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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9:1-6절 꿈을 이루는 인생 3-하나님과 동행
그리스도인이 받은 가장 큰 축복은 ‘임마누엘’의 은총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이 사실은 정말 놀라운 기적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이 기적을 믿고 살기를 소망합니다. 삶이란 때로는 심하게 아프기도하고, 버겁기도 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도 채워질 수 없는 공허함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김자옥씨의 간증이 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우연한 기회에 그녀는 갑자기 배우가 되어 유명해졌습니다. 돈도 많이 벌고 길 가는 사람들이 다 알아볼 정도로 인기 배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젠 그녀의 마음 속에 있던 인생에 대한 허무함이나 비관하는 마음이 없어질 줄 알았는데 그럴수록 오히려 더 심해져 갔습니다. '어차피 죽을텐데 유명해지면 뭐하나 돈이 많으면 뭐하나' 그렇게 그녀의 20대를 보내다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결혼하고 3년만에 이혼하고 8개월을 병원에서 주는 약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런 위로와 희망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 앞에 섰을 때 그때 주님이 함께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은총은 우리를 위로하고 세상을 살아갈 힘을 주는 유일한 이유가 됩니다.
저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1985년 4월 교통사고를 당하고 병원에 입원했을때 든든하게 저를 지켜준 친구들이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7월24일 밤, 갑자기 고열로 쓰러지면서 친구들 생각은 나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속에서 ‘이렇게 죽는 거구나’하며 정신을 잃었는데 환상 가운데서 나를 찾아와주신 주님을 만났습니다.‘내가 너를 사랑한다.’그 말씀안에는 ‘너는 나를 떠났지만 나는 너를 떠나지 않았다.’는 약속이 담겨있었습니다.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은 언제일까? 누가 물어도 나는 그 병상의 1년이 내 생애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고 확신을 담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임마누엘은 제겐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기쁨이고 선물입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이 주신 이 축복을 누리고 살기 바랍니다.
요셉은 이집트로 끌려 갔고, 바로왕의 신임을 받는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집트는 문명이 발달한 나라였습니다.
헤브론의 촌구석에서 살았던 소년에게는 눈이 휘둥그래지는 문명적인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이집트 말을 배운 적이 없는 그는 언어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집트의 문화와 생활의 습관도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배워야 했습니다. 노예의 삶이 뭔지도 몰랐기 때문에 어떤 행동을 해야하는지도 몰랐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끌려온 초기의 흑인들을 생각했습니다. 짐승 취급을 당하면서 소모품처럼 살았던 그들의 비참한 모습처럼 요셉 또한 그런 학대속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요셉의 삶은 교회안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의 삶의 현장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보다 훨씬 더 아프고 힘든 고통스러운 현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읽어가는 본문 가운데 요셉이 불쌍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우리에겐 요셉의 노예로서의 생활이 고통스럽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옛날 이야기라서? 스토리를 다 알고 있기 때문에요?
아니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임마누엘의 은총이 가진 놀라운 힘입니다. 주님이 함께하시면 우리는 모든 상황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겨낼수 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앞에 나갈때 메시지 성경을 보면 이 어린 소년은 사울왕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왕이시여! 희망을 버리지 마옵소서’얼마나 기가 막힌 말입니까? 골리앗의 키가 약295정도였습니다. 그가 쓰는 창의 끝 무게가 7kg무시무시한 상대를 향해 나가면서 다윗은 왕을 위로합니다. 이것이 임마누엘의 힘입니다. 요셉이 불쌍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임마누엘입니다. 때로 우리의 삶에서 큰 실패를 당하고, 버림을 당해도 우리가 불쌍하거나 초라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좋은 옷을 입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자리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담대한 고백 가운데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동행하는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가장 기본이 뭔지 아십니까? 나를 버려야 합니다. 나를 포기해야 합니다. 내 힘, 내가 가진 지식, 경험 능력을 다 내려놓아야 임마누엘은 가능합니다. 내가 무력해지고, 아무 것도 아님을 고백하는 사람에게 주님이 함께하십니다. 요셉을 생각해 보십시요. 그는 말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노예로서 경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처음부터 주님만 의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자기 힘으로 해보려고 시도하지도 않았습니다.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자기 힘과 경험을 의지하기 때문에 임마누엘의 삶을 살지 않습니다. 그 삶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어느새 말씀속에서 힘을 얻는 대신 건강식을 찾고 있습니다. 기도하며 세상을 헤쳐나가기보다는 자신의 경험과 정보로 세상을 헤쳐나가려고 합니다. 요셉은 이집트에서 써먹을 수 있는 아무 것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믿음을 갖고 산다면 임마누엘의 축복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재능과 소유를 내려놓으시고, 주님의 임재를 구하기 바랍니다.
미8군교회 사모이기도한 정경주 사모님이 "하나님이 하셨어요"라는 책에서 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했을 때 간증을 썼습니다. 그녀가 대한항공 국제선 승무원 시절의 어느 날, 비행기가 일본 상공 위를 지날 때 갑자기 조종실에서 안내방송이 나왔습니다. "승객 여러분, 여객기 우편 날개 엔진에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승무원과 승객 전원은 비상착륙 준비를 마치고 착석해 안전 벨트를 매 주십시오." 그 방송이 나가지마자 평소 그녀의 신앙을 못마땅해 하며 신은 없다고 떠들던 남자 승무원이 달려와 무릎을 꿇으며 애원합니다. "미스 정! 기도해줘요. 미스 정! 부탁이에요. 날 위해 기도해줘요." 당황하는 가운데서도 그녀는 그와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입에서 '아멘' 소리가 끝나자마자 안내방송이 다시 들려왔습니다. "승객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여객기 우편 날개 엔진의 원인 모를 불이 저절로 꺼졌습니다. 곧 김포공항에 안전하게 도착하겠습니다." 승객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때까지도 그 남자 승무원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자세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었고, 그녀도 하나님의 도우심에 감사하며 함께 울며 기도했다고 썼습니다. 이 믿기 힘든 간증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야기속의 미스 정처럼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이 위기 때에 찾아와서 기도를 요청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이 기도의 사람인 것을 알고 ‘나를 위해서 기도해줘요’이런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설교를 할때마다 목사님! 세상을 잘 모르셔서 그런 소리를 하시는 겁니다. 그래요, 맞아요 저는 세상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히 아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그분의 섭리 가운데서 세상을 보존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그 분의 손안에 있음을 나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삶의 어떤 순간에도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임마누엘의 은총을 확신하기 때문에 그 어떤 두려움도 공포도 우리를 절망하게 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임마누엘의 증거가 드러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몇해전에 제 친구중의 하나가 경제적인 이유로 아내와 서류이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동안 별거해야했던 친구는 정말 사람꼴이 아닐 정도로 초췌해보였습니다. 지난해 다시 함께 살면서 만났을때는 멀쩡한 신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내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분명히 보였던 것입니다.
사람은 그런 존재입니다. 누가 옆에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눈으로 보이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주님이 그의 곁에 계시는가? 아니면 신앙인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없이 살고 있는가? 이 질문에 우리는 주님이 곁에 계시는 사람으로 세상속에서 인정받아야 합니다.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간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인 보디발은 요셉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눈에 신적인 존재가 그 노예청년과 함께하는 것을 알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떻게요? 보디발의 눈에 하나님이 보였을 리는 없습니다. 두가지 점에서 요셉은 보디발에게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첫번째 증거는 그가 하는 일이 잘 되었다는 말씀속에 있습니다. 그건 참 보디발에겐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요셉이란 청년에게 맡기는 일은 그 결과가 다 좋았습니다. 보디발도 요셉이 다른 노예들에 비해서 모든 여건이 열악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는 일은 다 잘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어떤 신적인 존재가 그를 돕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형통이란 말의 히브리어는 ‘찰레아흐’입니다. 이 말은 ‘번성한’(prosperous)이란 뜻입니다. 창26장의 이삭이 형통했습니다. 그가 농사를 지으면 백배의 곡식을 거두고, 땅을 파면 어디든지 우물이 나옵니다. 나중에 아비멜렉족속 사람들은 그를 찾아와 말하기를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것을 우리가 보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험께 살아가는 사람은 눈으로 주님이 함께 하심을 보여주고 살아갑니다.
요셉의 형통함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형통함을 모든 사람이 인정하고 보게 하였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삶을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인 것을 인정하였고, 자신의 모든 인생이 하나님의 뜻임을 인정하면서 살았습니다. 로리 베스 존스는 ‘주식회사 예수’라는 책에서 “예수님의 성공에 대한 정의는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는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성공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형통의 뜻이 성공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형통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직장에서 기도로서 하루를 시작하십니까?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하나님앞에 구별된 시간을 드려 기도하십니까? 왜 여러분의 삶이 형통하지 못한지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형통은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도와 말씀에의 순종이 없는 삶이 없다면 우리는 형통함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세상에 증거할 수 없을 것입니다.
두번째는 주인이 그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신뢰를 얻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이외수씨가 청춘불패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대 주변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대가 '안심하세요, 제가 있으니까요' 라고 말해 주면 그대를 믿고 안심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나요. 가족조차도 그대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그대의 인생은 아직 미완성입니다.”옆사람에게 인사해보세요. ‘안심하세요. 제가 있잖아요’ 근데 왜 웃어요? 믿는거죠? 그래서 안도의 웃음이 나는거죠?
요셉은 그 주인에게 믿을만한 사람, 즉 그의 모든 소유를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우리의 자녀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 우리 미래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 내 재산을 ,건강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든든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이 믿고 의지하는 든든한 사람들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요셉은 그 주인에게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이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요셉의 지식이 뛰어났을까요? 그가 물질에 대해서 정직하다는 사실을 얼마나 오래 보여주었을까요? 도대체 무엇이 그를 그렇게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들었을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신뢰의 기준 가운데 그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이야 그래서 그를 믿을 수 있는 거야”나는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세상으로부터 이런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윤영준목사의 책 ‘그 다음엔 또 어떻게’라는 책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토요일 오후, 필라델피아의 백만장자 지라드 씨가 직원들에게 다음 날 사무실에 출근해서 오늘 도착한 선박의 짐을 내려놓으라고 했다. 그러자 한 청년이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지라드 사장님, 내일은 주일이기 때문에 저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 “그래요? 당신이 교회에서 봉사하고 있다는 것은 아는데 이래저래 모든 사정을 봐줄 수는 없소. 내일 일을 못한다면 나하고의 관계는 끝이요.”“그것은 각오하고 있습니다. 입장은 난처하지만 주일에는 일을 할 수 없군요.”“그러면 경리과에 가보시오 그동안 일한 급료를 계산해 줄 겁니다.”청년은 이렇게 해서 해고를 당하였고 3주 내내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니며 일자리를 구했으나 얻지 못했다. 어느 날, 필라델피아 시의 한 은행 총재가 지라드 씨에게 새로운 은행을 하나 열어야 하는데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지라드 씨는 자신이 해고했던 청년을 추천했다.
“아니, 그 사람은 자네가 해고한 사람 아닌가?”“몰론 그랬지, 그가 주일에는 일을 할 수 없다고 해서 해고했네. 자기 형편이 어떠하든 간에 신념과 원리를 바꾸지 않는 사람이라야 자네가 안심하고 은행 업무를 믿고 맡길 수 있지 않겠나?”지금 우리 사회는 믿을 수 있는 사람,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을 찾습니다. 이렇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는 표지판이 성경이라면, 이 시대 불신자가 읽을 수 있는 유일한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얼굴(삶)’입니다. 바로 당신의 얼굴입니다. 직장안에서, 학교안에서, 교회안에서 당신의 얼굴은 성경입니다. 우리의 얼굴이 예수님의 희망 전도지가 되고, 나의 삶이 구원의 초청장입니다.
당신은 주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까? 그분의 손이 여러분을 그분이 원하시는 곳으로 이끌어가고 있습니까? 그분 앞에서 여러분의 자랑과 소유를 내려놓고 그분만 전심으로 의지하십니까? 그분의 지혜를 구하며 기도하십니까? 그분의 말씀에서 생명과 힘을 얻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은 당신의 형통한 삶을 통해서, 세상 모든 사람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신뢰를 얻은 우리의 삶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드러낼 것입니다. 임마누엘! 우리 삶의 가장 크고 위대한 축복이 언제나 함께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