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1일
토요일 아침 땅끝 마을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데
마침 소아마비로 보이는 젊은 아저씨도 불편한 몸으로
가방을 메고 힘겹게 걸으며 사진을 찍고 있어서
말을 걸어 서로 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보면서 불편한 몸을 가진 장애인도
이렇게 땅끝까지 오는데 사지가 멀쩡한 그리스도인들이
땅끝까지 다니며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최남단 땅끝마을에 와서 생각하기를
과연 내가 세상 땅끝까지 와서 복음을 전한 것이
맞는지 고민을 하게 되었는데 오늘 무역의 왕 장보고 기념관에서
바다는 육지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라는
말을 듣고 내가 땅끝에서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땅끝에서
새로운 세계로 복음을 전해야 된다는 메시지를 하나님께 받는 것 같았습니다
그곳에서 차량으로 복음을 전하고 완도군으로 향했습니다
지금 완도군은 육지와 다리가 연결되어 배를 타지 않아도
되었고 출근시간에 도착하여 완도읍 내를 여러번 다니며 차량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토요일이라서 학생들도 시민들도 많이 보이지 않는것 같아서 아쉬웠습니다
그러다가 시내에서 하얀색의 멋있는 예배당을 보았고 예배당 앞에 커다란 돌비석이 보이는데 그곳에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 - (마11:28) 이라는 말과 바로 옆으로는
"가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마 28:20) 는 말씀을 보게 되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라고 사명을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와서 쉼을 얻고 구원을 받았다면 이제는 주께 충성하여 이세상으로
복음을 전하러 가야 되는 것입니다.
완도읍으로 가면서 커다란 장보고 동상을 보게되어 완도가 장보고가 활약한 지역이라는 것을 알게되어
청해진을 찾으러 해신 세트장이 있는 남쪽 해변길을 달리다가 마을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어르신들에게 청해진을 물었더니 다시 읍내로 나가야 된다고
하시며 할머니가 시내버스정류장까지 태워달라고 하셔서 이번에는 두노인을 태우고 찬양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장보고 기념관을 둘러 보면서 이순신장군도 완도에서
본영을 만들고 왜적을 무찔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시고 완도섬에 83일간 안치가
되었다가 아산으로 옮겨졌다는 것입니다
장보고 대사가 해적소탕과 무역의 본거지로 삼았던
청해진은 생각보다 작은 섬이였으며 육지와도 매우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800년도에 만든 청해진에 그 당시에 만든 흙으로 만든 성벽과 한중일에서 유례가 없는 ㄷ
우물과 해변에 그 당시 나무 기둥들을 보면서 감회가 새로웠으며 특히 이번에는 온전하게 보존된 토성까지
보게되어 너무 감사하였습니다
그런데 더욱 감사한 것은 청해진은 육자와 거리가 매우 가까워 다리를 연결해 놓았는데 섬으로 들어
갈때는 조수간만의 차이로 섬과 육지 사이에 물이 빠져서 땅을 밟고 들어 갔습니다
걸어서 섬으로 들어가면서 굳이 신비의 바닷길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걸어서
바닷길을 건널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앞전에 해군이 있는 진해 전도에서도 육지와 섬사이가 조수간만의 영향으로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하였는데
그곳은 진해 해양박물관 인근에 있으며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처럼 자신의 백성을 죄와 사탄의 손에서 건져주시고
구원하시는 이적들을 한국 여러곳에서 나타내 보이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대한 장보고 동상에서 부터 비가 내리는데 태풍이 밀려와서 이날 일은 하지 못했습니다
완도읍에서 신지도를 연결한 다리를 건너 유명한 해수욕장에 갔더니 말그대로 간만에 괜찮은 모래
해수욕장을 볼 수 있었으며 신지도 송곡항에서 10500원 운임비를 내고 이순신 장군의 본영이 있고
강진군과 해상 다리가 연결된 고금도로 갔습니다
현재 신지도와 고금도를 연결하는 다리 공사가 한창이였는데
배의 자동차를 실고 가면서 외국은 모르겠으나 제주도는
자동차를 가지고 복음을 전해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금도에 있는 수군 유적지에 도착하고 자동차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비가 억수 같이 내려서 우산을 찾았더니 그만 신지도에서 표를
끊다가 그곳에 놔두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땅한 물건이 없어서 복음의 플랜카드로 비를 막고
충무사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기념으로 이순신의 얼이 있는
충무사에서 복음의 플랜카드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장군이 순국하자 본영이었던 이곳에 이순신의 유해를 83일간 임시
안장한 후 이듬해에 충남 아산(현충사 근처)으로 옮겨졌는데 이순신 장군이 안장되었던 고금도 충무사 월송대 자리에는
아직도 장군의 기가 살아있어 풀이 자라지 않는다고 하고 실제로 움푹파인 무덤과 주위에는 풀이 자라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충무사에는 이순신과 함께 싸웠던 중국의 진린장수가 이순신의 죽음을 애석하게 생각하고 쓴 글이 있었는데
그 당시 명나라 수군의 장수가 이순신의 죽음을 인정한 글을 남겼다면 항간에 떠도는 이순신 은둔설,만명설 같은 허황된
얘기는 거짓임을 명백하게 증언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시기 까지 이곳 고금도에서 선박을 건조하고 수리하며 수군 본부로 삼았는데
근처에는 염전을 태워서 만든 자리와 병사들을 훈련시켰다는 백사장이 있었고 백사장 근처에 이순신 장군의 지시로 팠다는
어란정 우물이 남아 있었는데 해남 어란마을에 만호가 팠다고 하여서 어란정으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어란정을 찾지 못하여 한참을 헤매다가 해변가의 주택을 짖고 어업을 하시는 아저씨께 물어보고 나서야
어란정을 찾았으며 그 아저씨가 입고 있었던 셔츠가 그 많은 셔츠 중에서 이번 전도여행에 가져온 옷과 동일하였는데
그 순간 상상하기를 아저씨의 외모와 나이가 그 당시 만호와 비슷하여서 이순신을 예수님으로 비유한다면 예수님께서
총지휘관의 자질은 없으나 만호 정도의 임무는 감당할 수 있는지 나에게 그 당시에 이순신 장군이 만호에게 우물을
파라고 지시를 하였듯이 예수님께서도 나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내리시는 것 같았습니다
완산군은 20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고금도에서 해상 다리를 건너서
이번에는 약산도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도 마을마다 교회가 있는
것을 두 눈으로 보면서 우리나라는 육지는 말할 것도 없고 외딴 섬까지 교회가 없는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고금도면에서 기름을 주유하고 점심으로 백반을 먹고는
조금달려 해상다리를 건너 강진군으로 들어왔습니다
마침 다리를 건넌 강진군에 마을이 있어서 내려 갔더니
그곳은 강진군에서 유명한 마량항구였으며 횟집이 많았고 가수들을 초청하여 행사를 열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잠시 구경하다가 말하거나 듣지를 못하는 부부가 만든 옛날 호떡을 사가지고는 강진읍으로 달렸습니다
그런데 가는 길에 보니까 옆으로 바다가 있지만 맞은편 육지와
매우 가까워서 바다로 보이지 않고 넓은 강 정도로 착각이 들정도였으며 중간에 작은 섬이 보이고 섬 양쪽으로 사람이
걸어서 건너는 다리를 만들어 놓았는데 유심히 보니깐 사람이 건널 수 있는 좁은 바다를
보면서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탈출하기 위해 건넜던 홍해와 모양과 크기와 비슷하여서 매우 신비로왔습니다
강진읍에 도착하여 시내 번화가와 골목 여기저기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는데 비가 내려서 그런지 주말에
사람들은 넘쳐나지 않았습니다 읍에는 찜질방이나 민박집이 없어서 시내 큰 교회와 몇 군데 교회에 문의를 하였으나
어린이실에서 재워준다는 교회도 나중에 캔슬이 되고 나머지는 도움을 받지 못하여서 내일 목적지인 다산유배지에 있는
민박집을 알아보다가 미땅치 않아서 기장측 만덕교회에 연락을 하였고 목사님의 소개로 근처 성도분의 민박집에서
3만원에 숙식을 하게 되었는데 목사님 말처럼 너무 좋으시고 약물과 먹을 것도 갖다 주셨습니다
저녁에 아내와 통화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