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823 바벨탑 창11장1절에서9절
인간이 비록 범죄한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긍휼에 의해서 여러 가지 축복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축복 중의 하나가 인간의 언어입니다.
아담의 범죄 후에도 노아의 홍수 심판 후에도 인간은 변함없이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며 서로가 통하고 일치가 된 생각과 의견을 나눌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귀하고 값진 축복이요 은혜입니까?
말이 통한다는 것은 감정이 통하고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뜻을 모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하나의 언어를 주신 것은 모든 인간은 한 조상에게서 태어난 하나의 사람들이며 모든 인간은 하나의 언어를 가지고 한 하나님을 찬양하고 증언하기 위해서 여기에 뜻을 모으고 마음과 생각을 일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찬양하기 위해서 뜻을 모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거부하고 그 뜻에 맞서기 위해서 축복으로 주어진 언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바벨탑을 세우는 일입니다.
왜 이들은 바벨탑을 세우려고 한 것입니까?
4절의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라고 합니다.
바벨탑은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찬란한 인간의 힘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인간은 흩어지면 그 힘이 약해집니다. 그래서 인간은 단합하여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욕구가 바벨탑입니다.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움으로써 인간의 힘의 위대성을 나타내고자하는 것입니다. 바벨탑은 인간의 마음이 서로 연합했을 때 무엇을 만들어내는가를 보여줍니다.
말씀이 빠져버린 인간의 연합은 결국 인간의 힘을 자랑하는 것이고 인간의 이름을 내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임이나 집단을 보면 단합대회라는 것을 합니다.
그 의도는 힘을 모아서 흩어짐을 면하자는 것입니다. 힘이 없는 집단은 결국 흩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마음과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 애를 쓰게 됩니다.
오늘날의 교회를 보면 말세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장한 바벨탑입니다.
교회의 근본은 말씀이라는 토대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마16:16-18절을 보면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즉 교회는 베드로가 고백되어진 그 말씀위에 세워집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가 설명되어지는 말씀이 기초가 되고, 힘이 되고,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모인 모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에 발생된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피에 관심을 가지고 십자가에 피 흘리신 그리스도를 사랑해서 모인 그들이 교회입니다. 이들은 언제나 십자가 앞에서 세상을 보고 자기를 보기 때문에 십자가의 은혜가 아니면 그 무엇도 힘이 아니고 생명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들은 언제나 십자가의 은혜가 증거 되는 말씀을 중심해서 모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임에는 너도 없고 나도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있을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힘이고 생명인 것을 증거하고 찬양하게 됩니다.
이러한 말씀이 힘이 있어서 말씀에 복종이 있고 말씀에다 가치를 두고 사는 그들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인간의 죄를 들추고 폭로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말씀을 거부합니다. 다수라는 사람들의 힘을 모아서 거대한 교회 즉 바벨탑을 세우고자 하는데 이 말씀이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말씀은 빼버리고 인간들이 기대를 가지고 따라올 수 있도록,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욕망으로 펼쳐 보이는 것입니다.
교회와 바벨탑을 분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십자가의 비밀을 설명하는 말씀이 있으면 교회이고, 이 말씀이 빠져버리면 그것은 바벨탑입니다.
오늘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베드로가 고백한 말씀이 있으면 그리스도에 의해서 발생된 교회이고, 십자가의 도라는 말씀이 없으면 그것이 바벨탑입니다.
바벨탑을 세울 때 모든 인간이 하나의 언어로 말이 통하는 자들이었기에 거대한 역사가 가능했듯이 지금도 모든 인간들이 사모하고 추구하는 것은 자신이 힘 있는 자가 되고 최고가 되고 영웅이 되고자 하는 욕망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말이 통하는 것입니다.
믿고 구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병도 나을 수 있고, 부자도 될 수 있고, 꼬리가 아니라 머리가 될 수가 있고, 가난한 교회가 큰 교회가 될 수 있고, 능력자가 될 수 있다는 이러한 말이 통하는 것입니다. 말이 통하는 자들이 구름처럼 몰려오기 때문에 이러한 인간의 힘의 연합으로 거대한 바벨탑을 세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인간들이 모여서 세워가고자 하는 모든 일에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 지고 설명되어지는 말씀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바벨탑이 될 수도 있고 교회일수도 있습니다.
십자가의 정신이 담겨있는 말씀이 빠져버렸다면 그것은 내 힘을 자랑하고자 하는 바벨탑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만들어 가는 모든 일에 말씀이 있느냐 없느냐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내 가정이 성공했느냐 출세했느냐 힘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 한 것이 아니라 말씀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합니다. 말씀이 없다면 내 가정은 하나님을 거부한 바벨탑입니다.
내 직장이 내 사업체가 내 교회가 말씀에 지배를 받는 복종이 없다면 바벨탑입니다.
결국 여기에는 주님을 자랑하고 증거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내 힘을 과시하고 내 이름을 내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바벨탑입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이나 교회의 관심이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잘되고 내가 행복하고 내가 성공하는데 있지 않습니까?
내가 힘 있는 자가 되고, 내 이름을 내고자 하지는 않습니까?
교회를 찾아오는 의도가 무엇입니까? 이러한 나를 버리고 예수님 한분으로 만족하고 기뻐하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이러한 나에게 예수님의 힘이 필요해서 입니까?
내가 꿈꾸는 나의 욕망을 위해서 예수님께 도움 받고자 한다면 이들이 모인 교회가 바벨탑입니다. 사람이라는 다수의 힘을 모아서 스스로의 힘을 통해서 인간의 힘의 위대성을 나타내고자 힘쓰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을 보면 인간의 힘의 위대성을 자랑하는 것이 누가 헌금을 얼마를 했고, 누가 전도를 얼마를 했고, 누가 기도를 얼마를 했고, 목사의 능력은 말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얼마나 키웠고 얼마나 부흥되었느냐를 가지고 따지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정신을 가지고 제대로 된 복음을 전해도 교인 몇 사람 놓고 목회하는 목사는 능력 없는 자라고 해서 외면을 당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회만 키워놓으면 능력 있는 목사로 대접받는 시대입니다.
오늘의 교회는 예수님의 피로 세워진 교회가 그리스도의 피의 중요성보다는 사람만 많으면 됩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라는 말씀은 빼버리고 사람들의 기호에 맞는 육신의 욕망을 부풀리게 합니다. 그것이 곧 교회가 가르침대로 하면 힘 있는 자가 되고 이름 있는 유명한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이 무엇입니까? 많은 지식을 가지고, 많은 재물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권력이라는 힘까지 구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정성을 드리고, 시간과 물질로 봉사하고 희생하며 충성하는 자는 머리는 되어도 꼬리는 되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마치 바벨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도록 쌓아가고자 하는 것처럼 자신들의 이름이 하늘 꼭대기에 닿게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욕망을 가진 자들로 구성된 인간의 연합으로 교회가 거대한 바벨탑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한국 교회입니다.
바벨탑의 문제점은 말씀이 빠져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세상에 드러내고 증거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만이 힘이고 지혜요 능력이며 생명인 것을 드러내고 증거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만이 창조주가 되시고 그분이 주인이시고 절대자인 것을 증언하라고 인간에게 언어를 주시고 건강을 주시며 다양한 조건들을 구비해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고 증거 하지 않고 자기들의 이름을 내기 위해서 인간들끼리 연합하고 힘을 모아서 바벨탑을 건설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의 행위를 진노하시고 무너뜨린 것입니다.
바벨탑은 말씀이 없는 인간은 자기를 위해서 살게 되고 자기의 이름을 드러내어 자기가 큰 자가 되고 영웅이 되어 하나님이 받아야할 영광을 가로채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의 정신이고 사고입니다. 인간이 교만하여지는 것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십자가를 알게 하고 우리의 죄를 알게 하는 말씀만 빼버리면 인간은 최고가 됩니다.
말씀이 없으면 인간이 신이 됩니다. 그래서 사단은 말씀 없이 하나님을 섬기고, 말씀 없이 교회를 세우게 하고 말씀 없는 목회 일을 하게 합니다.
말씀이 없을 때 사람들은 더 많이 모이고 더 좋아하고 많은 자들에게 인정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타락한 이 세상의 풍습이고 인간의 정신이고 상식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늘의 진리인 메시지를 전했지만 그 말씀을 듣고 다 물러가고 말았습니다. 요6:66-68절을 보면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 하더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들이 전하는 말씀도 듣고 다 물러가고 말았습니다. 행28:25-26절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는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 도다”라고 합니다. 이 세상은 말씀을 싫어하고 거부합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려면 말씀을 버리고 외면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 없이 세워지는 개인, 가정, 교회, 민족은 무너질 수밖에 없는 바벨탑입니다.
결국 바벨탑을 세우던 모든 인간들은 서로가 통하지 않도록 언어가 혼잡해 진 겁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서로가 통하고 하나가 되었던 언어가 하나님이 그 언어를 혼잡케 해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인간들은 서로가 나뉘일 수밖에 없고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이질감을 가지고 서로 대적자가 되고 미워하는 원수의 관계가 된 것입니다. 이로써 그 거대하고 찬란했던 바벨탑은 무너지고 하나로 뭉쳤던 인간들은 흩어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에서 말씀으로 말미암지 않는 것은 결국 무너지게 된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보여줍니다. 바벨탑이란 혼란이란 뜻이고 곧 무너진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의 인간들이 자신들의 지혜와 꾀를 가지고 서로가 뜻을 모으고 힘을 모아서 크고도 웅장한 바벨탑을 세워가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세워놓고 그 위대함에 가슴이 벅차해 합니다. 지금 20세기의 과학과 문명 앞에 모두가 놀라워합니다.
마치 이제는 신의 도움이 없어도 세상을 창조할 수 있고 보존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거와 같습니다. 더 이상 신의 도움이 필요 없습니다. 이제는 우리에게 맡겨주십시오.
라고 외치고 있는 듯합니다. 왜냐면 모든 인간이 다 말씀을 무시하고 인간의 힘만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관심이 없고 전혀 가치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세상, 이러한 개인과 가정, 주의 이름을 부르는 교회가 바벨탑입니다.
이는 머지않아 무너질 것이고 흩어질 것입니다.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그랬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큰소리치던 유대나라가 그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삶을 돌아보시고 우리의 가정과 삶에서 우리의 교회에서 말씀이 있는지를 확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말씀 없는 교회, 가정과 기업은 무너질 바벨탑인 것을 기억하시고 무엇을 해도 말씀 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말씀에 복종되어지는 삶이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