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깃줄에는 참새가 두 줄에 걸쳐 쪼르르 앉아 있었다.
멀리 산 위에는 나무가 투명하게 서 있었고 다시 그 뒤에는 산, 또 다시 뒤로 오후
의 잔잔한 햇살이 우리를 향하고 있었다. 이어서 나타난 세개씩 연이은 굴뚝에서는
폴폴 하늘을 향해 하얀 연기를 비스듬히 뿜어내고 있었다. 그 밑으로는 검붉은 빛을
띤 모래가 둥글 둥글 표면에 성기게 남아있을 뿐으로 그 외는 온통 바닷물 차지였다
.
우리를 태운 버스가 갔던 길을 돌아나온다 했더니 어느새 하얀 얼음이 한쪽에 길다
랗게 얼어있는 물길 옆으로 끝없이 이어져 보이는 황야같은 곳을 지나고 있었다.
키작은 황색 풀들이 간간이 보이고 표면에는 더 낮은 식물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아무도 없을 것 같은 그 곳을 한 커플이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순간 영화의 한 장면을 실제로 본 듯 약간의 감동이 일었다.
우리의 버스가 거의 차가 보이지 않는 길을 거침없이 가는 동안 무슨 무슨 건설이라
고 적은 푯말만 박아 놓은 풀이 무성한 땅을 목격하기도 했고 거의 다 지어놓은 아
파트 단지를 여럿 목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야산 꼭
대기의 광고판이나 주민들이 합세하여 붙여놓은 듯한 '결사 반대'같은 플랭카드만이
눈에 띄기도 했다.
우리가 도착한 용유도에는 끝도 없는 해변과 함께 키가 크지도 적지도 않은 소나무
숲이 해변길을 따라 펼쳐져 있다. 하지만 자연을 감상하기에 앞서 그 앞을 가로막고
있는 비슷비슷한 음식점들에 눈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비슷비슷한 가게 이름
을 내건 채 해변가를 차지하고 있는 허름한 모습들은 바닷가의 낭만적인 모습에 기
대를 갖고 온 우리들에게 적지 않은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용유도의 마시란 해변이 끝나는 곳에 여느 뭍과 다름없이 풀이 무성한 땅만 보이는
가 했더니 조금 더 가자 또다른 해변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름하여 을왕리 해수욕장
. 조금 전에 본 용유도와는 달리 해변가의 모래가 더 고와보여서 여름에 많은 사람
들이 찾았을 것만 같다. 우리는 주차장 입구에서, 한 시간 후에 다시 만나서 떠나기
로 하고 헤어졌다. 나는 서슴없이 코 앞에 있는 음식점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음식점 안에는 둥근 테이블들이 정연하게 놓여 있고 방금 나간 손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메뉴 중에서는 망설이지 않고 '조개 백반'을 골랐다. 한번 쯤 먹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어서 먹지 못했던 조개탕이 나온다는 말에 기대까지 걸었다. 잠
시 후 적당한 크기의 지지미가 나온 후 갖가지 조개가 듬뿍 든 식사가 나왔다. 국물
을 맛있게 먹고 깻잎과 고추 삭인 것 등 깔끔한 반찬도 너무 잘 어울렸다.
바깥에 나오니 날씨는 춥고 할 일은 없다. 같이 온 '작은 손'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청년이 모래 위를 달리는 자동차를 빌려 달리고 있다. 장난감같은 자동차에 소년같
은 운전수가 잘 어울린다. 찰칵~ 사진기를 눌렀다. 불러서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한 장씩 찍었다. 뿔뿔이 헤어졌던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우리는 용유도로 가기로 했다.
거기까지 가서도 추운 날씨에 언뜻 나갈 생각을 못하고 있는데 한 분이 여자들만
불렀다. 불꽃 놀이를 하기 위해서였다. 인기있던 드라마 마지막 회에서 본 일이 생
각나기는 했지만 실지로 보기는 처음이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겨우 손으로 바
람을 막고 나서야 겨우 하나에 불이 붙었다. 다른 막대에도 하나씩 이어가며 불을
붙였다. 잠시 아이가 된 느낌이었다. '진주'님 감사해요.
그런데 해가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누구 말처럼 눈깜짝할 새가 아니었다. 아주
꼭대기만, 그리고 조금 아래, 그리고 중간, 다시 중간 아래, 그리고 천천히 해가 사
라졌다. 10분까지는 아니었지만 몇 분 걸리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해변에서 같이
2002년 마지막 해를 주시했다. 그런데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별 생각없이 해변으로 노란 차를 몰고 가던 선샤인님이 차에서 내려 바퀴를 살펴보
기 시작했다. 차가 모래에 빠졌다는 것이다. 정말 그랬다. 도구를 들고 바퀴 옆의
모래를 파보았지만 여전했다. 그런데 한 레저용 차가 다가오더니 한 30대 운전자가
내렸다. 차에서 밧줄과 고리를 꺼내더니 자신의 차와 우리의 차 뒤를 묶었다. 동시
에 뒷방향으로 운전이 시작되고 차가 서서히 움직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밧줄이 끊
어졌다. 아직 완전히 모래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싶었는데 뜻밖의 도움을 받은 우
리 차는 혼자서 움직이려 애를 쓴 끝에 마침내 풀이 난 안전 지대로 이동했다.
고마운 그 분의 차 속을 드려다 보니 장애인듯 싶은 여러 사람이 빼곡이 앉아 있었
다. 저 사람들을 구경시켜 주러 일부러 나온 것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노란 차에
탄 우리처럼 저 사람들도 바다 구경을 하러 참으로 오랫만에 외출을 한 것에 틀림없
다고 생각하니 차 안에서나마 천진하게 손을 흔들던 그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30분 정도가 그렇게 흐르는 동안 어느새 해변은 형언할 수 없는 신비한 빛깔로 물들
어 있었다. 분홍색이 주조를 이루고 약간의 보라빛도 띠고 있는 하늘과 갯벌. 갯벌
사이로 물길이 여기저기 난 것은 갯벌에 썰물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너무나 빨리 물
이 빠져서 다들 놀라는 얼굴이었다. 나도 썰물이 제대로 빠지는 것을 본 것은 처음
이었다. 그러니까 저 물길들은 조금 전에는 물 밑에 있던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남
은 한 컷을 찍고 차에 올랐다.
벌써 껌껌해진 시각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의도쪽으로 차를 돌렸다. 그리고 약간
무시무시한 마음으로 실미도가 근처에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시커먼 바다 위로 크
고 작은 배가 떠 있다는 것을 희미한 실루엣으로 확인했다. 차를 더 달려 긴 다리
바로 앞에 도착했다. 그 다리만 건너면 무의도라고 했다. 언제라도 건널 수 있는 것
은 아닌 듯 줄같은 것이 걸려있었다. -밤이라 더 기억이 확실치 않지만-
이곳 저곳 구경한 것이 대견하기도 하였지만 돌아오는 길은 역시 다소 지루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서울 중심지에 오기 전까지는 속도를 계속 낼 수 있었다. 신사동에
도착.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다들 헤어졌다. 모두에게 여행 자체가 가장 중요한 일
인 듯 싶었다.
카페 게시글
주말 정기여행 / 참가 후기
을왕리 가는 길 (작년에 간 해넘이 여행 후기)
솔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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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1.0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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