. 정보서가 두고간 간이다. 이렇게 의적으로 소문난 정봉서도 결국 동래 포졸에게 잡히고 말았다. 옥에 갇힌 정봉서는 먹을 것을 주지 않아 굶어 죽었다. 이 소식을 들은 정봉서의 아내가 동헌으로 달려갔다. 남편에 버금가는 장사였던 그녀는 하마석을 번쩍 들어 동헌의 문을 쳐버렸다고 한다. 도로을 건너서 영락동산으로 올라간다. 산꾼들이 식사를 한다는 식당은 망했는지 문을 닫은 상태다. 여기서 점심을 먹겠다고 도시락 없는 산행을 했다가는 큰 낭패를 보겠다. 영락동산 사진을 클릭해서 읽어보기 사진에서 보기 보다는 경사도가 꽤 되는지라 힘들게 올라간다. 도로 끝 지점에서 퍼질러 앉아 한참을 쉬여간다. 내려다본 동원로얄c.c 급경사 길을 낑낑 거리며 올라오는 모습이다. 어느정도 올라서니 산성산으로 가는 길은 완만해 진다. 산성산이 0.7km라는 이정표을 지난다. 목책계단을 올라서면 산성산 정상에 올라선다. 힘겹게 올라선 산성산 정상의 이정목 해운대가 5.4km라고 하는데 해운대 어느지점을 가리키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갈 해운대는 아직도 10km이상 남았다. 산성산 정상 한 가운데에는 기장읍성 발굴현장이 있다. 산성산(山城山:369.2m)은 부산광역시 철마면과 기장읍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부산 근교에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산으로 일명 수령산이라 한다. 정상표지석은 없고 3등 삼각점과 기장읍성 안내판과 문화재 발굴로 인해 커다란 웅덩이가 생겨났다. 서쪽으로 장산.철마산.거문산.물래봉.백운산.등이 보이고 북쪽으로 대운산.달음산.일광산. 동쪽으로는 일광바다에서 남쪽으로 남산 연화봉 등이 눈에 들어 온다. 발굴이 진행이 중단 된건가? 삼각점이 있고 사각 정자도 있다 안내문은 사진을 클릭해서 읽어보기 정상에서 내려서면 무너진 성터가 있고 기장성터의 대한 안내문이 있다. 무너진 성터 흔적 등로는 한없이 부드럽고 좋다. 지나온 함박산.아홉산 방향 우측으로 철마면 안평리가 내려다 보이고 안평역이 선명하게 보인다. 산성산에서 20여분 내래가면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으로 방향을 잡고 사거리가 나오고 좌측으로 진행한다. 여기 위치가 지도상 남나기 고개이다. 남나기 고개는 기장군 기장읍 대라리에 있는 고개로 지명은 바로 윗쪽에 있는 남나기 마을에서 유래하였다. 오늘 구간의 최고봉인 장산이 조망된다. 산성산에서 내려가면 임도 사거리가 나오고 좌측은 기장으로 내려가는 방향이고 우측으로 안평역이 2.4km라고 안내한다. 그런데 장산이 아직도 5km라고 한다 지나와서 돌아보며 찍은 모습 산성산에서 한참을 내려왔으니 장산 오름길이 가팔라 진다. 다시 반송 갈림길을 만나고 정상(장산) 방향으로 올라간다. 임도길에서 17분 올라서면 전망테크가 있고 부산시내 건너편으로 금정산이 히미하게 조망된다. 등로에 여송송씨 신도비 운동기구와 돌탑이 있는 곳을 지난다. 여기서 부터는 산책하는 등산객이 제법 보인다. 좌측으로 구곡산 갈림길 지맥길은 우측으로 올라간다. 예전에는 구곡산 지나 부흥봉으로 달맞이 공원에서 용천지맥을 종료했으나 군부대로 인해서 진행할 수 없는 구간이 너무 많아서 지금의 동백섬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한다. 우측으로 진행 운동장같은 헬기장이 나오고 여기서 마지막으로 한참을 쉬여간다. 아래 쪽으로는 미세먼지로 희뿌연데. 높은 하늘에는 미세먼지 없이 푸르기만 하다. 앞에 보이는 감시초소에서 우측으로 내려서야 하는데. 좌측으로 진행하여 알바을 한다. 알바길로 올라간다. 그런데 여기에도 선생님의 산패가 걸러있다? 비실이 선배님 리본도 걸려있고 승리를 믿는자 승리한다. 뒷 면에는 이곳을 거친자 조국을 지키리라 그런데 애네들은 뭐지? 짓지도 않는다. 되돌아 와서 마루금으로 붙고자 숲으로 올라가는데 잡목이 장난이 아니다, 그냥 군부대로 들어가는 도로길로 장산으로 향한다. 좌측에는 엄청나게 넓은 습지가 있다. 장산습지는 해운대구 반산동 장산 습지 일대 3만6500m2를 생태경관보전 지역으로 지정된 장산 습지는 한반도에서만 서식하는 산골조개와 멸종위기 설앵초 군락지가 형성되여 있다고 한다. 군부대로 올라가는 도로 일반 등산객도 이길로 다닌다. 더 이상 직진으로 올라가면 군부대로 올라가는 길이라 좌측 억새밭 방향으로 들어가서 우회한다. 이정목에는 정상방향을 우측이라고 가리키지만 억새 밭으로 진행한다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우측으로도 군부대를 돌아서 올라갈 수는 있는데. 계곡도 건너게 되고 길이 상당히 안좋다고 한다. 억새 군락지로 들어가고. 억새를 보니 가을 분위기가 물씬난다. 과거 지뢰지대를 우측에 두고 철조망따라 진행한다.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올라가면 다시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으로 군부대 후문이 보인다. 후문이 보이는 곳에서 좌측으로 진행한다. 다시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으로 군부대 정문인지 후문이지가 보이고 좌측으로 돌아간다. 뒤를 돌아보면 저기가 장산 정상인거 같다. 부대 철책밑에 자연석에다 장산이라 써 놓았다. 태극기도 펄럭이고 장산(長山:634m) 부산광역시 해운대구에 위치한 장산은 해운대 앞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조망이 아주 좋은 곳이다. 장산(長山:634m)은 부산에서 금정산(金井山:820m) 다음로 높은 산으로 옛날 주변에 장산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이름이 유래되였다. 장산의 유래를 보면 동국여지승람 에는 장산국 일명 거칠산국으로 삼국사기 삼국유사 에는 황령산으로 불럿다고 한다. 신라 석탈해왕(23년 서기 57~59)은 신라와 가야 연맹국 경계에 끼인 우시산국(옛 울산)과 거칠산국(옛 동래)의 세력이 완성되자 거도장군에게 말놀이를 가장하여 병마를 일으켜 두 나라를 정복하였으며 그후 신라 지중왕(6년)에는 거칠산국을 설치하였으며 신라 경덕왕(16년)은 행정적 요건을 갖추기 위하여 거칠산국을 두고 고장산국이라 명하였다. 장산의 정기를 받아 건국한 장산국은 거칠산국이 정복당하기 전에는 어느 강대국의 부속국이 되지 않고 독립국으로서 초기 국가의 행정력을 갖추고 독자적 나라로서 운영하였다고 하는데 장산의 정확한 명칭 사용은 조선 영조16년(서기 1740년) 장산이라고 표기하였으며 옛 장산국 터전에 오늘의 해운대구 장산이 되였다. 옛날에는 상산이라 불렸으며 전설에 따르면 상고시대에 산 아래 우시산국(于尸山國)이 있었는데 尸는 고어로 ㄹ로도 읽고 ㅅ 으로도 읽으므로 울산 또는 웃산이 되였다 가 옛 동래지방에서 웃뫼 라고 부르면서 상산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신승동국여지승람 에 대마도(對馬島)를 바라보기에 가장 가깝다. 라고 기록되여 있듯이 맑은 날이면 남서쪽 약 50km 지점에 대마도섬이 뚜렸하게 보인다. 장산은 오랫동안 군부대가 주둔해 입산을 금지한 탓에 도심지에 가까우면서도 자연상태를 잘 유지하고 있어 주말 산행객들이 많이 찿는다. 장산에는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태곳적 해운대 장산 기슭 장자 벌에 고 선옥이란 처녀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토담집에 살았다고 한다. 어느날 소나기 한 줄기가 지나가고 쌍무지개 다리가 나타나더니 무술이 뛰여난 지혜가 밝은 한 선인이 무지개를 밟고 내려와 사방을 둘러보니 이곳의 풍광에 넋을 잃고 있을 때 마침 어디선가 불어오는 분향기에 취하여 따라가 보니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고선옥(高仙玉)을 만났다. 선인은 냉수 한 대접을 청해 받고 물 사발에 담겨진 처자에 반하여 색시로 삼아 해운대와 처음 인연을 맺어 부부가 되여 장산의 정기를 받아 아들 딸 십여명을 낳고 스무곳 마을을 이루어 안씨.정씨.박씨. 이씨. 김씨.최씨 성을 정하고 선인은 대 족장으로서 스무 부락을 다스리며 장산국이라는 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이러한 장산국을 세워 통치하다 세월이 흘러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아 올라간 선인은 그뒤 하늘나라로 가고 고선옥 할미 혼자 장산의 혼으로 남아 그리움을 달래가며 오늘도 산 구름을 쫓고 살고 있다고 한다. 옥황상제의 부름받아 올라간 선인은 그 뒤 영영 소식이 돌아오지 않고 홀로된 고선옥 할미는 영감바위에 올라 한없이 기다리며 장승처럼 서 있다가 안개처럼 사라졌다고 한다. 그 후 씨족들은 바위를 깍아 상여바위에 묘를 만들어 오래도록 영혼을 달래 모셔왔으며 지금은 제반왕 바위.영감할매 바위.상여 바위가 되여 장산 허리에 사는 마을을 지켜 궂은 일을 몰아내는 수호신이 되였다고 한다. 이 고선옥 할미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사당을 세워 대보름마다 고당할미 제사를 지내며 첯술 밥 떠. 고시래라 하며 예를 올리면 아들없는 아낙네는 옥동자를 낳고 영감.할매 바위에 정성을 올리면 부부 정이 한없이 두터워 진다고 전해지고 있다. 여기서는 나도 한장 남긴다. 장산에서 조망 장산에서 내려다 본 해운대 마린시티와 광안대교 장산에서 내려다 본 해운대엘시티와 마린시티 중봉이 1km라는 이정목. 장산을 내려가면서 기암 좌측에 중봉 우측에 옥녀봉 해운대엘시티와 마린시티 옥녀봉 광안대교 좌측으로 오륙도가 보인다. 옥녀봉(玉女峰:383m) 그런데 장산 옥녀봉에 대한 유래를 찿을 수 가 없다. 전국에 옥녀봉이란 이름을 가진 봉우리는 수십개가 있다. 굳이 유래를 따진다면 어디에 있는 것이나 거의 같은 내용의 뜻을 가지고 있다. 옥녀봉에서 내려서는 암릉구간 무명봉에 삼각점이 있어서 확인해보니 237.9봉이다. 287.9봉에서 내려가면 만나는 유격훈련장. 좌측으로 군부대 철조망을 두고 내려가는데. 147.8봉인 간비오산이 빼꼼이 보인다. 둥굴둥굴한 원형 철조망이 나오고 철조망을 넘고 다시 한봉우리 올라서면170.8봉에 올라선다. 커다란 돌탑을 지나고 뒤를 돌아보면 지나온 장산이 우리를 배웅하는 듯 하다. 무명봉에 삼각점을 지난다. 군데군데 운동기구가 설치되여 있는 쉼터와 통나무 계단길을 올라서면 마지막 산인 간비오산에 올라서니 어제에 이여 오늘도 준.희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간비오산 봉수대(干飛烏山 烽燧臺) 간비오산(干飛烏山:147.9m)은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1동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고. 조선시대 해안에 출몰하는 왜구를 감시하는 역활을 했다. 남쪽 해안가에 해운대 동백섬이 있고 그 오른쪽에 해운대 백사장이 펼쳐지는 절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조선시대 간비오산에는 봉수대가 있어 봉대산이라고도 했다. 간비오산 봉수대는 그 설치연대가 확실치는 않으나 고려말부터 갑오경장 시(1894년 조선 고종31년)까지 약 700여년 동안 해운대 일대를 침입한 부산에선 황령대 봉수대와 함께 가장 오래된 봉수대이다. 서쪽으로는 황령산 봉수대 북쪽으로는 기장의 남산 봉수대와 연락하는 경상좌도의 간봉의 깃점으로 도별장 1인밑에 별장 6명.감고 1인.봉분 100명을 두고 경상좌도 수군절도사령에서 관장하였다고 한다. 간비오산 봉수대는 두 갈래길로 한성(京)으로 직봉과 간봉으로 전달되였다고 한다. 하나는 (부산진 황령산 봉수대).동래 계명 봉수대.양산 원적산(원효산) 봉수대.영천...의성...충주로 해서 한성으로 연결되는 직봉이 있었고. 두번째는 부산진(황령산 봉수대). 간비오산.기장.울산...영덕...안동...충주...한성으로 이여지는 간봉이 있었다고 한다. 간비오산에서 해운대 마린시티 조망 마침 주민 한분이 올라 오시고 부탁해서 단체사진 한장 남긴다. 마지막봉인 92.3봉에 닫고. 92.3봉에서 우측으로 우회길이 있지만 좌측이 마루금이라고 앞장서서 길을 안내 하신다. 예전에 여기가 철길이였다고 한다. 동백교에서 용천지맥을 졸업한다. 동백섬에서 선생님께서 우리을 첯번째로 안내한 곳은 최치원선생 동상이 있는 곳. 동백섬(冬栢島)은 동백나무가 자생하는 남해안에는 동백섬이란 이름을 가진 섬들이 많다. 지금 해운대구의 해운대도 통칭은 동백섬이다. 동백은 예부터 겨울철에 동백이 지천으로 피여 꽃방석을 이루고 바다와 구름 달과 산이 한데 어울렸던 곳으로 옛날엔 섬이였으나. 장산폭포를 흘러내린 물과 좌동 동쪽 부흥봉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합류한 춘천(春川)이 좌동.중동.우동지역의 충적평야의 모래를 실어 내려서 육지와 연결된 육계도(陸繫島)이다. 이곳은 최치원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유적지일 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경관이 매우 빼어나 유명한 시인 묵격들이 즐겨찿는 곳으로 지금 동백선 주위에는 해송이 울창하고 섬의 정상에는 최치원 선생의 동상과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해운정(海雲亭)이 있고. 1층은 매점이라는데 퇴근을 했는지 문이 잠겨 있다.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선생 동상 동백과 해송이 무성한 이곳은 신라가 망해가던 9세기 후반에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이 벼슬을 버리고 천하를 방랑하던 중 이곳의 풍경에 매로되여 동백섬 남쪽에 잠시 머물렸다고 한다. 그는 머믄 기념으로 동백섬 동남쪽 해변에 바위에다가 해운대(海雲臺)란 석각을 남겼는데. 해운대란 지명은 거기서 나왔다고 하며.최치원 선생의 자인 고운(孤雲).해운(海雲).해부(海夫).중에 해운(海雲)을 땃다고 하며. 선생의 자중에 대표적인 것은 고운(孤雲)이다. 그가 신기루처럼 사라진 이후 수많은 문인들이 해운대의 명성을 듣고 앞다투어 찿아와 시와 글. 그림을 남겼으며 대한팔경의 하나이자 부산제일의 관광지로 변함없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해운대하면 해운대해수욕장과 해운대역 주변 번화가를 생각하지만 해운대의 원조는 동백섬이다. 동백섬의 언덕을 운대산(雲臺山)이라 불리웠는데.그 정상에는 최치원의 동상과 유허비가 있어 최치원의 유적지를 이루고 있다. 두째로 간곳이 누리마루 2005년APEC정상회담이 열렸던 곳. 한국어.영어.중국어.일어 중 위치에 서면 모니터에는 해당국어로 설명이 나온다. 회의장 그리고 휴식처 등대도 둘러보고 맞은 편에는 오륙가 조망된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남겼다는 해운대(海雲臺)란 석각 사람들이 우리를 위 아래로 힐끔힐끔 처다본다. 관광지에 이상한 복장을 한 사람들 아닌가. 인어상 해운대 광안리 해수욕장 저녁 식사는 부자집에서 딱 요시에 전국에서 이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말미잘 요리로 선생님께서 손수 한사발씩 떠 주십니다 늦은 시간 곰내재로 이동하여 아침 7시까지 퍼질러 자고 아침을 해먹고 9시30분에 선생님 만나서 오륙도와 신선대를 관광하고 점심식사후 부산을 출발한다. 이후로 오륙도 관광
오륙도를 중심으로 좌측은 동해바다. 우측은 남해바다. 좌측으로 진부령까지 해파랑길 (약800km)시작지점 이고. 우측으로 땅끝까지 남해안길 (약2.000km)시작지점. 준.희 선생님께선 해파랑길.남해안길. 완주 하셨고 서해안길 8km 진행하셨고 내일부터 5박6일. 170km진행 계획으로 새벽 4시반에 부산을 출발 하실거라 하셨다. 오륙도(五六島) 소요경비 이동거리=1050km(왕복) 유류비=84.000원(연비15km/디젤1.200원) 톨비=갈때21.000원/올때27.800원 행동식 등=120.000원 합계252.800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