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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백 년 다시 개벽
작가는 1000일을 유라시아 각국을 여행하면서 2018년 8월에 유라시아 견문 3권의 책을 저술했다. 1권은 ‘몽골 로드’에서 ‘할랄 스트리트’까지, 2권은 ‘히말라야’에서 지중해까지, 3권은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이다. 그 중에 내가 이번에 선택해 읽은 책은 친구 Y와 마카오와 홍콩, 방콕을 가기로 약속하고 티켙과 호텔을 예약했다. 이 친구가 아니면 나와 홍콩과 마카오를 구석구석 보고 맛을 즐김에 큰 도움을 줄 친구는 없다고 판단하고 즉각 응했다. 평소 나의 독서 취향을 꿰뚫는 Y는 내게 읽어볼 만한 책이라 추천한 것도 주문했다. 이번에 온 책은 600쪽이 넘는 책들이 많아서 다소 주눅이 드는데 이 책을 가볍게 1주일에 독파했다. 대충 기행문 정도로 예측하고 들어선 책이다. 그러나 내 선입견은 틀리고 말았는데 체험의 생활 철학서였다. 내가 주문한 것은 세 번째 권 이였다. 단행본인지 알았는데 두 권이 더 있다니 작가 이병한의 끈기에 경의를 표한다. 3권에는 유라시아 12국의 여행기다. 1978년생인 작가는 연세대 졸업 후 원광대에서 강의를 하는 모양이다.
500년의 문명, 세계의 축복이 20세기의 저주가 되어버린 보스니아 사라예보, 그리고 백년의 대란이란 제목에 눈길이 간다. 오스만제국의 산골 마을에 사라예보가 세워진 것은 1461년이다 ‘발칸’이란 지명은 터키어로 ‘산악’을 뜻한다. ‘사라예보’는 집, 성이라는 뜻이다. 이웃도시 지금의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의 당시 인구가 1만일 때 ‘사라예보’는 10만이 넘는 인구였다. 5기부터 세 발칸에 사는 슬라브 민족은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인’과 정교를 믿는 ‘세르비아인’이 살았다. 그 후 1000년이 흐른 뒤 슬라브계무슬림도 생긴다. ‘사라예보’ 사람들은 ‘너는 누구인가? 라고 묻지 않았다. 다만 ’너는 어떤 사람인가? 물었다. 사람됨을 중시했지 귀속여부를 따지지 않았다. 한 가족, 한 친족에도 여러 민족이 뒤섞이는 경우가 허다했다. 한 마을 이웃사촌인데 남녀가 눈이 맞고 몸을 섞는 데 출신 여부를 따지지 않았다.
1500년 전 바티칸을 우주의 배꼽으로 삼는 서유럽과 ‘콘스탄티노플’을 ‘제2의 로마’로 여기는 정교의 분화가 20세기를 가르고 있다. ‘보스니아’까지가 서유럽의 영역이고, ‘세르비아’부터는 동로마의 강역이다. 서유럽의 500년 된 신/구교 분열보다 더욱 깊은 것은 1,500년 전 동/서 교회 분화이다. 라틴어와 가톨릭이 서구의 고갱이라면, 그리스어와 정교는 동구의 정수이다. 장차 ‘베오그라드’는 ‘제3의 로마’ 모스코바에 근접할 것이다. 향후 발간에 등장하는 유고슬라비아 왕국과 유고슬라비아 공화국의 행보를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유고 연방의 붕괴이후 가톨릭과 정교와 이슬람 국가들이 제각기 ‘민족주의’로 찢어지는 1990년대의 핵분열이 이루어진다.
지도상에 사라진 ‘유고슬라비아’는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보스니아’,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코스보’ 등으로 분열된다. 최후의 유고인 ‘티토’는 빨치산 활동으로 발칸의 대장정을 시작 사회주의 유고연방을 탄생시킨다. 1892년 마오쩌둥보다 1해 먼저 태어난다. 중공공산당이 소련을 추종하는 지식인 정당으로 도시 봉기에 실패하다 ‘마오’의 대장정을 통해 대중정당으로 태어나듯 ‘티토’의 유고도 산악지대를 전전하다 토착화한다. 대학출신 엘리트 당원들은 책 읽고 논쟁에 능한 입 진보가 많다. 우리나라 현재 입 진보들이 많은 것도 유사하다. 그러나 국민들은 딴 세상 사람들이다. 유고민중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하품을 하고 계급투쟁에는 딴청을 피운다. 국왕에 충성하고 교회에서 회개하며 가족의 안전과 농토의 보위에 최우선을 취하는 것이 군중이다.
유고는 7개국과 국경을 맞댄다. 서북에서 시계방향으로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그리스, 알바니아다. 동서이념의 한복판이다. 이, 오, 그는 서방이고, 헝, 루, 불, 알은 사회주의 진영이다. 그러나 오, 헝, 알, 불가리아도 유고가 자기영토라고 각각 주장한다. 합스부르크제국 (오스트리아, 헝가리), 오스만제국(알바니아, 불가리아)의 유산이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한다. 종교는 무슬림 4할, 정교 세르비아인 3할, 가톨릭의 크로아티아인 2할의 비율이다. 언어는 ‘슬로베니아’어, ‘크로아티아’어, ‘세르비아’어, ‘마케도니아’어로 4개의 언어다. 문자는 ‘기릴’문자와 로마문자를 사용한다. 이러니 조용할 날이 있겠는가? 거인 ‘티토’가 죽자 나라가 조무래기 범인들이 다투기 시작한다. 각 공화국의 이익에 따라 민족주의자들이 출연한다. 먼저 치고 나간 것이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다. 1974년 개헌 시장화의 흐름에 편승하여 국경개방으로 관광을 활성화하고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와 가까운 연고로 자기들이 서방이라 여긴다. 발칸은 아래동네 애들인 것처럼 행세를 한다. 마치 프랑스인이 알제리 인을 보듯이, 독일인이 터키인을 보듯이, 영국인이 이집트인을 보듯이, 아랫동네 ‘보스니아’와 ‘마케도니아’ 사람을 하대했다. 자기네 부를 못사는 동쪽 사람들에 나눠주는 박탈감을 느끼고 유고슬라비아에서 이탈하려는 ‘크렉시트’ 기운이 펴졌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종교전쟁을 보면, 독일은 동진, 소련은 남하로 적군의 남부에 유고는 자리한다. 1941년 ‘크로아티아’는 독립을 선포한다. 자국내 200만 정교 세르비아인의 1/3은 개종시키고, 1/3은 추방하고, 1/3은 학살시키려는 정책을 편다. 유고슬라비아의 ‘킬링필드’가 펼쳐진다. 일본군의 난징대학살을 능가하는 대학살이다. 학살은 학살을 낳았다. ‘세르비아인’은 짱구가 아니다. ‘크로아티아인’을 학살하고 그에 부역한 무슬림도 죽여 버렸다. 극우파 괴뢰정권의 만행으로 빨치산의 구심점은 커졌다. 발칸의 ‘아우슈비츠’에서 탈출한 사람들이 속속 ‘보스니아’로 집결한다. 사회주의의 우산아래 종교전쟁의 해방구였다. 그리고 1945년 공산당 정부가 탄생한다. 독립국가가 아닌 연방제 국가가 탄생한다. 민족과 종교로 사람을 나뉘기 않는 연방국가 ‘자그레브’와 ‘사라예보’, ‘베오그라드’를 탄생시킨다. 그리고 티토는 40여 년 간 형제애와 통합을 강조한다.
발칸의 오스만 제국을 해체하고자 줄기찬 노력을 한 유고 지우기시도로 유고연방은 6개의 공화국과 자치주 1개가 독립국이 된 것이다. 나토군의 폭격으로 ‘코소보’는 21세기에 신탁통치가 된다. 나토군이 유고전역에 군사훈련을 할 권리에 반대하다 ‘세르비아’는 나토의 폭격을 당해 얻어터지고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나토는 무력으로 ‘코스보’를 네 개 권역으로 나눠 중앙부는 영국군이. 북동부는 프랑스군이, 서남부는 독일군이, 동부는 미국이 머물렀다.
20세기 100년을 통으로 볼 필요도 없다. ‘이스탄불’과 ‘모스크바’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난 발칸 또한 비로소 서방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발칸의 문명화, 서구화, 민주화를 일단락 지은 것이다.
정치개혁과 종교개혁은 하나다. 폴란드의 사상가 ‘리샤르트 레구트코’와 이병한의 대화내용이다. 그는 1949년 생으로 공산국가가 무너진 것이 마흔 살 무렵이다. 그는 폴란드이 사상적 지도자였다. 폴란드는 동구의 대국이고 인구가 4천만을 헤아린다.
이병한의 서구의 반-반공주의자와 동구의 구공산주의자 간에 ‘대연정’이 이루어지면서 유럽이 통합되어간 셈인데 그 역사관이 흡사하단 점을 설명해 ?질문에 답한 내용이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모두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실을 변화시키는 목표를 갖는다. 이른바 근대화 프로젝트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놔두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도 같다. 낡은 것을 새로운 것으로 변혁해야 한다는 신념이 진보사관이다. 역사는 진보한다. 그 증거가 공산주의 혹은 자유민주주의다. 나아가 진보하지 못하는 국가나 문명까지 진보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불타오른다. 예로 ‘다윈이 자연의 법칙을 발견했다면’ ‘마르크스는 역사의 법칙을 발견했다’고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한 것처럼 마치 자연선택의 진화론처럼 역사는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폭력혁명을 용인했던 것이다. 미래로 가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공산주의 지배계급에 대한 피지배계급의 투쟁으로 역사가 진보한다고 말하는 만큼이나, 자유민주주의자들은 권위에 대한 자유의 투쟁으로 역사는 진보한다고 말한다. 군주와 귀족과 교회와 투쟁하는 또 다른 진보서사를 확립한다.
이-1989년 동구가 탈 진실 시대에 돌입, 2016년 서구도 탈 진실 시대 진입이라 볼 수 있나?
레-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진단에 확증을 갖게 된 것이 EU활동을 통해서이다. 만약 유럽의회가 자유민주주의가 도달한 최고점의 기구라면 자유민주주의는 바람직한 이념도 아니고 아름다운 체제도 아니다. 불행하고 불쾌하게도 공산주의와 너무 닮아 있기 때문이다. 수십 개국의 대표자들의 모임인데도 동일한 언어와 논리를 구사한다. 공산주의 시절처럼, 모두가 현실 세계의 오작동에도 불구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가상현실을 창조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단자와 반역자에 대한 타협 없는 적개심과 적대성도 목격한다. 공산주의 시절도 그랬섰다. 왕년의 모스크바가 이랬겠구나! 싶다.
이-비유적으로 EU에도 ‘페레스트로이카’가 필요하고, 개방개혁이 단행돼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레-유럽의회 주요의사 결정은 기존과 다를 바 없는 지배 카르텔에서 하는 것이다. 어차피 유럽정부는 유권자의 결정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유권자의 의사로부터 독립해 있는 과두체제죠. 왕년의 소비에트연방과 무척 유사합니다. 즉 EU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기구다. 유럽을 자유민주주의로 전환시키는 사명을 가진, 전 세계를 자유민주주의로 전환시키는 의무를 가진 초민주적 기구죠. 그래서 유럽 주요 국가들의 주요 정치인들로 전혀 민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EU에 대해서만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 것이에요.
이- 동유럽국들이 제한주의에 반기를 들고 사회주의 진영에서 이탈하여 소련에서 독립한 것처럼, EU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요?
레-이미 영국이 이탈하지 않았습니까? 어떤 임계점을 지나면 ‘분리 독립’의 도미노가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러자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는 힘들이 않을까 싶네요. 현재 유럽에는 EU를 대처하는 그랜드디자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진단만 있고 처방을 없는 상태다.
소련해체가 사회주의에서 자유주의로,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이행으로 여기는 것은 외부적 표현이고 미국과 서방의 일방적인 독법이다. 폴란드인과 동유럽 인에게 가장 소중했던 경험은 모두가 인간적인 존재로서 영성적인 자각을 이룬 것이다. 진리의 이름으로 존엄의 이름으로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독재와 독단을 해체한 것이다. 우상숭배를 타파한 것이다. 근대의 이데올로기에 맞서서 역사와 종교와 문명과 전통을 수호해낸 것입니다. 공산주의의 단일 원리가 전 사회를 지배하는 전체주의 사회에서 각 사회의 자율성을 회복해가는 복구 과정과 긴밀하게 연동되었던 것이다. 정치개혁과 종교개혁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공산주의자들은 기도하는 시간을 한낱 가치 없는 시간이라고 여겼죠. 그들에게 가치는 오로지 노동에 의해서만 생산되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결코 그러하지 않습니다. 유물론적 가치론은 몰가치적 발상이다. 기도하고 묵상하는 시간 또한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부가가치를 창출합니다. 민주화와 근대화를 세속화와 등치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2020.03.01.
유라시아 견문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이병한 지음
서해문집 발간
첫댓글 유고 중심 일곱 나라
역사적인 배경으로 구경 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코로나로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건강만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