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意(고의)
이수광(李睟光:1563~1628)
본관은 전주. 자는 윤경(潤卿), 호는 지봉(芝峯), 시호는 문간(文簡).
1578년(선조 11) 초시에 합격하고, 1582년 진사가 되었다.
벼슬은 이조판서를 지냈고, 사후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실학파의 선구적인 인물로 사상사· 철학사에서 중요한 인물이었다.
저서로는 『지봉집』이 있다.
첩은 빗속의 꽃을 닮았고
妾似雨中花 첩사우중화
낭군은 바람 부는 날에 버들솜 같네
郞如風後絮 낭여풍후서
꽃을 좋아해도 그 또한 쉬이 시드는데
花好亦易衰 화호역이쇠
솜은 날려서 또 어디로 가시련가
絮飛歸何處 서비귀하처
*
무릇 사내라는 족속들은
밥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한 눈 파는 족속들이다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온갖 달콤한 말로 꾀어서
첩으로 앉혀놓고
또 여색을 찾아다닌다
한 번 나가면
세월아 네월아
오늘내일
오직 한 사람만 바라보고 사는
자신의 처지가 마치 비를 맞고 있는 꽃처럼 처량하다
누가 마음을 헤아려 주는 사람도 없는
내당(內堂) 깊숙한 곳에서
한 번 출타하면 돌아올 줄 모르는 님을 향해
시 한 수로 마음을 달래 본다
버들 솜같이 가볍게
바람이 불든 불지 않든
세상을 향해 곁눈질하는 님을 향해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쉬이 시드는 법이라고.....
있을 때 잘하라고.....
그러면서 돌아오지 않는 님은
오늘 밤 누구의 품으로 날아갈까
노심초사
진한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조선의 한량(閑良)들의 주색잡기와 시로
하루하루 보낼 때
숱한 조선의 여인들은 규방에서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오죽하면
도둑질에도 등급이 있었으니
一盜(일도) 二婢(이비) 三妓(삼기) 四妾(사첩) 五妻(오처)라 했다.
굳이 뜻풀이를 하자면
일도는 남의 집 여자를 말하는 것이요
이비는 계집종을 말하는 것이요
삼기는 기생을 말함이며
사기는 첩이요
오기는 처를 말한 것이다
남이 가진 것이
제일 ‘맛있다’는 편협하고 속된 사고 의식이 있었다
사람값이 말과 소보다 못한 시절에
노비(奴婢)를 세는 단위가 구(口)였다.
그저 밥 먹는 식충(食蟲)으로 여겼던
그 당시 계집종들의 삶이 상상 이상으로
비참했을 것이다.
각설하고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주어진 시간 속에
그것이 무엇이든
후회한다면 그 삶도 행복하지 않으리
꽃처럼 예쁜 시절이 가면
시들고 떨어지는 낙엽처럼
우리는 또 어디로 흘려갈 것이다
당신이 영원히 안주할 집은 어디에 있는가?
당신을 영원히 예쁘하고 반겨주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은 어디에 있는가?
이제 피고 지는 꽃들이 나를 가르쳐주는 스승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