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 자유 · 나눔이 있는 공간
세계 각지의 커피농장과 커피 박람회에 다니느라 1년에 100일 이상은 해외에 나가 있다는 그를 연남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무실 입구 위쪽에 간판 대신 파란색 복면이 달려 있었다. 이 복면은 커피리브레의 상징으로, 매장과 상품의 로고 디자인으로 활용되고 있다. 커피와 복면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미국의 컬트코미디 영화 <나초리브레>를 좋아해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멕시코의 한 수도사가 고아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기 위해 복면을 쓰고 레슬링에 도전하는 이야기죠.”
복면 뒤에 수도사란 신분을 감추고 자신의 꿈이었던 레슬링에 도전한 열정, 25년간 레슬링으로 돈을 벌어 2000명에 이르는 아이들을 키워낸 헌신이 마음에 끌려서다. ‘커피리브레’란 이름도 ‘나초리브레’에서 따왔다고 한다. ‘리브레’는 자유롭다는 뜻. ‘커피리브레’에 대해 알아갈수록 열정, 자유, 나눔이라는 키워드를 모두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이 영화에서 특히 “신이시여, 왜 제게 레슬링에 대한 열망과 거지 같은 재능을 함께 주셨나요?”라는 대사를 좋아한다. 그가 열망하면서도 재능을 한탄하는 대상은 무엇일까.

사무실 2층으로 올라가니 양쪽에 촛대가 달려 있는 고풍스러운 피아노가 놓여 있다. 전기가 등장하기 전 유럽에서 만들어진 피아노다. 실제 연주할 생각으로 구입했지만, 너무 오래된 피아노라 연주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1층에는 친한 후배가 그려준 에드워드 호퍼 작품 <푸른 저녁>의 모사화가 걸려 있다. 쓸쓸하게 앉아 있는 피에로의 모습이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쓸쓸함을 분장 뒤에 감추고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피에로에게 왠지 마음이 끌렸다”고 한다. 그는 문학・음악・미술 등 예술 전반을 좋아하지만 재능이 없어 포기했다고 말한다. 그러다 찾은 게 커피의 길이었다.
“기예(技藝)라는 말이 있잖아요? 기술도 어느 경지 이상이 되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어요. 커피에 입문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지금까지도 미쳐 있어요. 이렇게 미쳐본 사람도, 대상도 없었죠. 너무 좋아하고 잘하고 싶지만, 제가 생각하는 완성도에 이르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계속 시도하고 노력하게 되고요.”
불현듯 커피의 길로 들어서기 전까지 그는 역사학도였다. 고려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러시아 페미니즘’이란 흥미로운 주제로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 길만이 다일까?’ 생각했다.
“공군장교로 40개월을 복무하고 석사과정까지 수료한 후, 50일간 쿠바여행을 했어요. 서른 살이 되는 새해를 쿠바의 바닷가에서 맞았죠. 가난하지만 ‘언제 행복하냐?’고 물으면 ‘지금’이라고 주저 없이 대답하고, 음악만 흘러나오면 바로 춤을 추는 그곳 사람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동안 너무 머리만 움직이고 말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일식조리사에 도전하기도 했다. 그러다 고려대 후문 앞에 있는 단골 커피숍 ‘보헤미안’을 찾아가 “일을 배우겠다”고 했다. 안암동 ‘보헤미안’은 커피명인 박이추 선생이 운영하다 수제자 최영숙씨에게 물려준 곳. 그곳에서 로스팅과 핸드드립 등 커피 전반을 배웠다.
“처음에는 ‘대학원생이 무슨 이 일을 하겠어?’라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방법을 물어보면 ‘하다 하다 안 되면 물어야지, 쉽게 얻으려 하지 마라’고 하셨죠. 이 일에 확신을 갖게 된 것은 엉뚱하게도 설거지를 하면서였어요. 자꾸 하다 보니 숙련이 되어 손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좋았거든요. ‘기술이 이런 거구나’ 싶었죠. 포장도, 변명도 하지 않고 커피 그 자체로만 나를 표현하고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는 기술연마에 그치지 않고 학문적 접근을 접목시켰다. 외국서적과 논문까지 뒤져 커피 관련 자료를 모았다. 화학・식품학・열역학 논문에 커피시장에 관한 자료까지 섭렵했다. 자료를 토대로 실험을 거듭했고, 미국스페셜티커피협회가 주는 큐그레이더(커피감별사) 자격도 얻었다.
“생두를 볶는 로스팅 과정에서 화력 조절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커피 맛이 달라집니다. 신맛・단맛・쓴맛이 차례로 나오는데, 그 조화를 어떻게 하느냐는 해석의 문제입니다. 제가 그리던 맛이 나오지 않을 때는 볶아놓은 원두를 미련 없이 버리기도 하지요. 큐그레이더 자격을 얻을 때는 미국에 가서 5일 동안 20여 과목의 시험을 치렀습니다.”
‘얼굴 있는 커피’를 지향

그는 5년 정도의 수련을 거쳐 2009년 10월 ‘커피리브레’를 열었고, 2010년 2월부터 세계의 커피농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커피 전문가인 일본인 유코 여사와의 만남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제가 커피를 가르친 제자가 일본에서 그분을 만났을 때 제 이야기를 했다 합니다. 한국에도 스페셜티 커피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반가우셨는지 ‘산지에서 보자’고 하셨죠. 니카라과 프로젝트에 불러주셨고, 그 후 산지나 박람회를 함께 다니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유코 여사는 “내 아들”이라며 100명이 넘는 세계의 커피 전문가들을 소개해줬고, 극히 이례적으로 자신이 직거래하는 커피농장을 나눠주기까지 했다. 커피를 향한 그의 순수한 열정을 알아봤기 때문 아닐까. 그는 현재 중남미, 인도, 아프리카의 10개국에서 30여 개 농장과 직거래해 생두를 들여오고 있다. 고도 등 지리적 위치와 토양, 기후, 나무 상태, 생두를 어떻게 가공해 보관하는지까지 꼼꼼히 살펴 거래할 농장을 정한다. 일단 거래를 시작한 다음에는 이해타산을 넘어 가족 같은 관계를 유지한다. 폭우로 수확량뿐 아니라 품질까지 타격을 입은 한 농장의 생두를 제시한 가격보다 더 비싸게 사들인 적도 있다. 직거래하는 농장이 컵 오브 엑설런스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할 때는 내 일처럼 기쁘다. 인터넷 사이트와 블로그 등을 통해 커피 생산자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얼굴 있는 커피’를 지향한다.

“
같은 농장에서도 도랑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생두의 질이 달라집니다. 끈끈한 관계 때문에 저에게는 특급 재배지의 생두를 주기도 하지요. 다른 요리와 마찬가지로 커피도 원재료가 정말 중요합니다.”
매년 11월에서 1월까지 수확시기가 되면 그는 거래하는 농장들을 둘러보러 다닌다. 지난해 좋은 생두를 줘서 고마웠다고 인사를 하고, 소비자들의 반응도 전한다. 이 일을 하면서 그는 나눔의 기쁨도 만끽하고 있다. 온두라스에서는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유치원을 지원하고, 인도 아라쿠 지역에서는 기숙여학교 학생 150명의 학비와 기숙사비를 지원하고 있다. 그는 아이들이 그려서 보내준 복면 그림을 보여주며 “전 세계에 내 딸들이 많다”고 자랑한다.
“그들과 연결되어 있고, 그들로부터 보호받고 지지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볶은 지 1주일이 지난 커피는 장애인 바리스타들에게 보낸다.
“사실은 로스팅 후 1주일 된 커피가 제일 맛있어요. 그때부터 맛과 향이 서서히 떨어지죠. 저희는 더 두고 드실 것을 생각해서 1주일 지난 원두는 팔지 않지만요.”

그가 내민 아이스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입 안에서 복합적인 맛과 향이 강하게 감돌았다. 그가 로스팅한 원두를 보니 다른 원두보다 색깔이 옅다. 긴 시간 볶지 않아 신맛이 풍부하게 남아 있는 게 특징. 그 신맛 안에 갖가지 과일 그리고 견과류의 맛과 향이 섞여 있다. “커피의 풍부한 맛을 어떻게 하나하나 섬세하게 느낄 수 있는가” 묻자 그는 “평소 맛을 기억하는 훈련을 하면 커피를 마시면서 그 맛과 향을 떠올릴 수 있다”고 대답한다. 사과를 씹어 먹으면서 ‘이게 사과 맛과 향이구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는 와인과 마찬가지로 커피・초콜릿・위스키도 품종과 산지, 가공방식을 꼼꼼히 따져가며 즐기는 게 이제 세계적인 추세라고 설명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커피가 주는 행복이 전해지는 느낌이다. 복합적인 맛 그리고 향기와 함께. 골목 안에 숨어 있어 커피리브레의 매장을 찾는 게 불편했던 사람이라면 희소식이 있다. 이번 가을에 명동성당과 영등포에 3호점과 4호점이 문을 연다. 명동성당점이 30㎡(9평) 정도라면 영등포 타임스퀘어 뒤에 들어서는 영등포점은 372㎡(112평)로 꽤 넓다.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벽돌 건물이라 독특한 운치가 있는 이곳을 인기 베이커리로 유명한 ‘오월의 종’과 함께 운영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