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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잎이 져도 아름답다
김윤자
몸은 낮은 땅에 숨기고 마음은 하늘 빛 겨울 터널에서 고사목처럼 보여도 삼월이 오면 안개다리 건너 일어설 줄 알고 목마름 숨통 태우는 삼복날에도 청청히 서 있다가 별 빛 쏟아 내리는 시월이 오면 넉넉히 익어 산자락에 풍년으로 눕는다. 동짓달 북풍 칼바람이 몰아칠 때면 서러움은 속으로 삭이고 화려한 옷 벗어내려 빈 몸, 빈 마음으로 작아질 줄도 안다. 더 짙은 아름다움 하나, 나무는 간직하고 있다. 하늘 닿을 듯 높은 곳에 나무 호텔 지어 실직 당하여 오갈 데 없는 까치네 식구까지 품고 있는 줄을 잎이 지기 전에는 아무도 몰랐다. 사는 날까지 무료 임대라면서. 나무는 잎이 져도 아름답다는 사실이 겨울 길목에 훈훈히 구른다.
나무는 잎이 져도 아름답다 -동인지[형상 21] 제3집 2001년,안산초지고등학교 2007년 교지 갈매누리,문학세계 2009년 11월호,토요문학 2011년 47호,충남예술 2011년 봄호,보령문협 2013년 시화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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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장미
김윤자
고운 님이 곁에 올 땐 꽃잎만 보라고 가시는 숨기는데 야속하게도 고운 님은 꽃잎은 보지 못하고 가시만 봅니다.
미운 님이 곁에 올 땐 가시만 보라고 꽃잎은 숨기는데 안타깝게도 미운 님은 가시는 보지 못하고 꽃잎만 봅니다.
고운 님은 잡으려 해도 가시가 앞서 멀리 달아나고 미운 님은 보내려 해도 꽃잎이 앞서 자꾸 따라 옵니다.
꽃잎 질 때 고운 님 떠나가고 가시 질 때 미운 님 떠나보내고 향기 하나에 목숨만큼 사랑을 쏟는 눈먼 님만이 곁에 있습니다.
가을 장미-시집<별 하나 꽃불 피우다>,시와 글사랑 2007년 8월호,보령문협 2013년시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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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 익으면서 큰다
김윤자
새파란 감이 주먹만하게 큰 뒤에야 붉게 익는 줄 알았더니 조막만한 새파란 감이 노르스름하게 익어가길래 쪼그만게 벌써 익느냐고, 벌써 물들이면 언제 열매를 키울거냐고 했더니 다음날, 다다음날 감은 익으면서 크고 있었다.
어른들 눈에 새파랗게 보이는 조막만한 아이들 속살 키우기도 전에 노르스름하게 익어가는 것 같아 아이야, 아서라 아서라 했더니 감나무 잎사귀 뒤에 숨어 숨어 익으면서 크고 있었다.
아이들이, 어른들 눈에 작아 보이는 아이들이 감의 지혜를 먼저 읽은 것이다. 저렇게 익으면서 크는 아이들이.
감은 익으면서 큰다 -시집 <별 하나 꽃불 피우다>,시와 글사랑 2007년 8월호,보령문협 2013년 시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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