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24일 창원시 신월동 용지공원에는 경남의 각 지회 고엽제후유 의증 전우회원들이 모인 조촐한 친선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각 지회 간에 게임도 하고 노래 자랑도 하는 즐거운 시간이 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고엽제 피해 보상을 받기 위해 자구책을 마련하는 동안 성의없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는 정부에 대해서는 울분을 터뜨렸다.
그들은 고엽제후유의증 등급서 제외된 2만여명이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 고엽제 제조사에 보상 소송을 내기도 하고 미국 백악관을 항의방문하기도 했다. 또 각종 집회를 열어 자신들의 처절한 입장과 요구를 알리고 있다.
그들이 참전한 전쟁은 지난 20세기 중후반에 치러진 것이었다. 21세기가 시작된지도 수년이 지난 지금. 과거의 그 전쟁에서 받은 피해가 무엇이길래 그들은 분노어린 전쟁을 아직도 끝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파월장병 고엽제 경험담>
온몸에 둘러쓰거나 맨손으로 뿌려
당시 군인들에 별다른 지시나 주의사항 전달않아
귀환병 상당수 1970년대부터 원인모를 병 시달려
10월의 마지막 날인 지난달 31일 고엽제후유증으로 창원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김우성(52)씨는 휠체어에 앉아 소속 부대를 묻는 질문에 『청룡부대, 해병대, 25중대, 6중대, 분대장...』이라며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려고 했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고엽제가 뇌 신경에 스몄
고 몸의 오른쪽에 완전히 녹아 들어 그 혀와 사고를 완전히 「무장해제」시켰기 때문이었다.
베트남의 정글은 미군의 전쟁 수행에 커다란 장애물이었다. 비행기는 보이지 않는 적의 지상포화에 격추됐고 「베트콩」들은 풀잎과 나뭇잎을 항전의 방패막이로 이용하고 있었다. 미 국방성은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정글제거 작업의 일환으로 전쟁터의 「달표면화(lunarization)작전」을 계획했고 제초제로 쓰이는 화학물질 4가지를 개발했다. 그것 중 하나가 바로 황색고엽제였다. 제조는 다우케미컬이 독점적으로 담당했다.
당시 참전했던 군인들에게는 고엽제에 대한 별다른 지시나 주의사항도 없었다. 그들은 그냥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약을 뿌리는 줄로만 알았다. 비행기가 고엽제를 뿌리고 가면 안개가 낀 것 같았다.
당시 맹호부대 기갑연대 6중대 1소대장으로 있으면서 현재는 김씨와 같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임정길(62·창원시 중앙동)씨. 그가 남베트남 중부 해안 퀴뇬 서쪽의 충탄산에 있을 때였다.
그는 『기지에서 보면 쌍발기가 지나가면서 약을 뿌렸고 며칠 지나면 산들이 빨갛게 변했다』며 『곧이어 명령이 떨어지면 그 현장에 가서 작전을 수행했다』고 말했다.
연대나 사단 규모의 작전일 경우 일주일 동안 혹은 한달 가량 그곳으로 가서 지냈다. 수색이나 매복의 경우 당일 혹은 1박2일 일정으로 작전을 나갔다 오곤 했다.
작전 중에는 그 지역에 있는 개울물을 수통에 채워 정화제 한알을 넣고 마셨다. 다들 『월남은 물이 좋고 물맛도 좋다』고 말했다. 군인들은 베트콩들이 물에 독약을 뿌린다는 이야기 때문에 고인 물은 피하고 흐르는 물만 먹으라는 주의에 충실했다.
그는 또 『해병들 이야기로는 샤워하는 식으로 고엽제를 맞기도 해「머리박」위에 바로 둘러쓰기도 했다』며『물이 없는 지역의 군인들은 고엽제가 물인 줄 알고 입을 벌려 마시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비행기로 공중살포시에는 모기에 물리지 않는다고 고엽제가 쏟아지는 곳을 쫓아다니면서 조금이라도 더 맞으려 한 경우도 있었다. 부대 주변에서 제조작업을 하는 병사들은 고엽제 가루를 철모에 담아서 맨손으로 뿌리기도 했다.
고엽제의 다이옥신은 참전 용사들의 눈, 코, 입, 피부 등으로 아무런 저지도 받지 않고 침투했다. 그리고 축적됐다.
31만명에 달하는 베트남 귀환병. 이 중 많은 수가 1970년대부터 원인 모를 병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1978년께부터 미국에서는 사회적 문제로 발전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군사정권 하였던 우리나라는 철저한 보도통제와 억압 때문에 그러한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참전용사
들이 베트남 풍토병이라는 원인모를 질병에 시달리며 고통 받았고 죽어갔다.
1992년 이후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리던 사람이 자살을 하고 파월군인들이 시위를 하는 등 고엽제 문제가 사회 문제화됐고 이슈화됐다. 1993년 5월 「고엽제후유증치료에 관한 법안」이 시행되면서 고엽제후유증 또는 후유의증 환자에 대한 정부 정책이 나왔지만 어느 것 하나 그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진 못했다.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파월군인들이 국가 차원의 관리를 제대로 받지 못해 이중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며 『그 고통과 원성을 어떻게 다 말로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국가보훈처 통계에 따르면 지난 1992년 8월부터 지난 9월까지 누계된 고엽제 후유증 환자는 1만9천419명이며 후유의증 환자는 4만9천961명, 2세 환자가 41명이다. 등록신청서를 접수했으나 비대상자로 처리된 인원은 2만9천814명에 달하고 있다.
『국가 유공자의 개념이 뭡니까? 국가를 위해 일한 사람 아닙니까?』
이강화(54) 대한민국고엽제후유의증전우회 경남도지부 사무국장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국가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파월 군인들이 국가 유공자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을 못내 안타까워했다.
이 사무국장은 『후유의증을 가지고 있는데 등급을 받지 못해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하는 있는 사람이 2만5천여명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며 『국가를 위해 싸운 우리가 국가 유공자가 되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말했다.
특히 『광주민주화 운동의 경우 14개 등급으로 세분화돼 있는데 파월 군인에 대해서는 4등급에 불과하다』며 『등급 세분화를 통해 보다 체계적인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엽제 피해보상과 관련해 지난 1994년 시작해 패소와 소송구조신청, 소송구조결정, 소송구조기각 등의 복잡한 과정을 거치며 진행되고 있는 미국의 고엽제 제조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은 현재 고법에 항소해 놓은 상태다.
이에 대해 그는 『대미 소송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는 것이 고엽제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며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 고엽제는...
다량 다이옥신 함유
미국, 베트남 국토면적 18% 살포
인체 유전자환경에 지속적 영향
기형아 출산. 발암. 자살 등 유발
미국측 통계만 따르더라도 원활한 전투 수행을 위해 정글의 숲을 제거하려고 1964년 7월부터 1970년 10월까지 7년간 베트남 국토면적의 18%에 달하는 지역에 1천200만 갤론의 고엽제를 살포했다.
여기에 사용된 고엽제는 에이전트 오렌지, 에이전트 화이트, 에이전트 블루, 에이전트 퍼플, 에이전트 핑크, 에이전트 그린 등 저장용기의 색깔에 따라 이름이 붙여졌다. 이중 에이전트 오렌지가 가장 많이 살포됐고 그 피해도 가장 컸다.
에이전트 오렌지가 문제가 된 것은 2, 4, 5-T에 TCDD라는 다이옥신 성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이옥신은 극히 적은 양으로도 인간의 생명과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는 맹독성 물질이다. 단위도 10억분의 1g인 ng(나노그램)와 1조분의 1g인 pg(피코그램) 단위를 사용하고 있다.
다이옥신이 하천을 오염시켜 물고기가 오염되고 이것을 먹은 동물이 오염되며 이 동물을 먹은 인간이 오염되는 등 먹이사슬을 통해 생태계 전체를 오염시킬 수 있다. 다이옥신을 함유한 2, 4, 5-T는 베트남 지역에 모두 2천만kg 이상이 살포됐고 특히 17도선 남부의 정글과 남부 라오스, 메콩삼
각주의 늪과 수로 등지에 집중적으로 뿌려졌다.
다이옥신의 피해는 오랜 잠복기를 가지고 있다. 다이옥신에 노출된지 5년 내지 20년 후 인체에 대한 독성이 드러나는 것이 보통이다. 다이옥신에 일단 오염된 경우 인체의 유전자 환경에 계속적인 영향을 줘 그 악영향이 장기적으로 나타난다. 기형아 출산, 생식기계 이상, 비 호치킨 임파선
암, 폐암, 후두암, 기관암, 말초 및 중추신경계 손상으로 인한 자살 등은 다이옥신에 노출된 결과 나타나는 증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