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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무더위에 고생이 많으십니다.
오랜만에 책 추천하려고 들렀어요. 이번 책은 재활통신망이 아닌, 밀리의 서재 플랫폼에서 읽은 도서입니다.
도서명: 수확자
저자: 닐 셔스터먼
* 이 도서는 밀리의 서재에서 독서한 작품입니다. 전자도서 월 정기구독권 신청했어요.
덧붙여 시각장애인 재활통신망 아이프리에 수확자 시리즈 1편은 데이지도서로 제작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시리즈 2~3편은 없어요. 전자도서 신청 후 기다리는 것보다 차라리 밀리의 서재 전자책 월 정기구독권 이용을 권하고 싶네요. 일단 첫 달은 무료거든요. 독서 속도 빠른 분들은 시리즈 1~3편 모두 한 달 내로 완독 가능할 테니까.
* 소개글 서평
최근 전자도서 플랫폼 ‘밀리의 서재’에 회원 가입을 했다. 당연히 책 읽자고 한 거다.
요즘 일에 치이고 바빠서 독서를 정말 못했다. 우리 가족 올해 독서 평균율은 글러먹었다고 자체 판단했을 정도.
밀리의 서재 플랫폼과 어플리케이션에 적응하는 데 도서출판 점자 점역 팀장님의 도움과 지원이 컸다. 감사드린다.
여하튼 그 밀리의 서재를 통해 처음으로 읽은 책이 바로 닐 셔스터먼의 《수확자》이다. 2~3편까지 있는 시리즈물이다. 점역 팀장님이 재미있게 읽었다고 해서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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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자》 - 미지근한 유토피아의 세계, 윤리와 비도덕의 사이
소설의 시점은 언젠가의 미래이다. 그 미래는 2042년을 기점으로 아주 많이 달라졌다.
세상에 존재하는 질병과 상처, 부조리는 인류가 만들어낸 클라우드의 상위 개체, 일명 ‘선더헤드’로 명령된 존재에 의해 세상에서 사라졌다. 피상적이거나 추상적인 사라짐이 아닌, 문자에 담긴 의미 그대로 인류는 더 이상 기아, 가난, 사고, 재난, 질병, 노화, 그리고 부조리한 정치 등에서 완벽하게 벗어나게 된 것이다. 모든 정보는 선더헤드의 메모리 속에 담기고, 전능에 가까운 지식을 얻은 인공지능 AI 비슷한 선더헤드는 매우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건설해 낸다.
누구나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웬만해서는 돈에 쪼들리지 않는다. 적성에 맞는, 원하는 일을 할 수도 있다. 질병뿐 아니라 노화에서도 벗어난 인류는 언제든 원하기만 한다면, 회춘하여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장애도 아마 없는 것 같다.
심지어 인류는 선더헤드의 힘으로 죽음까지도 정복했다. 예를 들자면, 차에 치이는 교통사고는 구시대의 표현이 된다. 소설 속 사회에서는 선더헤드가 조절하는 자동차로 인해 사고가 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차에 치이는 일이 발생한나면, 그것은 호기심과 흥미로 사람이 차에 일부러 뛰어든 것일 뿐이다. 그렇게 한들, 선더헤드에 의해 재생센터로 보내져 일시적인 사망 상태에서 원래의 신체로 회복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저지를 수 있는 행위, 일명 ‘철퍽’이라 불리는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이른바 사망 시대가 지나고, 사망 이후 시대로 불리는 세상이 된 것이다. 너무나 좋은 세상 아닌가.
그러나 이런 유토피아 같은 세상에도 문제는 있었다. 바로 영생으로 인해 끊임없이 증가하는 인류, 요컨대 인구 포화 상태가 큰 난제가 되었다. 선더헤드가 새로운 자원을 생성해 한정된 자원을 보충한다 해도, 인구 포화는 해결될 수 없다. 그래서 세계 인구를 적당한 비율로 지키기 위해 만들어지게 된 것이 ‘수확령’이고 인구 조절을 위해 생명을 끝낼 의무를 가진 이들이 바로 ‘수확자’이다.
“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절대 해선 안돼요. 그리고, 살해하기를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만이 이 일을 해야 합니다.”
한 명의 소녀와 소년에게 그 ‘일’은 우연처럼 찾아왔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 일은 큰 전환점이 되었다.
테라노바 가족이 사는 아파트 현관을 수확자가 노크했다. 시트라 테라노바 앞에 수확자가 나타난 것이다. 처음에는 가족 중 누군가를 수확하러 온 건가 겁먹었지만, 사실 수확자는 그들의 이웃을 수확하기 위해 왔을 뿐이었다. 테라노바 집에는 단지 저녁을 요청하러 들렀을 따름이었다. 시트라는 수확자에 대한 정중함과 욱하는 자신의 성질을 적절하게 혼합한 태도를 보인다. 저돌적이지만 상당히 인간적인 면모였다.
또한 이웃의 수확에 애써 고개 돌리는 자신의 행동을 비판하는 시트라가 꽤나 당차다고 생각했다. 보통은 자기 합리화를 할지언정, 자기 객관화는 쉬운 일이 아닌데.
“당신이 오늘 한 일로 나 말고 그 누구에게도 친절한 반응을 얻지 못할 거라는 점을 경고해 두지요..”
한편 등교하던 로언 데이미시는 우연히 수확자와 마주친다. 그는 자신을 수확하러 왔을까 걱정하면서도 가정과 학교 내에서 양상추 정도의 존재감을 가진 스스로의 위치를 되새기며 나름의 블랙 유머로 담담하려 한다. 그리고 학교에 온 수확자가 교내 최고 인기 학생을 수확하러 왔음을 알고, 평소 친하진 않았지만 죽음을 맞이할 그 아이를 위해 옆을 지켜준다.
따뜻한 행동이었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시트라보다 더 인상에 남는 인간적인 면모였다.
하지만 수확자는 그의 행동이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을 경고하고, 실제로도 수확자가 떠난 후부터 친구를 수확자에게 팔아넘겼다는 등의 오명을 쓰고 괴롭힘을 당한다. 이 대목에서 집단 군중 심리가 참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사실을 말했음에도 분노를 풀기 위해 진실에서 눈을 돌리는 건지.
이런 인연을 통해 시트라와 로언은 수확자 마이클 패러데이의 수습생이 된다. 진짜 수확자가 될 수 있는 건 둘 중 한 명뿐이다. 그렇다고 수확자 패러데이가 둘을 겨루게 하고, 서로 밟고 짓밟히는 경쟁 구도로 몰아가지는 않는다.
글쎄, 그는 시트라와 로언에게서 각자의 장점을 보았던 것 같다. 수확자로서의 자질, 이를테면 죄책감과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 어떤 상황에서도 돌파구를 찾는 집념. 혹은 도덕성과 정의감, 연민 같은 것.
패러데이는 그 둘의 자질 중 무엇이 더 수확자에 적합한지 선별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트라와 로언 사이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싹트기 시작하고, 두 명의 수습생과 함께 참가한 수확령의 회의 콘클라베에서 벌어진 수확자 간의 대립으로 인해 의도치 않게 상황이 꼬이고 만다.
“저는 승자가 확정되면. 승자의 첫 번째 과제로 패자를 거두게 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랬다. 수확자들의 세력도 두 부류가 있었다.
수확자 마이클 패러데이와 마리 퀴리 등의 사명감을 가지고 행동하는 일명 보수파.
특권의식을 가지고 대량학살을 자행하는 수확자 로버트 고더드를 위시한 급진파.
이들의 대립에 휩쓸리게 되면서 이야기의 전개는 긴장감을 더한다. 종국에는 시트라와 로언의 스승 패러데이가 의심쩍은 수확을 하게 되면서, 또는 당하게 되면서 소설의 향방은 더 예측할 수 없게 된다.
과연 로언과 시트라 중 누가 수확자가 될까?
패러데이는 스스로를 수확한 것인가? 아니면 급진파, 이를테면 고더드에게 수확당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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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간적인 유토피아에서, 인간성을 수확하는 세계 - 《수확자》
이 소설은 첫 단추부터, 그러니까 기반부터 상당히 흥미로웠다. AI에 의해 구축된 세계관은 흔히 디스토피아 양상으로 전개되곤 했다. 인간의 과도한 탐욕으로 폭주한 AI로 인해 세계가 파괴된다거나, Ai가 무능한 인류를 지배하는 등의 설정 말이다.
하지만 소설 《수확자》에 등장한 인공지능 선더헤드는 부패를 모른다는 설정 하에 인류에게 가장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건설했다. 뿐인가, 인류를 부양하며 기후 위기, 환경 보호 및 보존, 온갖 복지 서비스, 기아와 전쟁과 범죄 등 사회 문제까지 전부 해결하거나 차단한다. 그러나 인간 대신 전 세계의 행정부가 된 선더헤드는 어째서인지 인구 조절을 위한 죽음은 인간의 영역으로 남겨두었다. 그렇기에 수확령이 생겼고, 수확자가 활동한다. 수확자의 영역은 선더헤드가 관여할 수 없다. 인간만이 인간을 거둔다. 죽는 게 싫다 해서 도망치거나 저항하면, 가족까지 모두 수확당하게 된다.
단, 수확의 대상이 된 사람의 가족에게는 1년의 수확 면제권이 부여된다. 나름의 위안인 셈일까?
선택된 사람이 선택한 사람을 거두는 비윤리적인 세상에서 수확자에게는 많은 뛰어남이 요구된다. 더불어 높은 도덕심과 신념과 사명감까지도 갖춰야 한다. 인간이 인간을 살인하는, 너무나도 비윤리적인 일이 당연한 사회이기 때문에 많은 수확자들이 죄책감과 고뇌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런 한편 이 소설은 SF를 표방하지만 꽤나 판타지적인 요소가 많은 작품이기도 했다. 가령, 수확자들의 복장인 로브가 그랬고, 면제권을 주는 방식이 반지에 입을 맞추는 행위라는 게 그랬다. SF 사회에서 마치 중세 시대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로브는 중세 성직자나 귀족, 그에 준하는 계급의 사람들이 주로 입는 복식이다. 반지에 입을 맞추는 행위는 중세 때 한 지역을 다스리며 자치권을 행사하던 영주들이 기사나 가신으로부터 충성을 맹세받을 때 쓰던 의례였다. 작가는 독자적인 판단 하에 누군가의 생사여탈을 좌우하는 ‘수확자’라는 대상에게 어떤 비현실적인 요소를 부여하기 위해 중세의 모습을 일부 끌어왔는지도 모르겠다.
‘수확’은 곡식을 거둘 때 통용되는 말이다. 그런데도 굳이 사람을 거두는 직책을 맡은 이들을 사자나 사신이라 칭하지 않고, 수확자라 명령한 건 무엇 때문일까?
언젠가 읽은 적이 있다. 어느 책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떤 대목에서 그런 문장이 나왔는지, 무슨 맥락으로 썼는지도 잘 모른다. 그러나 죽음이 인간의 삶을 완성한다는, 그 한 문장만은 꽤나 선명하게 남아 있다.
죽음이, 즉 끝이 있기에 인간의 삶은 열정적일 수 있는 것이라고.
실제 소설 《수확자》에서 사망시대 때 예술을 보며 지금의 사망 이후의 인류는 이런 예술을 구현할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림과 음악과 연극과 소설 등 예술 안에 열정과 생기와 감정을 담아낼 수 없다고.
어쩌면 죽음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우리의 삶을 더 열정적으로 만드는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소설에서의 수확자란, 미적지근한 유토피아에서 인간성이 차츰 마모되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기 위한 어떤 장치가 아닐까 싶다.
물론 인간이기에 마이클 패러데이나 마리 퀴리 같은 올곧은 수확자만 있지는 않지만 말이다. 소위 사이코 같은 수확자, 이를테면 로버트 고더드나, 수확령의 장을 맡고 있으면서 부적절한 행실을 가진 고위 수확자 크세노크라테스도 있다. 인간이란, 오래 살아도 어쩔 수 없는 생명체인가.
중간중간 수확자들의 일기로 각자가 추구하는 생각을 엿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 소용돌이 안에서 시트라와 로언이 각자에게 주어진 역경을 어떻게 돌파하고, 성장하며 변화하는지 보는 것도 쏠쏠했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면, 시트라가 로언의 턱을 날리고, 로언이 도주하려 준비된 자동차 문을 열었을 때 본 상대에 놀라는 모습이 가장 짜릿했던 것 같다. 그리고 로언이 고더드를 상대로 저지른 일은, 정말 탁월한 행동력이어서 좀 놀랐다. 더불어 그의 처세술에도 말이다.
한편 패러데이의 미심쩍은 죽음에 관련된 반전도 나름 흥미롭긴 했다. 그러나 막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다. 중간에 선더헤드가 살짝 힌트를 줘서 얼추 짐작이 됐던 까닭이다. 물론 시트라는 눈치 못 챘던 것 같지만.
SF에 인간 윤리성을 다룬 내용까지 그리 어렵지 않고 흥미진진하게 술술 잘 읽혔다. 소설 《수확자》는 3부로 구성된 수확자 시리즈 중 첫 번째 소설이란다. 다음 2부 책 제목은 <선더헤드>라고 한다. 이 책도 읽어야겠다.
이 소설에서 의문은 하나뿐이다. 영생을 얻은 인류가 출산을 계속해 인구가 증가한다는 것.
글쎄, 나는 오히려 출생률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데 말이다.
인류가 자손을 이어가는 행위는 자신의 유한한 수명을 알기에 일종의 분신을 남겨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과 같다는 주장을 어디서 들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 주장에 동의하기도 하고 말이지.
일기 등 기록을 남기는 것도 유사한 심리에서일 거다. 그럼 영생을 얻은 시점에서 후손 생산은 아예 접어두지 않을까?
하지만 소설에서는 이와는 반대의 양상이니, 거 참 이건 어떤 심리에서일까?
첫댓글 수학자, 수확자.
차이가 크다.
영생을 원하는 자의 차선책?
진실은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다는 것.
대리만족용으로 관찮은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