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주는 곳이 없습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에도, 엄청난 사고를 당할 때에도, 죽음을 맞는 순간에도, 남을 돌보는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이반 일리치 1926~2002).
지난 2월 22일까지 민들레국수집 손님들은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19 때문에 더는 문을 열고 손님들이 식사할 수 있도록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코로나19가 잦아들 때까지 민들레국수집, 민들레 희망센터, 민들레 진료소, 민들레 꿈 어린이 밥집은 문을 열 수가 없습니다.
고시원이나 쪽방이나 여인숙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라면이라도 끓여먹을 수 있지만 거리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은 전염병에 걸리기도 전에 굶어 죽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도시락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도시락이 필요한 손님들의 명단을 작성했습니다. 이름과 출생년도를 적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손님들 이름을 확인한 적이 없었습니다. 몇 명은 이름을 알려주기보다는 도시락을 받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몇 명은 이름을 가짜로 알려줍니다. 출생년도도 달랐습니다. 도시락을 받는 것을 포기한 손님도 며칠 후에는 찾아와서 이름을 알렸습니다. 몇 명은 계속 이름과 출생년도가 달랐지만 모른 채 하고 있습니다.
도시락 용기를 주문했는데 며칠이나 응답이 없다가 물건이 없다고 합니다. 급히 좀 더 비싼 도시락 용기를 주문했더니 내일 도착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도시락 대신 김밥을 쌌습니다. 하나는 모자랄 것 같아서 김밥을 두 줄씩 드렸는데도 누구도 양이 차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뜨거운 물만 부어서 먹을 수 있는 컵라면을 급히 사다가 하나씩 더 드렸습니다.
손님들에게 필요한 마스크를 사려고 온 동네를 헤집고 다녔는데도 하나도 구할 수 없었습니다. 모니카가 황사 때문에 사둔 마스크가 몇 개 있어서 봉사자들에게 겨우 나눴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떤 손님이 저녁 무렵에 찾아와서 50개들이 마스크 몇 상자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또 고마운 분이 어머 어마하게 많은 컵라면을 보내왔습니다.
사흘째에야 김밥이 아닌 5칸 도시락 용기에 밥과 반찬을 담았습니다. 노숙 경험이 있는 이들의 조언으로 두 칸에 밥을 꼭꼭 눌러서 담았습니다. 반찬이 모자랄 것 같아서 김도 하나 도시락 꾸러미에 넣었습니다. 컵라면과 구운 계란 두 개, 과일, 빵, 음료수를 넣었습니다. 도시락 꾸러미가 되었습니다.
러시아 동화에 "돌멩이로 끓인 수프"가 있습니다. (추운 겨울 한 마을을 찾아온 거지. 거지는 마을 모든 사람들에게 냉대를 받는다. 터덜터덜 한 줄기 빛을 따라 찾아간 곳은 바로 성당. 거지는 성당지기에게 돌멩이로 수프를 끓이는 기적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그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그것을 보기 위해 성당 안으로 모여 들고, 거지는 '그것이 들어간다면 더 좋을 텐데......'라는 말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조금씩 가져오게 해서 하나하나 수프 안에 넣는다. 처음에는 돌멩이, 나무 숟가락과 같이 닳지 않는 물건부터 후추 같은 조미료, 그리고 마지막으로 양배추까지. 사람들이 갖고 오는 것들은 점점 큰 것이 된다.
사람들은 다 끓여진 수프의 기막힌 맛을 보며 경탄한다. 그리고 모두 즐겁게 어울려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코로나 19 때문에 도시락 꾸러미 나눔을 하면서 민들레국수집도 돌멩이 수프를 마련한 것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새벽부터 도시락을 싸기 시작하면 오전 10시쯤 도시락 꾸러미가 만들어집니다. 손님들은 민들레국수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주변에서 기다립니다. 담배 피우는 분에게는 한 개비 권하면서 서로 2미터의 거리를 두라고 부탁합니다. 줄은 서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줄을 서면 꼴찌부터 시작한다고 합니다. 여성부터, 약한 사람부터 나누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안부도 묻습니다. 어제는 굶었고 그제는 라면 하나 먹었다고 합니다. 배고파 죽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새로운 손님도 보입니다. 78세 할아버지입니다. 멀리 가좌동에서 왔다고 합니다. 복지관에서는 요즘 밥을 안 준답니다. 혼자 사는데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라고 합니다. 도시락 꾸러미를 나누기 직전에 손님들에게 손 세정제로 소독을 합니다. 그리고 한 분 한 분에게 도시락 꾸러미를 드리면서 마스크가 없는 분에게는 새로 드리고 갈아야 될 분에게도 다시 드립니다. 매일 새로운 손님이 늘어납니다. 도시락 꾸러미도 매일 늘어납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민들레국수집 작은 나눔 잔치를 합니다. 도시락 꾸러미와 간식 꾸러미 두 개를 만들어 선물합니다. 그리고 필요한 옷과 속옷 그리고 운동화를 나눕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노숙하는 우리 손님이 돈이 거의 없습니다. 아니 대부분이 빈털터리입니다. 동전 한두 개 아니면 몇 천원이 전부입니다. 봉투에 오천 원을 담아서 드립니다. 그 돈을 받고 고맙다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고맙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돈을 주면 술 마시려고 할 텐데 하면서 걱정합니다. 따뜻한 봄날 우리 손님들이 도시락꾸러미를 들고 근처에 있는 화도진 공원에 가서 도시락을 먹으면서 막걸리도 한 잔 마시면서 즐긴다면 참 좋을 것입니다.
노숙을 했던 경험이 많은 민들레 식구들 중에는 쉽게 다시 가출하는 이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 술을 먹은 김에 가출했던 이가 한 달 만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비쩍 말랐습니다. 밥 먼저 먹게 했습니다. 씻고 빨리 잠부터 자게 했습니. 다음 날 집나가서 고생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전에는 집을 나가서 노숙을 해도 배를 곪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굶어 죽는 줄 알았답니다. 밥 먹을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씻을 수도 없고 잠 잘 곳을 구할 수도 없었답니다. 다시는 가출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산다고 합니다. 줄을 서도 2미터 이상 떨어져야 합니다. 이곳저곳에서 도시락을 기다리는 손님들 사이를 다니면서 안부를 묻고 새로운 손님에게는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봅니다. 서울에서 온 손님이 나누어 주는 주먹밥을 먹고도 배가 고파서 왔다는 분이 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에 처음 온 손님들은 도시락 꾸러미를 받자마자 꾸러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확인을 합니다. 그리고 아주 배고픈 손님은 민들레국수집 근처에서 도시락을 급히 먹습니다. 도시락을 먹고 그냥 아무데나 빈 그릇을 버리고 가는 이들이 있어서 오후에는 주변을 살피면서 손님들이 남긴 쓰레기를 치워야 합니다. 노숙하는 우리 손님들은 대부분이 순하디 순한 사람인데 한두 사람이 쓰레기를 버립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민들레국수집 근처에 있는 화도진 공원을 간혹 산책합니다. 오후 두 시 삼십분쯤입니다. 누워서 잘 수 없게 장치를 해 놓은 벤치에서 불편한 자세로 낮잠을 자는 한수(가명)씨를 봤습니다. 밥은 먹었어요? 밥 주는 곳이 없어서 막걸리 한 잔 얻어 마시고 쉬고 있다고 합니다. 한수 씨는 민들레국수집 시작할 때부터의 단골손님입니다. 함께 어울리던 이들은 대부분 저 세상으로 떠났고 한수 씨만 외롭게 남았습니다. 천 원만 달라고 합니다. 오천 원을 손에 쥐어드렸습니다. 민들레국수집에 가서 도시락을 가져와서 막걸리 한 잔 더 하라고 함께 국수집에 왔습니다.
누군가 노숙인들이 모여서 위험하다고 동구청에 민원을 넣은 모양입니다. 두 번이나 공무원이 찾아왔습니다. 규정을 지키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내일 다시 나와 보겠다고 합니다. 오늘 두 번 째로 공무원들이 나왔습니다. 외부에서 도시락을 나누는 경우에는 마스크를 해야 하고, 손 세정제로 소독을 해야 하고, 2미터 간격으로 서로 사이를 띄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손님들이 도시락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는 잘 하고 있는데... 하면서 보고 갔습니다.
노숙하는 이들을 더 보호하지 않으면 더 큰 위험이 될 텐데, 우리 손님들이 도시락조차 먹지 못한다면 어떻게 코로나 19에 버틸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러나 코로나 19가 진정이 되어서 우리 손님들에게 식탁에 앉아서 먹을 수 있는 더운밥을 대접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