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의 주인
임병식 rbs1144@daum.net
내 몸은 내가 주인이다. 내 몸은 나를 대표하며 나의 존재의미를 상징한다. 앞서 붙여진 이름, 사회적 지위나 명칭도 물론 자기를 대신하며 존재를 상징하지만, 직접 나를 나타내는 것은 몸뚱이니만큼 몸만큼 확실하게 나를 대변해 주는 것도 없다.
그래서일까. 예로부터 사람들은 愛以身(애이신) 즉, 내 몸을 사랑하라고 하였다. 그런데 내 몸 중에 나를 가장 상징하는 것은 얼굴이다. 그것은 다음의 예로서 증명이 된다. 사람은 부끄러운 행동을 하면 얼굴부터 가린다. 얼굴만 가리면 최소한의 창피를 면한다고 생각한다. 해서 자고로 이런 말도 전해진다. ‘내 몸에 얼굴이 없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으며 부끄러울 것이 있겠는가.’
그만큼 사람들은 몸과 얼굴을 가지고 있어 함부로 행동할 수 없게 한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온갖 유혹들이 독버섯처럼 자리 잡고 있어서 긴장하며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중심을 확고히 잡는 가운데 흔들리지 않는 의지가 중요하다. 자기 몸은 자기가 끝까지 책임을 진다는 투철한 각오와 신념이 필요하다. 그러한 의지, 자기 몸은 자기가 주인이라는 주체적 생각을 드러낸 것으로 우스갯말이지만 연관 지어 스치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고을 여인이 간음을 하여 고소당해 조사를 받게 되었다.
조사관이,
“왜 간음을 했느냐?” 하니,
“내 몸 가지고 내가 한 일을 나라가 왜 간섭하느냐?”
대답했다. 그것이 옳고 그름의 여부를 떠나서 눈여겨볼 것은 자기가 자기 몸의 주인이라는 확고한 의지(?)를 표명했다는 점에서 눈여겨 지는 부분이다.
주변 사람들을 보면 바르게 줏대를 세우지 못하고 풍타낭타(風打浪打), 그저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재벌 총수가 국회 오공(五共) 청문회에서 권력자에게 돈을 바친 것은 시류(時流)에 따랐다고 말한 것과 같이 남들이 하니 따라서 하는 세상 사람들이 보이는 공통된 모습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은 대체로 보건대 두 가지 축에 의해 움직인다. 하나는 어떤 특정 집단이 구조적으로 이너써클을 형성하여 여론을 주도하여 따르게 만들고, 다른 하나는 일시에 일어난 유행이 온 세상을 뒤덮어서 전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어떤 현상을 만들어 놓는다.
그렇다 해도 그게 단순히 물질적인 것, 어떤 현상을 조금 변형시킨 것이라면 크게 탓하거나 문제 삼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사람의 생명 문제, 목숨을 빼앗거나, 건강을 해치는데 작용한다면 심각하게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현상은 안 좋은 쪽으로 나아가 사람의 생명과 가장 지근에 있는 의료분야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어 걱정이다. 그 메커니즘은 거대하면서도 촘촘하게 짜여 사람들을 부지불식간에 포로로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정신을 바로 차려서 깨달으면 좋은데 현실태는 그렇지 못하다. 속절없이 이끄는 데로 끌려다닌다.
사람들이 자기 몸에 대해 주체적으로 확고히 주인의식이 없다 보니 일어나는 현상이다. 1970년대만 해도 혈압의 정상 수치는 수축기 160 이완기 95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 수치가 대폭 낮아져서 130만 넘어도 고혈압 군으로 분류되어 약을 먹도록 한다.
1999년 2월 4일 WHO에서는 90-140을 고혈압 기준으로 정했다. 그 이전 즉, 1999년 2월 4일 이전에는 95~160을 고혈압으로 보았다. 얼마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대저 누구를 위한 변경인가. 누구를 배 불리려고 한 조치인가. 혈압약과 당뇨약, 고지혈과 암, 자가면역 질환의 약들은 거의 다 다국적 거대 제약회사가 장악하고 있다. 최근에 일어난 코로나19만 해도 그 진단기나 처방 약을 그들이 독점했다.
아프리카 국가 등 저 개발 국가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며 아우성을 쳐도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움을 주기는커녕 이익을 취하는 데만 몰두하였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이런 의약품으로 빠져나가는 의료비는 한해 10조 원이 넘는다는 말도 있다.
얼마나 크나큰 국부의 유출인가. 나이 들어 혈압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고 한다. 노화로 인해 혈관이 좁아지고 피가 탁하여 심장에서 피를 내보낼 때 그만큼 압력을 높이지 않으면 아니 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억지로 낮추는 처방을 하면 어찌 되겠는가.
사람의 인체는 스스로가 판단하여 나쁜 쪽으로 작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몸속에는 외부에서 침입하는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물리치는 백혈구가 활동하고, 거기에다 100명이 넘은 명의가 있어(히포크라테스 말) 스스로 치료를 열심히 한다고 한다. 이를 믿어야지 무엇을 믿는다는 말인가.
몸속에서 활동하는 유익균이나 백혈구, 몸속의 의사가 위험을 감지하면 반드시 경고신호를 보내는데, 이것을 병으로 생각하고 그 신호 자체를 대증요법으로 처치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골절되거나 부러지면 수술을 해야 하고, 그밖에 나쁜 부종은 도려내야겠지만 모든 것을 외과수술로 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 질병이 많아진 것은 오염된 환경 원인도 크다고 한다. 거기다가 생활 향상으로 생겨난 육식 문화, 가공식품 범람, 그리고 경쟁 사회에서 받은 스트레스, 탐욕과 미움 같은 노여움이 쌓인 탓도 크다고 한다.
육식 문화 하나만 들어보아도 사람은 본래 채식하도록 신체구조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것은 다른 짐승을 잡아먹고 사는 호랑이나 사자가 물어뜯기 좋도록 송곳니가 발달한 것에 비하여, 사람은 형식상 양쪽에 하나씩만 배열되어 있고, 장기 또한 이들 짐승은 대장의 길이가 1.5미터에 지나지 않는데 사람은 대장과 소장의 길이가 7~8미터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유가 있다고 한다. 조물주가 사람을 만들 때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는 사람은 장기에서 독소가 많이 만들어지지 않지만, 육식하는 짐승은 독소를 많이 만들어내 그것을 빨리 배출해야 하므로 대장과 소장의 길이가 짧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 사람들은 어떤가. 독한 독소를 뿜어내는 육식을 일상화하고 있다. 그러니 긴 장기에다가 독을 품고 사는 격이니 병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만병의 근원이 거기서 비롯한 것이다. 만성병이나 고질병, 암은 모두가 피의 오염에서 생기는 것으로 추측되는바, 인체 시스템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한다.
사람들은 아프면 병원이나 약국으로 달려간다. 내 몸 안의 명의를 믿지 못하고 내려 준 처방전을 들고 수술실로 달려가거나 약국에서 약을 타 먹는다. 자기 몸은 자기가 누구보다 잘 알 텐데도 자기를 믿지 못하고 이끌려 산다. 환자는 깨어나야 한다. 내 몸 안의 명의를 믿을 것인가. 아니면 촘촘하게 드리워진 카르텔 속에 합류하여 내 몸을 다른 이에게 맡길 것인가. 지금은 각자도생의 시대이다. 깨어나지 않으면 누군가가 차려놓은 제단, 그 희생물이 되어 자기도 몰래 죽음의 행렬에 동참하게 된다. 그것을 생각하면 석가모니 말씀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새들이 그물에 걸리는 중에 빠져나가 사는 녀석이 있는 것처럼 깨어나야 한다.”
얼마나 의미심장함을 품고 있는 말인가. 내 몸의 주인은 오직 나라는 생각을 잊지 않을 때, 총명이 살아나서 바른 판단으로 심지를 굳혀서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2024)
첫댓글 내 몸의 주인은 자기 자신 인데도 자기 마음대로 따르지 않고 남의 말에 현혹되어 주체적이지 못한 사람이 많고,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개중에 風打浪打하여 줏대없는 사람이라는 핀잔을 받지만 세상 이치는 事必歸正이라 생각됩니다.
새들이 그물에 걸리는 중에 빠져나가 사는 녀석이 있는 것처럼 깨어나야 합니다.
내 몸이 주인이라는 사실을 恒時도 잊지 말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 같습니다.
육식동물은 장기가 짧아 쉬 배설하지만, 우리 몸은 그렇지 않으니 정체를 바로 알고 바른 판단으로 心志를 굳힐 줄 알아야 겠습니다.
내 몸 안의 명의를 믿고, 현대 사회의 병원 약국 이너써클 카르텔에 걸리지 않도록 눈을 번쩍 뜨고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의사인 아우로부터 10여년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런 확신이 서게 되었습니다.
자기몸은 자기가 주인인데, 주관없이 남의 말에 휘둘려 산다면 그거같이 어리석은 짓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너서클 카르텔에서 빠져나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릇 집 주인은 자기 집의 구조와 기능을 잘 알아야 편리하고 효율적인 주거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집 주인이 자신이 사는 집을 늘 깨끗이 청소하고 철저히 관리해 나가야 할 것인 즉 몸의 건강관리도 그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주인의 깨어있는 의식과 바른 실천이 자신의 몸에대한 사랑으로 귀결된다 하겠습니다 풍타낭타는 무식과 무관심의 소치라고 생각합니다 약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저에게 큰 울림을 주는 글입니다 내 몸의 건강을 위한 작은 것 하나부터라도 실천해보고자 합니다
이선생님의 댓글이 압권입니다. 그렇지요. 주인이 자기 집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알것이니 허술한곳, 고칠곳은 미리 손을 보아서
나중에 탈이 나지 않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남의 말에 휘둘려 줏대없이 살것이 아니라 자기 몸은 자기가 잘 건사해야 할 것입니다.
2024 수필과비평 10월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