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풍
이은봉
벽인 줄 알았다 도저히 어쩌지 못할
절벽인 줄 알았다 용기를 내어 살펴보니
벽이 아니었다 접었다가 펼 수 있는
병풍이었다 그래도 병풍은
나와 세상을 완벽하게 끊어놓았다
병풍 속의 꽃과 나비에 취해
떨어지는 계곡의 폭포에 취해
한 세상 살다 가라는 것인가
꽃과 나비에게도 가슴이 있기는 했다
계곡의 폭포에게도 사랑이 있기는 했다
사랑에 취해 한 세상 살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병풍 따위에 의해
나와 세상이 아득하게 끊어지다니!
병풍이 무슨 휴전선인가 국경선인가
어쩌면 병풍은 돈인지도 몰랐다
딱한 일이었다 슬픈 일이었다
제 뜻과는 달리 이미 병풍이
벽으로, 절벽으로 살아왔기 때문일까
기껏 병풍 따위를 접어치우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니! 절망이 필요하다니!
마음 모아 정성을 다하다 보면
무엇인들 접어치우지 못하랴
벽인들, 절벽인들 허물어버리지 못하랴.
―《시작》 2011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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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이은봉, [병풍]
이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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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19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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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생님의 여전히 힘있는 시 읽고 갑니다. 건강히 잘 계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