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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전야(前夜)
박 화 성
1
방적 공장의 오후 여섯시 기적이 뛰ㅡ 하고 울자 도시락 싼 흰 보를 옆에 낀 여공들이 우르르 몰려나온다. 수건 쓴 십오륙 세의 처녀들로부터 얼굴 누르스름한 삼십 미만의 젊은 부인들이 별세계에나 온 듯이 숨을 내쉬며 좌우를 돌아다보면서 참았던 이야기를 지껄인다. 오전 일곱시부터 종일을 기계와 싸움하기에 고달픈 그들이 기계의 노예가 되었던 연한 그 몸들이 이제 그 자리를 떠나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해풍으로도 유명 하거니와 풍경으로도 굴지하는 목포의 석양은 면화가루에 붉어진 그들의 눈을 위로해주며 해안의 양풍은 땀에 절은 그들의 얼굴을 곱게 씻어준다. 그러므로 종일토록 귀가 덜거덕거리는 기계의 소리와 머리골이 터질 듯이 심한 기름 냄새, 숨이 턱턱 막히는 먼지 속에서 눈을 부비며 땀을 흘리면서 무의식으로 기계의 종이 되어 나〔自我〕를 잊었던 그들도 오후 여섯시가 되어 공장문을 나서서 바다 저편 월출산 위에 붉게 타는 저녁 구름을 바라보며 포구로 돌아오는 흰 돛대의 움직이는 긴 그림자를 돌아보면서 양풍이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해안을 결을 때는 잊었던 나를 다시 찾은 듯이 정신을 차려 시원함을 느끼며 자유의 몸이 된 것을 기뻐한다. 그러나 그 기쁨은 잠깐이요 돌아온 어선에서 우물거리며 소리치는 사람의 소리와 선두가에로 쌓아놓은 수박, 생선, 건물에서 개미떼같이 덤비며 눈이 벌개서 날뛰는 사람 틈을 걸어올 때는 가슴이 뻐근해지고 머리가 무거워지면서 집에서 기다릴 주린 식구들이 눈에 보이자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쑥 빼치고 젊은 여자들의 마음을 살려는 듯이 거리에 벌려놓은 모든 것, 보기만해도 침이 흐르는 먹을 것들이 벌여 있는 것을 아니 볼려는 듯이 바쁘게 발을 옮긴다. 그들은 오전 일곱 시에 나온 자기의 집에 들어갈 때까지 이러한 일과를 매일매일 계속한다. 그러나 집에 들어만가면 각각 일어나는 풍파는 날마다가 다르다.
2
제일 뒤떨어져 나온 영신의 두 눈가는 붉어지고 그의 왼편 팔뚝 적삼에는 피가 드문드문 묻어 있다. 그는 도시락보를 든 채로 왼편 팔뚝 어깨 아래를 꽉 붙잡으며 얼굴을 찌푸린다.
“아이고 아야― 이렇게 몹시 다쳤을까? 아이고 이 팔자야.”
하는 한숨과 함께 손을 떼인다. 눌렸던 당모시 적삼이 피에 착 달라 붙었다. 그의 매일 위로거리인 석양은 의구히 붉고 바람은 여전히 서늘하건만 흰 돛대는 더욱 한가히 돌아오건만 오늘은 그것도 그녀의 눈에 띄이지 않아지고 다만 비분과 원한에 숨을 씨근거리며 발만 재게 놀린다.
“인제야 오시오, 나는 발써 나온 줄 알고 암만 찾어도 있어야지.”
하고 축에서 기다리고 섰던 이웃집 옥례 어머니가 반갑게 다가오며 도시락을 빼앗는다.
“이때까지 기다렸습데까? 늦은데 먼저 가실 것이지.”
하며 영신은 팔을 붙잡는다.
“참 시럽지 많이 다쳤소? 아이고 저 피 ― 엇쩔가 발가니 묻은 것이 참 보기 싫은데, 끌끌 이놈의 목구멍이 무엇이라고 그저 허대다가 별꼴을 다 ― 당한단 말이오.”
하며 영신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울었소? 눈까지 벌거요. 어머니가 또 깜짝 놀래시것소. 어서 나아야 쓸 것인디.”
“글쎄 말이오. 어머니가 놀래실 것이 딱하지 이왕 이런 몸이야 팔이 부러지 거나…….”
말거나 말을 마치지 않고 입술을 꽉 문다.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뚝―ㅡ 떨어진다.
“기어코 그놈이 일올 저질고 만다니께. 하필 요재사 말고 팔을 다쳤으니, 아이 원수의 자식.”
하고 옥례모도 눈을 씻는다.
영신은 아까 공장에서 당하던 일이 문득 눈에 보인다. 곧 조금 전이다. 공장감독이 와서 돌아다니다가 양금이라는 처녀의 긴 머리를 쭉 잡아당겼다. 양금이는 깜짝 놀라 돌아보다가 감독인 줄 알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러한 짓이 한두 번 아닌 까닭이다. 그 자는 다시 양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쁜 사람이 머리가 좋소.”
하고는 또 한 번 잡아 당기고는 뺨을 만지려하였다. 참았던 양금이도 두 번째는 못 견디겠던지 머리를 툭 채어 잡아 빼며,
“왜 이래, 그것 미친놈이네.'
하며 영신에게로 피해왔다. 양금이는 여공 중 제일 어여쁘고 귀여운 처녀인데다가 영신을 따르는고로 영신 역시 사랑하는 까닭이다. 징그러웁게 빙긋이 웃고 섰던 감독은 무안한 얼굴에 두 눈이 벌게지며,
“무어 내가 미친놈이? 이놈의 가시네, 나쁜말이 했소지바리.”
하며 양금이를 때리려 드는 듯이 쫓아왔다. 양금이는 영신의 뒤로 돌아가며,
“그래, 어째 왜 남을 건드려.”
벌써 감독의 검은 주먹은 양금의 붉고 연한 뺨을 휘갈겼다.
“요놈의 가시네(계집애) 또 말이 해봐라. 내가 어째 미친놈이냔 말이다.”
하며 또 한 번 주먹이 올 차례다. 영신은 빨리 주먹을 어깨로 받아 휙ㅡ 뿌리치고 돌릴 때 기계를 건드리자, 북이 뒤어나와 적삼을 뚫고 왼팔을 찔렀다. 양금은 얼른 두 손으로 팔을 꽉 잡으며,
“아이고머니, 경아 어머니가 다쳤네.”
하며 엉 ―― 엉 울고 있다. 다른 여공들도 고개를 돌리고 혀를 끌끌차나 감히 가까이 오지는 못한다. 감독은 놀랜 눈으로 분이 찬 영신을 내려다보면서,
“당신이 왜 참 했소.”
하며 미안한 듯이 적삼에 묻은 피를 바라본다. 영신은 전일부터 빈부와 계급에 대한 반항심을 잔뜩 가지고 있었으며 더구나 감독의 평일행위를 몹시 미워하던 터이라 떨리는 입술로,
“그러면 당신이 왜 먼저 그 따위 짓을 하느냐 말이야. 감독이면 점잖게 감독이나 하지 어린애들 머리를 잡아당기며 부인들을 건들며 그 따위 못된 짓을 하니 누가 좋다고 하겠소, 그래 놓고는 당신이 도리어 때려 응, 그게 무슨 짓이야? 왜 우리는 개만도 못 하게 보이오? 우리도 사람이야. 사람이 기계에 몸이 매였을지언정 이러한 당신과 꼭같은 사람이란 말이야. 우리는 당신같이 나쁜 짓은 하지 않는 좋은 사람이란 말이야.”
그녀는 독이 가득찬 눈으로 감독을 쳐다보며 소리를 버럭버럭 지른다.
“저― 주인에게 갑시다. 내가 당신이 하던 짓을 다 말하고 결단을 낼 터이니…….”
감독은 어이없는 듯이 섰다. 다른 여공에게 같으면 오히려 뺨을 갈기며 “나가거라 너 아니와도 좋다.”하겠지만 여공 중 제일 나이 많은(많테야 스물아홉) 사람이요 평시에 어렵게 보고 꺼리는 사람이며 주인도 신용하던 터이므로 영신에게는 어쩔 수가 없다는 듯이 지갑을 꺼내드니 일 원짜리를 내어,
“여보, 이것 가지고 약 사서 발러하면 곧 낫소.”
하고 영신의 어깨를 건드린다. 영신은 더욱 분이 나서 목까지 막힐 지경이다. 일 원을 받아서 감독에게로 다시 던지며,
“이것은 왜 이래, 돈귀신 당신이나 잘 처먹우, 일 원 주고 내 어깨를 산단 말이오? 돈만 보면 아무것도 다 잊어버리는 줄 아오? 이게 무슨 개 같은 짓이야 자― 갑시다. 주인에게든지 파출소에든지 나만 건드려만 보오, 돈 있는 당신이 이기나 죄없는 내가 이기나 해봅시다.”
하며 숨을 씨근거린다. 여공들은 나 같으면 받겠다는 듯한 눈으로 땅에 떨어진 종이 돈을 아까운 듯이 바라본다. 감독은 머리를 슬슬 만지고 입맛을 다시며,
“여보 내가 잘못했소, 다시는 안 그러지. 참말이오, 오늘은 내가 잘못했소.”
하며 돈올 집는다.
“그래, 잘못했지 천 번 만 번 잘못했어. 그러니 가잔 말이야.”
하고 나선다. 감독은 웃으며,
“여보 가도 소용없소, 당신 잘 했다고 아니 해. 내가 잘못했다고 하니 그만두시오.”
하고 저쪽으로 가버린다. 영신은 더 억지를 쓸려고 했으나 그놈 말같이 나를 잘했다고도 아니할 것이오 그리 도둑놈 같은 감독 녀석이 오늘은 잘못했다고 쩔쩔매는 것을 보고 ‘애라 내버려두어라 부득부득 억지 쓴다고 별 좋은 일 있겠니.’ 하고 수건으로 상처를 동이며 양금이를 찾느라고 돌아볼 때 여섯시 기적이 뛰 하고 운다. 눈이 부은 양금이는 빨리 제자리로 가더니 조금 있다가 영신을 돌아보고는 휙 ㅡ 나갔다. 다른 여공들도 일을 끝 지우고 나 먼저 나 먼저 나가버렸다. 영신은 나가는 그들의 뒷모양을 보자 참았던 설움이 북받쳐 그대로 서서 우느라고 조금 늦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영신의 눈에서는 다시 눈물이 뚝뚝 떨어지며 한숨이 길게 나왔다. 뒤에서 작동차가 뿌 ㅡ 뿌 소리친다.
“왜 자꾸 이러시오. 그만 울고 치나시오.”
하는 옥례 어머니 말에 다시 정신을 차려 길을 비키며 돌아보니 벌써 사거리에 왔다. 앞으로 사흘밖에 남지 않은 추석대목을 그저 넘기지 않으려고 점방마다 걸어놓은 댕기와 대님이 영신의 작은 눈을 깜짝 놀래인다.
“아—— 저 댕기 좀 보시오. 대님도 많고…….”
이때까지의 설움은 댕기와 바꾸었다.
“올해는 흉년이라고 해도 호사치례거리들은 더 사는 갑데다만은 우리 같은 것들이야…….”
하며 옥례 어머니도 맞장구를 친다. 영신의 눈은 거리 우편에 수없이 걸어놓은 댕기에서 떠날 수 없다.
“우리 경아 하나만 사주었으면, 영이도 밤낮 고운 허리끈 댄님 그 노래만 부르는데…….”
아픈 것도 잊어버리고 추석 지낼 궁리에 가슴은 잔뜩 부풀어 오른다.
3
“아이고 저것이 웬일이냐 응, 피가 웬일이고 응, 무슨 일이냐?”
좁쌀에 안남미 싸라기를 섞어 바가지에 씻고 있던 영신의 늙은 시어머니가 들어오는 영신을 보자 부르짖는다. 칠십이나 되어 보이는 노인은, 허리를 구부리고 영신에게로 오더니 영신의 눈과 적삼의 피를 번갈아보며 대답을 기다리느라고 입술만 바라보고 섰다.
“아니 올시다. 조금 다쳤습니다. 북이 튀어나와서…….”
하며 빨리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다시 구부리고 가서 바가지를 들며,
“그저 이런 팔자는 어서 죽어야지. 이꼴 저꼴 다 ― 못 보것다. 음― 으―.”
입술이 실룩실룩하자 기침이 꿀럭꿀럭 나온다. 조금 있다가 헌 적삼을 갈아입고 나온 영신은 양철에 불을 지피며,
“왜 저 계집애는 누웠답니까?”
어머니는 그 말대답도 않고 급히 오더니 영신을 떠밀며,
“오라― 저리 가거라. 얼른 봐도 어깨가 많이 다쳤는데 왜 이러냐. 저리 가거라 저리 가 ―.”
하며 자기가 불 앞에 앉아서 나무를 꺾는다.
“어머니 경아가 왜 누웠어요?”
하며 재차 물었다.
“아침에 학교에 가닝께 월사금 안 갖고 온 사람은 못 온다고 그러더라나 엇쩌더라나. 그래서 부끄러서 그냥 왔다고 이때까지 방에서 뒹굴고 울고만 있더니 아마 자는 갑으다.”
영신은 툇마루에 벌떡 주저앉았다. 다시 더 말할 기운이 없음이다. 어깨가 몹시 저린다. 뛰는 발소리가 나며 여섯 살 된 영이가 막대기를 끌고 들어와 영 신의 무릎에가 턱 안기며,
“어무니, 내 허리끈 댄님 사 가지고 왔어요? 웅 ㅡ 어디 봐아. 어무니, 누님은 울었어. 어서 내 허리끈 내놔야ㅡ .”
하며 엄마의 팔을 비틀려고 한다.
“아이고 가만 있거라. 엄마가 팔이 다쳐서 아프다. 허리끈은 내일 모레 사다주마.”
하고 달래는 말도 영의 귀에는 쓸데없다는 듯이,
“안 해ㅡ 거짓말쟁이. 오늘 꼭 사다주마고 하더니 막 때릴란다.”
하며 막대기를 들어 때릴려다가 하一 하 一 웃고 방으로 뛰어 들어가더니,
“누님! 아이 어무니 왔네. 어서 댕기랑 월사금 달라고 하소. 어이 일어나야 일어나.”
하며 깨우는 모양이다.
“아이고 아야.”
끙끙거리는 경아의 소리가 들리자 남매는 방에서 나왔다.
“왜 낮잠은 자느냐? 할머니 혼자 하시게 내버려두고. 왜 ㅡ 그 모양이야.”
하며 영신은 퉁퉁 부은 딸의 얼굴을 흘겨본다. 밥이 부글부글 넘으며 좁쌀 알이 솥에서 흘러내린다. 영신과 경아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이웃집에서 다듬이 하는 소리가 듣기 좋게 장단을 맞춘다.
4
음력 팔월 열사흘 달이 동천에 훨씬 나왔다. 전등이 빛나는 시가는 거듭 달의 빛을 받아 기와집과 초가지붕이 아슬하게 보인다. 유달산은 별을 뿌린 듯 붉은 눈들이 깜박인다. 하늘에 별, 시가에 전등산, 밑에 불, 세 가지 구술들이 밤빛 속에서 각기 제멋대로 반짝이고 있다.
목포의 낮〔晝〕은 참 보기에 애처로웁다. 남편으로는 늘비한 일인의 기와집이오, 중앙으로는 초가에 부자들의 옛 기와집이 섞여 있고 동북으로는 수림 중에서 양인의 집과 남녀 학교와 예배당이 솟아 있는 외에 몇 기와집을 내놓고는 땅에 붙은 초가집 뿐이다. 다시 건너편 유달산 밑을 보자. 집들은 돌틈에 구멍만 빤——히 뚫어진 돼지막 같은 초막들이 산을 덮어 완연히 빈민굴이다. 그러나 차별이 심한 이 도회지를 안고 있는 자연의 풍경은 극히 아름다움다.
동북으로 비스듬히 높은 성당산 숲속에서 십자가를 머리에 꽂고 아련히 내려다보는 성당은 멀리 서해에 떨어지는 낙조를 바라보며 느린 종소리를 검어가는 시가에 고요히 흘린다. 앞산 달성사의 새벽 종소리에 눈 뜬 목포는 뒷산 성당의 저문 종소리에 눈을 감는 것이다. 옛 절의 새벽 종소리 사원의 만종은 목포가 홀로 가진 자랑거리이며, 성당 이북으로는 밭가는 소의 풍경 소리가 한가하고, 논두렁 길로 풀을 지고 오는 농부와 밭 매는 아낙네들의 홍글타령이 흐르는 농촌이오, 북편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앉은 기와가마(동리이름)는 어촌이다. 감자배, 수박배, 나무배, 고기배, 돛대가 들어선 해변에서 김치거리를 씻고 있는 부인은 어부의 아내인 듯, 유달산 북편은 구멍만 뚫어진 돌틈 초막이요, 남편의 유달산은 푸른 밭뿐이므로 산 밑은 산촌을 보는 감이 있다. 하루에 네 번씩 나가고 들어오는 기차를 보내며 맞는 정차장을 중심으로, 조선인과 일인의 상점이 즐비한 중앙은 조선의 몇 째 안 가는 도회지로 부끄럽지 않으며, 크고 작은 섬이 둘러 있는 푸른 바다에 점잖은 기선과 어여쁜 흰 돛대 방정스
러운 발동선들이 들고 나는 항구의 특색은 남편 해안에 있다. 주위의 풍경은 그림 같고 농촌과 어촌, 산촌과 도시와 항구의 각색 맛을 겸하여 가지고 있는 복포는 매일 움직이고 시시각각으로 자라가건만 그 양면에 잠겨 있는 빈민의 생활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을 만큼 비참한 살림이 숨어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낮〔晝〕에 높은 공에 서서 저자를 내려다볼 때는 그렇듯 여러 가지의 느낌이 일어나거니와 밤의 도시는 다만 아름다울 뿐이다.
제일 보기 싫은 산 밑구멍 집은 어둠에 묻히고 생기있는 불들만 전등 밑에 앉히겠다는 듯이 황홀거리고 있어 별 밤에는 하늘과 땅에 별과 불을 가릴 수 없이 붉은 구슬들만 빛나고 있을 뿐이다. ‘목포의 밤은 아름답다.’ 이것은 뜻있는 사람의 밤 시가를 보면서 부르짖는 어구이다.
5
여덟시 기차가 쉬인 듯한 소리를 지르며 야단스럽게 정차장에 닿을 때, 달을 가리고 있던 엷은 구름은 흔적 없이 스러지고 달은 전보다 더욱 깨끗한 얼굴로 웃고 있다.
해안에서부터 일어난 바람이 슬슬 여러 집을 거쳐 호남정 영신의 집 뒤 포플러 잎을 제멋대로 뒤적이다가 병든 잎 하나를 영신의 머리 위에 뚝 떨어뜨린다. 오늘도 못 갈 것을 추석은 닥쳐 겨우 아픈 팔을 끌고 종일 일을 마치고 온 영신이, 간호부인 차기 동무의 집에 가서 약을 얻어 바르고 와, 달을 쳐다보고 잠깐 섰는 중이다. 머리에 떨어진 포플러 잎을 주워내리며,
“어머니, 벌써 나뭇잎이 떨어집니다. 가을은 아주 왔습니다그려.”
하며 나뭇잎을 어머니에게 보인다. 툇마루에 걸터앉아 긴 담배대를 물고 앉았던 어머니는,
“모레가 추석이 아니냐? 그런데 참 이 애야, 아까 땅세받으러 왔더라, 그래서 주인이 없다고 하니께 있다가오마고 가더라. 또 어쩌잔 말이냐, 영이 아범만 있었더라면…….”
노인은 삼 년 전에 죽은 자기의 아들을 생각하며 한숨을 쉰다. 그의 아들은 얼굴도 참 잘 났었다. 학교라고는 보통학교 졸업뿐이거니와 일본말 잘하고 똑똑하므로 어떤 일본인의 집에 있을 때에도 착실하고 부지런하다 하여 주인이 매우 사랑하였다. 그래서 과부인 어머니와 외아들이 살기에 아무 괴로움이 없었다. 아들이 십구 세 되던 가을이다. × × 여학교 사년급에서 인물이나 공부로 첫손가락을 꼽는 단정한 처녀이나 다만 가세의 형편으로 부득이 들어 앉게된 십칠 세의 영신을 며느리로 맞아 귀한 손자남매를 두 팔로 어르며, 얌전한 아들 부부의 효성으로 아무 일 없이 재미있게 살아왔다. 그러나 운명의 변덕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튼튼하고 착실한 그의 아들은 우연히 병이 들어 폐병 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삼 년 전 오월에 북망산 한 덩이 흙무덤을 이룬 후로 여간한 저축은 약값으로 없어지고도, 집까지 빼앗겨 곁방으로 돌아다니며 홀며느리가 바느질품을 팔아 남매의 학비를 대이며 네 식구 목을 축이는 중, 금년 사월부터 새로 생긴 방직공장에 들어가 일급 사오십 전으로 겨우 목숨만 이어가는 이 집 형편이 어떠하랴. 이 집도 영신의 친정부모가 자기의 살던 집을 가련한 딸에게 내어주고, 자기들은 신작로 오막살이를 얻어 가지고 죽장수를 하므로 노인은 사돈에게도 미안함을 말할 수 없다. 매일 며느리의 애쓰는 모양을 볼 때는 항시 ‘내 아들이 살었더라면’ 하는 말뿐이 구제책이나 같이 생각된다. 지금도 모르는 사이에 쑥 나온 것이다. 영신은 얼굴을 찌푸리며,
“어머니 또 그런 소리를 하십니다그려. 쓸데 있어요? 그런 말 한 대야 서로 속만 상하지요, 그저 사는대로 살지요, 설마 산사람 목구멍에 거미줄 칠랍데 까요.”
하며 여전히 달만 바라보고 있다. 말은 이렇게 대범히 했거니와, 사실 어머니 입에서 그 말이 나올 때는 영신의 가슴이 찢어지는 듯 터지는 듯 아직도 남편 생시에 자기를 사랑하여 주며 정답게 해주던 그 사람은 뼈에 깊이깊이 새겨있다. 어느 때 남편을 잊으랴, 그는 죽었거니와 그의 사랑은 내가 흙이 될 때까지는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밤이 깊어 홀로 바느질하고 있을 때는 은연히 자기 남편이 곁에 앉아서 “그만하고 잡시다.” 하며 바느질 감을 뻬앗는 듯하여 곁을 돌아보면 희미한 등불만 창틈으로 새여 들어오는 바람에 춤추고 있음을 볼 때는 그냥 그 자리에 엎어져 울며 밤을 새우는 것이 예사이었다. 그러나 참고 견디어 늙으신 어머님 생전에 남편의 그 효성을 내가 대신하려니, 우리는 못 배워서 꽃을 못 이뤘거니와 남매는 기어코 내 팔이 부러지더라도 남부럽지 않게 시켜보려니 결심하고, 경아는 × × ×여학교에 입학시켰던 것이 열두 살 되는 금년에 고등과 일학년이며, 영이는 유치원에 보내어 매일 재롱이 늘어가는 고로 남매를 낙으로 삼고 기막힌 고생과 슬픔을 달게 받고 지내는 중 이번에는 더욱 형편이 어려웁게 되었다. 그리 부득부득 조르지는 않지만 경아는 동무들의 모양낸 의복이나 댕 기를 몹시 부러워하는 모양이다. 그것도 무리는 아니다. 삼 년올 되는 대로 흰옷만 주워입고 남보다 더 길고 검은 머리에 기름때 묻은 흰 댕기만 매고 다니던 어린것이 아니냐, 지난 오월에 복을 벗자 동무들의 고사나 갑사의 붉고 긴 댕기를 보고 와서는 여러 번 붉은 댕기 말을 하였다. 더구나 남편이 사랑하던 경아, 높이 선 콧대와 가느스럼한 눈과 귀염있는 입 모습이 자기를 닮았다고 항상 거울로 나란히 비치며 사랑하던 경아! 지금도 경아의 웃는 입 모습을 놓 때에는 가슴의 쓰림을 이기지 못한다. 그러한 경아의 소원인 붉은 댕기를 추석에는 꼭 해주마고 하여왔다. 어제도 월사금 때문에 학교에서 그냥 와서 오늘도 못 가고 있으면서도 행여나 어머니가 댕기감을 사가지고 오시나 물어보고 싶지만 그보다도 더 큰 월사금 때문에 입도 못 벌리고 눈치만 버며 처분만 기다리는 모양이 코가 시도록 애처로우며, 찰 없는 영이는 유치원에서는 부잣집 도련님의 양복과 구두보다도 윗집에 사온 고운 허리끈과 대님만 부러워서 조르니 그것도 사주어야 할 것이다. 그 뿐인가. 이번에는 참으로 늙은 어머니 당목 적삼이라도 해드려야 할 것이다. 새벽이면 다섯시에 모르게 일어나서 밥 지어놓으시구, 저녁 이면 양식이 없어 못 하는 저녁 외에는 꼭 손수 지으시고 기다린다. 그러한 어머님이 떨어진 광포 적삼만 입고 계시는 것이 얼마나 불안한지, 그러나 제일 급한 것은 경아의 월사금이다. 영이는 처음에 오 원 빚내어 들여논 뒤로는 아직도 아무 말이 없으니 내버려두더라도 또 땅세가 있다. 그러면 돈이 얼마나 있어야 되나 경아의 월사금이 이 원, 여˙기까지 생각하자 밖에서 주인 찾는 소리가 들린다.
주인 있수 하는 것은 영감의 소리다.
“이 애야 왔다. 저 ㅡ 땅세 받으러.”
하며 어머니가 은근히 소리친다. 영신은 벌떡 일어나서 나가며,
“네, 있습니다. 땅값이 얼마나 되나요?”
하고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아, 생각해보시구려. 한 달에 일 원 오십 전인데다가 석달을 못 냈으니 사 원 오십 전 아니오. 이번에는 꼭 받어야 하겠수다. 도모지 군색해서 살 수가 있어야지.”
하며 늙은 서울 노인은 달빛에 더 헬쑥해보이는 영신의 얼굴을 바라본다.
“글쎄요 난들 좀―― 얼른 해드리고 싶으릿까만은 없으니까 그렇지요. 오늘도 없는데 어쩔까요?”
하며 조심스렵 게 가만히 노인을 본다.
“어쩔까요가 다 무엇이요. 나도 이번은 꼭 받고 말했소. 없으니 못 낸다고만 하면 나중에는 어쩔 터이요.”
“그렇지만 없으니까 없다지 있는 걸 없다고 합니까? 지금은 수중에 한 푼도 없으니 말이지요.”
영신의 입술은 바르르 떨린다.
“여보 그래 못 내겠단 말이오? 못 내겠으면 나가구 집을 팔아버리오 그려. 못 내겠으니 받지마오. 이건 세를 부리나.”
빚 받기에는 박사가 된 듯한 노인은 손을 벌리며 경판을 붙인다.
“아이구 노인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못 내는 사람이 세는 웬 세요? 돈있는 사람이나 세부릴 세상에 이런 가난뱅이가 세가 웬말입니까? 그만두고 가십시오. 내일은 꼭 드리리다.”
툭―― 내던지 듯이 하고 영신은 들어와 그 전 자리에 다시 앉아 달을 바라본다. 달은 여전히 평화룹게 웃고 있다.
“그러면 내일 저녁에 올 터이니 해놓고 기다리시우.”
하고는 지팡이의 소리만 점점 멀리 들린다.
영신은 두 손을 가져다 얼굴을 가리고 몸을 두어 번 흔들었다. 어머니의 한숨 소리가 산이 무너지라는 듯이 들린다. 영신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의 계신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영신은 북받치는 비와 분을 참고 천연히 앉아 아까 생각을 계속한다. 경아의 월사금 이 원, 댕기 대님 모두 하여 삼 원 가량이다. 땅세가 사 원 오십 천, 내일은 다시 좁쌀과 싸라기를 사야 할 것이다. 또 명일이라고 고기는 못 해드리나마 백미 한 되는 사야 될 터인데 일 원만 있으면 될 것이다. 그러면 얼마이냐 십일 원이다. 십일 원만 있으면 우선 발등에 불을 끄겠다. 십일 원! 영진은 아까 공장 시찰하러 왔던 당지 부자의 아들 감독이 눈에 보인다. 그 부자의 어들은 죽은 자기 남편과 한 동창생이다. 그러나 빈부의 차로 하나는 고생만 하다가 죽어버리고 하나는 공부를 계속하여 마친 것이다. 그 심술궂은 감독녀석이 굽실굽실하며 차례로 구경시킬 때 그는 아무 기색이 없이 평범하게 보기를 마치고 나갔다. 그는 부자랄망정 과히 호사는 아니하였으나 그의 가진 야광주시계는 분명히 고가일 것이다. 그 시계 아니 그에게는 아니, 부자라는 놈의 주먹 속에는 철갑 속에는 몇천 원 몇만 원이 있으렷다. 지금도 술을 마시며 한 자리에서 몇십 원씩 기생의 웃음값 주기에 얼마든 없어질 것이다. 그 혼한 돈이 왜 이런 몸에는 이리도 귀한가. 내일은 공장에서 돈을 준다고 하였다. 십일 급이 오 원이니 육 원이 모자란다. 육 원, 육 원, 육 원만 있으면……무엇 팔을 것이 있나. 팔 것도 없다. 그러면 어쩌랴 영신은 고개를 숙이고 방침을 생각한다. 아까 순임 (간호부 이름)이네 집에 갔을 때 바느질품 파는 순임의 시어머니가 바느질감이 너무 많다고 하였다. 그것은 갑사 저고리 하나와 적은 관사 저고리 두 개이었다. 그렇다. 그것을 가져오자, 싹은 세 개에 일 원 십 전이다. 십일 원이라면……가져오자. 그는 바쁜 듯이 벌떡 일어났다. 어깨가 다시 아프기 시작한다. 저린다. 쑤신다. 이 어깨를 가지고 어떻게 하랴, 그러나 가져오자. 영신의 발은 무의식으로 문을 향하여 옮겨진다.
이 애야 어데 갈래 하는 어머니의 소리에 깜짝 놀라며,
“저 저기 좀 갔다오겠습니다.”
하고 쑥 ㅡ 나왔다. 어쩐지 정신이 희미하여지고 머리가 감감하며 아득한 것 같다. 밤 저자에는 모든 실과가 불빛에 반짝인다. 바느질하며 점방지키는 부인들이 눈에 띄인다. 어디선지 시계가 열시를 땡 ㅡ 땡 친다. 하늘 한가운데서 꿈으로 들어가는 도회를 애달픈 듯이 내려다보는 달의 얼굴은 더욱 빛난 웃음에 맑아진다.
6
모레 새벽에 보내기로 한 저고리 세 개를 오늘 밤과 내일 밤으로 해서 일 원 십 전을 벌겠다는 욕심으로 바쁘게 손을 늘리는 영신은 가끔 오른 손으로 왼편 팔을 꽉 잡고는 눈살을 찌푸린다. 이것을 해서 일 원 십 전을 가진대야 무엇 할 것이 생각나지도 않는다. 그는 생각지도 않으려 하며 바늘 든 손만 바쁘게 놀린다. 어디선지 귀뚜라미가 쯧쯧쯧쯧 하더니 그 소리조차도 뚝 끊기고 닭의 소리가 처음으로 들린다. 어머니는 두어 번 일어나서 그만두라고도 하시고 이야기도 하시더니 이제는 세상을 모르고 주무신다. 두 번째 닭이 울었다. 솜씨 곱고 손 빠른 영신의 손에서 갑사 저고리는 빚어나왔다. 관사 저고리 거죽을 붙일 때까지 닭은 세 번째 울었다. 영신은 못 참겠다는 듯이 불을 특 끄고 쓰러졌다. 느끼는 부인을 위로하려는 듯이 희미한 달빛과 별빛이 모기장 바른 창으로 새어 들어오며 박명한 과부의 젖은 눈을 새벽별 하나가 들여다본다.
7
열나흩날 밤이건만 달은 둥글 대로 둥글었다. 종일 집집에서 나던 떡방아 소리가 달뜨기 전까지도 나더니 달의 세계가 되자 달을 보며 송편을 먹는 아이들이 불어간다. 기름 냄새 칼판 소리 심지어 병원 아래 움집에서도 맛난 내음새가 나건만 영신의 집만 비로 쓴 듯이 쓸쓸하다. 뜰에서 남매의 ‘강강수월래(江江讐越來)’를 부르며 뛰는 소리가 겨우 정막을 깨뜨린다. 영신은 저고리를 밤으로 보내려고 공장에서 나오자 저녁도 먹지 않고 끝마치려 한다. 그는 가끔 입에서 더운 김을 훅― 혹― 뿜으며 손을 머리에 얹었다가 팔을 잡았다가 한다. 그의 팔은 부어서 적삼위로까지 불룩하게 나타난다. 씨끈거려지는 숨을 입으로 불며 아홉시 후에 기어코 마쳤다.
심부름 갔던 경아가 손에 일 원 십 전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것으로 내 댕기…….”
하며 어머니의 얼굴을 힐끗 보자 무안한 듯이 몸을 틀고는 다시 밖으로 쪼르르 나간다.
“이 영감님이 왜 이때까지 아니오나?”
영신은 공장에서 받은 피값, 땀 값, 눈물값 오 원을 주머니에서 꺼내며 어머니를 돌아보고 물었다.
“안 오기는 왜 안 와? 야 그 깍쟁이가……곧 올 것이요.”
말을 마치자마자,
“주인 있소?”
하는 서울 영감의 소리,
“네, 있소.”
하고 영신은 나아가 영감과 마주섰디.
“자 ㅡ 되었으면 주시오.”
하고 뼈만 남은 손을 내민다. 영신은 내미는 손을 탁 때리고 오 원을 얼굴에다가 갈기며 ‘십팔자삭제’ 하고 싶었다. 그러나 없는 놈은 유구무언(有ㅁ無言)이다. 에라 참아라 하고,
“네. 되었는데 다는 못 드리겠습니다. 두 달 것이나 먼저 받으시지요.”
영감은 눈귀가 실쭉해졌다.
“아 또 잔소리로구려. 오늘 저녁에는 다 준다고 아니했소?”
턱이 달달 떨린다.
영신은 미움과 원망과 더러움과 분함에 몸을 떨었다.
“여보시오. 좀 생각을 해보시오그려, 오늘 내가 오 원 받기는 했소이다. 자ㅡ 이것이 오 원 아니오? 그러나 영감님도 생각을 해보십시오. 이것이 열흘 것인데 사 원 오십 전을 영감님께 다 드리고 보면 하루도 못 살 오십 전을 갖고 어쩔 것입니까? 부득부득 다 달라면 드리리만은 그럴 수야…….”
말소리에 힘 있기로 유명한 영신이건만 지금 말소리에는 힘도 없이 떨리기만 한다. 그의 손은 다시 이마로 올라갔다.
영감은 끄덕하지도 않은 기색으로,
“여보,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이라고……내 몸 다음에 남이야ㅡ 석달이나 용서해주었으면 그만이지, 인내요, 오 원.”
하며 손을 내민다. 영신은 벌컥 내주었다. 영감은 지갑에서 오십 전 은화를 내어 영신의 손에 놓았다. 은전이 달빛을 반사하여 영신의 눈을 찌른다. 영신은 은화가 더럽다는 듯 얼른 땅에 떨쳤다. 영감은 간다, 보아라 하고 지팡이를 끌며 천천히 내려간다.
영신은 그만 땅에 퍽 ― 주저 앉는다.
“아 ― 세상은 이렇구나 아! 사람은 이렇구나 아! 더러워 이 세상. 주먹으로 땅을 치며 몸부림을 한다.
“이럴 줄이야 몰랐다. 이렇게 세상이 나에계 독하게 할 줄이야 몰랐다. 그 전에도 좀 독했느냐만은 아이고 요렇게까지 흑흑.”
그녀는 땅에 옆어져 뒹군다. 숨이 더운 김에 턱턱 막히고 입술이 탄다. 몸이 불덩이 같고 어깨가 쑤신다. 어머니가 나왔다.
“이 애야 그러지 마라.”
하는 끝 말소리가 떨리며 붙들어 일으킨다. 영신은 정신을 잃은 듯이 다시 엎어졌다가는 생각을 더욱 분명히 연속코자 한다. 사흘 전부터 팔을 다친데다가(그것도 타인 같으면 별 치료를 다할 만큼 많이 다쳤다) 이틀이나 공장에를 이를 갈고 다녔다. 게다가 어젯밤은 꼬박 새우고 오늘 저녁은 굶었다. 일 원 이십 전을 벌려고 어깨가 붓고 머리가 어지럽고 입안이 불 같고 속이 메식메식한 것을 참았다. 그래서 땅세를 삼 원만 주게 되면 이 원 육십 전을 가지고 불덩이 같은 이 몸을 끌고 저자에 나가 생각던 대로 해볼려고 하였다. 그리하더니 아 ― 요런 일까지도 야속하게 몹시도 나를 볶는 이 세상, 영신은 생각을 마치고 죽은 듯이 엎어져버렸다. 어머니의 주름잡힌 얼굴에 흘러내리는 늙은 눈물이 달빛에 반짝인다.
“이 애야 일어나거라. 네가 이러면 나는 어쩌것냐?”
어머니의 울음이 툭 터졌다. 입술을 불며 혀〔舌〕를 마시면서 소리가 커진다. 경아가 영이를 데리고 오다가 우는 할머니의 얼굴과 엎어진 어머니를 번갈아보다가 어머니 위에 엎드리며 으악 소리친다. 영이도 운다. 영신은 소스라치며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남부끄러운 생각이 난 것이다.
“아이고, 무슨 소리들이냐? 남부끄렵게.”
말할 때마다 입에서 더운 김이 훅 一 끼친다. 입술이 부었다. 얼굴이 붉은 물을 들인 듯이 벌겋게 달았다. 적삼 위로 부여스럼한 물이 팔에서 스며 나왔다. 무심한 달은 빛난 웃음을 영신에게 보낸다. 떨어진 은전이 말없이 희게 빛난다. 이것을 본 영이는 울음을 그치고 얼른 은전을 집으며,
“어머니 돈 여기 있소.”
하고 빨리 집어든다. 어머니에게 더럽다고 배척을 받아 떨어진 은전은 아들의 손에서 더욱 곱게 빚나고 있다.
“아ㅡ 영아, 버려라 내버려라. 더러운 그 은전을 아 버려라, 더럽다.”
하고 몸서리를 치며 다시 엎어진다. 별안간 기침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몸을 빙빙틀며 괴로워한다. 어머니는 며느리를 붙들고 들어왔다. (削除) 어머니의 눈이 둥그래지며 얼굴이 노랗게 질린다. 어린 남매의 울음소리가 다시 터졌다. 막차가 처량한 소리를 지르고 달려온다. 영이가 내버린 은전은 마당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다.
(1924년)
2016년 12월 14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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