핍박이 심한 중동에 나가 사역하는 선교사님이 계셨습니다. 어느 신앙인이 물었습니다. 핍박이 심한 중동에서 사역하실 때 언제 가장 두려웠습니까? 물었더니 선교사님이 대답하시기를 “ 제가 체포당하거나 고문당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주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을 때 가장 두려웠습니다. 고백했다고 합니다. 간증하신 이 선교사님은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신 분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지금까지 해 왔는데 이 선교사님처럼 고백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저와 여러분 그리고 현대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인재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사람으로 체험하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왜 그렇까요?
우리는 지금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제자들은 어떠했습니까? 어느 날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 하니까 베드로 야고보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을 육안으로 보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함께 자고 함께 밥 먹고 하나님나라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고 따랐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자신이 그랬든지 누가 그랬든지 예수님의 제자라고 부릅니다. 그렇게 믿고 찬양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육안으로 보고 예수님을 믿었습니까? 그리고 예수님 제자라고 말합니까? 제자들은 그렇게 믿었을지 몰라도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내 안에 계심을 믿는 것은 성령님께서 말씀해주셔서 우리가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13.....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이것은 대단한 믿음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신다는 믿음만으로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왜 그럴까요?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주도권을 자신이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 있다고 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하고 싶은 일을 다하고...... 가고 싶은 곳에 다니면서 예수님은 단지 자신을 도와주시는 서비스 하시는 분으로만 여긴다는 것입니다.
17세기 후반 헨리 스쿠걸 이 쓴 [인간의 영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원래 이 책은 헨리 스쿠걸이 한 친구를 참된 믿음으로 인도하려는 마음에서 편지 형태로 쓴 글인데, 친구들이 이 편지를 읽고 나서 너무 감동받은 나머지 출간을 요청해서 출판된 것이라고 합니다.
헨리스쿠걸은 이 책에서 말하는 핵심은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에 오셔서 우리의 생명이 되신 것이 기독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이만큼 감동을 준 것은 감리교를 이끌었던 위대한 웨슬리와 휫필드가 이 책을 읽고 자신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들은 아주 경건한 집안에서 자랐고 일주일에 이틀 금식하고, 하루 9시간씩 기도하며, 오랫동안 성례식에 참석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자신들 안에 계시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는 것입니다. 종교인이었지 그리스도인은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비로서 이 책을 읽고 진정 내안에 계신 예수님의 임재를 체험했다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써 지금 주일예배를 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예배의 자리에 예수님이 계심을 믿으십니까?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마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기도가운데 인용을 자주 합니다. 그래서 귀한 말씀이야 그렇지!! 그냥 넘기지 말고 그 말씀을 붙잡고 주님을 바라 보야 합니다.
지금 주일예배시간 찬양하고 죄를 고백하고 기도하면서 무엇을 느끼고 있습니까? 이 자리는 길거리와 다르고 극장과 다르고 강의실과 다른 느낌입니다. 예배당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찬양할 때 말씀을 들을 때 기도할 때 정말 다르구나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성령님의 역사로 예수님의 임재를 느끼는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신 사람은 성경을 비스듬이 읽다가 마음에 감동이 오면 몸을 곧바로 세우며 하는 말이 하나님말씀 앞인데 이런 자세를 가지면 안되지 하며 바른 자세로 고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돈이나 집문서나 주식이나 증권, 패물을 귀하게 여기고, 건강, 명예 성공을 귀하게 여기지만 진짜 귀하게/여겨야 할 보물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주님입니다.오늘 본문말씀을 다시 한번 천천히 묵상해보겠습니까? 4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순서가 있습니다......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기 전에 먼저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완전히 믿고, 완전히 맡기고, 완전히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삶의 주도권을 100% 완전히 주님께 넘겨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포도나무이고 우리가 가지인 관계입니다. 5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런데 요15장 말씀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를 내다보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스스로 자기 힘으로 예수님의 명령을 수행하려고 애쓰게 될 것입니다. 문제를 만나면 고민하고 애를 쓰다가 좌절하고 낙심하고 지쳐서 두려움으로 가득찰 것을 주님은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앞으로 제자들이 어떤 모습인 것을 다 아시고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명심해야할 것은 예수님과 제자들은 한 몸이기에 여전히 예수님만 의지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렇습니다..... 포도나무의 가지는 햇빛과 공기를 얻고, 꽃을 피우고, 푸른 잎을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나무에 붙어 있어, 그와 하나 되기만 하면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제자들이 할 일은 열심히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고,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행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거하기를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
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과 한 몸 된 연합을 자주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체험적인 고백에서 나와야합니다.
맥스 루케도목사님이 쓴 “예수님처럼” 이란 책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기를 그만두고 하나님과 함께 일하기를 시작하라!”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그러면서 한 영업 사원의 간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래도록 나는 하나님을 후덕한 사장으로, 나 자신은 충직한 영업사원 쯤으로 생각했다.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사무실에 계시고, 나 한테는 내 영업 영역이 있었다. 나는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그분을 방문할 수 있었다. 급할 때는 전화 한 통, 이메일 한 장으로 만날 수 있었다. 사장님(하나님)은 나를 격려해 주시고, 밀어주셨으나 영업사원인 나와 함께 동행 하지는 않으셨다. 적어도 내게 사장님인 하나님은 그런 분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고린도후서 6장 1절을 읽게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동역자)이다” 이 말씀 앞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내가 하나님과 함께 일한다고?’ 나는 “함께”하는 말에 주목하였다.
그 날부터 하나님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이루게 되었다. 즉, 나의 일과에 주로 하나님과 떨어져 있다가 아침, 저녁에 잠깐 회의 시간에 만나듯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나는 하루 일상의 시간 내내 하나님과 늘 동행한다는 것이다.
내가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내가 인식하든지, 못하든지 관계없이 그것은 사실이다.” 이런 고백을 책으로 쓴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님 안에서 받은 가장 놀라운 은혜는 무엇일까요?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입니다.
골 1:27......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이스라엘 성지에 가면 유대인 남자들이 머리에 '키파'라고 불리는 빵떡모자를 쓰고 다니는 것을 봅니다. 음식을 먹을 때도, 기도할 때도, 걸어갈 때도 씁니다. 이 키파는 '내 위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항상 나를 보고 계시고 함께 하신다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언제나 그 모자를 쓰고 다닌다고 합니다.유대인들이 키파를 쓰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낀다면 우리는 내안에 계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