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이러한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학교구성원의 인권감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인권은 '사람의 문제'라는 점에서
일차적으로 '개념화의 문제'이지 제도나 시스템의 문제는 아닙니다.
즉, 인권 보장을 위해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은 후차적이고 추가적인 문제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우선, 학생존재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인식',
인권의 눈으로 그들의 삶을 진단하는 '안목',
그들의 왜곡된 일상적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실천의지'가 더 앞서야 한다고 봅니다.
'공부압력'으로 자살도 마다 하지 않는 교육조건에서,
그들의 삶은 전혀 달라진 바가 없는데,
그럴 기미도 별반 보이지 않는데,
어른들의 인권담론은 참으로 풍성하기만 하다.
'초라한 현실, 찬란한 언어'
제도나 시스템에 집착한 논의보다는,
학생인권 개념의 내포와 외연을 심화하고 확장하는 일에 주목하자.
그래야. 인권감수성이 높아질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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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계도 인권 불감증
얼마 전 대박을 터뜨린 영화 '선생 김봉두'에서 주인공인 김봉두 선생이 가장 편애하는 아이 소석이를 때리는 장면이 나온다. 소석이가 선생이 그렇게 원하는 '촌지'를 마련하려 산에 가서 약초를 캐다 학교를 빠졌기 때문이다. 선생은 아이를 때리다가 이내 부둥켜안고 운다. 나는 꽤 웃으며 영화를 보다가 점점 신경이 곤두서고 있었는데 그 장면에서는 정말 극장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아이의 진심을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어린이에 대한 이유없는 폭력이 미화됐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코를 훌쩍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망연자실해졌다. 선생을 위하는 아이의 마음, 그 아이의 마음을 알면서도 학교 결석에 대한 벌칙을 주려는 선생의 마음이라는 설정이 사람들을 울리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런 멜로적 설정 때문에 사람들은 교사의 폭력에 별다른 반감을 갖지 않게 된다. 소석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뭘 위해 교사는 때리는지, 결석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그렇게 모진 매여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단지 영화일 뿐이라고? 아니다. 내가 분노했던 것은 영화 속 현실이 실제 즉, 현실과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한국 교육현실에서 폭력에 의한 인권침해는 둔감한 듯 하다. 중고교의 입시지상주의 교육과 그 억압성에 대해 열을 올리며 불만을 토로하던 제자들도 상당수는 '체벌'에 동조한다. "잘못했으니까 맞는 거죠", "제가 그때 맞고서야 정신차렸거든요", "때리지 않으면 애들이 선생을 우습게 봐요" 등등. 전혀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제도, 자원, 시설 모두가 열악한 상황에서 사실 교사들은 통제의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공포와 체벌을 선호할 수 있다. 또한 실제로 맞고 자란 아이들은 외부의 물리적 자극이 없으면 반응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맞으면서 공부하고 운동하며 자란 사람들이 순간적인 폭력에 즉각 반응해 성적이 급상승하거나 운동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경우가 꽤 있는 게 사실이다. 요즘 "혼내지 않고 오냐 오냐" 키운 아이들은 문제아가 된다며 기강과 따끔한 회초리를 강조하는 교육론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하지만 그런 단기적인 목적이나 효율성을 위해 교사들이 드는 '사랑의 매'는 학생들을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고 무엇보다도 그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존중심과 자긍심을 잃게 만든다. 영혼 깊은 곳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또한 끔찍한 인간 기본권과 존엄성의 침해다. 사랑의 매와 교사폭력이 그리 쉽게 구분되지 못한다는 점을 체벌론 자들은 알고 있는가. 물론 물리적 폭력 못지 않게 언어적 폭력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남긴다. '국민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내게 뱉었던 폭언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하면 여전히 아프고 끔찍하다. 중학교 때 체육선생님에게 맞았던 순간, 군대에서 부당한 폭력에 순종했던 순간은 지금도 치욕적이다. 그런 내가 나를 존중할 수 있겠는가. 화가 나면 나도 모르게 폭력적인 복수심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다. 폭력 속에 자란 사람이 다른 사람, 아니 자기 자식의 인권을 존중하겠는가.
인권이 무엇인지, 무엇이 인권침해인지도 몰랐던 군부독재시절만의 얘기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월드컵 4강을 외치고 선진국 문턱에 와있다고 '국민'을 매일 매일 독려하는 한국사회의 부국강병적 나르시시즘 문화 속에서 인권을 귀하게 여기고 세심하게 존중하고 보장하려는 마음, 그것에 대한 침해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감각은 여전히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NEIS에 대한 찬반논쟁이 온 나라를 달구고 있다. 네이스의 독소를 읽으면서 국민학교 시절 교실에서 신상명세조사를 공개적으로 하던 장면이 떠올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집에 텔레비 있는 사람 일어나!", "아버지가 대학 졸업한 사람?", "집에 전축 있는 사람?". NEIS 같은 획일적 정보집중 거대 시스템이 명백한 프라이버시/인권 침해라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라면 평범한 고등학생도 뻔히 알 수 있는 문제다. 그것을 교육단체간의 '기싸움'으로 몰아가면서 효율성과 편리함, 입시현장의 혼란과 지금까지 들어간 천문학적인 비용 타령을 하는 대다수 언론, 교장단·교육부 관리들의 머리 속에서 과연 인권이라는 개념이 존재할까. 그 가치체계에서 인권이 도대체 몇 순위에 자리 잡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아, '선생 김봉두'에 손뼉 치고 눈물 흘리는 사회라면 NEIS를 기획하고 만들고 로비하고 그리고 마침내 실행하려는 끈질긴 시도에도 여전히 무감각할 수 있겠다. "인권? 인권이 밥 먹여줘? 그게 다, 학생들을 위해서 하는 일인데 말야"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