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그 무엇
임병식 rbs1144@daum.net
어떤 현상을 목격하고 나서 이것을 글로 써놓을 것인가 말 것인가 잠시 망설인 것은 어떤 기시감 때문이었다. 전에 마을에서 일어난 도깨비현상을 글로 썼더니 자칭 평론가라는 사람이 힐난했다. 이 대명천지에 무슨 도깨비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런 글을 쓰려면 도깨비의 유례를 언급함이 옳다고 하였다. 가소로워 맞대매를 하지 않았지만 그로인한 불쾌함은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 후로 사과 한마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일 때문에, 아니, 꼭 그 일이 신경 쓰여서가 내가 보았다고 해서 글을 써놓은들 얼마나 공감해줄 사람이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어떤 것을 보았고, 그것을 바로 집으로 돌아와 평소 친하게 지내는 지인에게 알렸다.
“혼불이네요”
그제서야 목격한 것이 예사로운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즘 나는 지인의 권유로 새벽산책을 한다. 그 시간은 새벽 세시고 네 시고 대중이 없다. 잠이 깨면 방문을 열어서 환기를 시켜놓고 방한모와 두꺼운 잠바를 걸치고서 집을 나선다.
걷는 곳은 앞 동의 아파트 뒤뜰이다. 한번 걸으면 일천보정도가 되어서 3회를 반복하면 내 체력에 적당한 삼천보정도가 된다. 이날도 나는 일찍 깨어나 뒤뜰로 나갔다. 땅거미가 짙게 깔렸지만 다문다문 보안동이 밝혀져서 걷는데는 지장이 없었다.
한데, 이날따라 고양이 울음소리가 요란했다. 악다구니를 쓰는 것 같기도 하고 아파서 신음소리를 내는 것 같기도 하였다. 좀 괴이쩍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바퀴를 돌고 마지막 마지만 반환코스로 접어들 때였다. 얼핏 보니 서편 아파트 밖의 나뭇가지에 커다란 발광체가 걸려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보기에 쟁반 만하였다. 한데 주황색의 그 물체는 투명하기는 한데 빛이 나지는 않았다. 이상한 일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그런데 그것은 일순간에 사라져버리고 그 공간은 희끄므레 어둠으로 채워졌다.
내가 무엇을 잘못 본 것인가. 기분이 이상하여 집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것이 만약에 혼불이라면 내가 처음 본 것은 아니다. 유년시절에 저녁밥을 먹고 마을 앞에 나와 있는데 무슨 불덩어리가 꼬리를 달고 날더니 아랫마을 뒤로 떨어졌다. 그것을 여러 사람이 목격했다.
“꼬리 달린 혼불이 나가는 걸 보니 남자 초상이 있을 것 같네”
마을사람들은 그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마을에서는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친척 어르신 한분이 돌아가셨다.
전에는 도깨비불도 많았다. 날이 흐린 저녁녘에는 바깥뜰 산 밑으로 심심찮게 도깨비불이 나타났다. 그것은 크게 한 덩어리가 되었다가 흩어지면서 7,8개로 나눠지기도 하였다. 그즈음 인동에서는 도깨비와 씨름을 했다는 사람도 나타나고, 어떤 아이는 변소에 갔다가 도깨비한테 끌려가 마음사람들이 산속에서 구출해온 적도 있다.
당시 보면 도깨비는 방아도 찧는다. 절구통에 무엇을 넣었는지 이따끔 절구질을 하면서 가장자리에 부딪치는 소리도 내고 키로 무엇을 까부는 소리도 냈다.
나는 읍내로 학교를 다닐 때 지금 생각해도 불사사의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가을 초입인데 마을 뒤 풍치재를 넘다가 좁은 길에서 소복을 한 젊은 여인을 만났다. 그곳은 비켜선다고 해도 옷깃을 스칠 수밖에 없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했다. 분명이 비켜서서 스친 것 같은데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산 아래서 소를 풀어 먹이는 채꾼 아이들에게 물었다. 한데 아무도 그런 사람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소복을 했으면 표가 나서 금방 알 텐데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 내가 유령을 보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엊그제 겪은 일은 그때 경험한 일이 있는 이후 처음이다. 나는 의문을 파헤치기 위해서 최명희의 소설 ‘혼불’을 검색했다. 제목이 혼불이라면 어느 대목에서 묘사한 것이 있지 않을까. 찾아보았으나 그런 건 찾을 수가 없었다.
작가는 작품에서 혼불나가는 장면을 그리기 보다는 주인공 청암댁이 혼신을 다해 지키고자 한 정체성을 잇게 한다는 데에다 주안점을 둔 듯 했다.
“혼불하나면 됩니다.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잘 살다 갑니다”
이렇게 한생을 마무리 하면서 전통예절이나 상사(喪事)의 풍습을 세세하게 그려놓으면서도 혼불 나가는 장면은 생략해 버린 것이 아쉬웠다.
나는 내가 본 어떤 현상을 공인받을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내 눈앞에 그런 광경이 나타났고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나중에는 섬뜩한 생각이 스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것은 무엇의 징조였을까’
나라가 탄핵인용이냐 부결이냐 두 동강이 날 절체절명의 시기에 무엇을 예언한 것은 아니었을까. 답답한 일상을 살자니 별의별 생각이 다 스친다. 부디 바라건대는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길조의 현상이었기를 바란다. 답답한 시국에 마음을 졸이고 살자니 허망한 현상에도 비손을 해보게 된다.(2025)
첫댓글 임선생님께서 생생한 혼불을 보셨습니다. 저도 고향 농촌에 살면서 밤에 혼불을 여러 번 봤습니다.
꼬리가 달린 것도 있고 뭉텅이로 날아가는 불 빛을 보았는데 동네 나이든 어른들은
혼불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면 얼마 안 있어 사람이 죽습니다.
농촌 마을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죽는 것도 아닌데, 혼불이 나간 뒤 죽는 것은 예사가 아닙니다.
소복 입은 귀신, 검정 두루마기 입은 귀신 얘기도 들었습니다.
겨울 밤, 사랑방에서 소복 입은 귀신, 검정 옷 입은 귀신 얘기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도깨비 얘기도 많이 있고요, 현재도 곡성군 죽곡면에 도깨비가 나타나 사람과 씨름을 했다는
얘기를 設話化해서 관광 상품으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그 불빛이 너무나 크고 선명해서 무슨 등불인가 했지 혼불이라는 생각은 못했습니다.
그런데 김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에 어려서 저 멀리서 혼불이 나간것을 보았어요. 꼬리가 달렸는데 출렁출렁하며
날아가더군요.
또한 도깨비 불의 행진은 많이 보았고 도깨비가 방아짷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제법 큰 소리가 대밭에서 나는데 한 30분도 계속되었습니다.
한적한 고개에서 만난 소복을 한 여인의 정체는 지금도 미스테리입니다.
이상한 현상이 더로 목격이 되지 있습니다.
혼불이나 도깨빗불을 본 사람은 더러 있는 것같아요. 저도 생생히 경험했으니까요. 20년 쯤 되었군요. 당시 지역라디오에 출연하여 생방송으로 여수사투리를 소개했었는데 한번은 혼불 이야기를 하고 녹음실을 나왔더니 기술감독이 뛰쳐나오며 자기도 혼불을 본 적이 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더군요 혼불을 본 적 없는 사람은 횡당한 이야기로 들리겠지요 선생님께서 목격하신 불덩어리의 정체가 궁금해지는군요. 헌재의 차일피일에 신경이 날카로워집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합니다.
투명한 불덩어리인데 빛살은 퍼지지 않고 뚜렸했어요.
앞에 나뭇가지가 있어 반쯤은 가려진 상태인데 주황색으로 불그레했습니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이상한 현상들이 나타나지 않는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